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성이 부족해.’
‘노력을 안 하잖아.’
‘없는 것들 보니까 온갖 사치하면서 돈 모으지도 않더라.’
가난한 이들을 욕하는 당신에게 몇 마디 한다.
1. 가난은 비싸다
의식주 모든 것이 가난한 이들에게는 훨씬 더 비싸다. 뭘 사도 한꺼번에 내면 더 싸진다. 신용이 없으면 이자율이 올라간다. 일시불 낼 여유가 되면 싸진다.
주택 소유하면 주거비가 제일 적게 들고, 전세가 그다음이고, 전월세가 그다음이고, 월세가 훨씬 비싸고, 호텔이나 모텔이 제일 비싸다.
그리고 기회비용도 더 많이 들어간다. 전세로 살던 집에서 이사할 확률이 더 높고, 호텔이나 모텔에서는 내 살림도 차릴 수가 없다. 내 살림이 있어야 요리할 수가 있다. 매식은 집에서 해 먹기보다 훨씬 비싸다.
매달 천만 원 버는 이들에 비해서 비정규직으로 월세 사는 이들에게 주거비는 무척이나 비싸다.
2. 가난은 불편하다
자가용 있으면 대중교통보다 편하다. 돈 있어서 택시 타면 버스보다 편하고 전철보다 편하다. 좋은 회사는 통근버스를 돌릴 수 있고, 직원 기숙사도 지원할 수 있으나 보통은 내 돈 내고 출근해야 한다.
가난은 비싸고, 불편하다. 같은 대학교 같은 과 다니면서 대학교 바로 옆에 원룸을 잡아줄 수 있는 부모를 가진 친구는 훨씬 편하게 학교에 다닌다. 멀리서 통학하는 친구는 하루에 두 시간만 더 잃는 게 아니라 통학 시간 신경 쓰고, 친구들과 늦게 어울리다가도 막차 시간 고려해야 하는 여유를 좀먹힌다. 통학의 피곤도 일상에 누적된다. 학교 가까이 사는 친구는 할 수 있는 과외 알바도 할 수가 없다.
3. 가난은 자존심 상한다
당장 당신도 상사에게 깨지고 나면 몇 시간 동안이라도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줄 담배를 피우거나 술 한잔 하면서 풀어야 할지도 모른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그냥 닥치고 참아야 하는가? 술 한 잔은 못할지 몰라도 그 스무 살 알바 아가씨는 약간의 사치인 디저트 한 조각으로 풀 수 있다. 백만 원 월급 직장인 여성은 립스틱 하나 살 수 있다. 택배 아저씨는 일 끝나고 치맥을 땡길 수도 있다.
그들도 자신의 수입에는 사치인 거 안다. 당신이 당신 수입으로는 조금 사치지만, 고급 코스 요리를 질렀던 것처럼, 그들도 자신의 여유 내에서 사치스러운 무언가를 하면서 기분을 푼다. 그걸 보면서 혀를 찰 자격이 당신에겐 없다. 그렇다면 억대 연봉 받는 사람은 당신보고 ‘으이그 3~4천 연봉 벌면서 저렇게 택시도 가끔 타고 커피도 마시고 친구도 만나고 하니 평생 돈을 못 벌지’ 할 수 있다.
자존심 상하면 일에 영향이 간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은 자존심 상할 일이 훨씬 더 많다. 푸는 방법도 제한 되어 있다. 자존심 상한다고 해서 오기로 일을 세 배 더 열심히 하는 것은 만화에서나 나오는 설정이다. 그런 오기도 평소에 쌓아둔 심적인 맷집, 정신적인 건강이 필요하다.
당신은 직장 상사에게 혼날 때마다 ‘앞으로 더 잘해서 내 실력을 증명하겠어!’라는 다짐이 마구마구 솟아나는가? 하루에 두세 번 깨지면? 모든 사회가 당신을 비난하면? 그러면 전투력이 마구 상승하는가?
4. 가난은 자주 아프게 한다
스트레스받으면 자주 아프다. 잠이 모자라면 자주 아프다. 평소에 몸 관리 안 하고 불규칙적으로 먹고 싸구려 음식 매식하면 아프기 쉽다. 제때 제때 검진 안 받고 몸 안 좋을 때 안 쉬어주면 더 아프다. 그래서 가난하면 자주 아프다. 몸살감기 걸리면 당신도 출근하기 힘들듯이, 이들도 아프면 일하기 싫다.
5. 가난한 사람 편은 없다
세상은 강자를 좋아한다. 별거 없어 보이는 이에게 호의를 베풀고 떠받들어 주는 사회는 없다. 푼돈이라도 쥐어짜려고 접대용 미소를 짓는 이들도 돈 없는 사람은 무시한다.
같이 가난한 이들도 가난한 이들 편에 서지 않는다. 연대하는 순간 자신에게 가난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나는 그저 운이 없고, 조금만 잘 풀리면 잘 될 것 같다고 자기 합리화할 수 있다.
나보다 더 한심하게 돈 쓰는 이에게 손가락질하고, 나보다 좀 더 노력 안 하는 것 같은 이를 비난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며 나의 미래에 대하여 약간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자기편은 없다. 무려 자기 자신조차도 가난한 자신을 혐오하며 언젠가 잘 살 나를 꿈꾼다.
6. 가난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
네가 좋아하는 걸 찾아서 열정 페이로 경력 쌓으라고? 그렇게 천천히 네 미래를 만들어 가라고?
인턴 제도는 돈을 안 벌고도 직장인으로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 중산층 아이들에게 가능한 제도다. 가정을 꾸린 성인 중에서 6개월에서 1년 동안 생활비 까먹어 가면서 기약 없는 인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있는가? 나이 차별을 꼭 하지 않아도, 재산 차별을 하지 않아도, 이렇게 가난은 꿈이고 뭐고 짓밟아버린다.
가난한 사람도 사람이다
가난한 사람도 열 받으면 작은 사치라도 하면서 마음 풀고 싶고, 싫은 소리 들으면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출근해야 하면 피곤하긴 매한가지고, 자꾸 실패를 경험하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점점 없어진다. 일상이 피곤한 당신과 똑같은 사람들이다.
단지 좀 더 아플 일, 불편한 일, 돈 드는 일, 자존심 상할 일이 많고, 편들어 주는 사람 없고, 기회가 적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