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성 칼럼] 문체나 그림체는 표현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영역… AI가 남긴 새로운 질문, 지식의 공유와 창작자의 권리의 균형점은 어디에. (⏳4분)
AI 때문에 시끌시끌합니다. 저작권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정작 저작권의 기본 법리는 모르시는 분이 많으신 듯합니다. 그래서 간단히 설명을 해볼까 합니다.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
AI의 저작권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법리는 아이디어-표현 이분법 법리입니다. 저작권의 출발이 되는 법리임에도, 가장 납득이 잘 안 되는 법리이기도 합니다.
내용 자체는 간단합니다. 저작권법은, 표현만 보호하지 아이디어는 보호하지 않는다.
이게 뭔 소리인지 잘 이해가 안 가실 것 같은데,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소설을 쓴다고 해보죠. 작가마다 다르겠지만 우선 주제를 정하고, 적절한 소재, 플롯을 결정하고, 인물을 디자인하고, 스토리를 짤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를 글로 쓰겠죠.
이 각 단계에서 저작권은 “글”만 보호합니다. 다시 말하면 실제로 표현된 글 자체만 보호합니다. 그 전 단계, 그러니까 스토리, 플롯, 소재, 주제 같은 것은 보호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호되지 않은 것들을 “아이디어”라고 부릅니다.
아이디어는 보호하지 않는다, 스타일도 마찬가지.
이게 창작자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준입니다. 특히 대중적인 소설이나 만화의 경우, 소재와 플롯, 스토리야말로 창작의 핵심이라고들 생각하는데, 그걸 “베끼는 것”은 저작권 위반이 아닙니다. 그래서 글의 경우 문장이 상당부분 비슷한지 여부가 표절의 인정 기준이고, 그림의 경우 트레이싱 수준으로 비슷한지가 표절의 인정 기준입니다. 그림의 스타일, 글의 문체도 역시 저작권의 대상이 안 됩니다.
이런 기준에서 요즘 시끌시끌한 AI의 저작권 문제를 생각해보죠. AI가 그려내는 그림, 써내는 글이 저작권 침해일까요?
요 며칠 전세계를 시끄럽게 만든 지브리 “스타일” 그림을 생각해봅시다. 그거 누가 봐도 지브리 스타일인 거 압니다. 그러나 그 어떤 그림도 지브리의 저작물을 그대로, 트레이싱 수준으로 베낀 것은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유행하는 “지브리 스타일”은 실사 사진을 넣고 스타일만 바꾸는 것이니까요. 애초부터 저작권의 영역 문제가 아닙니다.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범위가 이렇게 창작자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이유가 있습니다.
지식재산권 제도의 목적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통상적인 재산권의 대상, 예를 들어 고기, 금, 아파트 등은 별다른 제도가 도입되지 않아도 경제 현상의 대상이 됩니다. 재산으로 인정됩니다. 그러나 지식재산은 다릅니다. 별도의 제도가 도입되어야 인정됩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법학이 아니라 경제학에 있습니다. 희소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희소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화를 예로 들어보죠. 만화가 희소성이 있나요? 만화책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각하기 쉽게 스캔한 만화를 생각해보죠. 스캔한 만화는 무한정 복제할 수 있습니다.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하나씩, 아니 백개씩도 나눠줄 수 있습니다. 원래는 희소성이 없는 그 무엇인가입니다. 따라서 자연적으로는 경제적 가치가 인정될 수 없습니다. 희소성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특정한 형태의 “생각”은, 경제시스템 내에 편입시켜서 재산권으로서 기능하게 만들 정책적 이유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술자가 만든 새로운 기술에 재산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기술 개발에 자원을 투입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근사한 음악으로 돈을 벌 수없다면 누구도 작곡을 하지 않겠죠. 그렇게 일정한 형태의 “생각”에 대해 강제로 희소성을 부여하는 제도, 다시 말하면 정당한 권리를 가진 사람만 그 “생각”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희소성을 강제하는 제도, 그게 지식재산권 제도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지식재산권 제도는 사회 전체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는 제도입니다. 원래는 희소성이 없는 “생각”에 강제로 희소성을 부여하는 것이니까요. 비유하자면 원래는 누구나 먹고싶은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는데, 강제로 한두 명만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사회 전체로 보면 이런 제도를 도입할 이유기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목적이 몰까요?
바로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결국 더 많은 기술, 더 많은 예술작품들이 만들어질 토양을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의 혜택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지식재산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창작자의 보호가 아닙니다. 사회 전체의 공익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금 말한 괴리가 발생하는 겁니다.

특허법의 목적은 재산 보호가 아니라 지식의 공유.
예를 들어 특허 제도의 진짜 목적은 발명자의 재산 증식이 아닙니다. 그 발명의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에게 공개해서, 모두가 그 기술을 알고 공부해서 새로운 기술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지식의 공유가 그 목적입니다. 그래서 특허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건 특허의 공개이고, 공개되는 특허 공보는 그 업계의 통상적인 수준의 기술자라면 누구나 보고 이해하고 따라할 수 있어야 할 정도로 상세해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기술을 공개하는 대가로 20년의 특허 독점을 인정하는 겁니다. 공개의 대가인 셈이죠.
저작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작물은 많은 사람들이 향유해야 하고, 다른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되어야 합니다. 그 어떤 창작물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이전의 뛰어난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저작권법은 특정한 영역만 보호합니다. 그 특정한 영역이 장작의 가장 최종적인 단계인 “표현”인 겁니다.
이건 세계 공통으로 인정되는 저작권의 가장 기본 법리입니다. 지금까지는 말입니다.
그런데 AI가 등장했습니다. AI는 분명히 표현을 베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스타일을 거의 그대로 따라합니다. 저작권법의 원래 법리상으로는 저작권 침해가 아닙니다. 그러나 AI의 출현은 창작자들의 먹거리 자체를 없애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작권 법리가 수정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지브리 스타일 유행이 남긴 질문, 창작자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할까.
이건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디어-표현 이분법 법리가 저작권법의 출발점이고, 이게 출발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을 때까지는 수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이걸 처음부터 다시 엎는 것은 저작권을 재정의하는 수준의 격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간단히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저작권법의 목적은 공익을 보호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재산권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지식재산권의 목적이 창작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미 설명한 것처럼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더 어려운 겁니다. AI가 모두의 공익을 증진하면서도 창작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 이게 AI 저작권 문제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