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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기업은 기능과 가격을 이야기하지만 1등 기업은 문화를 이야기한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가 한 말이다.[footnote]아시아경제 인터뷰, ‘[카드뉴스]매출30% 포기했다, 그랬더니 두배 늘었다’(2016. 8. 30)[/footnote] 첫 문장을 읽자마자 공감했다면 미안하다. 나는 이 말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아마도 김봉진 대표의 진의는 자사 문화에 관한 자부심 표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몇몇 기업들은 김봉진 대표가 한 말을 듣고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기능과 가격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런 기업 중에도 1등은 있다.

기업문화의 압축 형태 ‘CI’ 

기업문화는 사람으로 치면 성격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기업도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떤 기업은 잔혹한 성격으로 구성원을 혹사해 놀라운 가성비의 제품을 만들어낸다. 어떤 기업은 명랑한 성격으로 키치 감성의 메시지로 매력적인 서비스를 만든다. 둘은 문화가 서로 다를 뿐이지 어느 한쪽만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문화를 이야기하는 방식 중에서 가장 압축된 형태는 CI(Corporate Identity; 기업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CI는 기업의 성격이 함축되어있다. 이유는 사람의 인지 구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사람은 얼굴을 보고 성격을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영화배우의 경우, 얼굴과 배역이 서로 잘 어울리면 영화에 더 잘 몰입할 수 있고 캐릭터에 대한 기억도 오래간다.

코카콜라
코카콜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CI에서 기업의 성격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CI가 기업의 얼굴 역할을 하는 것이다. CI가 기업의 성격에 잘 어울리면 기업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더 오래 지속시키고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CI를 만들고 싶다면 먼저 기업의 성격을 분석하고 정의 내릴 수 있어야 한다.

CI 디자인 가이드: 이성형 vs. 감성형 

“경영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이 한 말이다. 기업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기업이 중시하는 가치를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기업이 선택한 결정은 고스란히 기업의 역사로 남고, 기업의 문화를 형성한다. 따라서 논리상으로는 기업이 선호하는 의사결정을 분석하면 기업의 성격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를 어떤 관점으로 분석해야 하는 걸까?

감사하게도 분석심리학의 대가, 칼 융(Carl Jung)은 의사결의 성격유형에 관하여 좋은 유산을 남겼다. 칼 융의 성격 유형론을 기반으로 하는 마이어스 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 이하 ‘MBTI’)가 그것이다. 본래는 사람의 성격 분석을 위한 지표지만, 기업의 성격을 분석하는 것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MBTI 의사결정 성격유형 지표
MBTI 의사결정 성격유형 지표

MBTI에서 의사결정의 성격유형은 이성형(Thinking)과 감성형(Feeling)으로 나뉜다. 이 양극단의 지표를 양자택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사람 성격의 복잡도만큼이나 기업 성격도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이성형과 감성형 중에서 어떤 경향이 더 강한가로 구분해야 한다. 아래 표는 기업의 성격 유형과 CI 디자인(시각 아이덴티티)의 특징 및 상관 관계를 정리한 가이드이다.

CI 디자인 가이드
CI 디자인 가이드

이제 2016년 포춘(Fortune)지 선정 미국 10대 기업(매출액 기준, 단위 백만 달러)의 CI 디자인을 소개한다.[footnote]이 순위만 보더라도 기능과 가격을 이야기하는 문화의 1등 기업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footnote] 미국 10대 기업의 경영 경향이 이성형과 감성형 중 어느 것에 가까운지 고민해보고 기업의 성격을 정의 내린 후 CI 디자인 가이드에 대응해보면 기업에 어울리는 CI가 무엇인지에 대한 윤곽이 잡힐 것이다. 이 글이 새로운 CI 디자인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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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월마트 $482,130

월마트
월마트는 약 20여 년간 이성형 CI를 유지해오다 2008년에 새로운 CI를 발표했다. 폰트는 더 부드러워졌고 색상은 하늘색으로 바뀌었다. 우측의 노란 불꽃은 더 스파크 The Spark로 불리는데 혁신 Innovation과 영감 Inspiration과 직원들이 가격을 낮추기 위해 불꽃 튀게 일하는 것을 상징한다.

CI가 바뀌기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이성형에서 감성형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뀐 CI에 대하여 월마트의 브랜드 디렉터, 린다 브랭클리(Linda Blakley)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더 부드럽고 친근하고 따뜻한 무언가를 원했어요.”

이 변화는 2005년 미국 카트리나 재해 때 생겨난 인식에 기인한다. 당시 미국인들은 월마트를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대표기업으로 인식했다. 맥킨지(McKinsey & Company)의 2005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마트의 기업윤리 때문에 월마트를 불매한 소비자가 8%에 이른다.

이에 대한 월마트의 CEO, 리 스콧(Lee Scott Jr.)의 대응은 환경 경영 선언이었다. 그는 에너지원의 100%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대체하고, 폐기물 배출량을 없애고,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지속가능 전략 3대 목표를 발표했다.

