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마존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6월 중순 아마존은 미국 고급 유기농 푸드 체인 홀푸드(Whole Foods)를 137억 달러, 한화 15조 원대에 이르는 거액을 주고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아마존이 오프라인 식품 시장에 진출한다는 보도가 쏟아지자 월마트를 비롯한 식품 관련 기업 주가는 일제히 급락했다.
홀푸드는 유기농 자연식품을 중심으로 판매하는 고급 슈퍼마켓. 미국과 캐나다, 영국에 매장 460개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 체인이다. 이번 인수는 지난 2014년 인수한 트위치의 9억7,000만 달러를 상회하는 아마존 최대 인수가이기도 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마존이 보유한 현금과 현금 등가물 보유 잔고는 올해 3월 기준으로 215억 달러라고 한다. 이번 홀푸드 인수는 모두 현금 충당으로 해결한다는 것. 물론 시장 반응은 아마존에 호의적이다. 아마존이 홀푸드 인수를 발표한 이후 아마존 주가가 올라 시가총액은 인수에 필요한 금액에 상응하는 수준만큼 올랐다고 한다.
아마존이 홀푸드를 인수하면 유기농 식품 등 비교적 값비싼 식품이 저가격화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마존이 자체 물류망을 활용해 유기농 식품을 더 빠르고 싸게 배송할 수 있게 되는 만큼 서비스 자체도 더 충실해질 수 있다.
또 다른 포인트는 홀푸드가 저가형 브랜드 할인점인 ‘365’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상품 가격대가 겹치는 월마트나 타깃 같은 유통 체인과의 경쟁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 아마존의 홀푸드 인수가 보도되자 주식 시장도 곧바로 반응했다. 아마존 주가는 3.1% 올랐지만, 월마트와 코스트코, 타깃 같은 잠재 경쟁자의 주가는 일제히 하락한 것이다.
예견된 제국의 확장
아마존의 오프라인 진출은 이미 오래 전에 예견된 일이다. 아마존은 지난 2015년 미국 시애틀에 오프라인 서점인 아마존북스(Amazon Books)를 열면서 미국 내에 이런 서점 300∼400개를 열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아마존은 실제로 올해 5월에는 뉴욕에 첫 아마존표 서점을 열었다. 아마존은 뉴욕에 아마존북스 2개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서점에 들어서면 아마존닷컴에서 별 4.8 이상 좋은 평가를 받은 책이 진열되어 있고 책 아래쪽에는 리뷰 내용을 기록한다. 또 아마존닷컴에서 책을 구입하면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한 다른 추천 목록이 뜨는데,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화살표로 추천 서적을 알려준다.
책은 모두 표지가 앞으로 보이게 배치하고 카드에 책에 대한 정보를 적는다. 고객 리뷰와 책 제목, 저자, 별점 등을 표시해주는 것이다. 아마존북스는 평범한 서점이라기보다는 매장 곳곳에서 아마존닷컴과의 밀접도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아마존은 2016년 12월에는 아마존 고(Amazon Go)를 발표했다. 아마존 고는 계산대에서 결제를 할 필요가 없는 획기적인 콘셉트를 내걸었다. 매장에 들어갈 때 전용 앱을 실행한 다음 입구로 들어서서 한 번 체크만 하면 원하는 상품을 선반에서 꺼내 쇼핑백에 넣은 다음 그냥 나오면 된다. 컴퓨터비전과 인공지능(AI) 센서 등을 통해 머신러닝을 하는 등 기술과 쇼핑을 결합한 것이다. 아마존의 표현을 빌리면 ‘저스트 워크 아웃 테크놀로지 (Just Walk Out Technology)’[footnote]소비자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선택했다면, 그 물건을 들고 가게에서 ‘그냥 나가면'(Just walk out) 된다는 의미. 즉, 결제와 관련한 기술적 접근성, 어려움을 신경쓸 필요 없다는 취지의 명명. (편집자) [/footnote]다.
물론 아마존은 당초 올해 아마존 고 매장을 열겠다고 밝혔지만 기술적 문제 탓에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아마존 고를 발표한 건 아마존의 적극적인 오프라인 진출, 기술과 쇼핑의 접목 의지를 엿보게 해주기엔 충분하다.
아마존 고는 앞서 밝혔듯 아마존이 기술을 잘 활용할 줄 아는 기업이라는 사실, 기술을 통한 기존 시장을 와해하는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예다. 아마존이 아마존 고를 준비한 건 4년이 넘었다고 한다. 아마존 고를 구성하는 기술 중에는 2013년과 2014년 받은 특허 두 개가 자리 잡고 있다. 특정 영역 밖으로 운반하는 상품을 추적하는 시스템에 대한 특허, 카메라를 이용해 선반에 다시 올려놓은 상품을 자동 감지하는 시스템 특허가 그것이다.
아마존의 이 같은 오프라인 시장 진출 움직임은 슈퍼마켓 유통 분야에도 IT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가 쏟아지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월마트는 아마존의 아성인 온라인 판매에 손을 대는 한편, 일부 매장이지만 모바일 앱을 이용한 셀프 계산대 서비스인 스캔앤고(Scan and Go)를 테스트하고 있다.
