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광폭한 ‘공영방송 장악’ 공작이 막바지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KBS 이사회는 지난 9월 12일 김의철 KBS 사장을 이사회에서 해임하고 난 뒤, 차기(보궐) 사장 선임 일정을 유례없이 초고속으로 진행하고 있다. 21일에서 25일까지 차기 사장 공개모집, 27일 서류심사, 추석 연휴 직후인 10월 4일 면접 심사를 거쳐 최종후보자 선임, 이후 대통령 재가와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를 거쳐 임명되는 수순이다.
법비의 난: 언론장악을 위한 무리수
윤석열 정부가 방송장악을 위해 여기까지 집요하게 밀어붙인 과정을 살펴보면, 전형적인 “법비(法匪; 법을 악용해 사익을 취하는 무리)의 난”이라고 부를 만하다. 시계열별 그 진행 과정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국무회의 참석 배제 (2022년 6월)
- 감사원의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감사 시작 (2022년 6월)
-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상대로 국민의힘의 검찰 고발 (2022년 9월)
- 유시춘 EBS 이사장 선임 절차 관련해 국무조정실 등이 방통위 감찰 착수 (2023년 1월)
- 한상혁 방통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2023년 3월 24일)
- 한 방통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2023년 3월 29일)
그러자 윤석열 대통령은 방송장악을 위한 또 다른 꼼수를 만들었다. 올해 3월 30일 국회는 본회의 의결을 거쳐 최민희 전 의원과 이상인 변호사를 방통위원으로 추천했으나,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이 추천한 이상인 변호사만 임명하고 민주당이 추천한 최민희 전 의원은 임명하지 않았다(6개월이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임명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위법한 방통위원 임명 지연 때문에, 방통위의 ‘4인 방통위원 체제(여야 2:2 구도)’가 탈법적으로 형성되었다.
대통령이 최민희 방통위원 내정자를 방통위원으로 바로 임명하지 않고 있는 것은 방통위법 위반이다. 방통위법 제5조 2항에 의하면 “위원 5인 중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3인은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을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대통령이 국회에서 추천 의결된 사람을 방통위원으로 임명하는 절차를 거칠 따름이지, 대통령이 국회 의결을 통해 추천된 사람의 임명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킬 법적 권한이 없다.
올해 5월 30일 불구속 기소를 구실로 대통령이 한상혁 방통위원장을 강제 해임함으로써 ‘3인 방통위원 체제(여야 2:1)’가 탈법적으로 만들어졌다. (현재는 여야 2:0구도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효재 방통위 부위원장이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으면서, 꼼수로 만들어진 위원 숫자의 우위를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의 광폭한 ‘공영방송 장악 작전’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한편, 8월 17일에는 업무시간 미준수와 업무추진비 규정 위반을 구실로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과 이광복 부위원장에 대한 해촉을 강행하였다.
이렇게 다방면의 꼼수를 입체적으로 구사하여, 촛불항쟁 이후 구축된 공영방송 인적 시스템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뒤, 방통위원장에 방송장악 전력으로 악명높은 이동관을 임명하여 보다 본격적으로 윤석열표 공영방송을 만드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특징적인 양상은 그들이 탈법적인 실정법 해석과 운용을 통해 법치주의를 훼손하면서 방송을 장악해 가고 있는 데 반해, 수많은 언론인과 시민들이 법비 수준의 법제도 해석과 운용에 농락당하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노 수준은 계속 누적되고 증폭되고 있지만, 막상 공정방송을 지키려는 언론인의 저항과 시민적 투쟁은 표출의 계기를 잡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윤 정권 다음 수순은 공영방송 KBS·MBC 사장교체
애초에는 감사원 감사를 통해 비리 등을 찾아내고, 그것을 구실로 사장을 물러나게 하고 KBS를 장악하는 수순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작년 8월 30일에 시작된 KBS 감사가 무려 세 차례 연장된 끝에 올해 5월 1일 ‘아무 문제 없다’는 결론으로 끝나자, 윤석열 정부는 우선 수신료 통합 고지를 중단하는 시행령을 졸속으로 개악하여 KBS에 재정적 압박을 가하는 한편, 이후로는 체면이고 명분이고 모두 벗어 던지고 거의 ‘묻지마 해임’ 방식으로 달려갔다.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은 탈법적으로 만들어진 3인 방통위원 체제를 편법으로 악용하여, 자신의 방통위원 임기가 끝날 때까지 단지 2달여 기간에 KBS 이사장과 이사 1명, 그리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과 EBS 이사 1인을 해임하는 ‘망나니 칼춤’을 마구 휘둘렀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방송장악에 앞장설 사람들을 꽂아 넣었다. 이렇게 공영방송 이사회에서의 숫자적 우위를 확보한 뒤에는 KBS와 MBC의 사장교체 절차에 나섰다.
