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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세상의 왕” 제임스 카메론이 가장 최근에 연출한 작품은, 다큐멘터리를 제외하면, 무려 13년 전 작품 [아바타] (2009)다. 역대 흥행 성적 1위라는 [아바타]의 상업적 성과도 놀랍지만, 전 세계에 걸쳐 아바타 현상을 일으켰던 당시의 ‘영화적 충격’은 그야말로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로 인해 우리 기억은 13년 전 아바타가 우리에게 줬던 충격, 그 사실보다 이 영화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영화’의 속편이 드디어 올해 12월 개봉 예정이다.

알림. 

이 글에서 사용되는 이미지의 출처는 별다른 설명이 없는 경우는 모두 ’20세기 폭스사'(© 2007 Twentieth Century Fox)다. (편집자)

아바타, 이후 13년의 기다림 

이 글은 ‘아바타’와 ‘아바타 2’ 사이에 존재하는 13년이라는 세월의 길이로 인해 ‘아바타’의 충격과 그 기억이 희미해졌을 이들을 위해 쓰는 글이다. 워낙 리뷰가 많은 작품이라서 기존 리뷰들이 잘 다루지 않는 부분인 ‘작동 원리’에 초점을 맞춘 글이고, 경건한 마음으로 ‘아바타 2’를 감상하기 위한 기초 교양을 위한 글이므로 영화 외적인 내용은 다루지 않는다.

이하 ‘아바타’에 대한 스포일러가 가득하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감상하길 권한다.

줄거리를 소개하기에 앞서 아바타의 공간적 배경인 ‘판도라’‘언옵타늄’ 그리고 ‘아바타 프로그램’에 관해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자.

‘판도라’는 알파 센타우리 A(Alpha Centauri A)를 모델로 하는 항성계의 행성을 공전하는 가상의 위성으로 지구와는 4.4광년 거리에 있다.

판도라에는 ‘언옵타늄’이라는 상온 초전도체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극도로 황폐화한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선 언옵타늄은 지구인의 사활이 걸린 대체불가능한 필수 자원이다.

다만, 그 광물이 매장된 땅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동원한 원주민의 강제 추방은 정치적 이슈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책임기관인 RDA(Resources Development Administration; 자원 개발 관리)‘아바타 프로그램’이라는 과학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RDA는 ‘아바타 프로그램’을 통해 판도라에 과학자들을 파견하고, ‘나비(Na’vi)’로 불리는 원주민을 교화하며, 광물이 매장된 지역에서 이주하도록 설득한다.

아바타 프로그램의 목적은 외계생명 연구와 자원 채굴이다. 이를 위해 RDA는 나비족과 비슷한 외형의 바디(‘아바타’)를 인공적으로 배양한다. 아바타를 통해 나비족과 교류하면서 서로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던 중 군대와 원주민 사이의 마찰로 인해 인명 사고가 발생한다. 그 후로 나비와 인간의 관계는 급속하게 냉각하고, 한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2154년 지구에서 판도라로 충원될 예정이었던 아바타 드라이버인 토미 설리 박사가 불행한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다. RDA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 토미의 아바타를 이용하기 위해 그의 쌍둥이 형제이자 전직 해병인 제이크 설리를 설득하고, 하반신 불구였던 제이크 설리는 (값비싼)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높은 보수를 받는 조건으로 판도라행 계약에 서명하고,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하반신 불구였던 제이크는 아바타를 이용해 걷고 뛰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현실보다 아바타에 링크했을 때 더욱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의 임무는 언옵타늄이 매장된 땅 위에 사는 ‘오마티카야’ 부족과 친해져서 최종적으로는 다른 곳으로 이주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제이크는 임무 수행 중 원주민 부족 지도자의 딸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지며 종족의 일원으로까지 인정받는다. 하지만 RDA의 무분별한 벌목 과정에서 나비족들이 신성시 여기는 나무를 쓰러뜨려 종족 간 갈등이 촉발되고, 전쟁을 막기 위해 제이크가 뒤늦게 자신이 온 목적을 밝히며 이주를 설득했으나 실패하고 배신자로 몰려 버림받는다.