아마존이 인수한 홀푸드 산하 365 역시 아이패드로 와인을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런 점에서 아마존의 오프라인 진출은 기존 유통 브랜드의 온라인 역진입과 적극적인 IT 기술 접목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서로 상대방의 울타리를 넘나드는 치열한 싸움을 예고하는 것이다.
또 다른 포인트는 기술을 매개로 제국의 오프라인 영역을 확산시킬 가능성이다. 중국에선 이미 빙고박스(BingoBox)가 1년 안에 무인 편의점 5000개를 내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매장 직원 하나 없이 QR코드를 스캔하면 문을 열 수 있고 상품을 고른 다음에는 자동 측정 머신에 넣고 위챗페이나 알리페이로 결제한다.
중국 편의점의 무인화를 두고 ‘신링쇼우’라고 말한다. 단순히 O2O(Online to Offline)가 아닌 모바일 세대의 경험 자체를 모바일화한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알리바바 역시 아직까지는 팝업스토어로만 운영하고 있지만 무인 편의점인 타오카페(Tao Cafe)를 선보이기도 했다.
아마존 고는 이런 점에서 아마존의 오프라인 경험을 확산시킬 접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마존 고가 프랜차이즈 형태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마존의 경험을 오프라인으로 확산시킬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
AWS가 말해주는 제국의 확장 공식
물론 해외에선 지난 2016년 미국 내 인터넷 쇼핑몰 매출 중 거의 절반을 아마존닷컴이 차지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 5년 안에 온라인 쇼핑몰에서 이뤄지는 전체 거래 중 3분의 2를 아마존이 지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프라인 시장 진출은 아마존 제국 확대에 어떤 영향을 줄까. 혹자는 아마존의 오프라인 진출 방식이 클라우드 서비스인 AWS(Amazon Web Services)를 닮았다고 말한다. AWS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는 말하자면 네트워크 인프라를 대여하는 것이다.
AWS는 그야말로 폭풍 성장했다. 시장조사기관 시너지리서치그룹에 따르면, 지난 2016년 4분기 기준 AWS의 시장점유율은 41%에 이른다. 2위권인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구글을 모두 합쳐도 23%라는 걸 감안하면 압도적이다.
앞서 홀푸드 인수와 비교해 생각해보면 재정 기여도가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 AWS의 올해 1분기 매출은 36억 6,000만 달러라고 한다. 아마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해봐야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순이익은 8억 9,000만 달러에 달한다. 아마존이 기록한 전체 순익 중 89%에 달하는 것이다.
아마존이 최근 인수한 홀푸드가 주력으로 삼는 건 식품이다. 식품 유통은 가장 큰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월마트의 주력 분야다. 아마존이 이 분야에서 월마트를 누르거나 압박한다면 ‘본진털이’가 될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인프라를 지배한 뒤 생길 확장이 될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마존은 지난해 열린 AWS 컨퍼런스 기간 중 AWS, 그러니까 클라우드에 AI를 접목하는 서비스를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마존 고나 홀푸드 인수로 확보한 오프라인 인프라는 아마존 입장에서 보면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같은 기존 산업에 대한 진출 외에도 차기 먹거리를 접목하는 관문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아마존이 홀푸드나 아마존 고 확대에 따라 오프라인 인프라를 구축하면 여기에 아마존프라임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배송을 접목할 수 있다. 아마존이 페덱스나 UPS 같은 곳과 경쟁을 할 수 있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홀푸드 같은 곳은 고급 음식을 집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선 우버이츠 같은 서비스와의 충돌도 이뤄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제국, 새로운 시대의 오일을 노리다
물론 더 중요한 게 있다. 흔히 클라우드와 AI, 여기에 사물인터넷이라는 요소를 결합해줄 새로운 시대의 오일을 데이터라고 말한다. 기술을 접목한 아마존의 오프라인 매장은 이 새로운 시대의 오일을 흡수하는 빨대가 될 것이다. 아마존이 홀푸드를 인수했다는 건 아마존이 실제 매장에서 이뤄지는 상거래에서도 고객을 모니터링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라는 얘기다. 또 아마존북스에서 그랬듯 아마존이 고객에게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추천 형태로 소비 행태를 지배하게 될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데이터의 힘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아마존은 이미 아마존닷컴에서 외부 상품을 판매하는 건 물론 자체 상품도 판매한다. 아마존은 광범위한 상품을 한꺼번에 제공해 이곳만 찾으면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런 점 때문에 국내에서 작은 쇼핑몰을 하나 만드는 것보다 대부분은 G마켓이나 11번가 같은 오픈마켓에 입점하는 쪽을 택하듯 아마존에 입점하는 쪽이 훨씬 득이 많을 수 있다. 아마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나가는 상품이 있다면(이런 내용은 이미 아마존이 데이터를 통해 알고 있다), 아마존이 자체 상표를 붙여서 팔 수 있다.
유통 소매업 시장은 미국만 따져도 25조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아마존은 이미 온라인 시장에서 인프라 구축을 통해 상거래 시장을 압도적으로 장악, 제국을 구축했다. 홀푸드 인수나 아마존 고, 아마존북스 같은 아마존의 오프라인 진입은 아마존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상거래 시장의 지배를 노린다는 점, 또 앞서 설명했듯 이들 인프라를 지배하게 됐을 때 일어날 일을 상상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어쨌든 아마존의 성공 여부를 떠나 치열한 전쟁터가 될 것이 분명한 만큼 유통시장 경쟁자에게는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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