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양육시설에서 통제, 관리, 억압된 아동을 시설 밖으로. 유럽과 미국은 이미 가정 중심 체계 구축했다. 시설은 최후 수단으로. (정선욱 / 성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5분)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방영된 ‘아들만 일곱’인 가족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듬직하게 자란 아이들과 그 곁에서 최선을 다해 부모의 역할을 해내는 부부의 모습은 많은 시청자의 응원을 이끌어냈다.
아동이 선택하지 않은 ‘태어남’과 ‘자람’
우리나라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제1호는 “사회보장이란 출산, 양육, 실업, 노령, 장애, 질병, 빈곤 및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라고 규정하여 출산, 양육을 사회적 위험의 하나로 보고 있다. ‘출산, 양육’은 아동의 시선으로 표현하면 ‘태어남’과 ‘자람’이다. 아동에게 태어남과 자람은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진다. 아동은 어떤 처지의 가정에서 태어날지 결정할 수는 없으나 태어난 순간부터 그 형편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아동의 입장에서 태어남과 자람은 매우 큰 사회적 위험인 것이다.
위험은 공적 양육 지원 제도와 가정의 양육 환경에 따라 해로움으로 전환된다. 가정의 형편이 여의치 않거나 양육 지원이 적절한 시기에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동은 신체·정신 건강의 어려움, 관계 형성의 힘듦, 학습의 어려움을 넘어 가족과 ‘분리’되기도 한다.
가족과 분리된 아동을「아동복지법」은 ‘보호대상아동’이라 부른다. 「아동복지법」 제3조제4호는 “보호대상아동이란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또는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하는 경우 등 그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기에 적당하지 아니하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아동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호대상아동의 발생 원인은 아동학대, 부모의 빈곤·실직, 부모사망, 부모질명, 부모이혼 등 다양하다. 임산부가 의료기관에서 신원을 숨긴 상태로 출산하는 ‘보호 출산’ 역시 아동이 부모와 분리되는 경로가 된다. 그렇다면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분리된 보호대상아동의 ‘자람’은 어디에서 보장되고 있을까?

아동양육시설에서 통제, 억압, 관리되는 아이들
분리된 아이들이 자라는 곳을 생각할 때, 명절마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후원품을 들고 찾아가는 ‘아동양육시설’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한국전쟁 이후 갈 곳 없이 거리로 흩어진 아이들을 모아 돌봐왔던 고아원에서 출발한 아동양육시설에는 실제로 보호대상아동의 절반 이상이 생활하고 있다. 매스컴을 통해 비교적 잘 갖추어진 시설의 모습을 보며, 안전하고 전문적인 울타리 안에서 잘 자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아동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전국 아동양육시설의 생활 규칙을 분석한 연구(김시아 외, 2026)는 시설에서 ‘보호’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통제와 억압, 관리가 우선되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시설이라는 대규모 구조 속에서는 아동 각자가 원하고 바라는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 획일적인 규칙, 관리를 통한 시설의 지속적 유지와 안정적 운영에 초점이 맞춰지기 쉽다.
가장 가까이서 아동을 돌보는 보육사는 3교대 근무로 이직이 빈번하고, 아이들은 그들을 자신의 ‘자람’을 끝까지 함께해 줄 보호자로 신뢰하기 어려울 수 있다. 지난 9월, 아동생활시설에서 직원이 자신의 지갑에서 현금을 훔친 지적장애 아동을 경찰에 고발하고, 피해 금액의 5배를 손해배상액으로 지급하게 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아동은 분명 잘못을 저질렀고, 이에 대한 훈육이 있어야 함은 마땅하다. 그러나 위 조치는 훈육이라기보다 절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합의에 가깝다. 생활시설에서 아동은 ‘보호’되고 ‘관리’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물질적 풍요를 넘어 친밀한 사랑의 관계 속 ‘자람’
물론, 시설에서 다양한 간식과 음식, 새롭고 신기한 체험학습, 배우고 익힐 기회 등은 부족하지 않게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아동의 건강한 ‘자람’은 부족함 없는 환경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아이들은 사랑과 관심을 바탕으로 한 관계 속에서 자란다. 신뢰, 친밀함, 유대와 같은 관계의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동이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 그 마음을 읽어주고, 그것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들만 일곱인 가정의 주인공 부부는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 새 옷과 신발, 각자의 방 등은 제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부부는 아침 식사로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유부초밥, 김밥, 달걀과 햄 등을 준비했다. 자녀 한 명 한 명과 시간을 갖고, 아이들의 속마음을 읽고자 애썼다. 독자들이 부부를 칭찬하고, 응원하는 이유다.
아동의 건강한 ‘자람’은 물질적 풍요를 넘어, ‘언제나, 여기에, 변함없이 함께 있기’, ‘따뜻하게 눈 마주치고 대화하기’, ‘챙겨주기’, ‘함께 시간 보내기’, ‘내 편 들어주기’ 등의 경험 속에서 이루어짐을 기억해야 한다.

