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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94학번이 기억하는 1994년

평소 드라마를 자주 보지 않는다. 매회 놓치지 않고 봤던 드라마가 [대장금] 이후 있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두 딸을 낳아 키우고 있고 내년이면 나이 마흔이다 보니 신데렐라 얘기 나오는 드라마에 감정이입이 되는 시기는 지났다. 두 남녀 주인공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에 가슴이 두근두근한다는 글을 보면 ‘풋~’ 웃음이 난다. 남편은? 역시 드라마라곤 보지 않는다. 두산팀 팬인 남편은 어쩌다 집에 일찍 오는 날이면 야구경기를 보는데 그마저 끝난 요즘 TV는 아홉 살, 다섯 살 난 두 딸이 독차지했다.

응답하라 1994 포스터

응답하라 1994 포스터

우리 부부를 추억으로 끌어당긴 드라마

그런데 우리 부부를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당긴 드라마가 하나 생겼으니, 바로 TvN의 [응답하라 1994]다. 우리 부부는 1994년에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입학해 2학년 5월부터 사귀기 시작, 2002년 10월에 결혼에 골인,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귄 사람과 뽀뽀하고 껴안고 결혼까지 한 그렇게 흔하지는 않은 커플이다. 남편(당시 남친)이 군대에 간 1997년 여름까지 우리는 평일엔 학교에서, 주말이면 밖에서, 1년 365일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났기 때문에 그 시절에 대해 거의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94학번이 주인공이다’, ‘그때 있었던 일들이 디테일하게 나온다’는 주변의 얘기에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주로 ‘본방사수’는 하지 못하고 올레TV VOD로 (매회 1200원씩 내며) 6화까지 본 감상은, 재미는 있지만, 진짜 그때가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2000년대 학번이 “94년도엔 이랬겠지”하며 상상하며 쓰는 드라마를 보는 듯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대포동 미사일’이란 단어를 듣고 느꼈을 때의 황당함과 비슷하다. 이 영화에서 과거 부분의 공식적인 배경은 1996년도이고 감독이 처음에 구상할 때 배경으로 삼았던 연도는 1990년도인데, 대포동 미사일이 처음 발사되어 한국에 쇼크를 줬던 것은 1998년 8월이었다.

[응답하라 1994]에서 만난 어떤 위화감 

[응답하라 1994]에서 이런 위화감을 받았던 부분 중 하나는 해태가 대치동에 사는 칠봉이에게 “나라면 대치동에서 살고 싶은데”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전남 순천 출신으로 서울에 대해 잘 모르는 해태로 설정돼 있지만, 대치동이 대단히 유명한 부자 동네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94년에는 대치동이 그렇게 전국적으로 유명한 동네가 아니었다. 유명세를 탄 것은 훨씬 뒤, 2000년 전후 은마아파트 재개발 붐이 일어나면서부터다. 대치동 학원가가 ‘사교육 1번지’가 된 것 역시 1995년 대학생 과외 허용 및 보습학원 허용 조치 이후 압구정동 등에 생겨난 학원가가 이른바 ‘8학군 명문고’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 와 밀집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1998년도쯤으로 봐야 한다.

1991년 출판된 유하 시집 (문학과 지성)

1991년 출판된 유하 시집 (문학과 지성)

94년도에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동이라고 하면 압구정동을 들 수 있다. 당시 ‘압구정동 오렌지족’이라는 것이 사회 문제화되어 신문에도 날 정도였다. 하지만 정말 강남 출신이 아닌 담에야 서울에 살아도 압구정동이 뭔지, 오렌지족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94년 새내기였던 나는 과 내에서 ‘사회문화학회’라는 학회(학습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압구정동 오렌지족이라는 새로운 문화에 대해 알아보겠다며 같은 학회 선배들 및 동기들과 압구정동에 가서 ‘로데오거리’라는 게 어디 있냐고 물어보고 다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민망한 짓이지만 당시엔 나름 진지한 탐구활동이었다. 상당수 동기들이 지방 출신이라 압구정동 로데오거리가 어딘지 모르는 게 당연했지만 나는 서울 토박이였는데도 알지 못했다. (결국,  로데오거리가 어디인지 모르고 온종일 헤매다 헤어졌다.)

정말 그때 ‘빠순이 문화’가 있었나?

또 하나 위화감이 느껴지는 대목은 나정이의 ‘이상민 빠순이’ 설정이다. 사실 우리 때는 ‘빠순이’ 문화가 그렇게 보편적이지 않았다. 물론 인기 가수에게 소녀들이 열광하는 것은 멀리는 비틀즈 시대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빠순이 문화가 보편적 문화로 자리잡은 것은 H.O.T부터라고 봐야 한다. 그전에는 케이블TV 음악채널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빠순이 활동(?)을 하려고 해도 콘서트나 주말 인기순위 프로그램 정도밖에 갈 곳이 없었다.

