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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딜레마: 우리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을까

베네딕트 프레이가 쓴 [테크놀로지의 덫] (2019, 에코리브르)은 산업혁명 이전부터 1차산업혁명의 여명기, 2차산업혁명의 전성기, 오늘날의 시대를 두 개의 키워드로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그 두 개의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 노동대체기술
  • 노동활성화기술

노동대체기술은 이름에서도 나타나다시피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을 기계로 완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뜻한다. 반면 노동활성화기술은 노동을 대체하지 않고도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개별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기술이다.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 기술이 계속 정체되었던 이유는 핵심적인 기술이었던 노동대체기술이 정치, 사회적인 문제로 발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로마, 송제국, 18세기의 프랑스와 같이 기술적으로 발전한 사회들은 노동대체기술을 개발할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었으나, 노동대체기술이 대거 도입되었을 때 발생할 사회적 소요를 감당할 수 없어서 정치가 그 기술개발을 억제했다. 도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직인조합이 폭동과 파업을 일으킬 경우 정부가 많은 스트레스를 오롯이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 발전이 정체하는 상황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테크놀로지의 덫’이다.

영국, 노동대체기술을 수용하다 

이런 상황은 18세기 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벌어지면서 급변하게 된다. 즉, 영국은 예외적으로 사회적 파장을 감수하고 노동대체기술을 대거 채택한 국가였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19세기 후반 블랙컨추리(Black Country) 지역을 묘사한 그림

1870년대 ‘블랙컨트리'(Black Country) 지역을 묘사한 그림

먼저 지식, 경제면에서 조건이 바뀌었다. 과학혁명의 결과 과학, 기술, 지식을 대하는 유럽인들의 태도가 크게 전환되었다. 과학이 명실상부하게 기술발전에 도움을 주는 시대는 아직 100여년은 남은 시대였지만, 지식인과 기술자들은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혁신하면서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관념을 체득했다.

또한, 대서양 무역이 활성화되고 아시아, 아메리카로부터 수입되는 각종 사치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북대서양 도시 지역의 경제가 크게 자극 받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 많이 일하게 되었으며 농촌 각지로 수공업이 퍼져나갔다. 결과적으로 임금이 올라 노동대체기술 도입에 대한 유인도 크게 올라갔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정치적 동기의 문제였다. 17세기 군사혁명 이후 유럽 각국의 군사적 경쟁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었고, 무역과 산업에서 우위를 점한 국가가 그 경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영국 엘리트에게 퍼져나갔다. 영국 엘리트들은 당연히 노동대체기술(방적기, 역직기 등)이 채택되었을 때 직인들이 일으킬 소요를 우려했지만, 프랑스나 네덜란드와의 경쟁에서 뒤쳐져 패배하는 것을 더 큰 위협으로 간주했다.

이 같은 셈법의 결과, 영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노동대체기술을 도입해 노동자들을 대거 줄이고 생산성 혁신을 이끌고자 했던 상인 부르주아의 손을 들어줬다. 대륙 유럽의 국가들은 이런 정치적 선택을 하기를 계속해서 주저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혁명으로 아래로부터의 소요에 공포를 갖게 된 프랑스 엘리트들이 그러했다.

영국의 발명가 제임스 하그리브스(1720~1778)는 1768년 '제니 방적기'를 발명한다. 사진은 제니 방적기의 모델 중 하나. 독일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3.0)

영국의 발명가 제임스 하그리브스(1720~1778)는 1768년 ‘제니 방적기’를 발명한다. 사진은 제니 방적기의 모델 중 하나.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3.0)

영국에서 진행된 산업혁명의 결과는 노동자들에게 상당히 끔찍하게 다가왔다. 1780년대부터 1840년대까지, 이 시기는 생산성과 경제는 성장했으나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정체 내지는 감소한 ‘엥겔스의 휴지’ 시기가 되었다. 직인들이 수십년에 걸쳐 축적한 숙련은 하루아침에 쓸모 없게 되었으며, 대신에 아동들이 노동시장에 대거 유입되어 임금을 낮추었다.

