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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footnote]참고로 둘은 부부고, 특히 뒤플로는 역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 최연소이며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 수상자다.[/footnote]가 쓴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2020)에 관해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한다.

저자들의  두 번째 책인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을 출간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주 기뻤습니다. (…중략…) 배너지와 뒤플로는 광범위한 데이터를 사용해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관한 폭넓은 시각을 제시합니다. ”

빌 게이츠, 두 명의 명석한 경제학자들이 뜨거운 쟁점들을 설명한다 (2020. 5. 18) 중에서  (이하 ‘빌 게이츠의 서평’)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저/김승진 역 | 생각의힘 | 2020년 05월 11일. 책을 출간하고 2주 뒤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저/김승진 역 | 생각의힘 | 2020년 05월 11일. 저자들은 책을 출간하고 2주 뒤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이들은 부부다.

이 책의 두 저자는 ‘가난한 나라’‘가난한 사람들’이 등에 지고 살아가는 극빈곤 문제를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주로 연구해 왔다. 그런데 이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목도했던 문제들은 부유한 나라가 직면한 문제들과도 매우 닮아 있었다.

  • 경제 성장의 문제
  • 심화되는 불평등 문제
  • 인공지능과 일자리
  • 보편적 기본소득 논쟁
  • 정부에 대한 신뢰 하락
  • 분열된 사회와 정치
  • 기후 변화의 위기 등

이들 문제는 오늘날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 모두가 겪고 있다. 이 이슈들의 핵심에는 경제학과 경제 정책에 대한 질문이 놓여 있다. 저자들은 우리가 ‘나쁜 경제학’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존 경제학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연구 결과를 앞세운 (실증 증거 기반의) ‘좋은 경제학’으로 그 해법을 찾고자 시도한다. 즉,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긴박한 여러 문제에 관한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주와 이민자의 문제 

저자들은 이주와 이민자 문제에서부터 시작한다. 오늘날 이민자에 대한 혐오는 세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멕시코에서 몰려온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을 비롯하여 이민자 문제는 서유럽 대부분 국가의 첨예한 문제가 되었다. 방글라데시 로힝야족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이는 개도국 일부에서도 확인된다.

DonkeyHotey, "Donald Trump's Taj Ma WALL", CC BY SA https://flic.kr/p/FnQ2cC
DonkeyHotey, “Donald Trump’s Taj Ma WALL”, CC BY SA

이러한 이민자 혐오의 기반에는 이민자가 너무 많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민자는 전혀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지 않으며(숫자들을 통해 명백하게 확인된다!), 인종주의자들의 선동을 통해 이민자의 숫자가 과장되게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나아가 저자들은 이주와 이민이 되려 너무 적은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이주나 이민을 통해 보다 나은 일자리와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도 떠나지 않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재난 상황이 아닌 한 고향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중국산 제품의 대량 수입으로 일자리를 잃은 미국의 노동자들 역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주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민자가 많이 유입되면 도착국 노동자는 피해를 보게 되는가? 저자들은 쿠바의 ‘마리엘 보트리프트’를 비롯한 수많은 실증 근거들을 제시하며 통념과 달리 이민자가 상당히 많이 유입되어도 현지인의 고용과 임금에 부정적인 영향은 거의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배너지와 뒤플로는 “저숙련 이민자들이 상대적으로 대규모로 유입될 때조차 도착국 주민에게 해가 된다는 분명한 증거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노동시장이 갖는 특이한 속성 때문인데, 사실 노동시장은 수요-공급 법칙의 표준적인 이야기와 부합하는 면이 별로 없다.”고 말합니다.

왜 노동시장은 표준적인 이야기와 부합하지 않는가? 배너지와 뒤플로는 이민자들이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새로 온 이주자들은 식당에 가고 머리를 자르고 장을 보면서 돈을 쓴다. 그렇게 해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이 일자리는 대개 저숙련 노동자들을 위한 일자리”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새로운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기업이 노동을 기계로 대체할 유인이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저임금 노동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경우, 고용주 입장에서는 노동절약적인 기술을 도입할 유인이 줄어”듭니다.

-‘빌 게이츠의 서평’ 중에서

'19년 5월 기준 15세 이상 국내 상주 외국인은 132만 명이다.
외국인 100만 시대. ’19년 5월 기준 15세 이상 국내 상주 외국인은 132만 명이다.

