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범진 칼럼] CPTPP 가입 유보와 농지조사 후속 대책은 의미 있는 정부 결정이다. 하지만 농협법 개정에서도 ‘농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취합해야 하는 까다로운 과제가 남았다. (⏳3분)
지난 10월 8일, 이재명 대통령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을 올해 안에 추진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통상 협정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농어업인 의견을 수렴하고, 농어업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취지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다.
이에 앞서 같은 날 오전에는 농정 당국이 농지 전수조사 후속 대책을 발표했다. 관행적 임대차나 휴경 등 투기 목적이 아닌 일반적 농지법 위반 사례에 대해서는 처분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두 사안 모두 농업계 우려를 일정 부분 반영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농지조사 후속 대책, 평가할 만하지만.
다만 일련의 과정을 통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농업계 내부에도 영농 여건과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일부 목소리가 농업계 전체 입장으로 일반화하거나 특정 의견에 치우쳐 농정 방향을 결정한다면, 다른 농업인들의 목소리는 논의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농정은 어느 한쪽의 판단에 좌우되기보다는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를 폭넓게 살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농지 전수조사는 농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투기 목적의 부당한 농지 소유를 바로잡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라는 점에서 그 취지에 공감한다. 그러나 제도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까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조사에 앞서 위반 유형별 후속 조치와 구체적 처리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실제 영농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례를 면밀히 검토했다면 현장의 혼란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전 설명과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조사가 추진되면서 농업인들 우려가 커졌고, 결국 해당 사안이 정쟁 소재로까지 번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서두른 농협개혁추진단, 편향성 시비 여전.
농협법 개정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혁 필요성을 논하기에 앞서 농업계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개혁이라는 큰 명분에만 매몰돼 정작 농업인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우려하는지 살피지 못한다면 정책에 대한 신뢰를 얻기 어렵다. 농업인을 위한 개혁이라면 그 방향과 내용 역시 농업인 현실과 요구를 토대로 마련해야 한다. 특정 단체나 일부 이해관계자 의견을 농업계 전체 뜻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경계하고, 농심(農心)을 폭넓게 헤아려야 한다.
특히 농협법 개정 과정에서는 정부의 ‘농협개혁추진단’ 구성 단계부터 편향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농협중앙회의 조직 규모와 기능, 역할의 복합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개혁안을 서둘러 제시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개혁 방향과 결론을 미리 정해 놓은 채 형식적 의견 수렴 절차만 거친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나왔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는 뒤늦게 권역별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정치권이 입법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농업 현장과의 갈등은 오히려 깊어졌고, 이 같은 우려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면 형식적 의견 청취를 넘어 실질적 소통과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정책은 발표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해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비로소 성과와 신뢰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와 시장 상황, 영농 여건에 따라 정책 영향이 크게 달라지는 농업 분야에서는 현장과의 긴밀한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판 우려를 정책 추진 걸림돌로 여겨서야.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의 적극적 역할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는 정책 수립과 시행 과정에서 현장 의견을 충분히 검토해야 하며, 정치권 역시 농업인단체 및 관련 기관과 지속적 대화와 협력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가 정책 결정과 입법 과정에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비판과 우려를 정책 추진의 걸림돌로 여길 것이 아니라 제도 미비점을 보완하고 실효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농업 미래를 위한 정책은 농업인 목소리를 외면한 채 완성될 수 없다. 현장 현실에 맞는 해법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정책 성과와 한계를 겸허히 돌아보고 그 결과에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이런 자세가 농업인의 신뢰와 지속 가능한 농정의 토대다. 일부 목소리를 농업계 전체 뜻으로 단정하지 않고, 다양한 농업인 의견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농정이 지향해야 할 원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