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5일(현지 시각)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에서 발생한 비극은 그간 억눌려있던 흑백갈등을 표면적으로 크게 드러내며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플로이드, 쿠퍼, 앤더슨… 미 전역으로 불붙은 시위
백인 경찰 데릭 마이클 쇼빈(Derek Michael Chauvin, 44)이 흑인 시민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46)를 위조수표 용의자라는 이유로 현장 연행한 뒤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를 무릎으로 장시간 눌러 살해한 사건은 미니애폴리스 시민들뿐 아닌 미국 전체를 큰 충격에 빠트린 것이다.
더군다나 같은 날 뉴욕에서는 반려견에 목줄을 채우지 않았던 백인 여성 에이미 쿠퍼가 한 흑인 시민에게 항의를 받자 폭행 위협을 받았다고 허위로 신고한 소동이 널리 소셜미디어로 퍼지고 있기도 했다. 이 일이 일어난 직후 에이미 쿠퍼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즉각 파면당했지만, 이미 ‘인종차별’이라는 방아쇠는 당겨진 뒤였다.
두 사건이 크게 보도되던 지난 5월 말, 경찰의 과잉 진압과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와중에 또 하나의 영상이 공개된다. (겨우) 교통 정지신호 위반 혐의로 흑인 용의자 타이 앤더슨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공포에 질린 용의자에게 총을 겨누는 경찰의 모습이 공개된 것이다. 경찰은 손을 들고 체포에 순순히 응하는 자세를 취하는 흑인 용의자가 배를 땅에 붙일 때까지 총을 겨누고, 완전히 공포에 질린 손자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90세의 할머니는 실신한다.
지금 미국은 더 흑백갈등을 포함한 인종차별이 사회에서 용인되면 안 된다는 대규모 차별반대시위가 30일 현재 13개 이상의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다.
유명 대기업들, 시위를 지지하다
이렇게 되자 세계적인 유수 기업들도 시민의 시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는 뮤지션들의 목소리를 넘어서 굴지의 음반사들이 합심해 6월 2일을 ‘음악이 없는 화요일'(blackout Tuesday)로 선언하고 나선 것은 물론이고, 아마존, 애플, 구글 같은 IT 기업들도 저마다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시위를 지지하고 비참하게 숨진 피해자에게 조의를 표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지고 있다.
이런 행동을 더 빠르게 전파하기 쉬운 소셜 미디어인 트위터에서는 그 분위기가 한층 두드러져 트위터를 운영하는 각 기업이 성명을 발표하고 있기도 하다.
넷플릭스 vs. 넷플릭스 코리아
평소에도 트위터를 잘 활용해온 넷플릭스 공식계정은 미국 현지 시간으로 5월 31일 새벽 5시에 다음과 같은 트윗을 올려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받았다:
“To be silent is to be complicit.
Black lives matter.
We have a platform, and we have a duty to our Black members, employees, creators and talent to speak up.”
침묵하는 것은 (인종차별에) 공범이 되는 것입니다.
흑인의 삶(목숨)도 소중합니다.
우리는 발언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흑인 가입자들, 직원들, 창작자들, 모든 재능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 의무가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해당 트윗을 메인 트윗으로 공지했고, 20만 이상의 리트윗, 100만 이상의 좋아요로 시민들은 호응했다. 문제는 해당 트윗이 등록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넷플릭스 코리아 공식 계정이 이 트윗을 인용트윗하면서 마치 트윗 성명을 요약 번역한 듯한 내용을 게시한 데서 발생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삶은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의 목숨(삶)은 중요합니다.”라는 문구는 “Black lives matter.”라는 메시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나오지 않았을 심각한 실수였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의 의미
‘블랙 라이브스 매터’는 2013년부터 촉발된 사회운동으로 미국 내에서 오늘까지 이토록 불거진 흑백갈등에 대해 근본적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을 존중해달라는 매우 강렬한 인종주의 반대 운동이다. 넷플릭스 같은 기업이 이런 메시지를 직접 언급하는 것부터 그만한 위험부담이 따를 수 있기에 많은 사람이 넷플릭스의 트윗에 칭찬을 보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메시지는 2013년 당시부터 당사자가 아닌 다른 백인들에게는 ‘흑인들의 삶만 중요한가? 모두의 삶이 중요하잖아?’라는 허울 좋은 반발을 일으켰고, 2015년에 “All lives matter”라는 문구가 제안되곤 했다. 즉, ‘흑인들의 삶은 중요하다!’라는 생존 메시지에 ‘아니, 아니, 모두의 삶이 중요하지!’식의 대꾸로 반발하는 사례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인종차별 의식의 발현이고, 흑인인권운동에 대한 또 하나의 백래시(반동)으로 평가된다.
