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역적인데 아비가 무사한 경우도 있다더냐.”

17세기 인조반정 공신이었던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며 한 말이라고 한다. 12월 3일 계엄 선포 직후, 이괄이 했다던 말이 떠올랐다.

‘아내가 역적인데, 남편이 무사한 경우도 있다더냐.

12.3 내란과 이괄의 난

이괄의 난은 결국 실패했다. 나 하나 살자고 나라를 뒤엎고 더 많은 이를 죽이겠다는, 명백히 사적인 동기로 시작한 반란이었다. 명분이 없으니, 내부 이탈자가 속출했다.

이괄은 이름처럼 괄괄한 성격이었던 모양이고, 쇼맨십이 강했던 듯싶다. 이괄의 군대는 무악재에서 벌어진 전투를 일부러 백성들에게 홍보했다고 한다. 큰 싸움이 있으니 구경 나오라고 도성 곳곳에 방을 붙였단다. 강한 무력을 전시하는 정치적 이벤트였다. 하지만 이괄의 예상과 달리, 무악재 전투에서 관군이 이겼다. 이후 이괄 군은 기세가 꺾였고, 병사들은 등을 돌렸다. 이괄은 부하의 배신으로 죽었다.

이번 내란 수괴 역시 괄괄한 성격에 쇼맨십이 강했다. 이괄이 무악재에서 보여주기식 전투를 한 것처럼, 그 역시 보여주기식 수사를 했다. 명분 없는 반란에 부하들이 등을 돌린 것도 비슷하다.

다만 이괄의 아들은 역모 혐의가 모호했던 반면, 이번 내란 수괴의 아내는 비리 혐의가 꽤 선명했다는 차이는 있다. 게다가 지금은 연좌제가 있었던 조선시대가 아니다. 아내가 죄인이라 하여, 남편이 법적 책임을 질 일은 없다. 그런데도 내란을 일으켰으니, 이괄만도 못하다.

군인의 명예와 자부심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이괄이 반란에 동원했던 북방의 야전군은 당시 조선의 최정예였다. 임진왜란이 남쪽의 위협이었다면, 새로운 위협은 압록강 이북에서 내려오고 있었고, 그 사실을 당시 조선 조정도 잘 알고 있었다. 북방 민족은 힘을 키우면 만리장성 남쪽을 향했던 게 중국 역사였다. 그때마다 만주 이남의 한반도가 전쟁터가 됐던 게 우리 역사였다. 평생 문사철만 파고들었던 조선 지식인들은 당연히 이런 역사를 아주 잘 알았다.

만주 누르하치의 흥기 이후, 조선 조정은 없는 살림을 쥐어짜 북방 정예 야전군을 길렀다. 임진왜란으로 이미 피폐해진 조선으로선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그렇게 기른 정예부대를 이괄이 다 털어먹었다. 죽고, 흩어지고, 또 일부는 압록강 너머로 도망가 후금에 투항했다.

예나 지금이나 군인은 명예와 자부심으로 산다. 누구나 목숨은 하나뿐이며, 따라서 목숨은 값을 매길 수 없다. 그런데 군인은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던지기로 약속한 직업이다. 값을 매길 수 없는 목숨을 던지는 대가는 돈으로 치를 수 없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명예나 자부심이 대가다.

12.3 내란 주범(공동정범) 윤석열과 김용현(오른쪽)
12.3 내란의 ‘설계자’ 노상원.

그런데 정예부대가 졸지에 반란군이 되면서, 바로 그 명예가 무너졌다. 이괄의 난 이후 조선 조정에선 외침에 대한 경계와 내부 반란에 대한 불안 사이의 균형이 깨졌다. 야전 지휘관에 대한 불신이 생기면서, 강한 군대가 위험해 보이게 됐다.
그래서 생긴 일을 우리는 잘 안다.

