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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에서 양궁 2관왕(혼성·여자 단체전)에 오른 안산 선수를 향해 일부 네티즌들이 도를 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선수의 머리 스타일이 ‘숏컷’이고, ‘여대’ 출신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로 의심된다며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들의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중요한 이슈처럼 된 것은 언론이 이를 ‘페미니스트 논란’, ‘헤어스타일 갑론을박’ 등의 제목으로 보도하면서이다.

언론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네티즌들의 행동을 지적하고 젠더 갈등을 봉합하는 방향을 제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나서서 갈등을 키우고 있다. 심지어 사라져야 하는 혐오, 차별적인 주장들이 언론의 조명을 받아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인권의 범위를 넓혀가는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이 사회의 퇴보에 기여하고 있는 꼴이다.

숏컷은 개인의 자유다. 헌법 제 12조 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또한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헌법재판소에서는 행복추구권에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권을 포함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즉, 머리를 삭발하든 짧게 자르든 2m 넘게 기르든 타인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 ‘왜 여자가 숏컷을 하지’, ‘저 사람은 숏컷을 했으니까 페미니스트일 거야’라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2021년도에 헌법까지 꺼내며 숏컷이 개인의 자유임을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트롤(무가치하고 감정적인 선동으로 논의를 방해하고 '어그로'를 끄는 '관종')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트롤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출처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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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트롤링) 또는 어그로

트롤(troll) 또는 인터넷 트롤(internet troll)은 인터넷 문화에서 고의적으로 논쟁이 되거나, 선동적이거나, 엉뚱하거나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 또는 공격적이거나 불쾌한 내용을 공용 인터넷에 올려 사람들의 감정적인 반응을 유발시키고 모임의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사람을 가리킨다. 또한, 진행되는 논의를 혼란시키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프랑스어로는, 요정이라는 뜻도 있다.

‘트롤(troll)’이라는 단어는 1980년대부터 사용되었다. 영어로 제물낚시를 ‘트롤링(trolling)’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어 인터넷 이용자 사이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어그로’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 단어는 온라인 게임의 게임 용어에서 유래되었는데, 몬스터가 자신에게 가장 많은 데미지를 입힌 플레이어를 타겟으로 공격하는 시스템을 비디오 게임 사용자들 사이에서 ‘어그로(Aggro)’, 혹은 ‘어그레시브(Aggressive)’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되었다. 또, 플레이어가 몬스터의 타겟이 되기 위해 일부러 몬스터의 시선을 끄는 행위는 ‘어그로를 끌다’라고 표현했는데, 현재는 트롤링을 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위키백과, ‘트롤’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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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가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그것 역시 전혀 문제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다고 혹은 평등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당신도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을 생산하는 가부장적 구조를 변화시키려 노력한다. 가부장적 구조 아래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성별과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이 피해자다. 이런 상황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한 사람에게 지나친 비난을 하고 그가 노력한 결과물을 빼앗으려 하는 행위는 절대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일부 네티즌의 비상식적인 행동과 터무니없는 주장이 가능해진 이유 중 하나는 최근 언론이 몇몇 커뮤니티의 무분별한 ‘남성 혐오’ 낙인찍기를 받아써왔기 때문이다. 선수의 숏컷을 보고 ‘좌표를 찍은’ 일부 네티즌들은 그의 SNS를 찾아가 마치 사상 검증이라도 하듯이 검열했다. SNS 내 사용된 표현(‘오조오억’,’웅앵웅’ 등)을 찾아 ‘남성 혐오’ 표현이라고 지적하며 그를 비난했다. 그러나 이들이 지적한 표현은 애초에 ‘남성 혐오’와 전혀 상관이 없다. ‘남성 혐오’ 표현으로 둔갑하게 된 이유는 언론이 일부 네티즌들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언론이 혐오와 갈등을 팔아 장사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이 일상적인 단어 표현 몇 개가 사상 검증의 근거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트롤의 무가치한 '어그로'를 무슨 논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논란'으로, '갑론을박'으로 표현하는 트롤의 친구는 누구인가?
트롤의 무가치한 ‘어그로’를 무슨 논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논란’으로, ‘갑론을박’으로 표현하는 트롤의 친구는 누구인가?

숏컷도 페미니스트도 논란거리가 아니다. 일부 네티즌들에 의해 논란이 된 상황에서 이를 불식시킬 수 있는 주체 중 하나는 모순적이게도 ‘언론’이다. 하지만 몇몇 언론에서는 오히려 ‘페미니스트 논란’, ‘갑론을박’ 등의 단어들을 사용해 ‘트롤’의 ‘어그로’에 몸집을 키우고 있다. 지금과 같은 용어 사용은 일부 네티즌들의 생떼와 같은 주장을 하나의 의견으로 인정해 주는 꼴이다. 또한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주장만 전달할 경우 숏컷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있다.

일부 네티즌이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논란’에 언론이 집중하면서 선수가 오랜시간 노력한 결과는 한 순간에 잊혀졌다. 선수의 땀과 시간을 외면할 만큼 ‘숏컷’이 중요한 이슈였는지 언론 스스로 돌이켜보길 바란다. 한국 언론은 이미 신뢰를 잃었다. 악의적인 페미니스트 ‘논란’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 어이없는 논란을 차라리 해외 언론에서 보도해주길 바라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을 확장하는데 한국 언론이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여론을 형성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언론이 제 몫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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