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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반비’의 부탁을 받고, 이번에 신작 [펭귄과 리바이어던]을 펴낸 요하이 벤클러 교수와 인터뷰했습니다.

이효석(우)이 묻고, 요하이 벤클리(좌)가 답하다
요하이 벤클리(좌)가 답하고, 이효석(우)이 묻다

질투+이타심=졸트(Jalt)

– 교수님께서 질투(jealousy)와 이타주의(altruism)를 합쳐 만든 ‘졸트'(Jalt)라는 조어는 인상적입니다. 인간이 정의를 추구하게 하는 근본적인 본능은 어쩌면 질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인간은 다른 인간을 신경 씁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현상이죠. 저는 질투가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본능보다 더 강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질투를 정의와 연결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요?

–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인간이 정의와 공평함을 원하는 근저에는 질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꺼낸 얘기였습니다.

그렇군요.

 펭귄과 리아비어던

펭귄과 리바이어던(2013)

– 교수님의 새 책, [펭귄과 리바이어던]에 관해 이야기해보죠. ‘펭귄’은 협력 시스템의 대표적인 기업인 ‘레드햇'(Red Hat)의 상징으로 협력적인 인간을 의미하고,리바이어던’은 토머스 홉스의 책으로, 통제하는 정부와 이기적인 인간을 상징합니다. 책 1장에서 중세 이후의 역사를 이기적인 인간에 바탕을 둔 두 개념인 “리바이어던”과 “보이지 않는 손”의 순환으로 설명한 게 아주 흥미로웠는데요. 이러한 설명은 학계에서 일반적인 것입니까?

그 설명은 순수하게 제 아이디어는 아닙니다. 1장에서 ‘리바이어던’과 ‘보이지 않는 손’을 다룬 이유는 정부에 의한 통제와 시장에 의한 통제, 이 양자의 순환이 17세기 이후 근대 사회를 잘 묘사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개념은 모두 이기심이 인간 행위의 기본 동기라는 가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타심과 협력과 같은 사회적 동기 역시 인간을 움직여 왔고, 우리는 이것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리눅스 배포판 제작회사인 '레드햇'과 리눅스 마스코스 턱스(Tux)  (출처: 위키커먼스)
리눅스 배포판 제작회사인 ‘레드햇’과 리눅스 마스코스 턱스(Tux)
(출처: 위키커먼스)

– 이기적인 인간을 상징하는 두 표현, ‘리바이어던’과 ‘보이지 않는 손’, 이 중에서 책 제목으로는 ‘리바이어던’을 선택하셨는데요.

‘리바이어던’은 서양 정치이론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입니다. 홉스는 정부의 등장을 일종의 사회적 계약으로 설명했습니다. 홉스는 구조화된 사회가 없다면, 이 세상은 자연 그대로의 야만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정부가 시민의 계약이라는 홉스의 개념은, ‘신이 왕에게 권력을 주었다’는 당대의 지배적 관념을 뛰어넘은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사고였습니다.

홉스 후대의 학자들은 그가 제시한 배경에서, 예를 들면,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자유를 정부에 양보할 것인가’ 등의 주제를 다룰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제목에 리바이어던을 넣은 것은, 이 책이 서구의 정치사상에 가장 중요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홉스의 사상적 배경이 된, 중앙의 통제가 없을 때 사회는 혼란스럽게 된다는 믿음이 ‘펭귄’으로 대변되는, 중앙의 통제 없이도 인간의 사회적 동기에 의해 협력을 이룰 수 있다는 제 주장에 정확히 대응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리바이어던(토마스 홉스, 1651)과 국부론(아담 스미스, 1776) (사진: 위키커먼스)
리바이어던(토머스 홉스, 1651)국부론(아담 스미스, 1776)
(출처: 위키커먼스)

– 펭귄으로 상징할 수 있는 협력적 인간이 왜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했다고 보십니까? 전통적 협력 시스템과 21세기 협력시스템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왜 21세기에 협력 시스템이 전면에 등장했는지를 저는 이전 책인 [협력의 가치](The Wealth of Networks)에서 다뤘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과 노동 그리고 시장과 정부에 속한 산업들 사이에서 부는 창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일어난 디지털 네트워크 혁명은 과거 우리가 늘 해왔지만, 생산과 부의 핵심이라 여기지 않던 부수적인 활동인 친구와의 대화, 사진 교환과 같은 행동들을 경제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만들었죠.

