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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공황 막을 동전 하나, 왜 오바마는 거부했나

2013년 10월이 시작되자마자 보름 넘게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미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가 10월 17일 연방정부의 업무재개로 일단락됐다. 한국 언론에서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를 다루는 모양새를 보면, 정부가 휴업했다는 놀라운 소식에 묻혀서 연방채무상한선이 큰 논란이 되었다는 것에는 방점이 찍히지 않았던 듯하다.

연방정부 휴업보다 심각했던 국가부도 위기 

세계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미 정부가 채무상한선을 넘겨 국채를 부도내는 것은, 미 정부가 2주 넘게 개점휴업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현금처럼 유통되는 미국채가 부도난다면,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사태 정도는 우습게 보일 정도의 대재앙이 세계 경제에 도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유의 사태를 막기 위해 미국의 진보층은 기발한 탈출구를 발견해냈다. 연방법 31장 5112조 (31 U.S.C. § 5112)는, 연방 재무부 장관은 장관이 정한 금액의 플래티넘 주화를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명시해놓고 있다. 이 법조문에 의거하여 재무부 장관이 1조 달러짜리 플래티넘 주화를 주조하여, 그 주화로 연방 부채를 갚는다면?

동전 하나 만들어서 국가 부도를 피할 수 있다면?  (사진: 1천조 달러 패러디들)

동전 하나 만들어서 국가 부도를 피할 수 있다면?
(사진: 1조 달러 패러디들)

기발한 탈출구… 1조 달러짜리 동전

물론 이런 행위는 연방법 31장 5112조를 통과시킨 국회의 뜻에 어긋나는 “꼼수”이다. 재무부가 때때로 소장용 플래티넘 주화를 만들어 기념품으로 팔 수 있다는 취지이지, 돈을 통용되는 통화를, 그것도 1조 달러짜리 동전을 만들어 국회가 정한 채무상한선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피해가라고 만든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의 취지가 무엇이었든 간에, 법조문만 놓고 보면 재무부가 초대형 플래티넘 동전으로 연방 채무상한선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막을 길은 없었다. 또한, 오바마 정권이 이 길을 선택할 명분도 충분했다.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닌데, 세계 대공황을 막기 위해 동전 하나 만드는 것이 대수인가!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궁극적 문제는 미국채를 매수하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라는 이유를 들며, 협상 초기부터 이 탈출구를 배제해버렸다.

세계 대공황 막을 동전을 오바마가 거부한 이유

집권당이 아닌 야당이, 국회 양원 중 하나에서만 다수당이며, 또 그 당내의 소수 강경파 티파티에게 휘둘려 정부의 존재 이유인 “통치”를 멈춰버리게 한 이 셧다운 사태는, 현 미국 정치의 부실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심한 사건이다. 그러나 굳이 이 사태에서 미국 법치주의의 숨은 힘을 찾으려 한다면, 오바마가 1조 달러 플래티넘 주화를 거부한 순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성숙한 법치란 법의 글자 그대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글자에 내재하는 이념을 따르는 것이란 것을 확인시켜 주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법대로 합시다”라는 말은, 아직도 “공평하고 정의롭게 해결합시다”라는 말과 동격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법이란 힘 있는 사람들의 자의적 해석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에 기인한다. 소위 “불법시위”에 호들갑을 떨다가 무슨 스캔들이라도 생기면 “법적 문제는 없다”라며 숨어버리는 지도층을 보면, 이런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개연성이 다분한 의구심을 해소하는 방법은, 법은 법이니 지키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법정신에 기초하여 법조문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죽은 문자에 불과한 법조문을 이현령비현령 주무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법정신을 중심에 놓고 통치하여 피통치자들에게 법과 정의는 일치한다는 신념을 불어넣는 것이 진정한 법치주의인 것이다.

법치주의 진정한 잠재력 보여준 오바마와 법정신

셧다운 사태를 보는 논평가들은 “한국이라면 날치기 통과라도 했을 텐데”라고들 한다. 날치기가 다수결 원칙과 피상적으로는 부합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1조 달러 플래티넘 동전 주조 또한 일단 법조문과는 부합하는 탈출구였다. 하지만 날치기와 1조 동전은 법정신과는 부합하지 않는, 법치주의와 어긋나는 꼼수이기도 하다.

세계 금융의 대혼란 가능성을 목전에 두고, 유수 진보인사들이 최소한 협상용으로라도 “동전 옵션”을 열어둬야 하지 않겠냐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히 꼼수를 거부한 법률가 출신 대통령. 이러한 대통령이 있게 한 정치적 규범과 법정신. 이것이 미국 법치주의의 진정한 잠재력이며, 한국 지도층이 주창하는 알량한 법치주의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본문에 “1조 달러”를 “1천조 달러”로 잘못 쓴 오류가 있어 수정하였습니다. 혼란을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2013-10-21 16:35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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