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1980년대를 ‘양김 시대’라고 부르지만, 알다시피 1987년의 대통령 선거는 김영삼도, 김대중도 아닌 노태우의 승리로 돌아갔다.

‘야당 후보 단일화 = 승리’ 사고방식의 탄생 배경 

물론 엄청난 선거 부정이 있었고, 언론은 민정당의 노태우를 대놓고 혹은 교묘한 방법으로 지지했다.[footnote]예를 들어, 당시만 해도 대선후보들은 여의도에서 대규모 집회를 여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노태우 후보의 집회 사진은 양김보다 높은 곳에서 찍어서 더 많은 사람이 모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식으로 노태우 후보를 더 돋보이게 했다.[/footnote]

1987년 12월 성남공설운동장에서 유세하는 노태우 후보 모습 (출처: 정책브리핑)http://www.korea.kr/special/policyFocusView.do?newsId=148620166&pkgId=49500196
1987년 12월 성남공설운동장에서 유세하는 노태우 후보 모습 (출처: 정책브리핑)

그해 12월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는 36.6%의 득표율로 각각 28%, 27%를 얻은 김영삼,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종필 후보는 8.1%였다.

‘제발 두 김씨가 후보를 단일화해서 군정을 종식시켰으면’ 했던 국민의 간절한 마음은 그렇게 물거품이 됐다. 대규모 선거부정이 없이 노태우가 36%를 넘는 득표를 했을지는 의문이지만, 만약 양김이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 산술적으로 55%의 득표를 했다면 1987년 수준의 선거 부정도 노태우를 당선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진부해진 ‘야당후보 단일화=승리’라는 사고방식은 그런 탄생 배경을 가지고 있다.

36% 득표율 당선은 정당할까? 

그런데 만약 노태우가 선거부정 없이 36.6%의 표를 얻었고, 양김이 28%, 27%를 얻었다면, 그래도 노태우의 당선은 정당할까? ‘다수결 원칙인데 당연한 것 아니냐’는 대답이 나올 수 있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 국민의 55%가 군정을 끝내기를 원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37%가 안 되는 지지를 받는 후보가 당선되는 선거방식이 민의를 대변하는 올바른 선거방식일까?

투표 선거

당연히 여기에도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김영삼과 김대중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노태우 지지자와 분리해서 같은 의제(‘군정 종식’)로 묶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여기에 속한다.

당시 손에 땀을 쥐며 양김의 합의를 기다리던 국민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하겠지만, 그럴만한 근거를 내어놓기 전에 함부로 주장할 수는 없다. 노태우와 김영삼이 영남을 나눠 가졌으니 그걸 기준으로 두 후보를 묶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다수 vs. 과반수 

하지만 양김을 묶어 55%의 국민이 36.6%를 얻은 노태우를 반대했기 때문에 노태우가 당선되는 건 옳지 않다는 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Trump vs. Anti-Trump) 미국 공화당 경선을 이야기하면서 뉴욕타임스가 바로 그런 선거방식을 언급하는 기사를 실었다.

그 핵심에는 과반수(majority)와 다수(plurality)의 문제가 존재한다. 이 개념에 대한 정리부터 해보자. 우리나라 사전에서는 ‘majority’ 혹은 ‘majority vote’를 다수 혹은 다수결로 번역하거나 과반수와 다수를 구별하지 않고 섞어 사용하지만, 이 둘은 제도적으로 전혀 다르다.

선거 투표

엄밀하게 말해 투표에서 ‘majority’는 ‘과반수’를 의미한다. 즉, 한 명의 후보나 하나의 안건이 50%를 넘어 득표한 때 ‘과반(수)’이라고 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50%가 되지 않아도 가장 많은 득표를 한 때에도 ‘majority’를 쓰지만, 선거에 한정해서 쓸 때는 이를 구별해 ‘다수'(plurality)라고 쓴다.[footnote]relative majority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footnote]

특히 후보가 2명 이상일 때, 그리고 득표율이 50%를 넘지 못하고 당선하는 때를 특히 과반(majority)과 구별해서 다수결 투표(plurality vote)라고 부른다. 이렇게 다수(plurality)와 과반수(majority)는 다르다.

트럼프의 경선 승리는 정당한가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현재까지 23개 주 경선에서 승리했지만, 그중 17개 주에서는 다른 후보가 트럼프와 1:1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점, 그리고 그가 50% 미만의 득표를 했다는 점에서 트럼프가 승자가 되어야 할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footnote]그런 상황은 31%의 득표율로 제1당이 된 인도의 바라티야 자나타당,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이 집권한 것도 마찬가지다. 둘 다 과반이 안되는 지지만을 받았지만, 다수결 원칙에 따른 것이다.[/footnote]

문제를 요약하면 이렇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후보가 과반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과반이 넘는 국민들이 반대한다면 적어도 그 후보는 당선되지 않아야 옳다는 것.

