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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관한 생물학적 충고
1. 시작하는 연인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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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보다 매혹적인 것은 우연이다. 우리들의 사랑이 잊을 수 없는 것이 되기 위해선 우리들의 사랑 위에 우연이 내려앉아야 한다. 마치 성자 프란츠 폰 아시시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저 비둘기처럼.”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연애의 유효기간 

우리는 서로의 매력에 끌려 연애를 시작한다. 일단 시작된 연애는, 서로에게 매우 축복된 우연과 필연의 만남이었음이 분명하다. 각자가 가진 매력을 서로 알아차리고, 즐겁거나 흥분된 감정이 일어나는 이 둘만의 특별한 상호 작용은 얼마나 귀한 생물학적 반응인가?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그 ‘연애’를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 ‘연애감정은 길어야 3년’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말들은 과연 누구에게나 사실일까? 마치 ‘모든 인간은 늙는다’는 명제처럼.

그래서 어떤 연인들은 미리 헤어짐을 준비하고, 그래서 서로의 만남에 충실하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연애 기간이 더 짧아지는 역설을 경험하기도 한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 (L'amour dure trois ans, 프레데릭 베그베데, 2011)이라는 제목의 프랑스 영화도 있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 (L’amour dure trois ans, 프레데릭 베그베데, 2011)이라는 제목의 프랑스 영화도 있다.

이별의 이유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즉, 인간은 각자 나름대로 매력과 결핍을 가진다. 많은 연애는 결핍 혹은 단점에 대한 회피 반응을 넘어서서 매력에 이끌리게 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 연애의 종착점에서 우리는 서로의 매력에 둔감해지고,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던 상대의 결핍에 실망한다.

‘콩깍지가 씐다’는 말은 그 매력에 대한 긍정 반응이 결핍 혹은 단점에 대한 감지 체계의 마비를 의미한다. 헤어지는 연인들에게 서로 원수가 되거나 미워하는 상황은 흔하지 않다. 즉, 미워서 헤어지진 않는다.

다만, 지루해질 뿐이다.

이별 연인

생명체의 모든 반응은 감지-통합-반응의 체계들에서 작동하며, 각 단계는 생물학적·화학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즉, 반응이 저절로 일어나진 않는다. 또 하나의 생물학적 반응 체계의 특징은, 지속되는 익숙한 자극에 관해서는 ‘둔감화’(desensitization)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감각의 둔감화 현상은 생물체에서 매우 익숙한 반응으로서, 많은 생물학 연구의 결과물에서, 그 기전(機轉: 일어나는 현상)이 알려져 있다. 강한 빛에 오래 노출된 인간의 광수용체는 둔감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 활성이 떨어진다. 밝은 곳에 있다가 약간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일시적으로 시야가 어두워지는 이유이다.

통증 역시 둔감화 과정을 수반하는데, 2005년 발표된 신희섭 교수 그룹(KIST, 현 IBS)의 T-유형 칼슘 채널이 결핍된 쥐를 이용한 연구에 따르면, 이 유전자가 제거된 쥐는 만성 통증 조건에서 훨씬 더 괴로워한다. ‘매도 맞아본 사람이 잘 맞는다’는 경험적 통찰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연애감정의 둔감화 

그렇다면, 우리의 연애감정에도 ‘둔감화’가 일어날까?

그렇다. ‘연애감정’ 역시 둔감화의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서로의 매력에 인식하여, 빠져들고, 기뻐하는 이 감정-행동들은 다른 둔감화의 반응과 같이 흔하고, 불가피한 생물학적 반응이다.

‘감정’은 감각-수용, 통합-반응의 생물학적 현상으로서 뇌 활동의 산물이다. 즉, ‘저절로’ 일어나지는 않는, 생물학적 반응이다. 많은 마약·진통제·항우울제들이 발견 혹은 개발되었고, 더욱 더 정교한 우울증 치료제·마약 흥분제·진통제 등 많은 감정 약물의 개발은 다가올 미래다. 이러한 약물의 개발 연구는 뇌 활성의 산물인 ‘감정’ 역시 많은 유전자의 지배 아래 있다는 가설을 기반으로 한다.