[toggle style=”closed” title=”덴마크 연구 사례”]

“더 최근의 사례로, 세계 각지에서 서유럽으로 들어온 난민이 유럽의 현지인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들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중 덴마크에 대한 연구 하나가 특히 흥미롭다. (중략)

19세기 말 당시 유럽의 최빈국이었던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일을 찾아 이주한 늙고 힘없는 아버지와 펠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정복자 펠레' (빌 어거스트, 1987)
19세기 말 당시 유럽의 최빈국이었던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일을 찾아 이주한 늙고 힘없는 아버지와 펠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정복자 펠레’ (빌 어거스트, 1987)

1994년에서 1998년 사이에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이라크, 이란, 베트남, 스리랑카, 레바논 등 여러 나라에서 이주민이 대거 들어왔고, 이들은 대체로 무작위로 덴마크 곳곳에 보내졌다. 그러다 이주민의 정착지를 정부가 지정하는 정책이 1998년에 폐지되자, 그 이후에 들어온 이주민들은 같은 나라 출신이나 같은 민족 출신 사람들이 먼저 정착해 살고 있는 곳으로 가는 경향을 보였다.

가령 이라크 출신 이민자 중 1998년 이전에 들어온 사람들은 순전히 우연으로 정착지가 정해졌다면, 1998년 이후에 들어온 사람들은 먼저 들어온 이라크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서 정착했다.

그 결과 덴마크의 몇몇 도시는 단지 1994~1998년에 이민자의 재정착을 지원할 만한 행정적 여력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도시들에 비해 이민자가 훨씬 많아지게 되었다. 이 연구에서도 더 과거의 사례들을 살펴보았던 연구들에서와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이민자가 많이 유입된 도시그렇지 않은 도시 사이저학력 현지인 노동자들의 고용 및 임금을 비교해 본 결과, 이민자가 유입된 도시에서 현지인 노동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제2장 ‘상어의 입’, 5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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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경제학’ vs. ‘나쁜 경제학’ 

그렇다면 저자들이 말하는 ‘좋은 경제학’과 ‘나쁜 경제학’은 무엇인가?

먼저 ‘좋은 경제학’은 무언가 의문을 제기하는 현상에서 출발하고, 인간의 행동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작동한다고 알려져 있는 이론들에 관하여 몇 가지 추측을 한다. 그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 추측들을 검증하고, 새로운 증거와 사실관계에 기초해 때로는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전면 수정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운이 좋다면 해법을 발견한다.

가령, 좋은 경제학이 무지와 이데올로기를 누르고 승리한 덕분에 살충제를 뿌린 모기장을 아프리카에 지원할 수 있었고, 말라리아로 인한 아동 사망을 절반 이상 줄였다.

한편, ‘나쁜 경제학’대중 매체에 나와 단정적으로 말하고 예측하기를 좋아한다. 그 예로, 아무런 실증 근거도 없이 레스토랑에서 냅킨 위에 그렸던 ‘래퍼 곡선'(세율을 낮추면 일할 유인이 커져 세수가 늘어난다는 주장, 그 이론적 근거가 아주 빈약했다)이나 세금 인하로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법안이 그렇다. 이제는 세율을 낮추는 것 그 자체로는 경제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거의 합의된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의 법안에 명성은 있지만, 옛 세대에 속하는 보수적인 경제학자 아홉 명(로버트 배로 등)이 “장기적으로 GDP에 향후 10년간 약 3%, 연간으로는 0.3% 이득이 발생할 것”이라며 지지 서한을 보낸 일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흔히 무역은 모두에게 이득이 되고 모든 곳에서 고속 성장이 일어날 것이라 여겨졌다. 또 성장은 그저 더 열심히 노력만 하면 되는 문제이며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은 마땅히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이처럼 눈을 가린 경제학은 세계 전역에서 폭발하는 불평등과 사회의 균열을 외면했다.

세율이 높아지면 근로의욕을 상실해 세입이 줄어든다고? 세입이 세율에 의해 정해진다는 래퍼 곡선은 아무런 실증 근거 없이 레스토랑에서 그려졌다. 하지만 레이건과 트럼프는 이를 정책의 근거로 삼고 있다.
세율이 높아지면 근로의욕을 상실해 세입이 줄어든다고? 세입이 세율에 의해 정해진다는 래퍼 곡선은 아무런 실증 근거 없이 레스토랑에서 그려졌다. 하지만 레이건과 트럼프는 이를 정책의 근거로 삼고 있다.