정묘호란, 그리고 병자호란, 매번 북방방어선이 물에 젖은 문풍지처럼 휙 뚫려 버렸다.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래서 평안도를 정예 야전군이 지키고 있었다면, 역사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무도 모른다. 다만 조선이 질 때 지더라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패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전쟁의 후유증 역시 덜 겪지 않았을까.

무너진 군인의 명예, 또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이번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12. 3 내란 시도에서도 한국의 최정예 부대가 동원됐다. 17세기 이괄의 난과 달리,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직업 군인의 명예와 자부심이 무너졌다는 점에선 닮았다.

그래서 21세기 한국에서 전쟁 나면 망하는 거야? 휴전선이 푹 뚫리고 한국 대통령이 언 땅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신하 나라가 큰 나라를 만났을 때 머리를 조아려 절하는 것) 해야 하는 거야? 그야 모르지. 안보 전문가분들이 많이 계시니, 그분들이 이미 고민하셔서 대책을 마련해 놓으셨겠지. 나 같은 문외한까지 걱정할 일은 아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다른 대목이다. 군인, 특히 가장 위험한 작전에 투입되는 특수전 요원은 명예와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대표적인 직업이다. 애초 이런 직업은 돈으로 보상을 할 수가 없다. 하나뿐인 목숨을 던지는 직업인데, 얼마를 줘서 보상하겠나. 오로지 명예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명예가 무너졌다. 회복되려면, 5월 광주에 특전사가 투입됐던 1980년부터 2024년까지의 시간이 다시 필요할 테다.

5.18 광주민주화항쟁 ⓒ5.18기념재단
5.18 광주민주화항쟁 ⓒ5.18기념재단

정도는 다르지만, 돈이 아닌 명예로만 보상할 수 있는 직업이 실은 많다. 오로지 돈만 보고 일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대개는 돈과 명예가 적당히 섞인 어느 지점을 택하곤 한다.

돈과 명예의 균형과 역전: ‘가성비’의 시대

그리고 돈과 명예 사이의 균형점은 시대마다 달리 찍힌다. 명예 대신 체면으로 바꾸면, 느낌이 더 생생하다. 1997년 외환위기가 중대한 고비였다. 그전에는 돈보다 체면을 택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직업 선택에서, 혹은 직장 생활에서 흔히 그랬다. 명예 대신 체면이라고 하니, 왠지 불합리하고 고루해 보인다.

그래, 맞다. 그게 바로, 우리가 1997년 이후의 세상을 살아간다는 증거다. 1997년 이전에는 체면 때문에 조금 손해 보는 선택을 한다는 게 그리 고루한 느낌이 아니었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우리가 가치를 매기는 방식이, 생각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래서 얼마 버는데?’를 묻는 게 민망하지 않게 여겨졌다. 오히려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로 칭송받는다. 이런 변화가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체면을 내세워 욕망을 숨기는 거짓 때문에 빚어진 피해도 컸다. 그럴 바엔, 화끈하게 제 욕망을 드러내는 게 낫다. ‘그래서 얼마 버는데?’를 따져, 가장 ‘가성비’ 높은 선택을 하는 게 분명히 합리적이다. 적어도 해롭지는 않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모든 사람이 ‘가성비’, 그러니까 가격 대비 성능만 따지게 된다면, 애초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분야에선 누가 일을 해야 하나. 생명을 다루는 일, 사람을 기르고 가르치는 일이 대개 그렇다. 가격을 매겨 보상하자니,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거의 무한대의 비용이 든다. 또 이렇게 되면, 오로지 돈만 보고 그 일에 뛰어드는 경우도 생긴다. 경쟁이 과열되니, 해당 업무의 적임자가 오히려 밀려나고, 잇속에만 밝은 자 아니면 시험 숙련공이 그 자리를 메우기 쉽다.