넷플릭스 코리아 계정은 “Black lives matter.”라는 메시지를 한국 대중들에게 옮기는 과정에서 그 메시지의 유래와 최근까지의 맥락을 살펴보지 않았는지 ‘정반대’ 의미를 가진 트윗을 발행한 것이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 코리아가 본사의 선언 트윗을 인용 소개한다며 발행한 트윗 문구 “우리 모두의 삶은 중요합니다.”는 워낙 큰 실수였으니, 쏟아지는 비판은 해당 계정이 트윗을 지운 뒤에도 계속됐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침묵하지 않겠습니다”의 한국적 맥락
처음 트윗인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삶은 중요합니다.” 는 삭제됐지만, 그에 대한 아무런 언급 없이 다시 게시된 인용트윗은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였다. “침묵하지 않겠습니다.”는 한국 사회에서 방송미디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은 선언일 것이다.
2017년 12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1,103번째 방송 말미에서 나온 문구로 유명하다. 그 회에 다뤄졌던 “기업내 성폭력문제”에 대해 다수의 남성 셀럽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성폭력은 여성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입니다. 침묵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선언을 영상으로 보이며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안겼다.
그러나 그 울림이 너무 묵직한 나머지 그때 얼굴을 내걸었던 남성 셀럽들에게는 부담이 컸던 것일까? 지금도 회자되는 11인의 얼굴 중 지난 3년 동안 터져 나온 각종 성폭력 사건 사고에 대해 침묵하지 않았던 사람은 한 사람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2020년 6월 현재 “침묵하지 않겠습니다.”는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에서는 조롱의 상징처럼 인용되는 판국이다(참조 기사: 그 많던 ‘침묵하지 않겠습니다’는 다 어디로 갔을까).
넷플릭스 코리아 계정은 삭제한 두 트윗에서 그런 사회적 흐름도 느끼지 못한 채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기 쉬운 실수까지 하고 있던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서도 그치지 않았다.
‘침묵’하는 넷플릭스 코리아
두 번째 트윗마저 지우고 아무런 설명이나 인용 없이 영어 본문 그대로의 본사 트윗을 리트윗한 넷플릭스 코리아가 5월 31일 오후 1시 30분 이후 지금 이 과정을 복기하는 6월 2일 오후 1시 현재까지 아무런 해명이나 언급이 없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누구나 어떤 사안에 대해서 잘 모르고 실언할 수 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 시대에 한번 발행된 포스트나 트윗이나 영상은 당사자가 삭제하더라도 박제되어 사람들의 기억을 넘어서 어딘가 데이터로 보존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더더욱 우리는 이 시대에 실수를 한 뒤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모색한다. 실수가 실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수한 뒤에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시대인 것이다. 그 중요한 시대에 자신들이 한 실수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화가 나기보다 안타깝고 가련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들이라고 그런 실수를 하고 싶었을까? 악의적인 인종차별 백래시 어휘를 굳이 일부러 골라서 썼을까? 몰랐다면 아는 것이 중요하고, 잘못했다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차별
넷플릭스 코리아 트위터 계정의 실수는 어쩌면 우리 사이에 만연한 차별의 행태일 수 있다. 차별은 대놓고 누군가 굉장히 비뚤어지고 사악한 사람이 타인을 적극적으로 해코지하려는 악의로 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차별은 너무나 흔해 스스로 차별이 숨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사회 속에서 뭘 말하고 있는지, 뭘 던지고 있는지 느끼지 못한 채 타인을 상처입히고 쓰러트릴 수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 코리아 트위터 계정이 이런 차별을 극복하고 시위를 지지하고자 트윗을 썼던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가 모두 할 수 있는 차별과 실수에 대해 깨닫고 그 차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비판받고, 망신 좀 당했다고 침묵을 지킬 일이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넷플릭스 코리아는 침묵을 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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