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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복지 삭감 아닌 ‘시스템 현대화’. AI 시대, 독일의 ‘사회국가 2.0’이 한국에 던지는 다섯 가지 질문. (이호근 /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5분)

독일이 복지국가의 대수술에 들어갔다. 2025년 5월 출범한 독일 기민·기사당(CDU/CSU)과 사민당(SPD) 대연정 정부는 ‘사회국가개혁위원회(KzSR)’를 발족하고, 지난 1월 27일 총 26개 권고안을 담은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19세기 비스마르크 이래 공고하게 다져온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 모델이 AI와 디지털 대전환이라는 큰 파고를 어떻게 넘으려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다.

독일의 이번 개혁은 단순한 참고 이상의 시사점을 던진다. 복지 선진국조차 시스템을 전면 재설계하는 지금, 한국은 과연 어디쯤 서있는가.

독일 기민·기사당(CDU/CSU)과 사민당(SPD) 대연정 정부는 AI 시대 전환에 대응하는 사회복지 대개혁에 합의했다.

복지 삭감 아닌 현대화…기술로 옷을 갈아입다

이번 개혁의 가장 큰 특징은 복지 혜택의 삭감이 아니라 시스템의 현대화와 효율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독일은 2026년 현재 사회지출(Social Expenditure, 국가가 복지를 위해 쓰는 돈)이 GDP의 약 31%에 달하며, 사회보장이 정부 지출의 41%를 차지하는 유럽 최고 수준의 ‘사회국가(Sozialstaat, 복지국가)’다. 새 정부는 이 틀을 유지·발전시킨다는 대원칙 아래 복잡한 제도를 단순화하고, AI를 활용한 디지털 행정으로의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4대 실행 분야는 ‘사회급여의 재체계화, 취업 유인동기의 개선, 법률 간소화, 행정의 디지털화’다. 목표는 명확하다. 관료주의의 벽을 허물어 시민들이 복지 서비스에 더 빠르고 간편하게 접근하게 만드는 것이다.

신청 안 해도 복지 자동 지급…사각지대 원천 차단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사회급여의 ‘탈신청주의’와 ‘자동지급’으로의 전환 선언이다. 그간 복지 혜택은 본인이 알고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위원회는 수급 자격이 인정되는 급여에 대해 별도 신청 절차 없이 국가가 직권으로 자동 지급할 것을 권고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동수당이다. 독일은 현재 소득과 무관하게 자녀 1인당 월 259유로(약 44만 원)를 18세까지 지급하는데, 이를 출생 직후 자동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정보가 부족하거나 절차가 복잡해서 혜택을 못 받는 ‘복지 사각지대’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한국도 아동수당·부모급여 자동 지급을 추진 중이라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흐름이라 할 수 있다.

배르벨 바스 독일 연방노동사회부 장관이 지난 1월 27일 베를린 관저에서 열린 ‘사회국가개혁위원회 권고 사항’ 최종 보고서 전달식에 참석했다. 독일 연방노동사회부

‘일하는 게 이득인 사회’를 향한 정교한 설계

독일 사회국가의 또 다른 고민은 ‘복지의 덫’ 제거다. 실업자가 일을 시작했을 때 사회급여가 급격히 줄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를 개선하려는 것이다. 위원회는 소득이 낮을 때는 급여 산입을 더 많이 해주고, 소득이 높아질수록 이전소득이 깎이는 비율을 낮춰 취업 동기를 부여할 것을 권고했다.

독일의 ‘시민수당(Bürgergeld,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새 형태의 실업부조)’으로 대변되는 실업부조 안전망은 한국과 크게 대비된다. 독일은 540여만 명의 수급자를 대상으로 근로 능력 여부를 촘촘히 관리하며 노동시장 복귀를 유도한다. 반면 한국은 사실상 무직 상태임에도 통계상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쉬었음’ 인구가 278만 명에 달하지만, 이들에 대한 안전망은 여전히 미흡하다.

부모수당(Elterngeld) 체계의 시사점도 있다. 독일의 부모수당은 출산 전 순소득을 기준으로 월 300~1800유로(약 51~309만원)를 지급하며, 파트타임 근무 부모를 위한 ‘부모수당플러스’ 제도도 운영한다. 부모의 공동 육아 참여 촉진을 위한 추가 보너스도 지급된다. 노동시장 참여를 고려해 급여 방식과 기간을 다원화한 설계다. 한국에서 부모급여가 소득·재산과 무관하게 일괄 지급되는 것과는 대비된다.

단순 업무는 AI로, 공무원은 시민 삶에 집중

개혁의 기술적 근간은 ‘엔드 투 엔드’ 디지털화🔖다. 위원회는 ‘정부-서비스-플랫폼’ 방식을 통해 데이터를 단 한 번만 제공하면 되는 원스톱 원칙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독일-스택‘🔖이라는 표준화된 IT 인프라를 구축하고, 2027년부터는 유럽 표준 디지털 신원인 ‘EUDI 지갑’🔖을 통해 인증과 증빙 제출을 간소화한다.