저는 [협력의 가치]에서 어떻게 물질적인 조건 변화가 우리 사회를 경쟁시스템에서 협력시스템으로 바꾸었는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책은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조직이론 등의 측면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연의 상태에서도 협력시스템을 원하며, 또 만들 수 있는지를 말하려고 합니다. 언제나, 그리고 모든 사람이 협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존 이론들이 사용했던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가정과는 전혀 다르게,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협력적입니다.

– 오늘날 진보는 커다란 정부를 원하고, 보수는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려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리바이어던’은 진보와 ‘보이지 않는 손’은 보수와 관련지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이들 ‘리바이어던’, ‘보이지 않는 손’, ‘펭귄’과 같은 개념과 상징이 오늘날 현실 세계의 정치적 진보 혹은 보수와 연결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진보는 복지 정책에서는 정부 개입을 원하지만, 개인의 사생활 같은 영역에서는 국가의 통제를 반대합니다. 보수 역시, 시장에서는 정부 간섭을 반대하지만, 더 강한 공권력을 지지한다는 측면에서 강력한 정부(리바이어던)를 원하기도 합니다.

요하이 벤클러 하버드 로스쿨 교수 (사진: 이효석)

– [펭귄과 리바이어던]에서 ‘이기적'(selfish)과 ‘이타적'(altruistic)은 핵심적인 개념이지만 분명하게 정의돼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개념이 진화생물학에서는 다르게 사용된다는 사실을 책에서 언급하셨는데요. 교수님은 이 두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먼저 정의에 관해 이야기해보죠. ‘이기적’이란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곧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간형입니다. ‘이타적’이란, 자신에게 해가 되는 상황에서도 타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저는 ‘이타적’이라는 개념이 ‘이기적’이라는 개념과 반대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타적’인 행동은 ‘이기적’인 행동에 반하는 수많은 행동들 중 일부일 뿐이니까요. ‘이타적’이라는 것은 자신이 피해를 입으면서도 상대방의 이익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지만, 예를 들어, 우리는 도덕적 의무에 의해서도 같은 일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이타적이라고 하지는 않죠. 또, 우리는 은혜를 갚기 위해 은인을 위한 일을 하기도 하고,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을 위해서도 선의를 베풀곤 합니다.

저는 이 책에서 ‘이기적 인간’이라는 가정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을 실제 사회에서 사람들이 하고 있으며, 그 이유를 생물학적, 사회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이타적’이라는 개념은 그런 행동 중 일부만을 지칭합니다.

요하이 벤클러 vs. 니콜라스 카

– 책에서 언급된 니콜라스 카와의 내기에 관해 이야기해 보죠. 교수님은 [협력의 가치](2007)에서 대중의 협력과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 자료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것보다 뛰어날 것으로 말했고, 이에 대해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는 결국은 뛰어난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수익을 얻게 될 것이며 여기에서도 시장의 힘이 작동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어떤 사이트들이 더 영향력을 가질 것인가를 보자고 말했었죠. 판단 기준은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람이 시간을 보내는 위키백과(wikipedia), 유튜브(youtube), 페이스북(facebook) 등을 어떻게 보느냐일 것입니다. 교수님 주변 사람들은 이 내기에서 누가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웃음) 첫 번째 내기(2006년) 이후 예정대로 5년 뒤, 우리는 두 번째 논쟁을 벌였습니다. 저는 그때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접속하는 사이트를 보자고 말했었죠. 아마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접속하는 사이트는 이메일이나 검색엔진일 겁니다. 이 두 사이트는 우리가 말한 그런 곳은 아닙니다. 그다음 사이트들이 위키백과, 페이스북, 유튜브 등이죠.

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사이트를 방문하는 것은 그 사이트들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결국 보수를 받고 생산된, 뛰어난 컨텐츠를 가진 사이트가 가장 성공적인 사이트가 될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뛰어난 유료 컨텐츠를 가진 좋은 사이트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방문객 순위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죠.

요하이 벤클러 vs. 니콜라스 카  (출처: 위키커먼스)
요하이 벤클러 vs. 니콜라스 카
(출처: 위키커먼스)

– 결국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왜 인간이 협력적인지, 또 어떤 조건에서 협력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협력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협력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는다면 어떤 조건일까요?

