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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에세이: 나는 널 내쫓았건만 넌 나를…

조우성 법률 에세이

요즘 직장마다 명예퇴직, 권고사직 바람이 거세다. 살아남는 자와 떠나는 자, 그리고 내몰리는 자들이 벌이는 운명의 쌍곡선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드라마가 숨어있을까.

어수선한 구조조정 뉴스를 접하다 보니 김 부장의 얼굴이 떠오른다.

K사는 직원 200명 규모의 자동차 부품 제조 중소기업이다. 창업주인 대표이사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자 30대 후반의 아들이 경영권을 넘겨받아 경영을 해오고 있었다. 김 부장은 K사의 인사부장. K사에서만 15년째 근무 중이었다.

어느 날 창업주 아들인 최 대표가 김 부장을 불렀다.

“부장님. 긴히 의논드릴 일이 있습니다. 좀 민감한 얘긴데…”

최 대표의 말은 이랬다. 창업주가 쓰러진 이후 K사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만났다. 아들인 최 대표는 회사의 생존을 위해 여러모로 알아보다 외부로부터 2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할 기회가 생겼다.

“우리 같은 제조업체가 외부 투자 유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국 유학할 때 알게 된 선배가 사모펀드 쪽에 있는데, 우리 회사에 투자하고 대신 몇 가지 사업모델을 붙이면 회사가 제대로 점프 업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얘기가 많이 진척되었습니다.”

단, 현재 K사 직원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 지적사항이었다.

“50명을 줄이라는 것이 사모펀드 요구사항입니다. 불필요한 인건비를 줄이라는 거죠. 사실 기존 직원들은 사모펀드가 생각하는 새로운 사업모델에도 맞지 않고요.”

최 대표는 명단을 건넸다.

“그동안 비밀리에 외부 컨설팅을 의뢰했습니다. 여기 이 사람들이 정리대상입니다. 50명입니다.”

김 부장은 나를 방문해서 직원 처리 방식에 대해 의논을 했다.

당시 K사는 급박한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고 보기 힘들었으므로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결국, 직원들의 ‘자발적인’ 의사에 근거한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 형식을 취해야 했다.

자발적인 퇴사형식을 갖추지 못하면 회사는 직원들을 부당해고한 것이 되는데, 이 경우는 법적인 효력을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회사는 상당한 제재를 당하게 된다. 그러면 투자는 물 건너가게 된다.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넘게 같이 일했던 직원들에게 ‘여기 합의서 작성해주고 이제 그만 나가달라.’라는 설득을 해야 하는 김 부장의 입장이 참 딱했다.

투자자는 위로금 명목으로 10억 원을 준비했다. 50명에게 1인당 2,000만 원 꼴. 김 부장은 인사부장으로서 총대를 메고 이 정도 선에서 잡음 없이 합의서에 도장을 받아야만 한다. 김 부장은 병석에 있는 노모와 대학에 다니는 두 딸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이 러시안룰렛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살아야 한다.’

최 대표는 매일 김 부장에게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오늘 합의서 몇 장 받았나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투자자가 마냥 기다려주진 않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부장은 역류성 식도염에 시달렸다. 시도 때도 없이 신물이 올라와 헛구역질을 해댔다. 악몽으로 잠도 설쳤다. 회사 내에 금방 소문이 돌았다. 김 부장이 개별 면담을 신청한 직원들의 반응은 제각각. 화를 내는 사람, 체념하는 사람, 어떻게든 위로금을 좀 더 줄 수 없느냐고 사정하는 사람.

김 부장은 매일 저녁 대상자들과 술자리를 하며 회사 사정을 설명하고 합의서를 받아냈다. 새벽에 집에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김 부장은 개발 2팀 4명 전원을 정리해야 하는 대목에서 특히 마음이 아팠다. 개발 2팀 팀장은 박 차장. 김 부장의 고등학교 후배.

5년 전, 창업주의 특명을 받고 A사에서 잘 나가는 엔지니어인 박 차장을 스카우트한 것도 김 부장이다. 개발 2팀 팀원들은 김 부장에게 회사의 처사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다. 박 차장은 팀원들을 말렸다.

“박 차장. 정말 면목없네.”

“부장님. 저희 쪽에서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유망하다는 것을 부장님도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이대로 엎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대표님은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계획이라….”

그러던 어느 날 김 부장이 쓰러졌다. 회사에서 큰 대자로 뻗는 바람에 모든 사람이 다 목격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심근경색과 급성 위궤양이 겹친 것.

병원에서는 며칠 입원하라고 했지만, 그럴 사정이 못 된다며 김 부장은 약 처방만 받고 다시 회사로 나왔다. 김 부장이 한번 쓰러지고 나자 권고사직 대상자로부터 합의서 받는 일은 오히려 수월하게 진행됐다. 다들 김 부장의 처지를 이해하는 눈치였다. 김 부장도 그런 상황을 십분 활용했다. 그렇게라도 빨리 상황을 종결짓고 싶었다.

개발 2팀 팀원 중에는 여전히 강경하게 퇴사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박 차장이 그들을 설득했다. 김 부장은 박 차장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부장님, 팀원들 거의 설득했습니다. 이것만 하나 부탁드릴게요.”

