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슬로우뉴스는 2016년 연중기획으로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사회에 초래한 변화를 점검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는 ‘미래 읽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공유경제, 자본의 진화인가 대안인가
- → 공유경제, 자본주의의 진화인가 새로운 대안인가
- 에어비앤비와 불평등
- 디지털 지입제: 화물연대를 통해 본 우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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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기적 징후, 혹은 전환기적 현상이라는 말이 있다. 한 시대를 관통해온 주류적 질서가 다른 질서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독특하고 특이한 사건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대체되는 과정이나 봉건사회가 자본주의사회로 이행되는 시점에 등장했던, 구질서의 논리와 체계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특별한 주장과 운동 그리고 결과물들이 이행기적 징후에 해당한다.
이행기에는 전환 이후 시대에 주류적(정상) 질서로 부상하게 될 맹아가 탄생한다. 수많은 맹아는 주류화를 갈망하며 끊임없이 경쟁한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정도의 경쟁을 거친 뒤 선택받은 맹아만이 이후 정상 질서로 기능하게 된다.
이전 질서와 새 질서는 서로 양립이 불가능하며 교집합도 존재하지 않는다. 번역조차 어렵다. 새 질서는 이행기를 거쳐 이처럼 단절적으로 찾아온다는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년~1996년, 사진)의 과학혁명 이론이다. 토마스 쿤이 설명하는 과학혁명 이론을 사회경제적 현상에 대입하면 대략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말할 수 있다.
과도기적 질서로서 공유경제
공유경제로 번역되는 ‘Sharing Economy’는 최근 수년간 전 세계 경제적 질서를 뒤흔들고 있는 독특한 시스템이다. 택시 한 대 소유하지 않고도 625억 달러(우리 돈 72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우버나 전 세계 호텔 빌딩 한 곳 보유하지 않고도 힐튼에 맞먹는 기업 가치를 평가받고 있는 에어비앤비는 기존의 자본주의적 사고와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여럿 발견된다. 그런 측면에서 패러다임 변동기에 나타나는 이행기적 징후라고 말할 수 있다.
공유경제는 우버, 에어비앤비, 태스크래빗 등 수익을 목적으로 유휴 자원을 상품화한 뒤 이를 인터넷 등의 형태로 매개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우버는 자가 차량을, 에어비앤비는 자가 주택을, 태스크래빗은 자가 노동을 상품 영역으로 끌어낸다. 최근 우후죽순 등장하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들도 여기에 해당하는 유형이 적지 않다.
일부 논객들은 위키피디아나 리눅스 등을 우버 등과 같은 범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두 시스템은 한데 묶기 힘든 이질적 속성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뒤에서 설명하도록 한다.
공유경제와 커먼스경제
공유경제와 커먼스경제는 겉으로만 보면 작동 방식이 얼핏 비슷해보인다. 개인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 그리고 분산적 자원 배분 시스템 등이 주요 특징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시스템의 결정적 차이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그 뒷면에 존재한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통제하는 ‘뒷단 시스템(Back-End System)’이 분산적인가를 살펴보면 둘 간의 차이는 분명해진다.
[box type=”info” head=”공유(Sharing)경제와 커먼스(Commons)경제 “]
앞에서 공유경제를 굳이 영어로 따로 적은 이유는 우리말 ‘공유’(지)로 번역되는 Commons와 혼동을 피하기 위함이다. Sharing Economy와 Commons Economy를 기계적으로 번역하면 공히 ‘공유 경제‘로 표기될 수 있지만 두 시스템의 차이는 개념적으로는 극과 극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독자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Sharing Economy’를 기존 글 대부분처럼 ‘공유경제’로, ‘Commons Economy’를 ‘커먼스경제‘로 풀어쓸 예정이다. 그렇다고 공유경제를 로렌스 레식이 언급한 상업적 경제의 대칭 개념으로서 ‘Sharing Economy’와 동일하게 사용하지는 않을 참이다.
이 글에서 공유경제는 철저하게 상업적이면서 공유경제로 포장되고 있는 우버, 에어비앤비류의 일반적인 유형의 서비스 모델을 지칭하는 개념어로 쓸 계획이다. [/box]
P2P재단 창립자인 마이클 바웬스(Michel Bauwens, 사진)와 코스타키스는 뒷단 시스템이 중앙집권적으로 통제되는 공유경제 서비스에 대해 “신(新)봉건적 모델”이라고 분류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용자들의 P2P(peer-to-peer) 활동을 가능케 하는 앞면은 많은 경우, 뒷면에서 중앙집권적으로 통제된다”면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P2P 논리는 뒷면이 배타적인 통제와 소유권 하에 있는 한 불가능하다.”