이별 지루함 권태 연인 연애

약간은 먼 그 미래가 오기 전에, 연애감정의 둔감화를 막기 위해 혹은 지연시키기 위해 연인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은 없을까?

감정과 유사한 뇌만의 활동으로서 의식, 기억, 학습 등이 있다. 이들의 활동 역시 둔감화의 과정을 가질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실제 ‘의식’의 둔감화는 우리가 수시로 관찰하고 있다. 의식/무의식(잠)의 세계를 매일 오가는 우리들은 의식의 둔감화 과정에서 특이한 행동을 보이게 되는데, 그것은 ‘졸음’이다.

다시 말하자면, ‘졸음’은 잠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보이는 행동이지, 깨어나는 과정에서 보이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졸고 있는 아기는 바로 눕혀 재우는 것이 아기를 더 기쁘게 하는 행동임을 부모는 알고 있다. 졸고 있는 사람을 깨울 때는 ‘역정’을 낼 수도 있음을 유의할 것.

‘졸음’과 연애감정의 둔감화 

‘감정’의 둔감화와 ‘의식’의 둔감화가 유사한 생화학적, 세포학적 기전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 없으나, 같은 뇌의 활동이라는 점에서 공통적 특성을 가질 가능성은 있다. 흥미롭게도 ‘졸음’의 과정은, 연애감정의 둔감화와 여러 측면에서 유사점이 있다.

졸음에 빠졌던 상황들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졸음을 경험하는 상황은 ‘익숙하다’ 혹은 ‘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상황 혹은 뇌로 에너지가 더 공급되기 힘든, 신체 전반의 피로 상황일 것이다. 정보를 따라가기엔 너무 많은 새로운 이야기나 뇌의 피로 상황도 이와 같다.

학생들이 많이 졸고 있는 강의실로 찾아가 보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아무런 시각 자극 없이, 단조로운 톤으로 설명되는 강의. 이러한 강의실에서도 졸지 않는 학생은 있다. 내가 아직 모른다는 자기 암시. 즉,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내용이 있는지 찾아보려는 마음가짐을 가진 학생은 ‘지루하게’ 강의하는 선생님의 수업에서도 졸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학생들도 피할 수 없는 졸음이 있다. 체육 시간 혹은 식사 시간 후, 많은 에너지가 다른 기관에 몰려, 뇌에 충분한 의식 각성을 유지하기 힘든 시간대의 수업.

졸음

연애감정의 둔감화를 막는 비결  

상대의 매력에 반응하는 연애감정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연애감정의 둔감화를 막는 비결을 졸음 방지 비결에서 유추해보면, 다음과 같은 조언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 새로운 매력을 개발하고 발산하기.

둘, 내게 빠져들게 만들었던 나의 매력을 상대에게 상기시키기. ‘내가 어떤 점이 좋아?’, ‘어디가 좋아서 나랑 사귀기로 마음먹었어요?’, 상대에게 혹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좋은 질문들이다.

셋, ‘우리는 서로 아직 모르는 매력이 있다’는 믿음.

마지막 충고는, 서로의 몰랐던 매력을 알아차리고 반응할 에너지를 남겨 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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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먼저 마음이 식었을까?

이 연애감정의 둔감화를 지연, 혹은 억제하기 위해서 여러 노력들이 가능하겠지만, 한계는 있는 법. 즉, 누구에게나 연애 감정이 오래 지속하지 않음을 경험칙으로 알게 되는 상황이 온다.

‘연애감정’이 지속되는 시간에는 같은 상황 속에서도 개인별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차이고 누구는 찬다. 나는 혹은 내 상대는 연애감정의 둔감화가 얼마나 잘 일어나는 사람일까?

상대방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많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볼 수 있게 되고, 그 때 보이는 것은 그 전에 보던 것과는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연애의 본질은 열정보다는 노력(상대의 매력을 알아차리고 반응하는)에 있다.

쿤데라가 말한 ‘필연’이 각자의 매력이 만들어지는 생물학적인 결정론이라면, 우리의 사랑을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줄 ‘우연’은 서로의 매력을 계속적으로 알아차리는 우리의 노력 속에 깃들여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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