트럼프

가령, 트럼프가 40%, 크루즈가 35%, 케이식이 25%의 지지를 받게 트럼프가 경선에서 승리하지만, 트럼프를 싫어하는 공화당 유권자 60%의 의견에 반한다는 점에서 노태우에 반대하는 55%의 유권자[footnote]김종필을 포함하면 63%이지만, 김종필은 노태우와 마찬가지로 군사정권의 연장선에 있으니[/footnote]의 의견과 반대의 후보가 뽑힌 1987년의 대선과 같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Condorcet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러한 주장의 수학적 근거를 제시한 사람이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가이자 수학자였던 니콜라 드 콩도르세(Nicolas de Condorcet, 1743년~1794년, 초상화)였다. 콩도르세 득표율 계산방식의 핵심은 단순히 제일 많은 득표율을 기록한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제일 많은 지지를 받는 사람이 당선되도록 하는 것이다.

콩드르세의 계산법을 적용하면? 

콩도르세의 방식은 유권자가 한 사람의 후보를 찍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후보들의 순서를 적는 것이다. 아래의 표를 보자. 맨 왼쪽은 다수결(plurality)에 기반한 현재의 승자 선택 방식이다. 이 경우 간단하게 트럼프의 승리다.

ⓒ 뉴욕타임스
ⓒ 뉴욕타임스

하지만 ‘진정한 과반수(majority)를 찾는’ 콩도르세의 방식대로 순위를 매겨서 가령 중앙에 있는 그래프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하자.[footnote](실제로도 크루즈와 케이식의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가장 뽑기 싫어하기 때문에 중앙에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footnote]

가운데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하자. 트럼프는 1위를 했지만, 40%의 득표에 머물러 과반이 안 되는데, 60%의 사람들이 트럼프보다 크루즈를 선호하고, 60%의 사람들이 트럼프보다 케이식을 선호한다. 1:1 대결에서 크루즈와 케이식은 모두 트럼프를 누르는데, 그 둘 사이의 대결에서는 케이식이 65%로 크루즈를 누르기 때문에 케이식이 승리하게 된다.

DonkeyHotey, "John Kasich - Crimes Against Ohio Voters", CC BY https://flic.kr/p/kvdqFN
DonkeyHotey, “John Kasich – Crimes Against Ohio Voters”, CC BY

하지만 현재 방식은 다수를 얻은 후보를 뽑게 돼 있다. 그래서 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찾아내지 못한다. 뉴욕타임스는 과반수와 다수를 구분해야 하고, 진정으로 ‘다수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미국 경선은 물론 전 세계 정치가 나아진다고 주장한다.

물론 개별적으로는 가장 적은 표를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복잡한 방식과 이유를 모든 유권자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footnote]계몽주의와 이성주의를 대표하는 이상을 만들어냈다는 콩도르세가 결국 혁명 세력으로부터 피해 다니다가 잡혀 감옥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footnote]

피할 수 없는 트럼프… 그럼 당 분열이라도 막자  

하지만 트럼프의 파워는 그런 논의조차 무색하게 하고 있다.

앞선 글에서도 설명했듯, 트럼프를 꺾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

  1. 우선 그가 전당대회 전까지 1,237명의 대의원을 확보하는 걸 막아서 중재전당대회로 가야 한다.
  2. 그리고 중재전당대회에서 자유표로 풀려나오는 대의원을 트럼프로부터 빼앗아와야 한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에 문제가 생겼다. 우선 트럼프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하루 앞으로 다가온 인디애나 경선의 승리가 필수적이다. 인디애나에서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트럼프를 저지해서 중재전당대회로 가기 위한 노력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어디를 봐도 트럼프? 진퇴양난에 빠진 反트럼프 진영.
어디를 봐도 트럼프? 진퇴양난에 빠진 反트럼프 진영.

더 큰 문제는 설령 중재전당대회로 간다고 해도 2위인 크루즈가 승리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상황에서 자유표가 될 대의원들은 크루즈, 케이식과 트럼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크루즈, 케이식 모두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선호하는 후보가 아니다. 특히 2위인 크루즈에 대한 비호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대의원들은 “민의(트럼프의 인기)를 대변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말한다.

DonkeyHotey, CC BY
공화당원에게 ‘비호감’으로 찍힌 테드 크루즈 (출처: DonkeyHotey, CC BY)

대개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들이 남은 후보를 지지하고, 자신이 모은 대의원에게 그 후보를 지지하라고 연설하는데, 오래 버티던 마르코 루비오가 아직도 크루즈에 대한 지지를 밝히지 않고 있는 것도 트럼프가 아무리 미워도 크루즈를 지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번에 힐러리가 당선되면 4년 후에 다시 대선판에 뛰어들 텐데 그때 크루즈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둘이 정면대결을 할 때 크루즈는 ‘당신은 그때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공화당은 트럼프를 피할 수 없다면, 당이 쪼개지는 사태라도 막아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돌아서고 있다. 물론 아직도 오리무중이지만 말이다.

관련 글

2 댓글

  1. 박상현님 좋은글 잘 읽었고, 국민의 뜻에 비례해서 대표를 구성하는 비례대표제와, 정치인도 의회해산과 총선으로 책임을 지는 의회제를 원합니다.

  2. 기자님 글 항상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업데이트 자주 부탁드려요. 이제 공화당도 민주당도 어느정도 윤곽이 잡혔는데 그것에 대한것도 좋은 주제가 될거 같아요.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