나비 종족의 전멸을 막기 위해 제이크는 전설적인 ‘토루크 막토’가 되어 여러 부족을 규합하고 인간에 대항해 판도라를 지켜낸 후 나비의 육신으로 다시 태어난다.

주요 등장 인물은 아래 이미지를 참고.

[아바타]의 놀라운 3D 그래픽과 ‘직접 체험’에 가까운 SF적 경험은 이미 기념비적이지만, 사실 이 영화의 진정한 백미는 공간 배경 설정에 있으며 그 중에서도 판도라의 낯설고 치밀한 생태 시스템은 그 자체로 영화가 전하려는 주제의식을 내재하고 있다. 혹자는 여전히 이 영화의 설정을 황당하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아바타]는 SF적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는 선에서 꽤 충실히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씩 짚어보자.

판도라의 환경과 생활상

판도라는 지구에 비해 공기 밀도가 높고, 중력이 낮으며, 자기장이 매우 강한 환경이다. 그래서 판도라에서 진화한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전자기 친화적’이다. 어떻게든 전자기적 특성을 유리하게 활용하는 쪽으로 진화하여, 동식물을 막론하고 몸에서 빛을 내는 유기발광 기능을 내재하고 있으며, 전체 생태계가 전기적 신호를 교환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각각의 개체들이 전체 네트워크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삶이란 전체에서 잠시 에너지를 빌린 것일 뿐, 죽어서 다시 전체로 되돌아가 순환한다는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동물들은 외부로 돌출된 데이터 입출력 포트를 지니고 있어 이를 이용한 접속으로 강력한 공감을 형성할 수 있다. ‘사헤일루’라고 부르는 이 접속 행위를 통해 두 개체는 일체화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생명이 소중함을 알고 생존을 위한 사냥을 한 뒤에도 추모와 감사를 잊지 않는다. 단지 환경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도록 생명체들이 진화했을 뿐 과학이 크게 발달한 것은 아니어서, 그들의 신앙은 모든 시스템의 기본이 되는 네트워크를 신격화해 ‘에이와’라는 여신으로 추앙한다.

판도라의 수 조 그루에 이르는 나무들 중에는 엄청나게 커서 원주민 부족 전체가 집으로 삼고 살아가는 나무도 있고(‘홈트리’), 죽어서 네트워크로 되돌아간 개체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는 나무도 있으며(‘소리의 나무’), 또 어떤 나무는 네트워크와의 연결성이 가장 강력해서 여신에게 소원을 비는 주술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영혼의 나무’).

나비는 종족이고, ‘오마티카야’는 하나의 부족이다. 홈트리에 사는 부족이 ‘오마티카야’이며 평야와 해안에도 다른 부족들이 산다.

판도라의 생물은 낮은 중력과 높은 공기 밀도로 다들 큼직큼직하고 원주민은 탄소섬유 골격을 가지고 있어서 강인하다. 대기는 인간이 직접 호흡했다가는 20초 안에 정신을 잃고 4분 안에 사망할 정도로 독성을 내포한다. 독성이 있는 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비’족과 친해지기 위해 인간들은 주로 이들과 형태적으로 유사한 신체인 ‘아바타’를 이용해 나비족과 교류하고 활동했다.

아바타는 인간과 나비의 유전자를 조합해 나비의 생태적 특성을 가진 몸을 인간의 의식이 조종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인간의 아바타와 나비는 손가락 개수 정도를 빼면 꽤나 비슷하게 생겼지만, 눈썰미가 좋은 관객이라면 아바타와 나비족의 체형이 미묘하게 다른 것도 발견할 수 있다.

어쨌든 이 ‘아바타’라는 ‘몸’은 그 몸에 최적화한 유전자의 주인만 링크할 수 있는데, 아바타 제작에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망나니’ 제이크 설리를 죽은 토미 설리 박사와 일란성 쌍둥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여시킬 정도로 비싸다. 그 덕분에 제이크는 아바타 바디를 이용해 뛰고 먹고 자고 사헤일루를 통해 다른 생명체를 빌려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한다.