🔖 ‘엔드 투 엔드’ 디지털화

서비스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단절 없이 디지털로 연결한다는 의미.

🔖 독일-스택

독일-스택(Deutschland-Stack)은 독일의 16개 주 정부와 수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제각각 사용하던 복지 행정 시스템을 하나의 공통된 표준 모델로 통일하겠다는 프로젝트다.

🔖 EUDI 지갑

스마트폰 앱 형태로 저장되는 ‘유럽 연합(EU) 표준 디지털 신분증’. 우리나라의 모바일 신분증, 운전면허증 등과 비슷하나 유럽 전역에서 통용된다.

AI도 적극 활용한다. 단순 반복적인 규정 기반 프로세스는 AI로 자동화하고, 공무원은 시민 개개인의 복합적인 문제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데 집중하게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위원회는 단순히 개혁 권고에 그치지 않고, 2027년까지 입법 절차를 완료하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독일이 한국에 던지는 다섯 가지 질문

한국은 지난 30여년간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여줬지만, 불평등 문제를 여전히 안고있다. 한국 사회국가는 여전히 ‘형성 중’이다. 사회국가의 성숙단계를 지난 독일 모델은 우리에게 다섯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한다.

첫째, 고용 안전망의 촘촘함이다. 독일은 실업급여·시민수당·사회부조에 이르는 다단계 안전망을 유지하며, 비정규 노동 증가에 따른 불안정성을 경계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비정규직 중 임시직 비율이 26.9%로 OECD 평균(11.2%)의 두 배가 넘지만, 고용보험은 여전히 정규직 중심이고 급여 수준이 낮고 기간도 짧다. 특히 ‘국민취업지원제도’의 급여 수준과 수급 요건을 현실화하고, 이것이 실질적 안전망으로 기능하도록 행정 서비스와 긴밀히 연계해야 한다.

둘째, 양질의 아동·청년 지원이다. 독일 아동수당은 월 259유로(38만원 가량)를 최장 만 25세까지, 청년수당은 무직·저소득 청년에게 구직활동 의무화와 직업훈련을 요건으로 연간 약 50억 유로(8조원 가량)를 지급한다.  독일의 청년고용제도는 OECD권 주요 모델로 높은 노동시장 연계성(school to work)을 갖고 있다. 졸업 또는 실직 후 4개월 이내 양질의 일자리나 직업훈련 기회를 보장하는 ‘Youth Guarantee(청년보장제)’ 제도도 운영한다. 한국의 청년 구직수당(6개월 간 월 50만원)과는 차이가 크다.

셋째, 복지의 역설 극복이다. 독일은 노인과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가정 및 시설 돌봄, 사회적 재활과 통합, 특수 상황 지원 등 광범위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해당 서비스 이용자는 총 800만 명에 달하며, 연간 약 1,200억~1,500억 유로의 재정이 투입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각종 사회급여는 총 502개에 달하는 사회보장 관련 법률을 근거로 촘촘하게 지급되며,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사회국가 체제를 견고히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안정적인 고용과 소득을 보장받는 계층에 오히려 공적 복지가 집중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실제로 전체 공적 소득이전 중 소득 하위 20%에 배분되는 비중은 2009년 45.2%에서 2023년 35.8%로 대폭 감소했다. 취약계층을 비껴가는 이러한 복지의 역설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은 소득 하위 40%를 겨냥한 공적이전을 대폭 확대하고 공공사회지출 규모를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려 사회적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완화해야 한다.

넷째, 복지 행정의 사법적 구제 체계 확립이다. 독일은 83개의 독립적인 전문 사회법원에서 연간 30만 건 이상의 분쟁을 처리한다. 한국도 최근 행정법원에 사회보장 전문부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나, 사회보장 소송이 연간 수천 건에 불과한 현실은 법치주의적 권리 구제 강화라는 과제를 남긴다.

다섯째,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디지털 복지 구현이다. 한국은 세계적인 IT 강국이지만, 복지 행정의 유기적 통합과 ‘탈신청주의’ 실현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독일이 제안한 데이터 통합 수집과 AI 플랫폼 활용 방안을 우리 실정에 맞게 도입해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행정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독일의 개혁은 복지가 단순히 시혜적 지출이 아니라 시장 경제의 역동성을 지탱하는 ‘사회적 투자’임을 재확인 시켜준다. 독일 사회국가개혁위원회의 26개 권고안이 한국 사회의 안전망을 다시 설계하는 데 영감을 주는 나침반이 되기를 기대한다. AI 시대의 복지 국가는 더 따뜻하면서도 더 똑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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