새로운 공장들이 이미 과실업 상태였던 농촌의 얼마 안 되는 전통 제조업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다른 선택조차 없었다. 이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영국 사회는 이전보다 훨씬 더 불평등해지면서 새로운 기술적 신세계를 열어젖히고 있었다. 당연히 이런 흐름에 맞서는 이들이 등장했으니, 유명한 러다이트 운동이었다. 하지만 정치권력이 상인 부르주아들의 손을 들어주기로 결정한 이상 그들의 저항은 상당수 무의미했다.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 운동)을 묘사한 그림 (출처: 퍼블릭도메인)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 운동)을 묘사한 그림 (출처: 퍼블릭도메인)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1840년대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증기기관이 공장에 도입된다(그 전에는 여전히 수력에 의존하는 면이 컸다). 증기기관이 각지의 공장으로 퍼져나가면서 기계는 더욱 커지고, 정교해졌다. 이 말은 곧 비싸고 복잡한 기계를 다룰 숙련 인력들이 새로이 필요해졌다는 의미기도 했다. 아동 노동은 인권의 관점에서도 점차 배격되었지만, 커지고 복잡해진 기계를 다룰 근력과 인지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경제성을 상실했다.

이런 기술적 변화에 힘입어, 1840년대 이래로 영국의 노동계급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수혜를 드디어 분배받을 수 있게 되었고, 노동운동도 동시에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교롭게도 추세가 반전되는 시기에 그들의 이론을 발표한 셈이 된 것이다. 물론 노동자들에게 위안이 되지 않는 점도 있었다. 1840년대 이후 추세에서 수혜를 입은 노동자들은 대체로 아직 젊은 노동자들이었다. 즉 평균수명이 30대에 불과했던 시대, 대략 60년 동안 실직하고 빈곤 상태로 추락한 대다수 노동자들은 이 같은 혜택을 입지 못하고 죽었다.

전기와 내연기관: 역대 최강 노동활성화기술의 등장 

새로운 추세는 1879년에 또다시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해는 에디슨이 전구(전기), 벤츠가 내연기관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기념비적인 해로, 2차 산업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해라고 봐도 무방했다. 2차 산업혁명이 특별한 이유는 그 전 산업혁명과 구별되는 기술의 특성 덕분이었다. 이 두 기술은 역사상 등장한 가장 강력한 노동활성화 기술이었다.

전기로 움직이는 동력은 공장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만들어주었으며, 새로운 기계가 대거 도입되면서 그 기계를 관리하고 작동시킬 적절한 숙련의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도 폭증했다. 가전제품은 여성을 가정에서 해방시켜 일터로 가게끔 했고, 자연스레 가계소득과 소비가 높아졌다.

내연기관은 광대한 국토의 거리를 단숨에 줄여주었다. 전국적 도로망이 국토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면서 운송업이 활발해졌고, 트러커들은 20세기 미국의 새로운 카우보이가 되며 수많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한편 농촌에서는 트랙터가 도입되면서 농지에 묶인 수많은 노동력들이 도시로 풀려나왔다. 이들은 새로 도입된 국민교육의 수혜를 받아 중등교육을 받고 공장과 사무실로 들어와 번영하는 중산층을 형성했다. 바야흐로 포디즘과 모타운의 전성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 기술적 패러다임을 이끈 국가는 단연코 미국이었고, 자연스레 미국은 20세기의 패권국으로 우뚝 서게 된다.

테네시 센테니얼공원에서 1897년에 열린 이벤트. 에디슨의 전구가 파르테논과 피라미드 조형물을 밝히고 있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테네시 센테니얼공원에서 1897년에 열린 이벤트. 에디슨의 전구가 파르테논과 피라미드 조형물을 밝히고 있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물론 전기와 내연기관이 노동대체기술의 면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책의 서문에도 나오는 예시인, 가스등 관리인 같은 직업은 가로등이 전등으로 모조리 바뀌면서 신속하게 사라졌다. 트랙터는 농촌의 노동 수요를 대폭 절감해주었다. 전기 제품은 또 생각지도 못한 수많은 직업을 없앴는데, 가전제품은 가정부를 없앴고, 축음기는 수많은 가수들에게 생계를 위태롭게 만든 기술이 되었다. 새로운 기술이 전반적으로 노동활성화 기술이었어도 이런 성격을 배제할 수 없었기에, 대공황기 같이 성장의 전망이 흐려졌을 때는 다시 기계에 대한 공포가 부활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다시피 1879년부터 1979년까지 100년 동안 포디즘 체제는 미국을 바꿨으며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 유사한 사회체제로 정착했다. 차이점은 간명했다. 비록 특정 직군이 새롭게 대체된다 하더라도, 적응하기 손쉬운, 새로운 직업과 직종이 생겨나 사람들을 계속 빨아들이고 있었다. 농업이 대표적으로, 트랙터에 의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기꺼이 공장에 취업한 것이 그 예시였다.