저는 협력을 이끄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본능은 호혜성(reciprocity)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호혜성을 강력하게 원한다는 사실은 여러 실험에서 확인됐습니다. 책이 나온 뒤, 저와 제 동료들은 위키백과를 연구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위키백과에 큰 기여를 한 이들이 호혜성과 공평성(fairness)에 관한 욕구가 매우 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사실 호혜성은 곧 공평성의 한 종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하이 벤클러 & 프란시스 후쿠야마

– 교수님은 3장에서’사회적 학습'(Social influence), 곧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로부터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배우며, 우리가 협력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를 의미한다고 생각되는데요. 자연스럽게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트러스트](1995)를 연상시킵니다. 후쿠야마는 한 국가 내 구성원이 가진 사회적 신뢰(‘사회적 자본’)가 그 국가의 경제적 번영을 결정한다고 단언했습니다. 교수님의 주장과 후쿠야마의 주장은 연결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트러스트'(주: 인터뷰 맥락에선 사회적 구성원 간의 신뢰)에 관한 연구는 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트러스트는 매우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이것은 한 사회 전체의 상태를 일컫기도 하고, 또 개인 간의 특별한 관계를 말하기도 합니다. 후쿠야마의 것을 비롯한 1세대의 연구자들이 트러스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그 뒤 15년 동안 우리는 트러스트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무엇이 트러스트를 가능하게 하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을 연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크게 보면, 우리는 같은 지적 흐름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종언](1992)로 유명한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1995년에 펴낸 [트러스트]
(사진: 위키커먼스)
– 국가 간에 차이에 관해 좀 더 이야기해보죠. 후쿠야마 교수의 의견처럼 저 역시 선진국이 후진국보다, 서구가 비서구보다 협력적인 사회를 더 잘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반드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신뢰도를 국가별로 비교한 연구는 현재 그렇게 많지 않아요. 물론 몇몇 연구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높은 국가에서 개인 간 신뢰 역시 높고, 그 반대도 성립하는 것을 보여준 자료들은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통제가 매우 약한 사회에서도 부족이나 지역 및 이웃 간 신뢰가 매우 강한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외부인(stranger)들과 신뢰를 통해 공공의 가치를 잘 만들어 낼 수 있는 사회가 역시 높은 정도의 협력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요. 이런 면에서는 사회적 신뢰는 발전의 선결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와 문화 산업 

– 교수님은 [펭귄과 리바이어던]에서 위키백과를 협력 시스템의 성공 사례로 여러 번 언급합니다. 물론 위키백과가 놀라운 결과를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년 연말에는 기부를 호소하는 지미 웨일즈(Jimmy wales) 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실 위키백과는 다른 인터넷 기업과 비교하면 재정적으로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도 모릅니다. 사회적 서비스들이 수익을 위해 선택할 방법은 광고나 기부 유료회원 등의 방법이 있고, 많은 상업서비스들은 광고를 수익모델의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협력 시스템과 수익 모델에 관한 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위키백과가 광고하지 않고,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자원자의 봉사에 의해 만들어진 사이트이고, 시장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기부는 그런 면에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죠. 저는 모든 협력 시스템이 광고를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광고는 기업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염려 역시 일리가 있습니다. 저는 협력 시스템이 어떻게 수익을 내느냐는 문제는 그 협력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협력할 수 있고, 또 얼마나 통제가 분산되어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가에 비하면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또 많은 오픈소스 프로젝트들이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연례 행사, 창립자 지미 웨일즈가 강렬한 눈망울로 후원을 호소한다

– 많은 사람이 출판이나 음악과 같은 문화 산업의 위기를 말합니다. 이런 산업들이 ‘협력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기존의 문화산업이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문화상품의 생산 방식 변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키백과는 백과사전 시장을 없애다시피 했고, 플리커는 사진 시장의 규모를 급격하게 줄였습니다. 하지만 음악에 있어선 생산 비용이 낮아졌고, 이는 새로운 음악가에게는 이익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함께 앨범을 만들기도 하며 온라인을 통해 기부받기도 합니다. 즉, 기존의 음반사와 무관하게 직접 팬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조사 결과는 7년 전에 비해, 자신을 예술가로 칭하는 사람의 수가 증가했으며, 이들의 평균 소득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이 큰돈을 벌기는 더 어려워졌지만, 어느 정도의 수익을 올리기는 더 쉬워졌습니다.

