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예전에 정말 성격 좋은 남자와 교제한 적이 있었다. 사진작가였는데 항상 좌중을 즐겁게 하고 눈치가 빠르며 배려심이 넘쳤다. 그때 어울렸던 모임의 거의 모든 여성이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가 나타난 후 모임은 한결 활기차고 밝아지곤 했다.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 후배가 나를 질투해 수시로 우리 관계를 확인하려 들기도 했고(내가 그를 좋아하기도 전이었다), 미모가 뛰어났던 한 후배는 부러 그와의 친밀감을 사람들 앞에 노출하기도 했었다. 그녀들에 비하면 나는 내내 수동적이었다.

처음 데이트를 제안받았을 때도 데이트인지 몰랐고, 괜히 전화가 와도 ‘할 수도 있지’ 했으며, 메신저로 몇 시간이고 대화를 나누어도 그게 뭐 대순가 했다. 도도해서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억측과 그런 뒤의 민망함이 두려워 그랬다.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매력에 눌려 서로가 두려움 많은 미숙한 존재임을 몰랐다.

연애 데이트 사랑

교제가 시작되는 과정 중에도 교제 중에도 그는 정말 나에게 잘해줬다. 퇴근 후 건물 앞에는 언제나 그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고, 다투는 중에도 아프다면 약과 밥을 싸들고 들렀다 갔고, 내가 관심 갖는 모든 것에 함께 몰입해 줬었다.

그는 ‘상대에게 잘 하는 방법’에 너무나 숙련돼 있었다.

그때 나는 일이 있어서 못 본다고 하면 알았다고 했고, ‘여사친'[footnote]여사친: (남자 입장에서) 여자사람친구, 즉 이성적인 감정이 없는 단순히 성별이 여성인 친구[/footnote]을 만난다고 하면 그러라고 했다. 늦게 끝나는 나를 왕복 한 시간이 넘는 거리 데리러 올 때마다 낮에 내내 일했는데 왜 항상 나를 멀리까지 데려다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해도 그는 듣지 않았다. 그러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그런 줄 알았다. 힘든데 굳이 하진 않겠지 했다.

내가 그랬기 때문에 나는 늘 조바심이 없었고, 태연했으며, 안달복달하지 않았다. 나에게 ‘싫은데 억지로인 것이 없듯’ 그도 그런 줄 알았다.

111

이별은 갑작스러웠다. 아침에 사랑한다고 하고서 저녁에 나쁜 년이라며 전화로 깔끔하게 끝냈다. 모든 소통을 차단했다. 남이 운전하던 차를 얻어 탔는데, 운전자가 엑셀 고정시키고 비상 탈출한 상황 같았다. 그대로 모든 것을 들이받고 내내 힘들었다. 나 때문이 아니라 그 때문에 아팠다. 사귀는 내내 나는 따뜻했는데 그는 추웠나 보다.

내가 비난을 감내하고 노력하는 사람임을 그는 믿어주지 않았고, 나에게 차일까 봐 노심초사하다가 자폭해 버렸다.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법보다 ‘예측’하는 법에 능해서 칭송받아 왔던 탓에 그 ‘예측의 기술’이 사랑 앞에 얼마나 무서운 무기가 되어 서로를 찌르는지 몰랐나 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포착됐을 때 초지일관 맞춰 주고, 참는 것만이 미덕인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그의 자아를 그렇게 구축했고 그는 방관했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누리는 평화는 서로에게 독이 될 수 있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모두가 피해자다.

모델들과 고객과 동료들의 마음을 맞춰주며 좋음과 싫음의 사이에서 얼마나 외롭고 추웠기에 저렇게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까 마음이 아팠고, 우리 관계가 아까웠다. 헤어지고 한 달쯤 지나서 술 취한 채 전화가 왔는데 달래는 내 말을 듣더니 한참 동안 나에게 욕을 했다. 나를 ‘믿어보는’ 것이 두려워 그랬을 것이다. 욕하지 않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은 애증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웠다.

6개월이 지나고 또 나를 찾아왔지만, 그는 아직 자기를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내내 나를 원망했다. 그런 식으로 보낸 6개월이란 시간은 한나절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만나서 그 텅 빈 내면을 확실히 확인하고서 돌아섰다. 그때는 악담도 하고 화도 냈다. 그에게 나는 나쁜 사람으로 끝났다.

222

그때 처음 알았다. 성격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성격 좋다’는 단어 자체가 폭력적일 수 있음을. 나는 타인의 세계를 존중하는 선에서 당당하게 까칠한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의 까칠함은 너무나 확연한 관계의 팻말이며 마음의 내비게이션이기 때문이다.

이유 있는 까칠함은 우리의 소심함이 발효된 식초와 같다. 관계의 맛을 돋우고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심초사하며 나의 사랑을 얻으려고 절치부심하는 사람 앞에 내가 서 있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도 상대를 사랑하고 아끼기에 그런 가학의 자리에서 대접받고 싶지 않으며 나도 사람이기에 노력할 줄 알고 거절할 줄 안다. 선이 분명한 까칠함은 나의 통제감에 대한 일종의 존중이다.

웃음에 예민한 사람 중에 마음이 공허한 사람들이 간혹 있다. 눈치가 빠르고 책임감이 강하여 좌중이 행복해야 마음이 편한 애처로운 착함… 한때 나도 그랬었기에 그게 타인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기에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정말 뻔한 얘기지만 더 버티다간 -‘좋은 성격’이 구성당한 것이라면- 무너질 수도 있다.

어느날, 한 희극인의 잠정 방송 중단 기사를 보며 버스 정류장에서 이 글을 썼었다. 이날 나는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작은 수술 후 경과가 좋다는 말을 들었고 오랜 병이 끝났다는 홀가분함을 느꼈었다. 보슬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누군가에게 웃음을 준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웃음을 생산하는 당사자가 아프다면, 한 사람이 직업인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슬픔과 아픔을 감수하며 버텨왔던 것이라면, 까칠한 자기 성격을 애써 죽여야하는 것이라면 앞으로 내내 그의 방송을 못 본다 해도 방송을 중단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버텨봤자 더욱 병들고 썩을 뿐이다. 내가 그랬다. 나의 연인이 그랬다. 잠시 멈춰서 잘못을 도려내고 솔직하고 건강한 웃음으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이 글을 쓴 날 이후 내 병의 끝과 함께 많은 것이 변했다. 얼마 전에 그 희극인도 방송에 복귀했다. 중단의 용기를 냈던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어느새 우리의 까칠함은 삶의 식초가 되어 있었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