포드 컨베이너 벨트 조립라인 (1913년)

포드 컨베이너 벨트 조립라인 (1913년) 포디즘 체제는 일부 기존의 전통적인 직업을 없앴지만, 그만큼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다.

이 새로운 직종들은 적절한 숙련을 요구하고 있었고, 일터에서 자부심과 소속감을 여전히 제공해주고 있었으며, 경제의 성장 추세와 맞물려 안정적인 중산층의 소득을 보장해주었다. 국민교육은 경제의 대다수 영역에서 필요로 하는 정도의 지식을 제공해주었고, 적절한 숙련을 갖추면 누구나 익힐 수 있던 공장의 단순작업들은 개인이 따라잡기 어렵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호시절이었다. 바로 이런 시대 분위기를 모두가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노동대체기술이 도입되면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도 기꺼이 감수했다. 그것을 감수하면 더 큰 번영이 찾아오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불평등의 시대로 

그리고 지금, 추세는 다시 뒤집혔다. 1979년 미국의 제조업 고용은 역사상 최대치에 도달한 뒤 내려가기 시작했다.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고, 그곳의 노동자들은 낮은 직종으로 이직하거나 아예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대신 대학을 졸업하여 고숙련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의 임금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제 ‘대압착’1이라고 할만한 평등의 시대는 이제 어제의 일이 되어버렸다. 계층 간 불평등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브랑코 밀라노비치나 리처드 볼드윈 같은 학자들은 세계화의 효과를 강조했다. 공장이 중국으로 떠나버린 것이 공장이 사라진 이유였다. 물론 이 또한 타당하지만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계화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동화의 힘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컴퓨터 제어 로봇은 수많은 단순 업무를 대체하면서 노동 수요를 대거 대체했다. 컴퓨터의 도입은 인간이 맡던 수많은 업무를 대체하였고, 인간이 쌓은 숙련의 상당수를 쓸모없게 만들면서 기존 제조업에 의존하던 중산층을 위협했다. 마치 수십년 쌓은 숙련이 새로운 역직기에 의해 한 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18세기 영국의 직인들처럼, 20세기 서구 사회의 숙련 노동자들은 마찬가지의 일들을 겪었다. 미숙련 노동자라 할지라도 컴퓨터 제어 기계를 적절히 다룰 줄 알면 더 적은 임금으로 더 많은 생산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많은 기업이 노조의 등쌀에 시달려가며 중서부 지역에 공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 기업은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기도 했고, 또 노조가 의무가 아닌 남부로 이전해 사업을 번창시켰다.

중국

물론 새로운 변화에서 이익을 본 사람들이 생겨났다. ‘상징 분석가’라고 부를 수 있는, 고숙련 전문직들은 신경제가 번창하면서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이들이 모이는 세계도시는 혁신, 문화, 부, 기술, 사람, 정보가 흘러 들어와 나가는 허브로 날이 갈수록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이런 혜택을 볼 수 없었다. 공장이 사라진 지역에서 아이들은 방치되었고 마약 중독자가 늘어갔다. 삶의 의미를 잃은 무기력한 이들이 늘어만 갔다. 이런 흐름에 편승이라도 하는 듯 과거 대규모 생산직 중산층을 포섭하던 기성 정당들이 노동계급의 의제를 점차 버리면서, 이들은 정치적 대표권마저 일정 부분 상실하게 되었다.