바웬스의 모델을 여기에 적용하면 이렇게 구별할 수 있다.
- 앞면만 협력과 분산을 지지하는 시스템은 ‘공유경제’
- 앞면과 뒷면 모두 협력과 분산을 지향하면 ‘커먼스경제’
이를테면 위키피디아와 리눅스는 동료간 협력으로 생산이 진행되면서 동시에 특정 개인이나 사적 기업의 소유나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커먼스경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윤이라는 금전적 동기로 시스템이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스템과는 완벽하게 이질적인 속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질서와 들어맞지 않는 신질서적 요소들
공유경제는 수백 년을 이어온 역사적 자본주의 질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이행기적 징후의 대표적 사례다. 자본주의라는 저물어가는 구(舊)패러다임의 땅 위에서 탄생하긴 했지만, 자본주의 질서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 잠재성도 함께 갖추고 있다. 옛 패러다임에서 잉태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조이기에 혼종적 성격을 가진 셈이다. 그것이 현재 이상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힘이다.
우버와 에어비앤비, 태스크래빗의 새로운 패러다임적 요소는 소비 측면에 집중된다. 기존의 사적 소유 체계에 대한 도전적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자본주의는 소유라는 자원의 관리 체계 위에서 지탱될 수 있었다. 끊임없이 개인의 소유욕을 자극함으로써 더 많은 상품을 생산-판매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구조적 순환의 고리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소유라는 주입된 욕망은 상품의 과잉생산을 초래했고 자연 파괴와 같은 극단적인 부작용을 양산했다. 공유경제는 개인이 소유한 자원을 네트워크라는 매개 기술을 이용해 자발적으로 교환하게 함으로써 자원의 낭비를 줄이는데 적잖이 기여한다.
우버는 한발 더 나아가 자율주행차를 교통수단으로 투입함으로써 사실상 자동차 소유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구상을 선포하기도 했다. 우버의 구상이 실현될 경우 전통적 대량생산 시스템의 상징과도 같은 자동차 생산 기업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버의 자율주행차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순간이 도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공유경제는 이렇듯 죽어있던 개인들의 자원에 네트워크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가치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또 하나의 물질적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들이 소유한 자원을 나누고 교류하는 것만으로도 가치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또한, 공유경제는 소유 및 소비 중심주의의 치명적 결함을 발견하고 대안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탈자본주의적이다. 협력적 개인의 속성에 천착하고 그 의식을 발현시키는 데 공헌하고 있기에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그래서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공유경제는 여전히 치명적인 한계를 지닌다. 뒷단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중앙집권적 성격과 너무나도 자본주의적인 구패러다임 의존성이 그것이다.
초자본주의적인 그래서 대안적이지 못하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비판할 때 자주 쓰이는 용어가 있다. ‘임시직 경제'(Gig Economy). 이 말은 공유경제의 한계를 대변하는 표현으로 곧잘 인용된다.
공유경제는 그것이 지닌 새로운 패러다임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옛 패러다임을 넘어서지 못하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임시직 경제’라는 표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자발적 참여자의 노동을 불안정한 위험 상태로 내몬다.
우버나 태스크래빗, 에어비앤비가 확산하고 주류화할수록 노동자들의 지위는 더 위태로워지고 노예화한다. 생산은 분산적으로 이뤄지지만, 이윤은 독점적으로 소유되는 모순된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바웬스와 코스타키스(Kostakis & Bauwens, 2014 ; p.39)는 이 같은 공유경제 시스템을 ‘네트워크 통치 자본주의’라고 명명하면서 “신봉건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 공유경제 서비스의 형태가 과잉착취(Hyper-Exploitation)에 기대고 있기에 그렇다.
사용자 인터페이스 이면에 숨겨진 뒷단의 알고리즘은 오로지 플랫폼 기업의 사적 축적을 극대화하는 목적으로 설계돼있다. 자원을 공유하는 참여자들은 이 알고리즘 설계에 대한 통제력이나 소유권을 가질 수조차 없다.
이 시스템 안에서의 노동의 지위는 자본주의라는 옛 패러다임보다 더 퇴행적일 만큼 극적으로 추락한다. 노동조합의 결성이 법리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기묘한 환경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플랫폼 기업의 이윤 독점을 위해 최소 수익 보장 체계도 무시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조차 보장받는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경제적 안전망이 공유경제에선 모조리 해체된다.