나비

녹색 판도라에 사는 원주민은 특이하게도 피부가 파란 색이다. 피부색을 파랑으로 고집한 사람이 다름 아닌 카메론 감독 본인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녹색 외계인이 너무 많아서 파란색으로 정했다고 농담조로 말했지만, 진지하게 그 이유를 밝힌 적은 없다. 당시의 CG 기술로는 플라스틱 느낌이 안나려면 파란색이 유리했다는 말도 있고, 중동 및 동아시아 종교에 등장하는 피부가 푸른 신인 비슈누, 시바, 츠쿠요미, 누트 등을 들며 신화적인 이유 때문에 파란 피부를 택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단순하게 신비로워 보이기 때문이라는 단순 주장부터, 또 어떤 사람들은 혈액이 푸른 색이어서 그렇다는 주장을 하며 나비의 헤모글로빈에 철이 아닌 구리나 아연이 들어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파란 혈액만으로는 입 속이 빨간색인 것은 설명되지 않을 뿐더러 영화에서는 나비족이 붉은 피를 흘리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나비는 혈액하고는 상관 없이 ‘피부가 파랗다’. 그리고 피부가 파란 이유는 생존에 장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자세히 보면 청록과 파랑의 패턴은 ‘물결 무늬’처럼 보인다. 등푸른 생선은 왜 등만 푸를까?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 등이 보이고 밑에서 올려보면 배가 보이니까 등이 푸르고 배가 흰색이어야 보호색이 된다. 나비는 분명 물에서 진화해 나온 종족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보호색이 있다는 것은 주로 빛이 닿는 깊이에서 생활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심해까지 아무런 저항 없이 내려갈 수 있는 ‘묻지마 신체 구조’, 가령 아쿠아맨과 같은 신체는 아닐 것이다.

딥씨 챌린지 (존 브루노, 2014)

제임스 카메론은 2012년 심해 탐사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잠수정 ‘딥씨 챌린지’(DEEPSEA CHALLENGER)를 타고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에 내려가 아바타 속편을 위한 장면들을 촬영했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아바타 2가 심해를 보여줄 것이라는 점은 기정사실에 가깝다. 그렇다면 물고기와의 ‘사헤일루’가 심해 수압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심해 탐험을 가능하게 해 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판도라의 바다에는 ‘툴쿤’이라는 거대 물고기가 산다. 산을 오르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툴쿤을 타는 이유는 툴쿤이 거기 있어서다. 토루크도 탔는데 툴쿤이라고 못 탈것 같지 않다.

피부색 외에도 단순히 신비로워 보이려고 넣은 게 아닐까 싶은 장면들도, 찬찬히 살펴보면 아, 그래서 그런 장면이 나왔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제이크가 이 생태계에 처음 등장했을 때 신성한 나무의 씨앗들이 몰려들었고, 제이크가 이 씨앗을 손짓으로 쫒아내려 하자 네이티리가 “아또끼리나!”라며 기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낯선 외부 생명체를 네트워크에 등록하는 절차로, 이를테면 이 ‘아또끼리나’들은 출입국 관리소의 공무원인데, 씨앗의 수와 네이티리의 반응으로 미루어 제이크는 보통의 외국인과는 다른 매우 드문 생명체다. 그래서 공무원들이 구경하려고 너도나도 달려나오다 보니 저렇게 많아진 것이다.

등록 절차를 마친 후로 ‘씨앗들’은 영화 막판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들은, 마치 공무원들처럼, 어딘가에 ‘짱박혀서’ 영화가 거의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다가 마지막에야 등장한다. 어쩌면 제이크가 난폭한 놈이라는 걸 알았을 테니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언옵타늄과 자기장

판도라에는 ‘언옵타늄’이라는 상온 초전도체인 광물이 풍부하다. 언옵타늄과 자기장의 상호작용은 넓은 지역에 ‘마이스너 효과’를 발생시켜 부유섬들이 산맥을 형성하는 규모의 자기부상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애초에 인간은 이 먼 곳까지 왜 와야했던 것일까? 영화 내재적 관점에서 지구는 환경 오염과 에너지 고갈로 죽어가는 행성이다. 판도라는 삼성계이고, 많은 위성들과 지구와는 다른 대기와 중력 등 인간이 적응하고 살기에 알맞은 환경은 아니기 때문에, 인류는 터전을 이주하는 것보다는 상온 초전도체를 확보하여 에너지 고갈을 해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보인다.