그렇다고 ‘어차피 돈 때문에 택한 일은 아니잖아’라며, 경제적 보상을 외면해 버리면, 명예와 자부심의 붕괴가 아주 가팔라진다. ‘가성비’의 시대엔 버는 돈의 액수가 곧 명예이고 자부심이므로. 또 받는 돈 만큼만 희생하는 태도가 곧 지혜이므로.

요컨대 ‘가성비’의 시대엔, 돈 잘 버는 길로 갈 수 있는데 굳이 돈 안 되는 진로를 택하면 오히려 명예가 깎인다. 돈 안 되는 헌신을 하면 오히려 비난을 듣는다. 물론 예전에도 이런 경우엔, 세상 물정 모른다는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가성비’의 시대엔 다르다. 놀림에 그치는 게 아니라, 도덕적 비난 대상에 가까워진다.

‘가성비’가 당위인 시대

‘가성비’ 높은 선택은 그 자체로 당위가 돼 있는 탓이다. 기업 경영에선 ‘가성비’ 높은 선택이 당위, 맞다. ‘가성비’ 높은 선택을 고의로 외면한다면, ‘도덕적 해이’, 더 나아가 배임죄에 해당한다. 기업에 투자한 주주에게 가장 높은 수익을 배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를 배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성비’의 시대란, 이 같은 주주자본주의의 논리가 시민의 가치관이 된 시대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가성비’의 논리가 주주총회장과 법정의 틀을 벗어나, 생활세계까지 장악하면, 사회는 작동하기 어려워진다. 주주자본주의의 논리가 통하는 영역은 전체 사회에서 극히 일부일 뿐이다. 가정생활이, 종교활동이, 인간관계가 ‘가성비’의 논리로 작동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길 꿈꾼다면, 그 역시 극단적인 관념론일 뿐이다. 고스플란이라는 계획기구로 사회를 조직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옛 소련 공산당과 다를 바 없는 발상이다. 방향만 정반대일 뿐.

계엄만 아니었으면, 올해 가장 큰 이슈로 꼽혔을 의대 문제도 그렇다. 공부깨나 하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의대를 지망한다. 성적이 좋은데도 의대를 안 가겠다고 하는 학생은,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고 한다.

성적이 되면 무조건 의대 가야죠! 의사는 가성비가 좋은 직업이니까요!!

올해 언론 보도에서 의대 쏠림 현상이 자주 거론되니까, 연세 많이 드신 분들은 요즘 새로 나타난 세태인 줄 아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나타난 급격한 변화였다. 그리고 이는 ‘가성비’의 시대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입시 준비에 들인 노력과 비용 대비 생애 소득을 계산하면, 무조건 전문직이 되는 게 좋다. 그런데 의대에 진학하면 거의 100퍼센트 확률로 전문직이 된다. 따라서 대입을 앞둔 시점 기준으로 가장 가성비가 높은 선택이 의대였고, 그래서 의대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최근 더 두드러져 보인다면, 그것은 문과-이과 구분이 사실상 없어졌기 때문이다. 예전이라면 법조인을 지망했을 학생들까지 고등학교 3학년까지 투입한 노력 대비 생애 소득이 가장 높은 학과 선택을 하니, 더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의대 쏠림 자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였고, 따라서 한 세대 가까이 이어진 현상이다. 다만 문과 이과를 구분하던 시기엔, 의대 쏠림 현상을 언론이 이공계 기피라고 불렀고, 문과 이과 구분이 사라진 시기엔 의대 쏠림이라고 할 뿐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의대에 진학한 뒤에도 다시 ‘가성비’를 따지게 됐다. 이른바 필수 의료와 상업적인 미용 시술, 사이에서 ‘가성비’가 높은 선택은 아무래도 후자다. 의사가 된 이후 쏟는 노력 및 감수하는 위험의 총량 대비 생애 소득 및 편안함을 따져 보면, 후자가 낫다. 예전에는, 그래도 어떤 종류의 계량하기 힘든 무엇인가 때문에 ‘가성비’ 낮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흔했다. 체면일 수도, 명예나 사명감일 수도, 혹은 속된 말로 ‘가오’일 수도, 아니면 그냥 튀기 싫은 무던한 성향 때문일 수도 있다. 냉소적으로 이야기하면, 삶의 하한선이 높게 설정돼 있으니 돈보다 ‘가오’를 택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할 수 있겠다.