아동의 ‘자람’은 과감한 ‘탈시설’에서.. 보건복지부의 불분명한 입장
“오직 마지막 수단으로서만, 또한 오직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서만 시설 수용과 구금의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 지역사회 기반의 서비스를 개발하고 시행함으로써 보살핌ㆍ사법 장소에서의 폭력을 예방함.” 우리나라가 1991년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일반논평 13호 “모든 형태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아동의 권리”의 내용이다.
사랑과 관계를 국가(지자체)가 직접 아동에게 제공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사랑이 가능한 구조, 관계가 살아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보호대상아동의 ‘자람’을 시설에 맡기는 방식을 과감히 탈피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른바 ‘탈시설’이 아동에게도 중요하다.
장애인에게 탈시설이 지역사회에서의 자립 지원이라면, 아동에게 탈시설은 가족, 지역사회 내에서 ‘자람’을 보장하는 것이다. 또한,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중요한 원칙인 “Aging In Place(익숙한 집과 지역사회에서 관계를 유지하며 노후를 보내는 것)”를 “Growing Up In Place”(가족과 지역사회 안에서 안정적인 돌봄 관계를 이어가며 성장하는 것)로 확장하는 것이다.
“보호아동 가정형 거주로의 전환 로드맵”으로 명칭 변경된 “보호아동 탈시설 로드맵” 수립이 2022년 국정과제로 제시되면서 로드맵 수립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명확한 실행 로드맵은 나오지 않고 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입장 또한 분명하지 않다.
제3차 아동정책기본계획(2025년 ~ 2029년)에는 시설의 고도화, 전문화, 원가정 복귀 지원체계 구축 시범사업 등이 가정형 보호인 입양 공공화, 가정위탁에 대한 국가 책임제 등과 같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분리된 아동의 ‘자람’과 관련된 모든 제도를 다양하게 지원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계획에는 시설을 마지막으로 고려하라는 최후의 보루(last resort) 원칙을 실현하겠다는 의지, 시설에서 자라는 아동을 어떻게 줄여갈 것인지에 대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민간에서 요구하는 “우선, 6세 미만 아동 시설 입소 전면 금지” 등의 내용도 담겨있지 않다.

아동의 ‘자람’을 지켜내는 공동 양육… 유럽과 미국은 시설 대신 가정 중심 체계
유엔아동권리협약의 비준국으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다. ‘정말 마지막 수단으로, 오직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아동을 시설로 보내고 있는가?’를 자문하고 탈시설을 향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무감각하게 양육시설에 보내왔던 관심과 찬사를 아동 중심에서 다시 살피고, 고군분투하며 아동의 ‘자람’을 지켜내는 우리 주변의 이웃을 응원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이미 유럽이나 미국 등은 원가정 혹은 가정형 보호 중심으로, 시설 자체가 필요없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특히 동유럽국가는 아동 시설의 폐쇄를 계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시설 중심의 체계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대안을 적극 실행해야 한다. 서울시가 홈헬퍼(가정방문 양육지원) 사업을 통해 장애가 있는 부모의 아동 양육을 돕는 것처럼, 현금 중심의 양육 지원에 더하여, 공동 양육(co-parenting)의 관점에서 양육의 어려움을 찾아 지원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지역사회통합돌봄제도를 통해 “Growing Up In Place”를 실현할 수 있도록, 그 안에서 아동과 가족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도 필요하다. 2007년부터 시작한 취약계층 아동에 대한 지원서비스인 드림스타트를 아동과 가족에 대한 공적 지원의 컨트럴타워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아이들의 1시간은 어른들의 10년과 같다. 아이들의 성장은 정책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바로 지금, 아동이 ‘태어남’과 ‘자람’을 위험이 아닌 행복으로 여길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