이것은 감탄할 정도로 영리한 설정이다. 상온 초전도체는 핵융합 발전을 포함한 과학과 공학의 여러 분야에 있어서 기적의 광물로 여겨진다. 현실화할 가능성이 없어보이긴 하지만, 그 존재 자체로 인류가 쳐들어올만 한 명분이 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자기장이 매우 강한 환경은 할렐루야 산맥이라는 배경을 제공하고, 전자기기들을 먹통으로 만들어 인간과 원주민 사이에 해볼만한 싸움이 되도록 밸런스를 잡아준다.

게다가 정글같은 환경 때문에 지구에서는 이미 퇴역해 더이상 쓰이지 않는 수준의 재래식 무기를 배치한 것으로 나온다. 지구로부터의 거리 때문에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하더라도 애초에 그 이상의 무기는 불필요하다 여겼을 것이다. 이곳의 환경에 맞게 진화된 생태계는 긴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나중에 전투의 판도를 뒤바꾼다. 앞서 영화적 공간의 물리적 환경적 설정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품고 있다고 언급한 것처럼, 언옵타늄과 자기장 강한 환경이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바타 매커니즘

그렇게나 자기장이 강한 환경이라면 아바타는 도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가? 전자기기들이 오동작하는데 제대로 된 통제가 어떻게 가능한지 이쯤 되면 궁금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아바타의 작동 매커니즘에 대해서는 의외로 명쾌한 설명을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를 보면 아바타와 링크한 드라이버의 생체신호만 모니터링할 뿐, 아바타가 어디서 뭐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즉, ‘아바타는 (중앙의 관제실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 혹은 ‘아바타를 (원격으로) 통제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유체이탈’ 매커니즘으로 보인다. 의식이 인간의 몸에서 아바타로 옮겨가는 것이지 원격으로 아바타를 조종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뜻이다. 이 장면을 보면 드라이버가 깨어나면 그와 동시에 아바타가 쓰러진다. 거리가 멀든 가깝든 상관 없고, 의식은 두 몸 중 한곳에만 존재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선 또 다른 증거가 있다.

아바타 드라이버가 눕는 캡슐의 바닥 소재(투명한 녹색 젤리 같은 부분)를 보면 의심할 여지 없이 ‘인간의 뱃살’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의 뱃살을 지금 한번 손가락으로 찔러본다면 저 느낌과 매우 유사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유체이탈이 잘 되려면 알려진 조건을 따라야 한다.

감각의 방해를 없애기 위해 빛과 소리를 차단하고, 온도도 체온과 비슷하게 유지할 뿐만 아니라 편하게 떠있기 위해 격리 탱크 안에는 사람의 신체와 비중이 비슷하도록 밀도 높은 황산마그네슘 용액을 채운다. 저 캡슐은 격리탱크인 셈이고 그 안의 녹색 젤리 침상은 유체이탈에 방해되는 감각을 박탈하기 위해 탱크를 자신의 살로 느껴지게끔 고안된 소재라는 것에 내 뱃살을 건다.

[아바타]는 몇가지 설정만 가지고 설명하다 보면 영화 안에서 주어진 정보만으로도 모두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세계관일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진행도 필연성을 띠도록 설득력 있는 동기를 제공하는, 알고보면 나름 ‘친절한 영화’다. 여기까지 살펴본 것으로도 영화의 설정을 이해하는데 충분했다고 보지만,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하면 마지막에 제이크가 신체를 영구적으로 바꾸는 부분에 관한 이해까지도 가능하다.