한국의 ‘갑을관계’를 말한다

– 한국에서는 최근 ‘갑을관계’가 이슈입니다. 갑을관계는 계약을 맺는 두 주체 사이에 발생하는 일방적 권력관계를 의미하는데요. 예를 들면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착취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80년대 중반 이후로, 혁신은 노동자 및 하청업체와 긴밀히 협력하는 기업들로부터 나왔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어떻게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경쟁력을 잃었고, 도요타가 어떻게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얻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혁신이 필요할수록 자신의 협력업체와 좀 더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회사가 더 뛰어난 결과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한국이 비록 매우 수직적인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협력업체와 진정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으로 봅니다. 물론, 저는 한국의 산업구조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지만요.

"갑 위에 사람없고, 을 밑에 사람없다."  (출처: DH's Blog)
“갑 위에 사람 없고, 을 밑에 사람 없다.”
(출처: DH’s Blog)

– 안타깝게도, 많은 한국인은 한국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서의 압도적인 위치를 이용해 글로벌 마켓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 기업들은 협력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 한국의 많은 기업과 조직은 통제(‘리바이어던’ )와 경쟁(‘보이지 않는 손’)에 기반을 두고 짜여 있습니다. 이런 조직들이 ‘협력 시스템’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책 후반부에서 언급했는데, 예를 들어, 수직적인 구조를 가진 조직에서 리더가 어떤 변화와 혁신을 추구할 때, 이 변화가 중간 관리자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중간 관리자들은 통제에 매우 익숙해 있을 수도 있고, 경쟁에 치여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들 중간 관리자들이 실질적으로 협력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수직적인 조직에서 협력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감시와 자유

– 교수님은 계속 협력에 관해 연구하실 생각인지요? 아니면 염두에 두고 계신 연구 주제가 있는지요?

저는 최근 NSA(미국 국가안보국)가 하고 있는 감시(주: 프리즘 사태)와 관련해 많은 질문을 받고 있고, 이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의 통제와 시민의 권리가 충돌하는 부분이고, 제 주된 관심사인 인터넷 기업 및 인터넷 협력 시스템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정부와 기업은 인간이 더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삶을 점점 더 통제하고, 더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저는 이렇게 강력한 정부와 기업이 존재하는 오늘날 어떻게 해야 우리가 최소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년 전 첫 세대의 연구자들이 기술이 인간에게 무한한 자유를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이 기술을 가진 강력한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보호할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jeffschuler, "uncle sam wants your privacy" (CC BY)
jeffschuler, “uncle sam wants your privacy” (CC BY)

– 감시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어떤 사람은 구글이 NSA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공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구글 제품을 쓰지 않는다고도 말합니다. 교수님도 당신도 그런 우려에 공감하시나요?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진정 프라이버시를 원한다면, 값싸고, 편하고, 쉬운 프로그램들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감시에 저항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하고,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는 건 사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최근 몇몇 국가들, 예를 들어 브라질이나 독일의 몇몇 회사는 공식적으로 NSA의 감시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감시를 벗어날 수 있는 상용 소프트웨어들이 나오고 있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중에도 대안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정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통제에 대항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기술, 시장, 사회운동 등 다방면에서 노력이 필요합니다.

– 긴 시간, 성실한 답변에 감사합니다. 많은 한국 독자들이 [펭귄과 리바이어던]에서 협력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길 바랍니다. 교수님의 새 책 역시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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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필자의 블로그 ‘aholic’에도 실렸습니다. 그리고 인터뷰 일부는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글 표제와 본문 일부 및 삽화는 슬로우뉴스 편집 원칙에 맞게 수정, 보충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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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댓글

