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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일상,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이야기들이 지금도 우리의 시공간 속을 흘러갑니다. 그 순간들을 붙잡아 짧게 기록합니다. ‘어머니의 언어’로 함께 쓰는 특별한 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box]

 

장미

 

42년 전 이야기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교회에서 만나셨다. 당시 어머니는 모 대학병원에서 애드너스(ad-nurse, 간호보조사)로 일하고 계셨고, 아버지는 서울시 행정공무원으로 사직도서관에서 재직 중이셨다. 두 분은 터울이 좀 컸는데, 청년부에서 큰 오빠와 막냇동생 사이였단다.

42년 전 식목일. 각자 좋아하는 나무를 심는 행사가 열렸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같이 나무를 심는 게 어떠냐며 빨간 장미와 노란 장미 나무 한 그루씩을 샀다.

T.Kiya, CC BY SA
T.Kiya, CC BY SA

식목 행사가 끝나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단도직입 청혼을 하셨다.

“강 선생, 앞으로 뭐하고 사실 건가요?”

“저는 일단 서독에 가서 간호사 생활을 할까 생각 중이에요.”

“아 서독까지?”

“지금 간호사 일도 하고 있고, 공부도 더 하고 싶고, 오빠가 신학 하는 데 교회 운동도 하고 싶고 해서.”

“아, 그렇군요. 그런데 서독 가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아요?”

“고생스럽다는 건 저도 알지요.”

“그러지 말고 나랑 결혼해서 같이 합시다. 교회 운동도 같이 하고, 공부도 하고요.”

그렇게 아버지는 어머니를 설득했고, 두 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하셨다. 화려한 이벤트도, 멋진 선물도 없는 밋밋한 청혼이었지만, 두 분이 심은 장미 나무 두 그루는 오래전 다니던 교회 화단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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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 숟가락

 

밥을 먹고 할 일이 있어 책상에 앉았다. 어머니가 밥상을 치우시다 말고 평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부르신다.

“성우야, 이거 좀 봐라.”

“네? 뭘요.”

“이거 진짜 숟가락 같지 않니?”

“히히. 정말 숟가락 같네요. 그걸로 밥 먹어도 되겠다.”

김밥을 쌌던 알루미늄 호일로 숟가락을 만드신 것. 인증샷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소녀같이 설레는 목소리를 기억해야지.

엄마가 만든 알루미늄 숟가락 (사진: 김성우)
엄마가 만든 알루미늄 숟가락 (사진: 김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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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등

 

“어머니, 긴장이 고조되면 누가 제일 좋을 거 같아요?”

“글쎄… 누가 제일 좋으려나?”

“한반도에서 전쟁 나면 우리나라나 북한 사람들은 다 죽는데… 사실 좋을 게 없잖아요. 오히려 주변 강대국의 군사기업들이 무기 팔아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요?”

”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가 아니라, ‘새우 싸움에 고래 등 커진다.’”

“하.”

Loren-Sztajer, CC BY ND
Loren-Sztajer, CC BY 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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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雪)

 

어제는 참 많은 눈. 어머니와 나는 마당을 열심히 쓸었다. 밤새 내린 눈 덕에 새벽기도에서 돌아오신 어머니는 또다시 집 앞에 길을 내고 들어오신다.

“어머니 눈 또 엄청 왔나 봐요?”

“응. 엄청 왔네. 그래서 엄마가 열심히 길에 가르마를 내고 왔는데… 너무 심하게 냈나 싶기도 하고.”

“길이 가르마면 눈 내린 대지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네요.”

하”

함께 웃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CiCCiO.it, CC BY SA
CiCCiO.it, CC BY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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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어머니와
거의 십 년 만에
짜장면을 시켰다.
곱빼기 하나 가지고
나누어 먹었다.

맛있었다.

egg™, CC BY
egg™, CC BY

* 2013년 1월 ~5월 사이에 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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