신체 이주에 대한 설명

아바타와 사헤일루 같은걸 보고 있으면 의식이 본체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 궁금할 수 있다. 제이크가 아바타에 눌러앉아 버리면 인간 몸은 굶어죽을 것이고, 그럼 계속 아바타에 남게 되는게 아닐까? 아쉽지만, 그건 아닌 듯 하다. 아바타가 자면 본체가 깨어나듯이 강제로 링크를 유지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그래서 신체를 이주하려면 특별한 의식이 필요한 것으로 나온다. 영화에는 그레이스와 제이크, 두 번의 이주 의식이 나온다. 그레이스는 실패했지만, 제이크는 성공한다. 공통적으로 그 배경에 영혼의 나무와 수많은 나비족들이 모여 있다. 사실 영화는 신체 이주 의식의 매커니즘도 충분히 알려주고 있다.

‘이주’라고 썼듯이 잠깐 머무는 것이 아닌 완전히 옮기는 것이 이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앞서 판도라의 생태계는 개체가 전체 네트워크에 열결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이 환경에서의 유체이탈을 다시 정의하면 ‘SIM카드 하나로 두 개의 폰을 사용하는 것’이다. 한번에 하나의 기기만 사용 가능하며, 다른 기기(아바타)로 e심을 복사하고, 물리적인 유심(인간)을 잠시 꺼놓을 때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다만 e심은 기기의 휘발성 메모리에 저장되어서 전원이 나가면 삭제되기 때문에 사용할 때마다 매번 복사해야 하는 식이다.

이 그래픽이 나오면 e심을 복사하는구나 생각하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신체 이주 의식’은 주폰과 서브폰을 바꾸는 작업인 셈이다. 이것은 주폰의 고유 식별자는 물론 모든 데이터까지도 서브폰으로 이전해야 하는, 그리하여 유저가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휘발성 메모리까지 교체해야 하는, 고난도의 재프로그래밍이다. (하지만 에이와라면 어떨까?)

이런 일은 지구에서라면 어림도 없지만, 판도라에서는 가능하다. 지구는 인간과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다르고 접점도 없지만, 판도라는 생명체와 세계가 상호 연결된 정보 구조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구성원의 간절한 소망이 어느 정도는 메타언어로 전달되는 세계이다. 그래서 제이크가 나무에 대고 도와달라고 빌었을 때, 그걸 듣고 ‘전역 방어기제’가 발동되어 전세를 뒤집은 것이다. 즉, 이 곳에서 생명체의 마음/언어와 세계 사이에는 전달 가능한 호환성이란 게 있다는 얘기다.

비유하자면 아바타는 새로 산 아이폰이고 본체는 구형 아이폰이다. 기존 폰 데이터를 아이클라우드에 백업하고, 새 폰에 동기화 하면 기기교체가 완료된다. 에이와는 아이클라우드 서버니까 거기에 필요한 명령을 전송하면 되는 의식이다.

말이야 엄청 간단해 보이지만, 한개의 폰만 평생 쓰다가 죽는 게 규칙인 세계에서 ‘새 아이폰’으로 옮겨가려면 ‘에이와’의 힘 정도는 필요할 테고, 에이와를 통해 그 정도의 일을 하려면 ‘집단 사헤일루’ 정도는 시전해야 한다. 사헤일루는 명령을 전달하는 행위이기도 해서 사헤일루를 맺은 채 달리라고 명령하면 말이 달리고, 날으라고 하면 이크란이 난다. 하지만 에이와는 동물 따위랑은 달라서 생태계의 멸망 같은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면 한두 명이 부탁한다고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모든 부족이 한 마음으로 같은 공통의 명령을 동시에 전해야 한다. 군대에서 PT할 때 한 명이 틀리면 전체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듯이, 이걸 여럿이서 하는 것은 쉽지 않아서 모앗이 PT 교관이 되어 정해진 순서로 명령어 전송을 이끄는 것이다. 순서는 이렇다.

  1. 제이크가 의식을 잠시 에이와로 옮겨놓고
  2. 그 상태에서 인간몸과 아바타를 동기화한 뒤
  3. 에이와에서 다시 아바타로 제이크의 의식을 다운로드하고
  4. 제이크의 본체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영혼의 나무 옆에 누운 제이크와 아바타의 몸을 ‘미세 전극’들이 감싸고 있는데, 그레이스의 죽기 전 간증을 보면 제이크는 에이와를 만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수많은 나비족은 촉수를 영혼의 나무(의 돌출되어 있는 뿌리들)에 연결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장면에서 제이크가 하고 있는 것은 링크이고, 나비족이 하고 있는 것은 사헤일루이며, 모앗은 의식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이다. 아또끼리나들은 공무원답게 구경하러 나와 있다.

