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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의 북라이딩] 북살롱 목요일 언니, 청와대 국민청원 기획자, 얼룩소 설립자,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저자 정혜승의 종횡무진 독서 탐험기.


오늘 함께 읽을 책은 이얼 프레스의 [더티 워크] (오윤성 옮김, 한겨레출판: 2023)입니다. 정의롭게 포장된 사회에서 윤리적으로 ‘더러운 일’을 떠맡는 사람들, 가령 정신병동의 교도관, 암살 드론 조종사, 정육공장 도축 담당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등 ’21세기 미국의 불가촉천민’과 그 시스템의 정치경제적 공모를 비판적으로 조명한 작품입니다. 책의 부제는 주제 의식을 웅변합니다.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전가되는가.’ (편집자)


마냐의 북라이딩

이얼 프레스의 [더티 워크]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전가되는가”

당신은 깨끗할 거다. 선량한 삶을 일구는 평범한 시민일 거다. 그런데 인간 사회는 그리 깨끗하지 않다. 더러운 일은 취약한 사람들에게 떠넘겼다. ‘더티 워크’, 3D 노동을 말하는 게 아니다. ‘불결하고 불쾌하지만, 점잖은 사회 구성원들이 아주 모를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신을 대신해서 누군가 낙인찍히고, 죄의식에 빠지고, 존엄감을 잃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이얼 프레스는 그런 사람들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리베카 솔닛은 “미국 사회를 떠받치는 일련의 잔인한 산업에서 노동이 도덕 원칙을 사보타주(태업)하는 상황을 고발한다”고, 마이클 샌델은 “우리가 사회의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에게 떠맡긴 일, 더티 워크에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밝힘으로써 대중이 노동의 불평등을 생각해 보도록 한다”고 추천사를 남겼다.

교도관에게 폭력과 공포를 강요하는 교도소


해리엇은 플로리다주 데이드 교도소의 심리상담가였다. 재소자들이 종종 이상한 소리를 했다. 식사를 안 준다고? 그럴 리가. 욕설과 구타? 그럴 리가. 운동장 폐쇄? 재소자들도 운동이든 산책이든 해야 하는데? 그녀는 교도소 상급자에게 메일을 보냈지만, 돌아온 건 명백한 위협이었다. 위험한 상황에 그를 고립시키는 일이 이어졌다.

그는 어느새 눈감고 귀 막은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정치적으로 가장 안전해지는 방법은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었다. 진실의 목격자가 되는 것은 위험했다. 어느 날 한 재소자가 샤워하다 숨졌다고 했다. 심장마비인가 했다.

50세 조현병 환자 대런 레이니는 그 샤워실에 갇힌 채 80도가 넘는 뜨거운 물 샤워에 사망했다. 몸의 90%에 화상을 입었다.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로 학대당한 이는 최소 8명이 더 있었다. 2012년 사건을 내부 고발자 언론 제보로 2015년 법무부가 수사해서 밝혀낸 사실이다. 교도소가 지옥이었고, 교도관은 폭력으로 재소자들을 지배했다.

악마 같은 교도관을 처벌하면 될까? 곪은 상처의 뿌리는 더 깊었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이 주립 정신병원을 없앴다. 연방 장애 급여 자격을 강화해 수혜자 100만 명을 감축했다. 병원을 압박하자 어지간한 환자들은 거리로 나앉았다. 1987년 노숙 정신질환자가 10만 명, 정신질환으로 인한 실직자가 170만 명에 달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교도소는 미국의 새로운 정신병원이 됐다. 대법원은 수감자에게 정신과 치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권리침해라 판결했지만, 현장은 달랐다. 진짜 문제는 비용이었다.

주립교도소를 싸게 운영하는 게 중요했다. 교도관 임금은 2005~2016년 한 번도 인상되지 않았다. 2010년 주지사 선거에서 교도국 예산 40% 삭감을 내걸었던 이가 당선됐다. 플로리다 주민들은 딱 그 정도의 비용을 내고 있었다. 교도소 민영화로 사망자가 급증했고, 적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교도소는 전쟁터가 됐다. 사기가 떨어지고, 긴장은 높아지고, 최전선의 교도관들은 물리적 폭력에 의존했다. 잔인한 위협, 공포로 수감자들을 통제했다. 감옥의 지배자인 그들은 동시에 약자였다. 2020년 한해 10만 명의 교도관이 코로나에 걸렸고, 170명이 사망했다.