고객의 요구는 시대마다 변화한다. 그 시대를 주도하든지 따라가든지 기업의 성격도 변화해야 하는데 이때 CI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 정체된 CI는 변화된 기업의 성격을 인지하는 것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CI에 둥근 느낌으로 친밀감을 더하고, 노란색으로 따뜻함을 입히고, 하늘색으로 친환경 이미지를 입힘으로써 월마트가 변했다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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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엑슨모빌 $246,204

엑슨모빌

엑슨모빌은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다. 1972년 저지 스탠더드 오일이 엑슨으로 이름을 바꾼 이래 CI 디자인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1999년 엑슨이 모빌을 합병한 이후에 똑같은 컬러와 폰트로 모빌을 붙여 지금의 CI가 만들어졌다. 딱딱한 느낌의 텍스트로만 구성된 전형적인 이성형 CI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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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애플 $233,715

애플

애플이 어떤 기업인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유의 사과 심벌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천재 물리학자 뉴턴, 독사과를 먹고 죽은 컴퓨터 공학의 아버지 앨런 튜링(Alan Turing), 아담의 선악과, 사과 농장에서 일했던 잡스의 히피 시절. 애플의 아이덴티티와 맞물려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애플의 로고는 전형적인 감성형 CI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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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버크셔 해서웨이 $2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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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 헤서웨이는 세계 최고의 지주회사로 CEO는 그 유명한 워렌 버핏이다. 인수한 기업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별 특징 없는 이성형 CI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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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맥케슨 $18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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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케슨은 1833년에 설립되었고, 현재는 세계 최대의 의료 유통기업으로 성장했다.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작은 C에 밑줄을 친 이성형 CI를 거의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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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 유나이티드헬스 그룹 $157,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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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설립된 세계 최대 규모의 의료보험회사. U를 형상화한 이성형 CI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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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 CVS헬스 $153,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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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S는 Consumer Value Stores의 약자다. 1963년 건강 및 미용제품 상점으로 시작하여 1967년부터는 의약품을 판매, 미국 최대의 약국 체인으로 성장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한 M&A를 통해 사업을 확장했고, 2014년 9월 회사명을 CVS케어마크에서 CVS헬스로 변경했다.

CVS헬스는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연매출 약 2조 원에 해당하는 담배 판매 사업을 중단하고 금연캠페인을 시작했다. 사람들을 보다 나은 건강으로 인도하고 돕는다는 CVS헬스의 사명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 시겔 앤 게일(Siegel & Gale)에 새로운 CI 디자인을 맡겼다.

이성형이었던 CI는 새로운 하트 심벌로 인해 감성형에 가깝게 변화되었다. 시겔 앤 게일은 CVS헬스 하트가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보편적이고도 세련되게 대변해준다고 말한다. 새로운 CI가 발표된 달에 CVS헬스의 주식가치는 22%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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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위 제너럴 모터스 $15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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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의 대표적인 BI(Brand identity). 왼쪽부터 쉐보레, 캐딜락, 뷰익, GMC.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업체. 1908년 9월 16일, 뷰익 BUICK의 지주회사로 설립되었다. 1923년 알프레드 슬론이 CEO로 취임하면서 GM은 역사적인 전환기를 맞는다. 슬론은 방만한 브랜드 관리를 GM의 적으로 규정, 모든 지갑과 목적에 맞는 차를 목표로 GM이 보유한 브랜드를 리포지셔닝 한다.

야망 넘치는 정치가를 위한 뷰익, 품격을 아는 부자들을 위한 캐딜락(Cadillac), 보통사람들을 위한 쉐보레(CHEVROLET). 슬론의 브랜드 전략으로 1931년 GM은 포드를 누르고 업계 1위에 올라섰고 주식가치는 열 배 가까이 상승했다. GM이 보유한 BI는 GMC[footnote] General Motors Truck Company의 약자[/footnote]를 제외하고 모두 감성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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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 포드 모터스 $149,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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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설립자는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Henry Ford).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하여 자동차 양산화의 길을 개척한 헨리 포드의 이름 하나로 모든 설명이 끝난다. 타원과 부드러운 필기체로 구성된 포드의 CI는 감성형에 가깝다. 현재 CI의 원형은 1912년에 만들어졌고, 필기체로 쓰인 Ford 글자는 로고가 바뀔 때마다 점점 더 부드러워졌다. 고급 자동차 브랜드로 링컨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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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AT&T $146,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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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회사 SBC는 2005년에 AT&T를 합병했다. 일반적이라면 AT&T의 CI는 사라지고 SBC로 통합되는 것이 맞지만, 오히려 AT&T가 남았다. SBC의 브랜딩을 맡은 인터브랜드( Interbrand)가 AT&T의 브랜드 가치를 더 높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AT&T의 모체는 벨 텔레폰.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이 설립한 회사다.

AT&T 현재 CI의 원형은 1983년에 만들어졌다. 심벌은 북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전 지구가 연결되는 것을 상징한다. 당시 스타워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기에 데스 스타라는 애칭으로 불리었었다. 인터브랜드가 브랜딩을 맡은 이후로 텍스트는 좀 더 부드러운 소문자로 바뀌었고 2010년부터 텍스트가 사라져 지금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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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및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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