모앗은 제이크의 피를 살짝 맛보는 것만으로 어떤 놈인지 대강의 정보를 알 수 있는 듯 했다. 또한, 의식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감지해 낼 수 있었기 때문에 나비의 주술사는 어떤 방법으로든 생물의 식별자라던지 정보의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자다. 바로 모앗이 교관을 맡아야 하는 이유다. 또한, 이런 대규모의 입출력이 이루어지기 가장 좋은 장소가 영혼의 나무이기 때문에 이 곳이 의식의 무대가 되었을 때 주술은 현실이 된다.

마치 간절히 원해서 이루어진 듯한 주술적인 의식 이면에는 이러한 메커니즘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언급한 정보들은 영화 속 디테일에 모두 마련되어 있었다. 보면 볼수록 대단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극장으로!

아바타 2편의 제목이 ‘물의 길’이기도 하고 요즘 공개되는 티저 영상들을 보면서 점점 기대치가 오르고 있다. 바다 근처에 사는 메트카이나(Metkayina) 부족은 꼬리가 물고기 지느러미같이 생겼다. 등장인물들은 진짜 물속에 있는것과 동일한 동작을 하고 환상적인 해양 생물 속을 누비고 다닌다. 얼마나 또 신박한 걸 보여줄지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다.

‘아바타 2’ 티저 영상 중에서

1편은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줬다면, 2편은 죽어가는 바다를 아껴야 한다는 메시지를 벌써부터 예고편 만으로 받고 있다. [산호초를 따라서]라는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최근 30년 동안 지구상의 산호 절반이 죽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산호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고 심해에서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발견되고 있다.

‘아바타 2’ 티저 영상 중에서

이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 이유는 많다. 영화의 큰 화면 뿐만 아니라 웅장한 사운드도 이유가 된다. 제임스 카메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진짜 환상적일 것이고, 영화 보면서 울지도 모른다. 아마 울 것이다. [아바타]는 1편 개봉 후에 온라인 상에서 키배질 하는게 일상이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은 영화다.

시리즈화를 결정하고나서 2014년부터 총 6번의 개봉 연기 끝에 찾아온 독창적인 세계관의 두 번째 이야기인 만큼 여기까지 오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게다가 이제는 본업이 탐험가이고, 취미로 영화를 하는 카메론이기에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전체 5부작 중 카메론 감독이 직접 연출하는 마지막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더욱 극장에서 봐야 한다.

다운받아 보는 사람들에게 늘상 해주는 말이 있다. 영화는 투표와 비슷해서 한표씩 사는 사람들로 인해 크리에이터가 보상을 받고, 그 과실은 다시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는 것. 티켓이 투표보다 좋은 것은 여러 장을 살 수 있다는 것.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는다면 극장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추신.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꼽는 이 영화의 명장면을 몇가지 소개하고 끝내겠다.

1. 제이크에게 마음을 빼앗긴 네이티리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하늘을 처음 날았을 때 네이티리가 옆에서 나란히 날며 눈을 맞추고 이런 사랑스런 표정을 보여준다. 하늘을 나는 것만 해도 기쁘기가 치사량인데 공주까지 얻은 순간이었다. 나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2. 수테이의 울분

따라서 수테이는 슬퍼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이 연기는 뭐랄까, 연기가 아닌 듯한 억울함이 서려있었다. 여자를 뺏긴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진짜로 죽기까지 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너 이 여자랑 잤어?!”

3. 네이티리와 제이크의 아이씨유

“I See You”

현실세계에서 제이크와 네이티리가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장면. 그 많은 일들을 겪게 한 원흉인 인간의 모습을 한 제이크를 품에 안은 채 눈물을 흘리는 네이티리. 종족을 초월한 감정에 숭고함까지 느껴진다.

4. 다시 태어난 제이크

인간의 육신을 버리고 완전한 나비로 새로 태어난 제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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