빌 게이츠는 이 문제와 관련해 이 책을 이렇게 평한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경제를 부흥시키는 적어도 한 가지의 확실한 방법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감세’입니다. 그러나 배너지와 뒤플로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세제 개혁과 같은 대표적인 감세 정책들조차 성장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레이건의 조세 감면이나 클린턴의 최고세율 인상이나 부시의 세금 감면이 장기적인 성장률에 그다지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온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배너지와 뒤플로는 부유한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내는 조세 시스템을 지지할 훨씬 더 많은 근거를 내게 제시해 줍니다. 저자들은 또한 (코로나 사태 이전) 시골과 미국의 러스트 벨트 같은 지역에서 무엇이 경제적 절망을 야기하는지에 관하여 훌륭한 통찰을 제공해 줍니다.”

– ‘빌 게이츠의 서평’ 중에서

이상적인 모델에서 현실 세계로 

저자들은 모든 경제 주체가 완벽하게 합리적이며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이상적인 모델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경제학을 언제나 경직적인 현실의 세계로 끌고 내려와 (실증 증거를 기반으로) 당면한 이슈들을 해결하는 데 활용한다.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신발에 흙을 묻혀 가며, 현실의 복잡성에 대해 열정적으로 고민하는 몇 안 되는 경제학자”로 저자들을 평했고, 가디언은 이 책이 “경제학을 현실로 끌어내렸다”고 평했다.

가령 저자들은 무역이 각국의 자본과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대해 경제학 이론으로는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고 극찬한다. 그리고 동시에 반문한다. “그것은 진리인가?”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따르면, 무역은 다음과 같이 작용한다:

  1. 모든 나라의 GNP를 올리고
  2. 가난한 나라(노동이 풍부)의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며
  3. 부유한 나라(자본이 풍부)에서는 반대로 노동자가 손해를 보고
  4. 부유한 나라(자본이 풍부)에서는 자본을 소유한 사람이 득을 본다.
  5. 다만, 부유한 나라의 노동자, 이를테면 미중 무역 분쟁으로 미국의 노동자가 꼭 그전보다 못살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자유 무역을 하면 국가 전체적으로 소득이 올라가므로 미국 사회가 자유 무역의 수혜자들에게 세금을 걷어 무역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면 미국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도 전보다 나아질 수 있다.

문제는 이 ‘만약’이 너무나 큰 ‘만약’이라는 데 있다:

스톨퍼-새뮤얼슨의 세계에서 숙련도가 동일한 노동자는 모두 동일한 임금을 받는다. 즉, 노동자의 임금은 그가 일하는 지역이나 종사하는 분야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가 노동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역량에만 영향을 받는다.

해외 업체와의 경쟁으로 일자리를 잃은 펜실베이니아의 철강 노동자가 그가 구할 수 있는 다른 일자리로 즉시 옮겨 갈 것이라고 가정되기 때문이다. 그 일자리가 몬태나주에 있든 미주리주에 있든 또 그것이 접시에 생선을 올리는 일이든 생선을 올릴 접시를 만드는 일이든 간에 말이다. (제3장 ‘무역의 고통’, 118쪽)

결과적으로 시장이 늘 공정하고, 용인 가능하고,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리라는 믿음은 합리적이지 않다. 저자들은 책 전체에 걸쳐 그러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가령, 경직적인 경제에서는 시장에만 맡겨 둘 게 아니라 정부가 개입해서 이주를 촉진해야 사람들이 실제로 이주를 해 이득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주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생계와 존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터전에 머물 수 있도록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심화되는 승자 독식의 세계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사이에 격차가 점점 벌어지게 되는데, 모든 사회적 결과를 오로지 시장에 의해 결정되게 놔둔다면 이들 사이의 차이와 간극은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

적절한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심화하는 승자 독식의 세계에서는 적절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차별과 양극화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존엄한 인간을 위한 경제학

일류 운동선수들은 연봉 상한이 있다고 해서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세율이 올라가면 세금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늘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자들이 일을 덜 한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도 복지 혜택을 많이 받게 되었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거나 덜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경제적 인센티브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무엇을 신경 쓴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길 원하고,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를 원한다. 최고경영자들과 일류 운동선수들은 이기고자 하는, 그리고 최고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 추동된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은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존엄한 인간으로 대우받길 바란다.