박 차장의 부탁은, 현재 개발 2팀에서 개발 중인 프로젝트 건은, 퇴사한 이후에도 박 차장이 계속 진행할 수 있으며, 회사는 권리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회사가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것만 준비해주면 팀원들을 데리고 나가 따로 창업을 하든지 해서 한 번 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부장은 최 대표의 허락을 받아 박 차장이 원하는 확인서를 써주었다.

“부장님, 건강 챙기십시오. 심근경색 그거 정말 위험한 겁니다.”

“응, 스트레스가 주범이라는데, 이 일이 정리되면 낫겠지.”

박 차장은 개발 2팀 팀원들과 함께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퇴사를 했다.

김 부장은 1달 반 만에 대상자 50명 중 45명에 대한 권고사직·희망퇴직 절차를 완료했다. 그 와중에 대상자가 아닌 데도 자발적으로 퇴사하겠다는 직원이 6명이 나와 최 대표의 구조조정 목표는 달성됐다. 곧이어 200억 원 신규투자가 진행됐다.

김 부장은 가슴 한편이 아렸지만 그래도 회사를 위해 좋은 일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 신규 투자 후 기존 이사 3명이 사임하고 주주총회를 통해 신임이사 3명이 선임됐다. 모두 사모펀드 쪽 사람이었다.

놀랍게도 대표이사도 변경되었다. 최 대표는 대주주 지위만 유지하되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김 부장은 이러한 상황 변화에 다소 어리둥절해 했다. 새롭게 선임된 정 대표는 사모펀드 쪽 이사 중 한 명이다.

정 대표는 대표이사로 취임하자마자 인사를 단행했다. 김 부장은 지방 영업팀으로 발령이 났다. K사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인사 쪽 업무만 맡았던 김 부장에게 영업을 하라는 것은 그만 나가달라는 말과 같았다. 새롭게 인사부장이 된 사람은 정 대표가 데리고 온 사람.

해고

이런 상황을 설명한 김 부장에게 나는 부당한 보직변경(전보; 轉補)도 법적으로 다퉈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 부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제가 그동안 내보냈던 사람이 몇 명인데, 무슨 낯짝으로 저 혼자 살아보겠다고 회사를 상대로 악다구니를 펴겠습니까. 자업자득인 것 같습니다.”

권고사직 과정에서 얼마나 김 부장이 고생했는지 잘 아는 나로서는 회사의 처사가 참 야속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김 부장은 마음을 굳혔다. 사표를 내고 나서 내게 인사를 한 후 돌아서는 김 부장의 뒷모습에서 진한 허탈감과 아쉬움이 느껴졌다.

김 부장을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약 2년 반쯤 뒤. 잠깐 찾아오겠다고 전화로 먼저 연락을 한 후 활기찬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김 부장. 표정이 밝아 보기 좋았다. 그는 명함을 내밀었다.

‘T엔지니어링 인사/총무부장 김 OO’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김 부장은 K사 퇴사 후 직장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40대 후반 나이로 다시 취직하기란 만만치 않았다.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수입이 없어지자 급한 대로 대리운전과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그러기를 2년여. 그러던 어느 날 김 부장은 후배 박 차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K사를 나간 박 차장은 개발 2팀 팀원들과 조그만 회사를 차리고 개발 중이던 프로젝트를 완료해서 시제품을 만들었다. 그 시제품을 들고 몇 군데 회사에 다니면서 설명을 했고, 중견기업 한 곳으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아냈으며 국내 판매는 물론 수출까지 하게 된 것이다. 불과 2년 만에 큰 성과를 거둔 박 차장. 아니 그는 이제 박 대표가 되어 있었다.

갑자기 회사가 커지자 인사 업무를 담당할 사람이 필요했다. 모두 엔지니어 출신들이다 보니 인사 쪽으로는 펑크가 나기 시작했던 것.

“박 대표가 그러더군요. 회사를 위해 헌신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쓰러져 가면서까지 회사를 위해 일하던 제 모습이 떠올랐다나 뭐라나…. 미련한 그 모습을 오히려 좋게 봤더라는 겁니다. 참 이런 일도 있습디다.”

김 부장은 T엔지니어링의 인사/총무 업무를 총괄하게 되었고, 이번에 외국 회사와 진행하는 공급계약서 검토와 관련된 자문을 요청하고자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우리 박 대표… 제 고등학교 후배지만 정말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입니다. 최선을 다해 보필해서 큰일 하도록 도울 겁니다. 변호사님도 많이 도와주세요.”

김 부장이야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상대편이었던 박 차장으로서는 그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으랴. 하지만 김 부장의 어쩔 수 없는 처지를 이해해주고 다시 이렇게 인연을 만들어 준 박 차장, 아니 박 대표가 참으로 고마웠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것이 세상살이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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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초대필자. 변호사.

기업분쟁연구소 소장, 20년차 변호사로서 분쟁의 사전예방에 관한 컨설팅과 교육을 담당합니다. 변호사 업무 외에 법 에세이, 협상, 인문학 관련 컬럼 작성도 하고 있습니다.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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