교도소를 보는 시선은 범죄자를 바라보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교화주의 이상론이 남아있던 시절, 범죄자는 교육과 기회를 부당하게 박탈당한 개인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불한당이다. 구제 불가능하고 고통받아 마땅한 족속들. 정치인들은 범죄에 관대한 사람으로 비치느니 엄벌주의에 매달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2019년 플로리다주 흑인은 전체 인구의 7%인데 재소자 중에서는 50%다. 재소자 40%는 라틴계다. 가장 가난하고 낙후된 동네에 교도소가 들어섰고, 모두 싸잡아 낙인찍었다.

낙인에 더해 도덕적 외상까지


교도소의 부당한 현실에 눈감은 해리엇은 많이 아팠다. 잠들지 못했고, 비겁한 자신에게 좌절했다. 교도소를 떠난 뒤에도 오래 괴로워했다. 더티 워커들은 자주 아프다.

“전 정말 궁금해요. 제가 저질러온 이 모든 살인에 대해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실까요?”

이얼 프레스, [더티 워크], 오윤성 옮김, 한겨레출판: 2023.

드론 조종사의 마음 상처는 깊고 어둡다. 드론 화면 너머 죽어 마땅한 이들만 있을리가. 가족도 있고, 어린 아이도 있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 (2015. 개빈 후드)가 생생하게 그려냈지만 현실 세계에서 드론 조종사들은 누군가를 ‘표적 살인’하고, 다른 민간인까지 죽인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에 등장하는 암살 드론. 드론 조종사는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더 자유롭게 비사법적 살인을 수행할 것이며, 무장 세력은 그들의 가족까지 살해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 첫 2년 동안 예멘, 소말리아, 파키스탄에 퍼부은 드론 공습 횟수가 오바마 8년 치를 추월했다. 심지어 세 나라 모두 미국의 교전국이 아니다. 의회와 대중은 드론 전쟁의 확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형을 집행하려면 마땅한 공적 논의를 거쳐 공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드론은 그런 과정 없이 게임처럼 누군가를 사형한다. 병사는 죽음과 부상의 위험을 감수하지만, 드론 조종사는 위험도, 명예도 없다. 좌파 반전 운동가들은 그들을 전쟁범죄자라 비난했고, 우파는 괴로워하는 드론 조종사를 겁쟁이, 배신자라 불렀다.

그들에게 남는 건 ‘도덕적 외상’이다. 도덕적 신념을 위배하는 행위를 하거나, 막지 못하거나, 목격하는 일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자기 자신을 배반한 대가다. 의학적 병명은 아니다. PTSD,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의학적 진단은 탈정치적이며 개인적이지만, 도덕적 외상은 구조적이고 권력이 개입한 일이다. 드론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대는 반전운동에 뛰어들 만큼 교육받은 중산층이 많았고, 드론 조종사들은 가난해서 그 일을 선택했다는 사실도 아프다.

계급은 항상 문제다


교도관도, 드론 조종사도 스펙을 쌓을 여유는 없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사라진 시대에 그나마 노력해서 얻은 일자리다. 멕시코 출신 국경순찰대도 그랬다. 평범한 멕시코 출신들이 많았는데 잔인무도한 마약사범을 단속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자신과 닮은 평범한 멕시코인들을 만났다. 마약상이 아니라 마약상에게 착취당하며 마약을 운반하거나, 절망적 빈곤과 폭력을 피하려고 떠난 이들이었다.

트럼프는 미등록 이주자들을 ‘강간범’, ‘짐승’이라 불렀지만, 그들 대부분은 가장 밑바닥 약자였다. 그들을 쫓고 때로 죽이는 국경수비대 사람들의 마음에도 도덕적 외상이 더해졌다. 2000~2016년 국경순찰대에 공식 집계된 이주자 사망자는 6000명이 넘는다.

