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제게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의 2010년 12월 인터넷판은 매우 흥미진진했습니다.
우리의 사고는 언어에 의해 결정되는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한다”(The language we speak shapes how we think)라는 명제를 둘러싸고 스탠포드대 심리학과의 레라 보로디츠스키(Lera Boroditsky)와 펜실베니아대 언어학과의 마크 리버만(Mark Liberman)이 열띤 논쟁이 벌였기 때문이었죠. 약 열흘간 진행된 논쟁은 독자투표로 승자를 정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과학적 명제의 진위를 여론조사로 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저명한 두 교수의 논거가 대중에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이 있는지를 확인할 좋은 기회였습니다.
논쟁의 사회자로 나선 로버트 레인 그린(Robert Lane Greene)이 밝히고 있듯 언어가 사고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는 가설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1930년대 활발한 활동을 했던 벤자민 리 워프(Benjamin Lee Whorf)였습니다. 그는 호피(Hopi)어에 일, 월 등의 단위를 나타내는 단어가 없으므로 호피족이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은 일, 월 등의 시간 단위를 표현하는 단어들을 사용하는 서구인들과 판이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워프의 주장을 가감 없이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영향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 워프의 호피어에 대한 지식이 불완전했음이 밝혀지면서 그가 제시한 이른바 ‘언어결정론’의 신뢰성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아울러 1960년대 이후 촘스키 언어학의 발흥으로 언어 연구의 중심에 언어구조 즉 통사(syntax)가 놓이면서 사고와 언어의 관계라는 주제는 언어학의 변방으로 밀려나게 되었죠.
일상 속의 워프 가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워프의 주장이 우리의 의식 밖으로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리버만은 다음과 같은 말에서 언어결정론의 강력한 흔적을 찾아냅니다.
“그 나라 말에는 A라는 표현이 없잖아. 그러니까 A에 해당하는 개념도 없는 거지.”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영어에는 ‘정’에 해당하는 말이 없잖아. 그러니까 영어 원어민들이 ‘정’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가 있겠어?”라는 말 이면에는 ‘정’이라는 단어에 딱 맞는 단어가 없는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정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가정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리버만에 따르면 이런 생각은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보로디츠스키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데요. 비록 워프 가설이 제안하듯 언어가 사고를 결정(determine)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지속해서 나타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왼쪽’이나 ‘오른쪽’ 같은 단어가 없이 동서남북과 같은 방위를 통해 사물의 위치를 표현하는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건물 밖이건 안이건 동서남북 방향을 정확히 인지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보통 앞/뒤/좌/우로 위치나 방향을 표현하는 언어 사용자에게는 없는 능력이죠. 우리는 이 현상에서 언어의 특성 즉, 언제든 동서남북으로 위치를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 화자의 사고패턴에 영향을 주어서 어디서든 방위를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지 논쟁의 투표는 보로디츠스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투표 참가자의 약 3/4 정도가 “언어사용 방식이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명제에 동의한 것입니다. 독자 중 일부는 댓글로 다언어 사용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논쟁을 승리로 이끈 레라 보로디츠스키는 사고에 대한 언어의 영향에 대해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워프 가설 이후로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한 연구와 논쟁은 언어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계속됐죠.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그의 강연 “How Language Shapes Thought”에서 다양한 지식과 통찰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언어와 사고의 관계: 몇 가지 증거들
보로디츠스키의 강연 내용 중 흥미로운 대목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하나. 문법적인 성을 가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특정 단어를 특정한 성별과 연관 지어 생각할까요? 프랑스어와 독일어, 러시아어와 같이 명사에 문법적인 성이 존재하는 언어를 떠올려 볼 수 있겠죠.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한 주의 요일들을 묘사해보라고 했을 때, 그 요일의 문법적 성과 관련된 형용사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문법적으로 여성인 요일은 실제 여성과 관련된 형용사를, 반대로 남성인 요일은 실제 남성과 관련된 형용사를 사용해 표현하는 경향이 컸다는 것이죠.
둘. 이코노미스트 논쟁에서도 언급된 예인데요, “Kuuk Thaayorre”라는 언어에는 좌/우라는 개념이 없고 모든 방향이 동/서/남/북으로 표현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시계를 깜빡 잊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면, “아, 파티에서 칵테일 바 동남쪽에 있는 테이블에다가 놓고 온 거 같아.”라고 말한다는 것이죠. 사람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그 사람은 나무의 서남쪽에 서 있었어.” 등과 같이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런 언어 습관 때문에 Kuuk Thaayorre어 화자는 건물의 밖은 물론 안에서도 동서남북을 잘 판단해낼 수 있습니다.
셋. 영어 원어민 화자에게 시간 순서대로 그림 몇 장을 배열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배열합니다. 히브리어와 아랍어 원어민 화자들은 반대로 대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배열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변의 강력한 후보는 영어와 히브리어 혹은 아랍어의 쓰기의 방향 차이입니다. 영어에서는 좌에서 우로 글을 쓰지만, 아랍어와 히브리어에서는 반대라는 말입니다. 기록하는 방향의 차이가 시간별로 그림을 배열하는 과업 수행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비고츠키: 언어와 사고의 관계는 변증법적이며 유기적이다
자 그럼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언어가 사고의 방식을 형성하고 결정짓는 것일까요? 아니면 언어는 그저 사고를 표현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일까요? 위의 예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말과 사고의 관계는 참으로 오묘해서 간단히 정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러시아의 발달심리학자인 레프 세메노비치 비고츠키(Lev Semenovich Vygotsky) 또한 사고와 언어의 관계라는 주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를 따르면 언어와 사고의 출발점은 다르지만, 아동이 발달하면서 변증법적으로 통합되어 떼어내기 불가능해집니다. 말과 생각이 일방향의 관계가 아니라 유기적이며 역동적인 상호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한 것이죠.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보로디츠스키와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살펴보면서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해 탐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 본 글이 생각나네요. 처녀란 말은 원래 Virgin 그러니까 여성의 모든 뜻을 대표하는 말(잉태, 풍요, 풍만, 부드러움, 포옹, 미래, 대지, 축복 등등) 이었는데 이것이 결혼안 한 여자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의미가 축소되었더니, 처녀항해나 처녀작이 성차별적인 단어가 되버렸다는 글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단어의 일부분의 뜻만을 가지고 사고하다보면 다른 사람의 마음 혹은 철학을 편협하게 보기 쉽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시(詩)는 바로 이런 좁아진 말을 넓혀주는 길이기도 하지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는 다시 말을 지배합니다. 집에 오는 모든 어른 남자를 아빠라 칭하던 아기도 보았고, 빨갱이라고 몰아세워 사람을 내치는 집단도 보았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