점차 대중들 사이에서는 기술 발전에 대해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만 갔다. 마치 19세기 영국에서 벌어진 일과 흡사했다. 최근 서구 사회에서 발흥한 포퓰리즘은 주로 세계화와 이민을 공격하긴 하지만, 거기에는 어느 정도 러다이트 정서가 분명히 포함돼 있다. 신경제에서 부를 얻은 ‘상징 분석가’들은 어차피 이 기술 변동의 파고가 지나가면 모두가 다시 번영할 수 있을테니 안심하라고 했지만, 그 파고를 평생에 걸쳐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는 말은 아니었다. 이는 1800년 무렵 태어나 1840년에 죽을 영국의 노동자들에게 1840년대 이후에 다시 임금이 상승할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책에서 저자인 프레이는 끝에서 미래 AI 기술이 가져올 새로운 파고를 점쳐본다. 아디다스의 인더스트리 4.0 실험은 단기적 실패로 결론 났고, 자율주행차가 제대로 도입되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AI의 능력이 무서운 수준으로 성장할 것은 꽤나 자명하다. 하지만 이 기술은 노동활성화보다는 노동대체에 초점을 맞춘 면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다면 19세기 영국, 아니면 그 이전의 숱한 사회에서 벌어진 ‘테크놀로지의 덫’이 다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대체기술의 채택이 자신들에게 해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아는 유권자들이 기술 발전을 막고자 하는 정치세력을 집권시키는 것이다. 러다이트는 투표권이 없었지만, 내연기관과 함께 사라진 말들도 투표권이 없었지만, 중국인과 로봇에 의해 직장을 잃은 미국의 실직자들은 투표권이 있다는 것은 2016년 대선에서 증명된 바가 있다(물론 러시아의 선거 개입과 유별난 미국 선거제도가 톡톡히 역할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러스트 벨트의 반란 (출처: Jschnalzer, CC BY https://en.wikipedia.org/wiki/Rust_Belt#/media/File:Bethlehem_Steel.jpg)

미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은 ‘러스트 벨트’의 반란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출처: Jschnalzer, CC BY)

프레이는 이런 테크놀로지의 덫에 빠지지 않고, AI가 가져올 새로운 부와 번영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기술 발전에 소외될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지 고민할 시기가 왔다고 진단한다. 교육, 복지, 주거, 일자리 면에서 전면적인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다만 신중한 경제학자답게 기본소득과 같은 대안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보다는 현실적으로 시행 가능한 개별적 정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명확한 시대 인식과 올바른 정책을 통해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우리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vs. 중국,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책은 19세기 초 영국의 역사적 경험이 2차 산업혁명을 통해 반전되었다가, 컴퓨터와 정보화로 다시 반전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즉 산업혁명 여명기 영국은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는 주된 참고자료고, 이는 책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희망과 의지를 다지는 프레이의 메시지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기 힘든 면이 있다. 영국이 테크놀로지의 덫을 뚫고 산업혁명을 최초로 열어젖힌 과정은 낙오자들을 배려해주는 적절한 정책을 시행하여 노동대체기술의 부작용을 관리하는 부드러운 이야기가 결코 아니었다. 그보다는 대표권이 없는 노동자들을 짓밟고 신기술을 도입하여 그들의 고통을 재료로 새시대를 만드는 가혹한 이야기에 가까웠다. 기계를 파괴하고자 했던 수많은 직공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남겨진 사람들은 엥겔스의 휴지가 끝날 때까지 끔찍한 공장에서 일해야만 했다.

프레이가 말하다시피 이 같은 정치적 선택을 가능하게 한 것은 명백히 강대국 간 경쟁이었다. 프랑스, 네덜란드가 가하는 외부 위협이 반란을 일으킬 직공들의 내부 위협보다 훨씬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영국은 그리하여 실제 직공들의 반란을 찍어누를 정치적 힘과 의지를 모두 갖추고 새 시대를 열었다. 그렇다면 영국의 이 같은 선택은 오늘날에 교훈을 줄 수 없을까? 만약 오늘날 19세기 영국의 길을 기꺼이 따라가겠다는 국가가 등장하면 다른 국가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18세기 영국, 좁은 갱도에서 석탄을 옮기는 어린 노동자 (

18세기 영국, 석탄을 옮기는 어린 노동자 (출처: 퍼블릭 도메인)

사실 21세기 미국부터 그런 면이 있었다. 이 경우 강대국 경쟁을 상정하고 진행된 일은 아니었지만, 미국은 포디즘 체제를 최초로 설립한 국가이면서 그 체제를 누구보다 빨리 벗어던진 나라기도 했다. 1970년, 2차산업혁명의 선도국가였던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는 모두 1인당 GDP가 대략 1만 달러로 비슷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1인당 GDP는 6만 달러대로, 나머지 국가들은 여전히 4만 달러 수준(이탈리아는 심지어 3만!)에 머물러 있어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런 분기가 만들어진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부분적으로는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1979년 이후의 흐름을 미국이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먼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점이 컸다고 평가해볼 수 있다.