물론 서태지 팬 윤진에 대한 묘사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서태지 열풍은 대단하긴 했다. 하지만 대학 농구경기의 경우 (인기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렇게 열광적인 팬심을 보여줄 정도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빠순이 문화는 진짜 94학번 세대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H.O.T와 젝스키스 팬들의 다툼을 보여주며 공감을 얻었던 [응답하라 1997]과는 크게 다르다.

‘남자는 논리’ ‘여자는 공감’ 대중적 코드의 기원

1993년 12월 출판된 [화성에서 온 여자 금성에서 온 남자](친구미디어)

1993년 12월 출판된 [화성에서 온 여자 금성에서 온 남자](친구미디어)

남녀의 생각 차이를 놓고 하숙집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설전을 벌이는 부분도 어색했다. ‘남자들은 논리를 따지지만, 여자들은 공감을 원한다.’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경구처럼 됐지만 94년도에는 상식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남녀 간의 서로 다른 생각이 화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출간되면서부터였는데, 이게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것이 1992년도였다. 내가 대학 다닐 때 한국에서도 출간되어 큰 반향을 얻었고 지금까지도 개정판이 나오고 있지만, 이때는 ‘화성남 금성녀’라 칭할 정도로 남녀의 생각이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비로소 생겨난 때였다. 여자조차 여자의 마음을 몰랐던 때였다.

나정이는 해태에게 ‘네 여자친구가 원하는 답은 네가 금요일에 내려갈지 토요일에 내려갈지가 아니야’하고 얘기해 주지만 당시 1학년생 중 그렇게 명확히 남녀의 생각 차이를 알았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그때 여대생들은 남자들과 큰 차이 없는 촌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선배한테 ‘오빠’라고 부르는 게 너무나 어색했던 나머지, ‘형’이라고 부르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도 오빠란 소리가 얼마나 소름 돋았던지… 그렇다고 내가 남자도 아닌데 형이라고 부르는 것도 웃기고 해서 그냥 ‘선배’라고 불렀는데, 남자 선배들은 그 호칭을 정말 싫어했다.

[응답하라 1994]이 불러오는 추억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응답하라 1994]에 등장하는 소품이나 일화 중 94년을 추억하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삐삐, KFC의 ‘비스켓’ 같은 정도다. 당시 사회적 이슈가 됐던 사건들은 그냥 TV 뉴스 속의 한 장면으로 그친다. 그러한 사건들은 나정이들의 일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94년 대학은 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때는 지금은 존재조차 희미해져 버린 운동권 총학생회가 과학생회까지 뿌리 깊게 조직돼 있었던 때다. 학교에 들어가면 처음 가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알려주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대표적인 게 5.18. 그때까지만 해도 ‘광주에서 일어났던 폭동’ 정도로 알거나, 아예 5.18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도 수두룩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당시의 처참한 영상과 사진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학생들은 거리로 나가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외쳤고, 거리에는 최루탄이 난무했다. 5.18 시위가 가장 최고조에 이르렀던 때가 1995년도인데, 그때는 거의 서울 전역의 대학생들이 운동권이든 아니든 총궐기하여 종로를 점거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운동권이 아니었던 내가 남편과 사귀게 된 계기도 그때의 시위에 참가했을 때였다.

1995년, 5.18특별법 제정 및 책임자 처벌 요구 대학생들 시위
(사진: 경향신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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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5.18특별법 제정 요구 시위에 최루탄으로 진압하는 경찰
(사진: 경향신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그뿐 아니다. 1995년은 민주노총이 창설된 해이기도 했다. 당연히 94년도에도 이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고, 학생들의 관심도 많았다. 메이데이 행사에 대학생들도 참가했고, 대학교에서 아예 열리기도 했다. 그때 유행했던 책은 사회과학 서적들이었다. 94년도엔 특히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이 유행했던 걸로 기억난다. 과 잡기장에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치기 어린 고민이 가득했다. 지금처럼 취업난을 걱정하며 공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고(그러나 졸업 직전인 1997년 11월 갑작스러운 IMF 구제금융 신청으로 모두 아무런 대비 없이 실업자로 졸업하는 신세가 된다) 대신 대학생은 사회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1995년 11월 11일 창립한 ‘민주노총’
(사진: 출처 미상)

드라마와는 점점 멀어지는 1994년

물론 나는 1994년에 대학에 입학했던 수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일 뿐이고, 내 경험이 일반화되기 어렵다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층은 94학번이 아닌 사람들이 훨씬 많다. 진짜 94년도의 대학생활을 그린다면 오히려 공감하는 시청자들이 적을 수 있다. 그러니 애초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회를 거듭할수록 드라마는 94년도에서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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