DonkeyHotey, “Donald Trump’s Taj Ma WALL”, CC BY SA

도살장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도 이제는 대부분 이주민이다. 노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유민도 아니다. 텍사스주는 ‘그림자 인간’이라 부르는 160만 미등록 이주민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덕분에 굴러간다. 컨베이어 벨트의 쇠고랑에 발을 거는 ‘생닭 걸기’ 작업을 하던 플로르는 1분당 65마리를 걸어야 했다.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산재 인정은 받지 못했다.

이주노동자는 노조 가입이 어려웠다. 2002년 가금류 도축 노동자 임금은 제조업 평균보다 24% 적었고, 2020년에는 격차가 40%로 벌어졌다. 그래도 양쪽에서 욕을 먹는 건 마찬가지다. 동물권을 옹호하는 좌파는 동물을 학대한다는 이유로 사디스트 일꾼들이라 비난했고, 우파는 ‘불결한 침범자’라며 이주민을 혐오했다. 실제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정육 회사들은 더러운 도축장을 운영하며 폐수와 오염물질을 방류했다. 가난한 지역일수록 관련 규제가 약했고, 덕분에 그 지역 주민들은 식수마저 잃게 됐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독일에서도 정육공장 더티 워크는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이민자에게 위임했다.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공장주들은 불결한 이주노동자 탓으로 떠넘기다가 반발에 부딪쳤다. 독일 노동부 장관은 “지역 전체를 볼모로 삼았다”며 회사에 배상을 요구했고, 정육산업에 대한 감독 강화, 하청 계약 금지 등을 촉구했다. 위험하고 모욕적인 노동 환경으로 이익을 취하는 회사라고 망신을 줬다.

미국 정부는 비슷한 상황에서 “기업의 규제 위반 행위를 공개하지 말라”고 했다. 미국 정부의 우선순위는 노동자의 생명 보호가 아니라 정육회사의 명예 보호에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책임은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있다는 게 미국 정부 답변이었다.

트럼프 정부는 오랫동안 노동자 보호에 반대하고 재계의 이익을 대변해온 유진 스컬리아(고 안토닌 스칼리아 전 대법관의 아들)를 노동부 장관에 임명했다. 다들 모욕감을 느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금 체불 등 착취 관행으로부터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규제를 집중 제거했다. 강자의 이익이 되는 규제를 도입했다.

유진 스칼리아(Eugene Scalia, 1963년~) 전 미국 노동부장관(2019년–2021년). 미국 정부 제공.

해양시추선 노동자도 ‘더티 워크’ 사례로 등장했다. 2004~2009년 해양 시추 중 사망자는 미국이 유럽보다 4배 많았다. 1980년대 북해에서 167명이 사망한 사고 이후 노르웨이와 영국은 사고 예방 책임을 기업에 묻는 방향으로 규제를 강화했다.

미국은 거꾸로 갔다. 사실 멕시코만 안전감독을 위한 미국 정부기구가 석유와 천연가스 임대 사업 사용료도 징수했다. 세금에 이어 두번째로 큰 미국 정부의 수입원. 석유산업은 미 정부의 동업자였다. 2010년 딥워터 호라이즌 시추선 폭발 사고에서 주목받은 것은 숨진 노동자가 아니었다. 시커먼 기름 유출로 피해를 입은 펠리컨과 돌고래가 날마다 TV에 등장했지만 노동자는 사라졌다. “그딴 업계에서 일하니까 당해도 싼 노동자”들이 된 것에 대한 상처도 깊었다.

딥워터 호라이즌 시추선 폭발 사건 (2010) CC0

더티 워크에도 계급은 있다: 구글과 중국의 ‘드래곤플라이’


구글은 중국에서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인권’, ‘민주주의’ 키워드에는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했다. 국방부의 드론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메이븐 프로젝트도 있었다. 1500만 달러였지만 잘되면 100억 달러 방어 인프라 계약을 수주할 것이라 했다. 여기에 반발한 것은 구글 개발자들이었다. 중국의 검열에 승복하는 것도, 드론 살인을 지원하는 것도 그들이 추구하는 일이 아니었다.

더티 워크에 반발하자 구글은 그들 눈치를 봤다. 귀한 개발자 등 인력들이라 다른 부서로 보내주면서 업무를 바꿔 달래기도 했다. 메이븐 프로젝트는 계약 갱신을 하지 않았다. 책에는 여기까지 나오지만, ‘르몽드 디플로마띠끄’의 다른 보도를 보면, 구글은 메이븐 프로젝트를 그만두는 시늉만 내고, 아예 구글 퍼블릭 서비스라는 조직을 새로 만들어 그 일을 한다.