매킨지 왁(Wark, 2014)은 이런 특성에 대해 “자본주의라고 할 수도 없다. 무언가 더욱 악화시키는 것들”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것이 초래할 결과와 한계는 비교적 명확하다. 바웬스와 코스타키는 이렇게 말한다.
“네트워크 통치 자본주의 조건에서는 공유자들이 사용가치를 직접 창조하고 공유하는 동안 자본 소유자들에 의해 교환가치가 실현된다. 즉 가치 창조자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는 자본의 장기적인 가치 위기를 만들어내게 된다. 사람들이 실질 경제의 작동을 위해 필수적인, 재화에 대한 구매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Kostakis & Bauwens, 2014 ; p.41-42)
공존의 구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플랫폼 협력주의(Platform Cooperativism)을 주장해온 트레보 숄츠(Sholz, 2016)는 “미래의 노동시장이 (공유경제) 단 한 가지만 모델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바웬스는 공유경제 시스템이 지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어찌 됐든 현재의 공유경제 시스템이 향후 유일한 경제시스템으로 자리 잡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들이다.
자본주의가 그러했듯, 극단적인 축적 시스템은 주기적인 위기를 발생시켰다. 공유경제 시스템이 품고 있는 과잉착취, 과잉축적의 속성은 자본주의의 전례대로 또 다른 위기 국면을 만들어낼 공산이 크다. 공유경제 참여자의 파업일 수도 있고, 거품의 폭발일 수도 있으며, 구조적 경기 침체의 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비판만 할 이유는 없다. 공유경제는 새로운 기술적, 경제적 패러다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자원의 과잉 소비에 의존하지 않고도 생산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새 질서를 선보였고, 자본주의적 소유의 욕망에 제동도 걸었다. 이는 다음 패러다임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할 수 있는 의식의 유연성을 주조해내고 있다.
나는 커먼스경제로의 이행이 역사의 진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물론 커먼스경제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앞에서 언급한 공유경제와 커먼스경제가 공존하며 경쟁하는 사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건 현재의 공유경제가 새 패러다임의 유일한 질서가 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역사의 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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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Kostakis, V., & Bauwens, M. (2014). Network society and future scenarios for a collaborative economy. Palgrave Macmillan.
- Sholz, T. (2016). Platform Cooperativism: Challenging the Corporate Sharing Economy. Rosa Luxemburg Stiftung.
- Wark, M. Digital Labor and the Anthropocene. DIS Magazine, accessed November 24, 2015, dismaga- zine.com.
https://bingobank.org/
한국의 커먼스 경제 실험이라고 할 수 있을 공동체은행 빈고의 홈페이지입니다.
고민이 배여있는 좋은 글 잘 읽었고, 평소 제 생각의 일부를 공유합니다.
= 공유내용 =
우버가 드디어 우버기사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을 인정했다. 공유경제는 주식회사보다 조합과 그 맥과 결이 맞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우버의 운전기사 노동조합 인정은 장기적으로 우버에 긍정적인 것이다.
내 개념의 #공유경제 는
1.유형적인 거래 이전에 무형적인 공유가 전제된다.
2.소유가치 이상의 가치와 편익을 창출한다.
3.자본의 이해와 이익보다 사람과 사회의 필요와 신념을 지향한다.
4.소유경제가 가격 비교에 의한 선택이라면, 공유경제는 가치 비교에 의한 선택을 한다. 수요와 공급에 의한 시장경제 우리에 의해 가격이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와 생산자가 협의한 가치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일반적 기업처럼 소수 창업가, 투자자의 성공을 위하거나, 그들만의 성공이 되는 경우는 절대 공유경제로 분류할수도 없고, 공유경제 체제에서 존재 자체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활협동조합, 기부자들의 기부와 후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재단, 수익창출보다 고용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 정도가 #공유주의 조직으로 발전할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화웨이의 경쟁력은 주식 대부분이 종업원 또는 특수관계에 분산되어 있어 협동조합, 주식회사, 사회적기업의 장점과 강점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삼성은 물론 전 세계 어떤 기업도 갖추지 못한 역량과 문화이고, 갖추기 힘든 역량과 문화이다. 이런 이유로 내게 단 하나의 회사를 고르라고 한다면 현 시점에서는 화웨이다.
정보사회에 경쟁력은 화폐자본보다 오직 인적자본의 질과 양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건재하고,발전하는 경제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자리잡은 국가 공동체에서 고금리가 다시 등장할 확률은 매우 낮다. 성장의 한계와 함께 성장에 있어 화폐자본보다는 인적자본의 역할과 비중이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정보화를 통해 가능해진 것은 이제 굳이 자본조달을 소수의 투자가나 기관이 아닌 수요자에게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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