심지어 자신들이 범죄자 취급을 받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복지 혜택 수혜를 포기하는 일까지 빈번하게 나타난다. 지금껏 많은 정책이 수혜자들의 존엄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정책적 지원을 가장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 정책들을 지지하지 않았고, 그러한 정책들은 종종 실패했다. 그러므로 이제 공공 정책‘돈’과 ‘존엄’ 사이의 긴장 관계를 핵심적으로 고려해 설계되어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정책은
공공정책이 인간의 존엄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 이유로 실패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극빈층을 위해 일하는 단체들은 복지 서비스가 ‘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 중 30%가 가난을 벗어날 수 있게 돕는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노숙자이던 티에리 로시(Thierry Rauch)가 보인 반응은 “우리 가족은 그 30%에 틀림없이 들지 못할 거야”였다. 그는 “그 프로그램이 모든 사람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면, 나는 내가 떨어질 게 확실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생 “떨어져” 보기만 한 사람으로서, 붙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무언가에 지원해 보는 것 자체를 포기해 버린 것이었다. (제9장 돈과 존엄, 481~482쪽)

오늘날 같은 변화와 불안의 시기에, 사회 정책의 목적은 충격이 닥쳤을 때 사람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폄하하게 되지 않으면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불행히도, 현재의 시스템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사회 보호 시스템은 여전히 빅토리아 시대의 틀을 따르고 있고, 너무나 많은 정치인이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멸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태도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해도 현재의 사회 보호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하고 여기에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제9장 돈과 존엄, 545~546쪽)

2013년 9월 당시 "65살 때 기초연금 받으면 인생 잘못 산 것" 망언을 했던 김용하 전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장 이슈를 다룬 한겨레 기사 갈무리 (출처: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04971.html
2013년 9월 당시 “65살 때 기초연금 받으면 인생 잘못 산 것” 망언을 했던 김용하 전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장 이슈를 다룬 한겨레 기사 갈무리 (출처: 한겨레) 정치인이나 관료는 물론이고,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뒤틀린 선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적지 않다. 인간의 보편적 존엄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정책은 그 이유로 인해 실패할 수 있다.

배너지와 뒤플로는 개도국에서 기존의 복지 프로그램을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행정적 여력이 부족하며, 절대 빈곤층 대부분을 빈곤선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보편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데에는 반대한다. 사람들의 ‘존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편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그러나 본인이 가난하지는 않은 많은 사람들이 보편 기본소득을 새로운 경제 구조에서 비생산적인 인력이 되어 일자리를 찾을 수 없게 될 사람들의 문제를 직접 돈을 지급함으로써 완화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보편 기본소득이 있다면 그들이 굳이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고 무언가 다른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하지만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실증 근거로 볼 때 이것은 매우 있을 법하지 않은 일로 보인다. 우리는 설문조사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연간 1만 3,000달러의 보편 기본소득이 조건 없이 주어지면 당신은 일을, 혹은 구직을 그만두시겠습니까?”

이에 대해 응답자의 87%가 아니라고 답했다. 이 책에서 살펴본 모든 실증 증거는, 사람들은 대개 일을 하고 싶어 하며, 그 이유는 돈이 필요해서만이 아니라 일이 목적의식, 소속감, 존엄성을 느끼게 해주는 원천이기 때문임을 말해 준다.(제9장 돈과 존엄, 509쪽)

더 제정신인 세상을 위하여

찰스 디킨스가 소설 [어려운 시절] (1854)[footnote]디킨스의 이 소설 제목인 ‘어려운 시절'(‘Hard Times’)은 배너지와 뒤플로의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Good Economics for Hard Times)과 제목 일부가 겹친다.[/footnote]에서 그렸던 상황보다 더 복잡하고 첨예한 문제들이 얼키설키하게 엮여 있는 오늘날 그 명쾌한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역 확대와 중국 경제의 놀라운 성공에 힘입어 세계 경제가 성장하던 호시절은 가고, 이제는 도처에서 무역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중국의 경제 성장도 둔화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호황 속에서 성장했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도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우려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다. 또한 ‘울트라 수퍼 리치’들의 소득 증가는 ‘성층권으로’ 치솟았지만, 이들 극소수 슈퍼 리치와 나머지 99% 사이의 불평등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으며, 당분간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최근에는 전 세계를 휩쓰는 코로나19바이러스의 등장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위기로 인류를 밀어 넣는다.

울트라 수퍼 리치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울트라 수퍼 리치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사회가 오래 유지될 수는 없으리라.

배너지와 뒤플로는 자신들의 지식이 불완전하다고 인정한다. 심지어 경제학자들이 빠른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고 실토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거대한 어려움에 맞서 ‘자명’해 보이는 것의 유혹에 저항하고, ‘기적의 약속’을 의심하며, 실증 근거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알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인식해야 한다. 좋은 경제학만으로 우리를 구할 수는 없겠지만, 좋은 경제학이 없다면 우리는 어제의 치명적인 실수를 반드시 반복하게 될 것이다.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는 경제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세상, 더 제정신인 세상, 더 인간적인 세상을 원한다.

“경제학은 경제학자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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