‘선 넘은’ 가성비… 본질에서 벗어난 업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세계에서도 ‘가성비’의 논리가 선을 넘어 버렸다. 가성비 낮은 필수 의료보다 가성비 높은 미용 시술을 택하는 게 단지 영리한 수준을 넘어 오히려 자랑스러운 선택이라는 게다.

이런 분위기를 다들 아는데, 아무런 보완 장치 없이 의대 정원만 늘린다고 했으니, 어리둥절했을 밖에, ‘가성비’ 측면에서 과학기술 연구보다 라이센스가 낫고, 그 안에서도 필수의료보다 미용시술이 낫다는 걸 이제는 누구나 안다. 필수의료가 미용시술보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가 렌트시킹이 가능한 라이센스보다 ‘가성비’ 측면에서 낫다는 인식이 없는 바탕에서, 무작정 의대 정원만 늘리면, 의대 쏠림은 더 심해지고, 의대 안에서도 미용시술 쏠림은 더 심해져, 결국 의료의 상업화만 가속화하리라는 건, 그냥 중학생도 내다볼 수 있는 일이다.

경제학자 김세직 교수는 대략 5년마다 경제성장률이 1%씩 줄어드는데, 이런 경향은 민주당 계열이건 국힘 계열이건 관계없이 관철된다고 이야기한다. 실제 통계를 보면 그렇다. 정권 바뀔 때마다 경제성장률이 대략 1%씩 줄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곧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가 된다. 성장이 멈추면, 모험적인 혁신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의 기댓값이 줄어든다. 따라서 도전과 혁신보다는 지대 추구가, 다시 말해 이미 확보한 기득권을 깨끗이 우려먹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가성비’의 논리가 극단에 치닫기 쉽다.

모든 개인이 ‘가성비’의 논리를 내면화한 사회에선,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린다고 해도, 의대 선호도는 여전히 높은데 정작 필수 의료는 기피하는 기현상은 바뀌지 않으리라는 이야기를 앞에서 했다. 물론 파괴적인 수준으로까지 늘린다면 달라질 수도 있겠으나, 애초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설령 가능해도 그렇게 되면 다른 더 큰 부작용이 생긴다.

‘가성비’가 개인의 가치관이 되는 순간, 의사가 늘어나고 사회가 의료에 쏟는 총비용이 확대돼도, 정작 위태로운 생명은 방치될 수 있다. 이른바 ‘업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가성비 그 너머에 있는 것, 가령 기본권과 공동체

그리고 이런 현상은 의료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나고 자라며 배우고 보호받는 전 과정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결같이 나타난다. 교육, 보육, 치안, 소방 등이 대개 그렇다. 업의 본질이 흔들린다는 경고음이 계속 울리는데, 우리 사회는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 ‘가성비’를 가치관으로 받아들인 개인의 등장이 그 배경에 있다.

아, 그러니까 너는 지금 숭고한 사명감을 내세워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구나! 가성비 알뜰하게 따지는 게 뭐가 나쁘나는 거야? 받은 만큼 일한다는 게 틀렸다는 거야? 라고 할지 모르겠다.

음, 그렇지 않다. 월급 받고 일하면 누구나 노동자인데,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이는 ‘가성비’ 따질 필요 없는, 그냥 헌법상 기본권 영역이다. 지금껏 ‘가성비’ 낮은 처우를 받았다고 여긴다면, 이는 헌법상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법상 기본권 문제를 ‘가성비’로 접근하면 약삭빠른 이들만 혜택을 본다. 계산하기 싫어하는 우직한 사람들, 혹은 사회에서 존재감이 약한 ‘투명인간’들에겐 혜택이 돌아오지 않는다. 기본권을 ‘가성비’로 접근하면 안 된다.

