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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병역거부를 했다는 사실은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이 병역거부를 하기까지는 한 장의 소견서에 다 담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짜사나이 문집’, 100쪽)

지난 9일, 한국전력 서울본부를 점거한 혐의로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다가 괴이한 질문을 하나 받았다.

“피의자는 서울 경찰청 보안수사대에서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 혐의로 조사 중인 것으로 나오는데, 무엇 때문이죠?”

“네? 진짜요?”

뉴타운간첩파티에서 만난 사람들

설명이 좀 필요하겠다. 운동가 대부분은 여러 가지 직함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내 직함 중에는 ‘박정근 후원회장’이라는 것이 있다. 소위 ‘리트윗 보안법’ 사건으로 유명해진 그 박정근 말이다. 박정근이 [우리민족끼리] 계정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을 때, 보안수사대에서 조사받고 있는 그를 문 밖에서 기다리며 나는 괴이한 기획 하나를 생각해냈다. 그것은 ‘뉴타운간첩파티’라는 이름부터 당돌한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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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이적동조’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분명히 ‘북한’을 소재로 표현하고 있는 것들을 늘어놓고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것이 주제였다. 어디까지나 다루는 소재에 관한 문제 제기가 목표였기 때문에 발언이나 국가보안법 반대 명시 등의 행위는 없었고, 전시와 공연, 기도회 등으로 채워졌다. 이 행사는 당시 조선일보에 보도되기도 했고, ‘뉴타운간첩파티’라는 이름만으로도 신고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서 서울경찰청에서 내게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었다. ‘뉴타운간첩파티’와 ‘박정근 후원회’라는 이름, 그게 아마 내가 국가보안법으로 조사받게 된 이유이리라.

‘뉴타운간첩파티’는 내게 좀 특별한 기억이었는데, 대단히 잘 된 행사여서가 아니라 그 준비 과정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기획단을 모집해서 소재와 기획의도만 던져놓고 나머지는 그들이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었다. 결과물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닌데, ‘와 이렇게 해도 결과는 나오는구나’라는 기분이 들게 되었던 기획이었다. 유튜브에 후기 영상이 있는데, 서브컬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쾌할 수 있으니 마음을 가다듬고 보시길 바란다.

http://www.youtube.com/watch?v=_HOHLiNcyc0

서설이 길어졌는데, ‘뉴타운간첩파티’를 통해서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1. 김대환

2011년 9월, 박정근이란 인물이 ‘우리민족끼리’ 트위터를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압수수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중략) 뉴타운간첩파티 기획단에서 미술팀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주워듣고 나는 기획단에 지원했다. 당시 기획단장이 지금의 박정근후원회장이자 청년좌파(준) 대표인 김성일 씨인데, 이때부터의 인연으로 지금은 청년좌파(준) 대변인과 박정근후원회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

– 김대환, [지금, 국가보안법과 함께 살고 계십니까], 월간 [좌파] 10월호

김대환

뉴타운간첩파티 기획단 모집을 통해서 만난 김대환이란 인물은 덜컥 기획단을 하겠다고 찾아온 배포와 반대로, 소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 성격은 여전한데, 큰 결정은 곧잘 하지만 작은 결정은 영 못하는 사람이다. 얼굴이 곱게 생겼다는 것 외에는 내 관심을 끌 만한 특징이 없었던 관계로, 그 당시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가 좀 다른 모습을 처음 보였던 것은 2012년 여름 즈음의 어느 날이었다. 머리를 빡빡 깎은 채로 찾아왔는데, 병역거부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영장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는 시기는 1~2년 후. 병역거부를 하겠다는 생각은 분명히 굳힌 것 같았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듯했다. 병역을 거부하려는 이유도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강한 사람이 되려고 했었다. 조금만 잘못해도 스스로 꾸짖고, 공부를 제대로 못하면 스스로의 뺨을 때리거나 하기도 했다. 어른이 되면 군인장교나 경찰간부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왜 그렇게 되고 싶냐고 물어오면 그럴듯한 이유를 대답했다. 내가 뱉은 말들이 모두 내 생각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실은, 지배당하기 싫어서, 덜 맞고 싶어서였다. 약자가 되지 않는 길은 강자가 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을 지배하는 것도, 때리는 것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심각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난 결국 강한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다. 강자도 약자도 견뎌낼 수 없으니,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고통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온갖 것으로부터 도망쳤다. 영화나 드라마의 교훈과 달리 도망자의 삶은 행복했다. 물론 내 안의 변화만으로는 온전한 행복을 누리긴 힘든 것 같다. 곧 있으면 영장이 나올 것이고, 더 이상 미룰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소심하지만 좀 더 크게 도망을 쳐보기로 했다. 나는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에 갈 생각이다. 물론 감옥 또한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공간이다. 나는 다만 “강한 사람”이 되기를 거부할 뿐이다.