  1. 안녕하세요, gatorlog님 감사합니다.
    저는 번역본의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혹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가 아니라면 알려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번역본에서 ‘사회적 학습’이 어떻게 설명되는지 말씀드리기 위해 번역본에서 ‘사회적 학습’이 등장하는 79-81페이지를 아래 인용하겠습니다. 물론 인터뷰에서는 ‘social influence’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평판과 사회적 자본이 협력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유일한 원동력은 결코 아니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로 사회적 학습이 있다. 많은 증거에 따르면,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의 행동은 자신이 목격한 주변 사람들의 행동에 크게 영향 받는다. 과자를 하나 더 먹을지 말지와 같이 겉으로 보기에 단순하고 개인적인 결정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정 말로 개인적인 결정 같다. 사람들은 의지력을 발휘하거나 실패하고 만다. 과자를 또 먹거나 참는 것이다. 때로 다른 사람을 보며 이렇게 생각 한다. “나도 저렇게 살이 안 찌는 체질이면 좋을 텐데.” 나도 그런다. 그런데 만약 2007년 7월의 어느 아침에 눈을 떠서 체중과 벌이는 투쟁이 과자를 너무 많이 먹기로 한 결정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된 다면 얼마나 놀랍겠는가. 실제로 비만은 친구와 형제자매, 배우자로
    부터 ‘전염된다.’ 이는 정확한 사실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니콜러스 크리스타키스(Nicholas Christakis)와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는 1971년부터 2003년까지 프레이밍햄 심장병 조사 (Framingham Heart Study)에 참가한 1만 2000여 명의 비만 문제를 연구 했다. 참가자들의 사회적 유대 관계를 살펴본 그들은 뚱뚱한 사람의 친구나 형제자매, 배우자가 뚱뚱한 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사실은 그렇게 놀랍지 않다. 뚱뚱한 사람들끼리 뭉치는 경향이 있다고 추측할 수도 있으니까. 형제자매나 배우자처럼 식습관이 같은 사람들은 같이 뚱뚱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파악된 체중 증가 시기는 이것이 다가 아님을 증명해주었다. 사람들은 친구와 가족이 뚱뚱해 진 이후에 뚱뚱해졌기 때문이다. 즉 비만은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친구가 뚱뚱해질 경우 본인이 뚱뚱해질 위험이 57퍼센트가 증가했고, 형제자매가 뚱뚱해질 경우에는 40퍼센트가 증가했다. 배우자가 뚱뚱해질 경우 그 위험은 37퍼센트가 커졌다. 요컨대, 사람들은 자기 주변 사람들의 먹는 행동에 ‘전염되고’ 있었다.

    사회적 학습이 먹는 음식이나 양에 영향을 미친다면 사람들이 협력하는 정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예는 조세 복종에 관한 연구이다. 1986년에 세제개혁법(Tax Reform Act)이 통과된 이후, 입법자들은 회계감사나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세법에 대한 복종이 증가할 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의 복종을 예측한 유일한 요인은 처벌이나 위협 정도, 체포 가능성이 아니라 법이 실행되기까지 여러 달 동안 대화를 나눈 상대였다. 새로운 세제개혁법에 복종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대화한 사람들은 나중에 자신도 복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실험에서 미네소타 국세청은 일부 납세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많은 시민들이 당당히 세금을 부담할 거라는 사실을 알렸는데(미국의 자발적인 복종 수준은 80퍼센트 이상으로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다른 모든 기준을 고려하더라도 국세청 편지를 받은 납세자들이 약간 더 많은 소득을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호주 국세청이 납세자들 에게 편지를 보내 대부분의 납세자들이 지나친 세금 공제 요구가 잘못 이라고 믿는다는 사실을 알리며 유사한 연구 조사를 실시했을 때도 사람들을 계속 정직하게 만드는 데는 사회적 학습이 훨씬 더 효과적임이 드러났다. 이런 결과는 부분적으로 사람들이 사회적 관습을 따르려는 것과 관련 있다. 그러려면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알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적합한 행동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학습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이다. 그렇게 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것을 좇는 경향이 있다. 즉 당신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협력적이면 당신 또한 협력적일 가능성이 커진다.”
    – 펭귄과 리바이어던, 요하이 벤클러 P.79-81

  2. 인용해주신 글을 읽어보니 역자가 ‘사회적 영향”을 사회적 학습으로 번역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용하신 두 개의 사례는 모두 social norm이 사회적 영향으로 혹은 nudge 적 cue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네요.
    특히 두번째 사례는 utility bill에 이웃들의 평균 전기 사용량을 보여줌으로써 energy saving에 큰 효과를 봤다는 연구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http://www.cbpp.illinois.edu/pdf/Kahn%20paper.pdf
    http://psp.sagepub.com/content/34/7/913.short
    http://cbey.yale.edu/uploads/Environmental%20Economics%20Seminar/w15386.pdf

    호텔방 수건 아끼는데 어떻게 social influence가 이용되는지에 대한 재미난 연구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http://www.jstor.org/stable/10.1086/586910

    그래서 인용하신 부분중 “사회적 학습”은 “사회적 영향”으로 그리고 “사회적 관습”은 “사회적 규범”(social norm) 으로 바꾸는게 더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을 계속 정직하게 만드는 데는 사회적 학습이 훨씬 더 효과적임이 드러났다. 이런 결과는 부분적으로 사람들이 사회적 관습을 따르려는 것과 관련 있다. ”

    댓글 달아주셔 감사합니다..

