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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직간접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직접 만나기도 하고, 언론 보도 또는 여러 재판 기록이나 각종 보고서 속에서 당신들을 만납니다.

어느덧 2022년이 한 달 남았습니다. 올해 어떻게 지내셨나요? 잘 계시나요? 안녕하신가요? 혹시 일하는 사업장에서 임금 및 단체교섭을 마무리하지 못한 건 아닌지요? 교섭 과정 중에 힘든 점은 없으셨는지요? 아니면 매각 또는 분사 등으로 고용안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못된 상사가 있어 내일이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은 상황은 아니신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율은 약 14%로 상당수 노동자가 아직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밖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통계로 본 방송노동자의 현실, ‘불안정의 늪’

통계 속에 당신을 봅니다. 2021년 방송산업 취업자 수2008년 5만 3천여명에서 약 8천명이 늘어 6만 1천여명으로 집계됐습니다. 2008년과 2021년을 비교해보면요.

  • 정규직은 63.8%(3만 3천9백명)에서 62.3%(3만 8천2백명)줄었습니다.
  • 무기계약직은 9.9%(5천2백명)에서 7.9%(4천9백명)로 줄었습니다.
  • 계약직은 17.2%(9천1백명)에서 13.4%(8천2백명)로 줄었습니다.
  • 단시간 노동자는 4.0%(2천 100명)에서 2.3%(1천4백명)로 줄었습니다.
  • 프리랜서 구성 비율 3.3%(1천8백명)에서 13.4%(8천2백명)로 늘어났습니다.

당신이 보시다시피 방송계의 경우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중 프리랜서 증가가 압도적입니다. 불안정노동 규모는 늘고 있지만, 대책은 더디기만 합니다. 사실상 정책 또는 대책이 없다고 보실 수도 있습니다.

아나운서로 하는 일은 같지만… 

최근 한 노동자의 모습을 ‘판정서’에서 보았습니다. 당신이 속한 사업장은 2021년 기준 비정규직이 57명(10.2%)으로 전년 대비 2.3%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숫자 안에 당신이 포함되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방송사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가 지난해 12월 31일 계약기간 만료로 계약해지가 되었습니다. 2019년 4월부터 2021년 12월 31일까지 구두 계약 한 번, 프리랜서 계약 3번을 했습니다. 근무기간은 2년이 넘어선 상태였습니다. 계약해지에 맞서 스스로 기간이 정함이 없는 노동자임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당신은 스스로 어떻게 일해 왔는지 업무 중에 주고받은 문서와 문자,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출해야 했습니다.

제출 내용 중 노동위원회 심판위원들이 인정한 사실을 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 월별 정해진 근무표에 따라 정규직 아나운서와 함께 담당 시간대 뉴스 진행(매일 3회 편성)
  • 그와 정규직 아나운서 사이에는 휴가 등 사정이 발생할 경우 서로 뉴스시간대 교체 협의
  • 2019년 6월 퇴사한 정규직 아나운서가 맡은 프로그램 제작 및 진행 업무 수행
  •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협조 공문 발송을 하거나 사업계획서 수정 업무 진행
  • 방송 재허가를 위한 서류 작성
  • 재난방송 교육 참여

○○지방노동위는 ‘정규직 아나운서가 수행하였던 업무 내용과 동일할 뿐만 아니라, 정규직 아나운서와 같이 이 사건 방송사가 정한 시간에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수행하여야 하며, 진행 순서와 방송 내용 등에 대하여 지시를 받는 등 이 사건 근로자가 임의로 업무 내용을 정하고 수행할 수 있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지시를 받고, 정해진 메뉴얼을 수행했지만, 한쪽은 정규직 아나운서, 다른 한쪽은 비정규직 아나운서

‘비정규직 백화점’ 방송사, 당신은 잘 지내십니까?

결국 ○○지방노동위는 당신에게 지난 5월 근로관계 종료가 부당하다고 판정했습니다. 판정문에서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이며,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제한을 넘어섰기에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보아야 함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한 일방적인 계약종료는 해고에 해당하며 원직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 동안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을 지급하라고 했습니다.

‘복직해 잘 지내십니까?’ 

차마 묻지 못하겠습니다. 사업장은 계속해 당신의 노동자성을 지우기에 급급하다는 나쁜 소식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최근 다른 지역방송사의 당신을 만났습니다. 프로그램이 하나 둘 사라져 ‘프리랜서’로 일할 기회도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방송에 대한 꿈이 있어 10여 년 동안 옮겨 다니며 기회를 보았습니다. 지금도 이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아 주 1회 프로그램이라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이마저 못할 것 같아요.”

미디어 사업장이란 공동체에서 함께 성장하고 꿈을 키우고 싶은 당신, 지금 어떻게 지내십니까? 당신과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으신가요?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돌꽃노동법률사무소,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등 10개 노동·언론·시민사회단체는 11월 10일 오전 10시, CBS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남CBS의 아나운서 꼼수 원직 복직을 규탄했다.  출처: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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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언론포커스’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의 필자는 이기범 언론노조 전략조직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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