끝내 구글에서는 20여 명이 퇴사했다. 그런데 그들의 정직한 영혼에는 때가 묻지 않았고, 교도관의 심리학자나 드론 조종사 등이 겪었던 악몽이나 탈모, 죄책감, 수치심 등 도덕적 외상도 없었다. 파편화된 업무라 직접적 영향을 덜 받기도 했지만 그들은 기술을 가진 강자였다.

저자는 금융위기 이후 월스트리트에서 낙인찍혔던 이들도 끝내 잘 지냈다고 전했다. 위기 이후 1년 사이 골드만삭스 등의 임금은 평균 27% 상승했다. 부유한 그들은 자선단체에 기부하며 도덕성을 회복했다. 가난한 노동자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어떤 사람들이 낙인찍히고, 정체성이 손상되어 삶의 기회를 상실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도덕적 외상의 치유 방법은 ‘공유화’


더티 워크를 만드는 것은 불평등이다. 더티 워크에서 이익을 챙기는 이들은 비난받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그 시스템의 가장 밑바닥 인물들이 ‘썩은 사과’로 지목되어 비난받고 끝난다. 더티 워커들에게 비난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들의 행위를 지속시키는 권력의 움직임과 복잡한 공모 관계를 감추는 데 유용하다. 또한, 누가 그 일을 맡을지 결정하는 구조적 차별이 은폐될 수 있다.

더티 워크에 대해 우리는 깊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들의 이야기는 불편하고, 죄책감도 불러온다. 잠깐 동정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무력감이 더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집단으로서의 우리는 무력하지 않다”고 말한다. 더티 워크는 ‘선량한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가 태도를 바꾸는 것은 변화의 시작점이 된다. 현재의 교도 행정에 대해 사회적, 도덕적 비용을 따지기 시작한다든지, 하다못해 유기농 고기를 소비하면서 관심 방향이 바뀔 수 있다.

어쩌면 드론 조종 같은 일은 조만간 사람 대신 강철 멘탈인 AI 몫이 될지도 모른다. “윤리적 소비는 정치의 문제를 개인의 자기만족감을 최우선시하는 시장 거래로 환원할 위험”이 있다. 그래도 가만히 눈감는 대신 이야기를 시작하면 낫지 않을까?

저자가 만난 이들 중 해리엇은 만날 때마다 울었다. 하지만 귀 기울여 줘서 고맙다고 했다. 감정이 격해졌지만 치유된 느낌도 받았다. 도덕적 외상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유화하는 것이란다. 저자는 더티 워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책임지지 않는 정부, 권력을 비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마음을 여는 것부터 시작이다.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만행이 벌어질 수 있는 곳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 합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당신이 하지 못한 모든 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

이얼 프레스, [더티 워크], 오윤성 옮김, 한겨레출판: 2023.

남은 질문들


시민으로서…

  • 누구 사연에 가장 마음이 가던가요?
  • 막상 내 가족, 내 일이 될 수 있나요? 당신과 주변 친구들의 일은 더티하지 않은가요?
  • 사회가, 우리가, 나부터도 ‘알고는 의지’가 없었던가요? 의지 문제일까요? 불편한 마음의 근원은 뭘까요?
  • 내 이익은 다 챙기면서 ‘선량한’ 척도, 좋은 말도 잘하는 이기주의자였다? 내 탓으로 풀릴까요?
  • 내 집단의 이기주의를 위해 그 외의 집단을 배척하거나 버티면, 끝내 자기합리화로 가나요?

사회에서…

  • 교사도 더티 워커? 구글 개발자와 다를까요? 이게 기존 3D와는 어떻게 다르죠?
  • 연봉 얼마로 평가하는게 문제일까요? 노동은 어떻게 존중받을 수 있을까요?
  • 선악에 대한 이분법으로 단정짓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죠?
  • 문명 사회, 깨끗하고 선량한 삶은 가능할까요?
  • ‘마음 아프면 네가 해볼래?’, 원색적 질문도 어렵죠? 우리가 뭘 할 수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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