천만다행으로 법원에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권태선 이사장의 해임 효력 정지 가처분이 인용되었다. MBC의 경우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 셈이지만,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KBS의 경우는 사장 해임 후 새로운 사장을 임명하는 예정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9월 12일 KBS 사장 해임 의결 당시, 5인의 KBS의 소수 이사들이 “해임제청안은 다섯 차례나 달라졌고, 김의철 사장 소명서가 제출된 뒤 의결을 강행한 이날에도 두 번이나 제청안이 수정됐다”며 절차상 하자를 지적하면서, “여섯 가지의 해임 사유도 합리적 근거와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이의제기했다. 하지만 “법은 멀고, 권력이 동원한 요식적 절차 강행은 가까운” 법치주의 파괴적 상황이 저지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KBS 구성원들의 적극적 저항행동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 지난 1년 4개월간의 방송장악 과정을 지루할 정도로 정리해 본 이유는 간단하다. 뻔히 예상되는 광폭한 방송장악 과정이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었지만, 정작 핵심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언론노동자를 포함한 KBS 구성원들의 유효한 저항 행동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기자회견이나 성명서 발표 수준으로는 저들의 광폭한 방송장악 질주를 저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줄탁동시(啐啄同時: 병아리와 어미닭이 알의 안팎에서 동시에 부리를 모아 껍질을 깨는 것)라고 하였다. KBS 구성원들이 저들의 방송장악을 막아내고 KBS를 공영방송답게 지켜내기 위해 떨쳐 일어나야 한다. 공영방송의 실질적 주인인 시민들이, 시청자들이, 어려웠던 지난 시기에도 그리하였듯이 언론노동자들의 공정방송 쟁취 투쟁에 적극 호응해서 함께 싸울 것이다. 또한 다른 방송사나 언론사의 언론노동자들도 함께 투쟁에 나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회는 신속하게 방송3법을 통과시켜라
문제의 핵심은 정치권이 공영방송에서 손을 떼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권교체만 되고 나면 각각의 진영에서 공영방송을 마치 전리품 나누듯이 끼리끼리 자리 차지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 제도적 해결 방안은 이른바 ‘정치적 후견주의’를 실질적으로 폐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방송3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법) 개정안이 신속하게 통과되어야 한다. 이 법안은 국회까지 포함하여 전문가와 공영방송 종사자들이 함께 공영방송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공영방송을 특정 정파의 손아귀에서 해방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혹자들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그럴 위험도 부정할 수 없다. 또 국회의장도 거부권 행사를 걱정하며 안건 상정 자체를 주저하고 있다고도 한다. 우리는 국회의장이 월권하면서 민의를 거스르지 말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만일 방송3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된다면, 대통령도 거부권 행사를 포기하고 민의에 순응할 것을 촉구한다.
만약에라도 대통령이 방송3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민의에 역행한다면, 그런 대통령은 엄중한 주권자들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언론포커스 칼럼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언론포커스 칼럼은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칼럼의 필자는 박석운 민언련 이사·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