-김대환, ‘도망자’, 월간 [좌파] 9월호

어쨌거나 도와주겠다고 덜컥 약속했다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영장이 나오는지를 꾸준히 체크하고, 때가 되면 기자회견 정도를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해주었다. 그 후로는 아무 일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2013년 1월에 나는 청년좌파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그는 자연스럽게 그 단체에 가입했다. 늦봄 즈음에는 리트윗보안법 피해자들과 모여서 명목뿐이었던 박정근후원회를 운영위원회 체계가 있는 단체로 새로 만들었는데, 여기서도 그가 사무국장을 맡게 되었다.

2.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을 열심히 하던 고3 때, 우연히 오정록 씨의 병역거부소견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소견서의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서 박혔습니다. 그 소견서가 뭐 특별히 미문으로 되어 있거나 한 건 아니었을 것이고,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고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 명료하게 키워나가던 시기에 만난, 생생한 병역거부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병역거부자들의 존재에 대해 안 뒤로, 제 마음속에는 항상 병역거부라는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그 선택지는 어느 순간 저에게 당연한 것, 징병검사에서 면제라도 받지 않는 이상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징병검사에서 1급을 받아버렸지요.) 병역특례나 해외봉사 같은 여러 선택지들을 애써 생각해보려 했지만, 그런 많은 ‘대체복무’들도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고 또 나름의 특별한 기능이나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 뒤에는 마음이 멀어졌습니다. (중략) 제가 처음 만났던 병역거부소견서, 오정록 씨의 병역거부소견서에서 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끝내겠습니다.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입영영장보다 병역거부를 먼저 만났기 때문입니다.” (7쪽~10쪽)

–  공현, ‘병역거부소견서, [가짜사나이 문집]

공현
공현

김대환이 슬슬 영장이 나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쯤, 병역거부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던 청소년인권운동가 공현이 출소했다. 공현은 능력 있고 성격 나쁜 운동가로 유명했는데, 서울대학교에 다니다가 대학거부선언을 하고 자퇴한 뒤 곧바로 병역거부까지 해버리는 거부 연타를 친 덕에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화제가 되었었다. 그가 수감 중일 때 딱 한 번 면회를 간 적이 있었는데, “들어가서 공부한대매 책은 많이 읽었어요?”라는 말에 시큰둥하게 “라이트노벨은 많이 읽었는데…”라고 대답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쁜 관계는 아니었지만, 친구라기엔 먼 관계였기에, 출소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딱히 찾아보거나 연락하지는 않았다. 그 즈음에 우리(그러니까 청년좌파)는 다른 고민에 빠져있었는데, 해병대 캠프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7월 18일,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에서 열린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던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고등학교 학생 5명이 사망했다(참고: 해병대 캠프 실종 사고). 언론은 연일 안전관리 소홀에 대해 문제 삼고 해병대캠프가 사실 ‘짭퉁’이었다는 보도를 냈다. 해병대에서는 “해병대”를 상표 등록해서 이런 사고를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언론의 보도나 세상의 말들을 들을수록 우리는 혼란에 빠졌다. 이 녀석들 일부러 그러는 건가? 도대체 왜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거지?

‘그러니까 왜 그들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해병대 캠프 같은 걸 가야했느냐고?’

그리고 [진짜 사나이]는 여전히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3. 박정훈

봄이 지나고 겨울바람이 아프게 느껴지는 11월 9일 오후 2시 김영배 씨의 후배였던 이태준 씨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영배 씨와 그의 후배 이태준 씨 모두 나의 선배들이다. 그들은 ‘대학생사람연대’라는 학생단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이 감옥에 들어가는 과정을 똑같이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선·후배들 군대 보내는 일은 많이 해봤지만, 감옥 보내는 것에는 영 익숙하지가 않다. (63쪽)

– 박정훈, ‘또 한 명의 청년이 군대 대신 감옥을 택했습니다’, [가짜사나이 문집]

박정훈
박정훈

병역거부로 감옥에 다녀온 지 2년쯤 된 김영배가 첫 아이의 출산을 기다릴 즈음에, 그의 후배이자 청년좌파의 집행위원장인 박정훈은 영장을 받았다. 그때 청년좌파에는 ‘반전평화팀’이라는 것이 생겼다. 입영예정일은 10월 8일. 그에게 병역거부는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이웃들이 죽어가는 공동체에서 홀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없다. 평화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당신과 나의 몸과 마음이 불안하지 않은 상태가 평화다. 평화를 위해 국가가 무기를 개발하고, 군사력을 늘리고, 핵을 보유하는 것은 갈등과 긴장을 높이고, 결국 우리를 파괴하는 행위다. 공장에서 노동자가 쫓겨나고, 삶의 터전에서 길거리로 내쫓기고, 말하지 못하는 자연의 생명들이 죽어가는 것, 여성과 성소수자와 장애인들이 배제되고 차별받는 것은 총성 없는 삶의 전쟁에서 자행되는 고요한 학살이다. 이러한 국가의 강제징집을 거부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평화 행동이다. (75쪽)

– 박정훈, ‘병역거부소견서’, [가짜사나이 문집]