그리고 업의 본질은 ‘가성비’ 계산이 통하는 세계와는 아예 다른 차원이다. 의료, 교육, 보육, 치안, 소방 등의 업은 그 본질이 ‘가성비’의 세계 바깥에 있다. 가성비의 시대에, 가성비의 논리가 통할 수 없는 업에서 생기는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는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올 한 해 내내 이어진 의료 대란이 확인해 준 사실이라고 본다. 명예, 체면, 가오, 사명감 또는 보람 충족, 아니면 환대…무엇이 됐건,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보상 방식에 대한 합의와 인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의료나 교육처럼 업의 본질이 가성비의 세계 바깥에 있는 직종에선 의미 있는 변화가 불가능할 테다.

가성비와 먼 대표적 직업, ‘군인’

방금 의료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 ‘가성비’의 세계와 멀리 떨어진 직업이 군인이라고 본다. 특히 위험한 임무에 목숨을 거는 특수부대 요원. 가장 뛰어난 역량을 지녔는데, 가장 큰 위험을 감당한다. 그래봤자 월급은 군인 계급 구간 안쪽이다. ‘가성비’의 논리와는 완전히 상극이다. 가장 힘든 훈련을 받고,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갖췄으며, 가장 큰 위험을 감수했다면, 가장 큰 보상을 받아야 ‘가성비’의 논리에 맞다. 하지만 특수부대 요원은 정반대다. 오히려 목숨을 잃거나 다치기 쉽다. 이런 불합리를 정당화하는 게 명예, 혹은 다른 무형의 보상이다. 체면, 가오, 긍지, 자부심, 환대…등.

그런데 12.3 사태로, ‘가성비’의 논리를 덮을 수 있는 무형의 보상이 사라져 버렸다. 군대가, 특히 특수부대가 유지될 수 있을까.

개인의 삶에서 ‘가성비’ 따지는 논리는, 바꿔 말하면 보상 심리다. 아니면 본전 생각. 내가 시험 준비, 또는 스펙 쌓기에 이만큼 노력을 쏟았으니, 합격 이후엔 이 정도는 누려야 하고, 그게 곧 정의라는 생각이 대표적이다. 요컨대 이런 생각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받는 보상이 현재 노동의 대가, 또는 현재 감수한 위험의 대가라고 보지 않는다. 과거 쏟아 넣은 본전 찾기라고 본다. 이런 생각이 이젠 주류에 가까워졌다.

그런데 군인, 특히 특수부대 요원까지 보상 심리, 혹은 본전 생각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혹독한 훈련, 가족과의 단절, 생명을 잃을 위험, 그 희생에 대해 ‘가성비’ 제대로 따져서 보상해 달라고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역사에선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대개는 나라가 망한다. 애초 눈에 보이는 보상이 불가능한 탓이다. 명예와 자부심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사람을 기르고 가르치고 보호하는 업에 대해선, ‘가성비’ 계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명예와 자부심을 확고하게 보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무너진다.

극단적 가성비의 딜레마, 기업 경쟁력의 경우

상대적으로 공적 성격이 덜한 업에서도, 구성원이 극단적인 ‘가성비’ 논리에 빠지면 경쟁력이 유지될 수 없다. 대기업 직원이 지금 하는 일의 성과가 아니라, 취업 준비에 쏟은 노력에 따른 보상을 달라고 하면, 요컨대 성과는 엉망인데 스펙은 찬란한 직원이 본전 생각 때문에 높은 보상을 요구하는데, 그게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사회 정의로 통하는 분위기가 돼 버렸다면, 기업도 결국 어려워진다. 실제로 기업 관계자들이 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쩌다 ‘가성비’의 논리를 가치관으로 받아들이게 됐을까. 물론, 유난히 잇속을 잘 챙기는 사람, 유난히 약삭빠른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흔했을 테다. 다만 시대마다 주류 가치관이 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컨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엔, ‘가성비’의 논리, 본전 생각, 보상 심리 등이 주류 가치관에 가까워졌다.

