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폴리시] 7월 역대급 폭락을 재현한 10월의 ‘검은 목요일’. 개인 투자자는 공포에 떨며 피눈물을 흘리지만, 정작 대통령과 금감원장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금융 당국 수장의 뒤늦은 사과도 허탈할 뿐이다. 외신의 조롱거리가 된 “말이 도망간 뒤에 마구간 문을 닫는” 한국의 금융 정책. (⏳4분)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금융 당국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 투자자들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레버리지를 일으켰을 땐 도대체 어디에 있었나?”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 앵커 스티브 세지윅(Steve Sedgwick)의 일갈이 뼈를 때린다.
세지윅은 15일(현지 시각) 방송에서 늑장 대처에 나선 한국 금융 당국을 질타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2배 ETF 도입에 대한 책임론이 증폭되는 가운데 나온 외신 앵커의 ‘촌철살인’이라 주목받고 있다.
- 금융위원회는 15일 이억원(금융위원장) 주재로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 및 시장 전문가와 함께 증시 상황 긴급 점검 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각각 7.6%와 7.7% 빠졌고,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동시에 걸리는 등 ‘검은 목요일’이 연출된 하루였다.
- 세지윅은 생방송 중 “한국 금융 당국이 50초 전 시장 안정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선제적 대응을 지시했다”고 전한 뒤 “한국 투자자들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레버리지를 높였을 때, 여러분은 어디에 계셨느냐. 몇 달 전에 이런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몇 달 전에 이런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 세지윅은 “한국 금융 당국은 ‘말이 도망간 뒤에 마구간 문을 닫는 식’(shutting the stable door after the horse has bolted.)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우리 속담으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뜻이다.
- “한국 투자자들이 전례 없이 레버리지를 높였을 때, 그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에 투자하고 있었을 때, 당국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나? 두 종목이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아닌가.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몇 달 전에 이런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는 점이다.”
- 세지윅은 “일부 투자자들이 SK하이닉스와 삼성의 주가 상승 베팅에 넣은 레버리지 규모는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터무니없다”며 “어리석은 사람은 돈을 쉽게 낭비하고 금방 잃는다”고 지적했다.
- 그러면서도 “기업 가치 측면에서 보면, 두 회사는 미국 동종 기업에 비해 평가가 매우 낮다. 현재 매도 압력을 가장 크게 받고 있지만, 주가가 다시 반등한다면, 지금의 10~11% 하락 폭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29년 메모리 공급과잉” 매경 칼럼에 주목.
- 이 방송은 CNBC 유럽의 아침 경제 프로그램 ‘스쿼크 박스 유럽(Squawk Box Europe)’에서 진행자인 세지윅과 CNBC 수석 테크 담당 기자 아르준 카르팔이 주식 시장 상황을 짚는 꼭지였다.
- 카르팔은 ‘2029년 메모리 반도체 공급 과잉 가능성’을 언급한 한국 경제지 매일경제 칼럼을 거론하며 “모두가 동의하는 견해는 아니지만 아시아 시장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 주가가 움직이는 이유를 어느 정도 설명한다”고 했다.
- “2029년에 공급 과잉이 올 수 있다는 말은 많은 이들의 예상보다 빠른 시간표다. 많은 이들은 2028년쯤 공급 부족이 완화하는 신호를 기대했지, 과잉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2029년 공급 과잉 가능성을 거론한 건 꽤 무게 있는 발언이다.”
- 카르팔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은 지난 1~2년 동안 엄청나게 올랐다. 하루에 11%, 10%씩 빠지는 움직임은 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봐 왔던 모습”이라며 “흥미로운 건 요즘은 대단한 뉴스가 없어도 시장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AI를 둘러싼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고 설명했다.

불거지는 ‘삼전닉스’ 2배 ETF 책임론.
- 세지윅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국내에서 빚투를 조장하고 무리하게 삼전닉스 2배 ETF를 도입했던 당국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다는 점에 있다.
- 권대영(재정경제부 제1차관)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시절인 지난해 11월 “빚투는 레버리지 일종”이라며 청년들이 빚을 지고 투자하는 행위를 긍정했고, 김용범(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삼전닉스’ 2배 ETF 도입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지난 1월 청와대 비공개 회의를 주도한 인물이다.
- 이억원(금융위원장)이 지난 8일 무리한 ‘삼전닉스’ 2배 ETF 도입에 “여러 손실과 우려에 대해 국민께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야당의 거센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여당 반발로 김용범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지 못한 것도 여론 악화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ETF 도입, 내부 통제 시스템 작동하지 않았다.”
- 최은석(국민의힘 의원)은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은 국민 재산 수십조 원이 증발한 대참사였다. 김용범 전 정책실장 또는 그 윗선이 주범인데, 국무조정실을 비롯한 관련 정부 부처들도 직무유기를 했다. 정부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피감기관 증인 임기근(국무조정실장)을 질타했다.
- 이재명 정부는 이 사안을 뭉개기 바쁘다. 청와대는 ‘삼전닉스’ 2배 ETF 도입 출발점으로 꼽히는 비공개 금융권 간담회에 대해 “회의록은 작성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재명(대통령)도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다. 이재명은 기자회견에서 “누군가는 (ETF 도입) 결정을 했겠죠”라며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다.
- 책임을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일보는 16일자 사설에서 ‘삼전닉스’ 2배 ETF와 국민연금 리밸런싱 유예를 “정책 실패”로 규정하고 “실패 원인을 파헤쳐 책임을 묻는 과정을 지금처럼 생략한다면, 비슷한 일은 반복된다”면서 “반성 없는 실패의 누적은 정권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재명 정부가 ‘코스피 주도 성장’을 국정 목표로 내세운 결과, 주가 등락과 지지율이 연동되어 국정 운신의 폭이 좁아진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