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강사다: 맥도날드 인문학

나는 시간강사다: 맥도날드 인문학

[…] 인문학 맥도날드 카운터 업무는 주로 나이 어린 직원이 도맡아 한다. 나는 물류하차 업무를 하고 있기에 카운터에 설 일은 별로 없다. 그들의 목소리는 매장 여기저기에 잘 울려 퍼진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빅맥 세트 하나 주문하셨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빅맥 세트 나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카운터에서 이루어지는 흔한 대화다. “빅맥 세트 나오셨습니다” 카운터 직원뿐 아니라 거의 모든 매니저가 손님과 햄버거에 함께 존대한다. “빅맥 세트 나왔습니다.”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빅맥 세트 나오셨습니다.”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맥도날드뿐 아니라 그 어떤 매장에서든 사람과 물건을 함께 높이는 데 익숙해져 있다. ‘아메리카노’도, ‘도넛’도, 매장에서 취급하는 그 무엇도 존대의 대상이 된다. 아르바이트생의 문법은 분명히 잘못이다. 나는 국어학 전공 수업에서 그 문법 오류를 이미 배웠다. 교수는 아르바이트할 때 절대 물건을 높이는 실수를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런 ‘무식한’ 아르바이트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모두 웃었다. “햄버거 나오셨습니다.” ‘을’의 공간에서 바라본 풍경  그런데 책을 덮고 강의실 밖으로 나와 보니, 그 문법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었다. 카운터를 마주하며 손님은 ‘갑’이 되고 아르바이트생은 ‘을’이 된다. 나는 맥도날드에서 노동하기 이전까지 대개 갑의 공간에 존재하면서 어떤 냉소만을 보내 왔다. 강의실의 문법을 적용하며 아르바이트생의 무식을 탓했고, 혹은 어떤 위화감조차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을의 공간에서 바라본 풍경은 많이 달랐다. 을의 공간은 사람을 무척 작게 만들었다. 어떤 말썽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고, 그에 따라 손님에게 최상급 존대를 해야 했다. 그런데 나 역시 언젠가부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빅맥 세트 나오셨습니다.” 강의실의 문법 vs. 거리의 문법  그 잘못된 문법은 오히려 더욱 자연스럽게 갑에게 가서 닿았다. 그러고 보면 카운터 위에서 갑의 소유가 된 햄버거 역시, 내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갑과 을 사이에 끼어든 ‘갑의 소유물’은 어떻게든 을보다는 높은 자리를 점유했다. 그래서 “빅맥 세트 나오셨습니다.” 하고 외치며 갑의 소유물마저 높여 주고 나는 그 아래로 자진해서 내려가야 했다. ‘갑 ≧ 갑의 소유물 > 을’  이런 구도가 마련되는 것이다. 카운터 위의 햄버거를 높이는 문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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