반면 그 이전에는 가치관이 좀 달랐다. 이 정도 차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필요한 업이 바로 역사가다. 생각과 문화의 변화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일어나는 탓에 일상에선 체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역사를 살피는 시각으론, 변화의 계기와 폭, 가속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미국 역사가 게르 거스틀이 쓴 [뉴딜과 신자유주의 – 새로운 정치 질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2022) 라는 책이 있다. 제목에도 언급된 ‘정치 질서’라는 개념이 아주 중요하다. 요컨대 뉴딜은, 혹은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몇 가지 정책의 조합 혹은 이념 선전이 아니다. 특정 정당의 주장 역시 아니다. 역사 속의 뉴딜, 혹은 신자유주의는 여당이 세게 밀어붙이는데 야당은 반대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당과 야당이 선명성 경쟁을 하는 이슈에 가까웠다. 이 책에 따르면, 뉴딜 정치질서가 확립된 것은 민주당이 아닌 아이젠하워의 공화당 정부 시기였다. 또 신자유주의 정치질서가 확립된 것 역시 공화당이 아닌 민주당의 클린턴 정부 시기였다. ‘정치 질서’ 개념을 한국에 적용한다면,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성비 시대 이후 바뀐 정치 질서

예전에는 직장 업무가 아닌 개인 삶에서 ‘가성비’를 너무 꼼꼼히 계산하는 태도가 어딘지 쪼잔한 느낌, 그릇이 작아서 큰일은 하지 못할 사람이라는 느낌을 줬는데, 외환위기 이후엔 분위기가 바뀌었다. 합리적인 느낌, 쿨한 느낌, 세심한 느낌으로 통한다. 시민 개인의 가치관과 정서가 바뀐 것인데, 가만히 보니 정치 문화와 제도 역시 그에 조응해 변화해 왔다. 그렇다면, 한국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정치 질서’가 바뀐 것이다.

그리고 클린턴 정부에서 확립된 신자유주의 정치질서는 이제 해체 국면이다. 소설 [삼국지연의] 도입부를 보면,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이라는 말이 나온다. 말 그대로 천하는 분열한 지 오래되면 통일되고, 통일한 지 오래되면 분열한다는 이야기다. 분열한 천하가 하나로 합쳐질 때 생기는 효과는, 여불위라는 상업자본과 손잡고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잘 보여줬다. 지역마다 달랐던 도량형이 통일되고, 수레바퀴의 축이 통일돼 천하가 하나의 시장으로 묶였다.

신자유주의 시대도 비슷했다.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으로 갈라졌던 천하가 하나로 묶였다. 그러니까 여러 표준과 규제도, 마치 진시황의 시대처럼 통일됐다. 투자와 거래의 장벽이 낮아졌으므로, 분업은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이뤄졌다. 분업은 높은 효율을 보장한다. 분업이 거대하게 이뤄진다면, 효율 역시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그래서 생긴 이익도 커진다. 그 이익이 고르게 분배되긴 어려웠던 게 또 신자유주의 정치질서의 특징이었다.

대처와 레이건 (1981).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를 상징하는 부자 감세와 낙수효과는 신자유주의를 상징하는 정책과 표어가 됐다. 역사적 사기극.

신자유주의 질서의 종언

아울러 제조업의 분업이 글로벌하게 이뤄졌을 때, 기술을 배우고 힘을 기른 건, 세계의 공장 노릇을 했던 중국이었다. 이른바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인내하면서 때를 기다린다는 뜻)의 시대였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중국 공산당이 노선을 바꿔. 국진민퇴를 선언했다.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중국을 띄어올리는 날까지 기다리지 않겠다는 게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중국 역사의 백년 국치를 씻고 새로운 맹주가 되겠다고 했다.