그의 기자회견 제목은 ‘나는 거절한다’였다. 기자회견에 참석해 지지발언을 하던 내게 한 시민이 시비를 걸었다. “군대? 가야지! 전쟁 해야 돼!” 그리고 그는 내게 따졌다. 군대에 가는 게 양심에 맞는 행위가 아니라면, 당신은 왜 군대에 갔느냐고(발언 중에 나는 군대를 다녀왔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상한 질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내 의지로 군대에 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말에 대해 ‘군대에 간 사람은 비양심적이라는 거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만, 그것도 이상한 말이다. 왜냐면 군대에 가는 것은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군대를 어떻게 생각하건, “양심에 따라 군대에 입대”하거나, “양심을 거스르고 군대에 입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군대를 거부하는 것은 당신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지만, 군대에 가는 것은 당신이 결정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아무것도 안 했을 뿐이다.

나는 지금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조금 다른 사회적인 임무를 수행하고자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가 노동자와 빈민과 장애인과 사회적으로 배제된 자들의 안전망이 되어줘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야만의 나라의 부름을 거부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시민으로서의 또 하나의 의무이다. 부당한 국가권력과 부조리한 사회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저항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필요한 일일 것이다. (76쪽)

-박정훈, ‘병역거부소견서’, [가짜사나이 문집]

박정훈의 병역거부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반전평화팀에서는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에 다녀온 사람, 병역거부를 하고 있는 사람, 병역거부를 준비 중인 사람을 모아서 토크콘서트를 해보자는 것. 날짜는 박정훈의 기자회견 다음 토요일인 10월 12일. 제목을 못 정해 회의를 계속 하다가 누군가가 툭 던진 ‘가짜 사나이’라는 말이 만장일치로 제목이 되었다.

공현이 출소한 뒤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고, 김대환이 밀양에서 올라왔고, 박정훈이 기자회견을 했다. 세 사람이 모여 브레인스토밍을 했고, 각각의 이야기로 티저 동영상을 만들었다. (‘가짜 사나이’ 티저 동영상.) 그들이 그간 써온, 병역거부에 영향을 미쳤을 법한 글을 모아 100쪽짜리 책 [가짜사나이 문집]을 만들었다. 무료로 뿌려도 안 될 건 없었지만, 읽을 사람만 가져가서 귀중히 여겨달라는 의미에서 2천 원에 판매하기로 했다.

가짜사나이 문집 표지
가짜사나이 문집 표지

행사의 취지는 한 문장으로 간단하게 소개했다.

“한 장의 소견서에는 그들이 병역거부를 하는 마지막 이유는 담겨 있을지 몰라도, 그들이 병역거부를 하기까지를 모두 담을 수 없습니다.”

가짜 사나이들

10월 12일, 각각 다른 이유로 병역거부를 하게 된 세 사람의 토크콘서트 ‘가짜 사나이’가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열렸다. 엄청난 대중적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병역거부자들과 관련 단체들에는 행사 소식이 조용히 퍼졌다. 100명 남짓한 관객들은 다양한 구성으로 모여있었다. 앰네스티, ‘전쟁없는세상’ 같은 관련단체 활동가들, 병역거부를 했거나 병역거부 중인 사람들. 강의석 씨는 아예 앞자리 중앙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하고 있었다. 나는 연출자 역할을 했고 다른 반전평화팀 회원들은 관객들을 안내하거나 잡다한 일들을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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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박정훈, 공현, 최태섭(사회)

3시간 가깝게 진행된 행사에서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설명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한 이야기들은 요약하기엔 너무 많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궁금하다면 글 아래 있는 동영상을 봐주기 바란다.

10시가 되어 행사가 끝났고, 그날 뒤풀이에는 약 30명이 참석했다. 처음 보았을, 아니면 별로 친하지 않았을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를 설명하라면 좀 어렵지만, 어쨌든 그런 후련함은 있었다. 그러니까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를 비장하지 않게, 하나의 삶의 형태로 간주하고 이야기했다는 것에 대한 후련함 말이다.

병역거부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병역거부자의 “각오”라는 것이다.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대개 병역거부가 자신의 인생에 그들 스스로 장애물을 놓는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가족을 끝없이 설득해야 하고, 사회관계도 변하게 된다. 흔히들 ‘짧은 생각으로 병역거부를 한다’고 믿고 쉬이 충고하지만, 군대에 가는 사람보다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이 군대에 대해 훨씬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어디선가 병역거부자를 만난다면 그가 한 5천 번쯤은 들었을 이야기를 당신 입으로 되풀이하기보다는, 그가 한 이야기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나도 한때는 당신만큼 병역거부자를 혐오했던 사람이니, 이 권유는 아마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나는 군대를 선택할 친구들, 군대에 다녀온 이들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것에 대해 내게 미안해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군대에 가는 것 또한 감옥에 가는 것만큼 힘든 선택이니까. 내게는 군대가 더 힘든 선택이었을 뿐이다. (99쪽)

– 김대환, ‘도망자’, [가짜사나이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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