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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당파와 이익에 흔들리지는 않는 솔직담백한 인간의 목소리가 귀한 때입니다. 병들고 비겁한 사회를 향한 거침없는 일갈, 최강욱의 ‘쓴소리’입니다. (편집자)[/box]

가끔 대중 강연을 할 기회가 있다. 부패나 인권 문제에 대하여 말하다, 꼭 청중들께 여쭤 본다.

출세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대체 어느 정도까지 가면 출세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건가요?

우리 어릴 적엔 ‘출세해야 한다’는 말이 어른들의 진심을 담은, 아이들에게 늘 건네는, 덕담이었다. ‘공부 잘해야 출세한다’, ‘서울대 가야 출세한다’, ‘고시 붙으면 출세한다’…… 근데 막상 그 과정을 거쳐 일정한 직업을 가지면, 다시 출세의 일념으로 무리하기 시작한다. 양심보다는 조직 논리를, 소신보다는 조직 요구를 앞세워 순응하는 게 출세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간주된다.

그렇게 해서 대기업 임원이 되고, 군 장성이 되고, 고위공무원이 되고, 검사장이 되고,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면 일단 조직 안에선 큰 고비를 넘어 출세한 걸로 쳐주나 싶다. 근데 그게 또 끝이 아니다, 사장이 되고 별 넷이 되고 장관이 되고 대법관이 되고 총장이 되기 위해 또다시 온갖 일을 마다치 않고, 온갖 사람을 만나 고개를 숙인다.

근데 장관이 되고 대법관이 되고 총장이 되어도 또 다른 자리에 가거나 하다못해 초선 국회의원이 되려고 고생들을 한다. 아무리 높은 자리라도 결국, 출세의 끝이라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 대체 출세란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 출세란 무엇인가?

내 경험에 비추어 청중들이 수긍하시는 답을 드린다. 이렇게 답을 드리면, 지금까지 경험해 본 바로는, 대개 씁쓸한 표정으로 수긍하시는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 출세라는 것은 자기가 받는 봉급엔 한 푼도 손을 대지 않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걸 말합니다. 즉, 운전기사 딸린 고급 승용차와 한도액 높은 법인카드, 독립된 사무실과 비서가 필수 요건입니다. 결국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도 호텔이나 고급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공금으로 선물을 돌리거나 생색을 내면서 자신의 이름보다는 지위로 자신을 표시하게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욕망에 끝이 없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한껏 드높은 인격과 학식을 자랑하는 이들도 출세에 목말라 하고, 그 후에 유사하게 보이는 특징들을 보면 이걸 꼭 보편적 본능이라 쳐주기엔 정도가 너무 심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면서 사람들은 '출세'라 불리는 욕망의 구멍에 채우려고 한다. (사진: ckaroli, CC BY SA)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면서 사람들은 ‘출세’라 불리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구멍을 채우려고 한다. (사진: ckaroli, CC BY SA)

높고 중요한 자리에 있으면 촌각을 다투어 사람들을 만나고, 엄청난 책임에 늘 마음이 무겁다고들 한다. 자신의 결정 하나에 수많은 이들의 생사가 좌우될 수도 있어 많이 힘들다고 푸념하는 것도 흔히 보는 일이다. 처음엔 진짜 그럴 거로 생각했다. 그만큼 올라갔는데 더 무슨 욕심이 있겠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런 자리에 가보지 못한 루저의 한가한 추측일 뿐이란 걸 깨달았다.

받은 은혜 갚기 위해 헌신하겠다?

그렇게 힘든 자리에서 고생했다는 사람들이 막상 떠날 때가 되면 대부분 안절부절못하며 다음 자리를 찾아 온갖 구차한 짓을 마다치 않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정작 자신이 제대로 대접받으며 자리를 누린 기간은 채 2년 정도가 고작이고, 길어야 5년뿐이라며 많이 아쉬워한다.

그러면서 늘 내세우는 게 그간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다시 헌신하려는 거란다. 그러면서 자기보다 열살 이상 어린 사람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 너무도 비굴한 웃음을 흘리는 게 예사다.

정작 자신의 지시에 조목조목 의견을 붙이거나, 앞에서 굽실거리지 않는 사람은 “젊은 놈이 왜 저 모양이냐”고 호통쳤으면서 스스로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출세라는 불꽃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들

안타깝고 불쌍한 일이다. 그 자리 차지하느라 자신의 삶과 인격이 파괴되고 말았으니 스스로 내세울 자아가 없다. 자신을 상징하는 건 고아한 인격이나 고매한 학식이 아니라 그저 명함에 새길 자리나 돈일 뿐이다. 막상 그 자리를 떠나게 되면 아무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거라는 불안이, 어떤 공포심보다도 크게 그이를 압도한다.

그러니 이제 그만 은퇴해서 손주들 재롱 즐기며 그간 못 느낀 가족과의 행복이나 한적한 여행을 해야 할 시간에 자신에게 자리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길거리를 쏘다닌다.

아니, 함께하는 행복을 느끼려 해도 이미 자기 주위엔 푸근한 아내도 살가운 자식도 없다. 이미 그 자리를 찾아 올라가는 동안에 그들에게 베풀어야 할 사랑과 배려를 소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욱 인생은 고달프고, 덧없이 허망하다.

딱한 일이다. 선거 때마다 또다시 불나방들을 만난다. 출세를 향한 일념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사람’의 품격에서 ‘자리’의 품계만을 따지는 속물이 되어버린 한 때의 ‘인재’들을 바라보며 그저 안타까운 한숨만 토할 수밖에…… 물론 그분들은 나를 바라보며 “출세도 못 한 놈이 얻다 대고……”라 말씀하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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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아마도 그들은 이렇게 말하겠지여.

    ” 인생 두 번 살 것도 아니고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는 포부로 도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것을 탓하는 자들이 오히려 겁쟁이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 인격파괴? 자아상실? 말마따나 한 5년쯤 그런다고 본질적인 내가 변하진 않는다. 인간관계로 득세하는 것도 삶의 지혜이자 능력이다. 저 잘난맛에 사는 것은 나를 비판하는 자들이나 나나 똑같은거 아닌가? ”

    출세하겠다는 의지를 비판할 수 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것은 출세의 룰(Rule)이겠지여. 대체 어디까지가 정공이고 반칙일까 그걸 확실히 하는 사회룰이 절실하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그런 룰이 사라지고 있으니 저런식의 출세형 인간들이 늘어나는 것이겠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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