인공지능

사민주의 복지국가가 유지된 덕택에 노동자들도 비교적 안정된 삶을 이어갈 수 있던 독일과 프랑스, 끝없이 유동하는 오늘날의 경제, 사회 시스템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경직적 시스템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일본은 미국과 같은 정치, 사회적 스트레스를 구태여 감내하지 않았다. 물론 이들 국가도 세계화와 자동화를 어느 정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지만(미테랑, 슈뢰더, 고이즈미가 그 선봉장이었다), 미국과 영국만큼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특히 수많은 노동 계급을 가차없이 버릴 수 있던 미국의 시스템은 혁신과 금융의 생산성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는 미국의 경제적 우위로 증명되고 있다. 즉, 1980년부터 미국은 꾸준히 19세기 영국과 유사한 선택을 해온 것이고, 그 덕에 당대 자신의 위치를 위협한다고 여겨졌던 독일과 일본을 저 멀리 따돌릴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같은 방법이 최근들어 정치적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19세기 영국의 길을 따랐다. 하지만 그 길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미국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19세기 영국의 길을 따랐다. 하지만 그 길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위협이 제기된다면 어떨까? 국제 체제 속에서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19세기 영국과 같이 내부적 위협을 강력히 탄압할 수 있는 국가가 경쟁 무대에 오르게 되다면 미국은 어떻게 반응해야할까? 프레이도 지적하듯, 중국은 현재 산업용 로봇을 가장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도입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사실 이것만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기술에 있어서 여전히 미국은 중국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중국의 기술력 자체보다 중국의 정치적 의지에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이라는 외부적 위협에 맞서기 위해 중국은 AI와 로봇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고, 이 신기술을 기반으로 사회 시스템을 재설계하려는 실험도 진행하고 있다.

이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도 불투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구성원의 불만 제기를 탄압하거나 교묘히 관리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확고한 것은 비교적 분명한 듯 하다. 중국의 이런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며, 2차 산업혁명 시스템 이후의 무언가를 창출할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미국이 이에 대응해 온건하고 부드러운 이행을 추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보다는 19세기 영국과 마찬가지로 역시 내부의 불만보다는 외부 강대국과의 경쟁이 더 큰 위협이라고 판단하여, 주도권을 잃지 않고자 다시 강경한 기술 정책을 채택하려 하지 않을까.

중국 미국

물론 이것은 모두 가정이다. 아마 신중한 경제학자가 보기에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과감한 공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기술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화할 때 강대국 경쟁이 증폭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2차산업혁명이 그러했다. 미국과 독일이 주도한 2차산업혁명 체제(모타운 클러스터)는 소련에서, 일본에서,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에서, 또 한국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꽃피웠다. 각국은 자신들의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상황에 맞게 2차산업혁명 체제를 재설계해서 적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서구 사회 안에서 벌어진 산업적 경쟁은 이 패러다임에 어떤 국가, 기업이 더 잘 적응했는지를 가리는 거대한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세기말 정보화와 세계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새롭게 도래하면서, 비교적 작고 온건한 규모로 다시금 벌어졌고, AI와 로봇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또 다시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의 의지로 세상을 바꾸고 미래를 선택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집합적 힘, 기술 발전의 가차 없는 경향성이 우리를 이용하는 것 아닐까?


  1. 대압착: 대공항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1929년 대공황 이후 1960년대까지 미국에서 진행된 부유층과 노동계급 간의, 노동계급 안의 소득 격차가 크게 줄어든 현상.” (한국일보 – 김호기, ‘대압착 시대를 향하여’, 2016. 9. 29.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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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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