  3. 안녕하세요, 재미있고 깊이 있는 답변 감사합니다.

    단지, 어제는 집에서 한글판만을 확인하고 위와 같은 답변을 드렸습니다만, 오늘 연구실에서 영문판을 찾아보니 요하이 본인은 본문중에 social influence 대신 social learning 이라는 용어를 썼더군요. (아마 그래서 번역자는 ‘사회적 학습’이라는 용어를 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관습도 social convention 이라는 단어를 썼구요.

    그런데 저는 interview 중에 social influence 라는 용어를 썼더군요. 아마 3장의 제목인 “Stubborn Children, New York City Doormen, and Why Obesity is Contagious: Psychological and Social Influences on Cooperation”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물론 내용은 동일합니다만, 혹시 참고가 되실까 하여 여기에 영문판의 내용을 조금 덧 붙입니다. Bold 나 italic 이 되지 않아 “- -” 기호로 단어를 강조하였습니다.


    But reputation and social capital are by no means the only social dynamic at work in a cooperative system. Another critical factor is – – social learning – -. Much evidence suggests that our behavior in any situation is greatly influenced by the behavior we’ve observed in people around us, even if we’re completely unaware of that influence. Consider a seemingly simple, individual decision, such as whether or not to eat that next cookie. We’ve all been there. It feels very much like an individual decision, right? We either exert willpower, or fail to. we either eat the extra helping, or we refrain. Sometimes we look at others and think, “I wish I had that metabolism.” I know I do. How surprising, then, to wake up one morning in July 2007 and find that our collective struggles with our weight aren’t result of individually deciding to eat too many cookies; in fact we actually “catch” obesity from our friends, siblings, and spouses! Well, that’s not exactly true, but close enough to be interesting. In a fascinating paper, Nicholas Christakis and James Fowler studied obesity among more than twelve thousand people who participated in the Framingham Heart Study between 1971 and 2003. When they looked at social ties between the participants, what they found was that obese people tended to have obese friends, siblings, and spouses. At first this doesn’t seem all that surprising. One might expect that obese people would tend to stick together. People who have the same eating habits, such as siblings or spouses, would become obese together. But the timing of the weight gain in this study, however, showed that this was not all that was happening. Instead people were becoming obese after their friends and family members had become obese. In other words, obesity was spreading through social networks like a virus. In fact, the study showed that one’s friend becoming obese increased one’s risk of becoming obese by 57 percent; having a sibling become obese increased one’s likelihood of following suit by 40 percent; and with spouses, the risk increased by 37 percent. In short, the people were “catching” the eating behaviors of those around them.

    It shouldn’t come as a surprise that if – – social learning – – influences how much and what we eat, it would also influence to what degree we cooperate. One interesting example is a study on tax compliance. After the 1986 Tax Reform Act was passed, most lawmakers assumed that compliance with the new tax code would increase as the result of penalties and the probability of an audit. This, however, turned out not to be the case. Instead the single factor that predicted people’s compliance wasn’t the size or threat of the penalties or the chance of getting caught, but whom they spoke to in the months leading up to the implementation of the reform. If they talked to people who said they were going to comply, they later reported that they too intended to comply; the reverse was also true. Similarly, in one of the few experiments of its kind, when the Minnesota Department of Revenue sent letters to certain taxpayers informing them of the fact that a majority of their fellow citizens pay their fair burden of taxes (voluntary compliance levels in the United States are high, by global terms, at more than 80 percent), they found that, with all other factors taken into account, the taxpayers who received that letters declared somewhat more income on their taxed (fewer deductions) than those who didn’t. When the Australian tax authority tan a similar study, sending taxpayers letters informing them about the fact that most taxpayers strongly believed that overclaiming tax deductions was wrong, it was even more effective in keeping people honest. As we will see in the chapter on conformism, part of this has to do with the fact that we seem to want to conform to – – social conventions – -. But to do so we have to know what others are doing. We have to be able to observe and learn what the socially appropriate behavior is; when we do, we tend to follow it. In short, when the company we keep is cooperative, we too are more likely to be cooperative.

  4. 제가 원래 typing을 좋아합니다. ^^

    그럼 일단은, 학술적 용어로는 social influence 가 맞으나, 같은 의미로 social learning 을 사용한 저자의 의도를 존중해서 (물론, 그래도 되느냐는 별도로 하구요), ‘사회적 학습’으로 두어도 괜찮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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