합구필분의 시대가 열렸다. 소련 붕괴 이후 세계가 하나로 합친 지 오래됐으니, 이제 분열할 때다. 미국에선 보호무역을 신봉하는 트럼프가 나타났다. 천하 여러 제후를 이끌고 조율하는 춘추 시대의 맹주가 아니라, 전국 시대의 강국 가운데 하나가 되겠다고 했다. 신자유주의 정치질서는 끝났다.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인에게 익숙한 신자유주의 시대의 가치관과 문화는 그 이전 뉴딜 시대엔 비주류였다. 그리고 이제 다시 비주류가 됐다. 우리가 기껏 적응한, 이제 흠뻑 젖어 든 ‘가성비’의 논리는 머지않아 글로벌 기준으로도 비주류가 될 것이다.

‘가성비’의 논리가 퇴조한 자리에 명예, 환대, 긍지 같은 아름다운 가치가 들어설까. 그건 모를 일이다. 신자유주의가 퇴조한 미국에서 들어선 트럼프주의는 별로 아름답지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 ‘가성비’의 논리를 대체할 문화와 가치관 역시 꼭 아름다우리라는 법은 없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저열할 수도.

개와 늑대의 시간

중요한 것은 지금이 옛 질서가 무너지고, 새 질서는 안 보이는,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점이다.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이 길의 끝에 작게나마 희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옛 질서와 새 질서, 바꿔 말하면 6공화국과 7공화국일 수도 있겠지. 다들 알다시피, 6공화국은 1987년 6월항쟁의 산물이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 심판을 하는 절차 자체가 6공화국 헌법에서 처음 도입됐다.

공교롭게도 6공화국 체제의 수혜자는 대체로 6월 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주도했던 세력과 겹친다. 당시는 대학생 비율이 낮던 시절인데, 대학을 나온 사무직, 그리고 대공장의 정규직이 대체로 6공화국 체제에서 상위 중산층을 형성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질서에 편입하면서 누린 혜택이 주로 돌아간 것도 이들 계층이다. 수출 대기업 성장의 낙수 효과가 미친 범위가 대략 이 범위였다.

반면, 상위 중산층을 이루는 전문직, 대기업 정규직, 공공 부문 종사자와 나머지 사이의 간극은 꾸준히 확대됐다. 그리고 전문직, 정규직 지위에 진입하는 관문인 몇 가지 시험인데, 1987년의 주역이었던 상위 중산층 부모들은 자녀가 그 관문을 통과하도록 치열한 뒷바라지를 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은 부모 지원 속에서 자신이 노력해 얻은 지위에 대해 보상 심리, 본전 생각을 품게 됐다. 가성비의 논리를 내면화했다.

나라 안에선 여전히 개인이 주판 튕기는 가성비의 시대, 나라 밖에선 단체로 주판을 깨는 힘의 논리. 그 엇박자를 어떻게 극복할 건가. 나도 모르지. 다만, 이번 내란을 계기로 제7공화국이 출범한다면, 내란에 맞서 제7공화국을 세운 주역들을 조금 더 선명히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학생, 화이트칼라, 대공장 정규직, 훗날 다수가 상위 중산층에 편입되는 그들이 주로 부각됐던 1987년과 달리, 이번에는 더 다양한 이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고학력 중산층 정규직만이 아니었다. 탄핵 떡을 빚어 광장에 나선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 트랙터 몰고 남태령 고개를 넘은 농민들, 다양한 소수자들이 추위 속에서 목소리를 냈다. 혹시라도, 제7공화국이 출범한다면, 도시 쪽방촌과 젊은이가 사라진 농촌도 지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지분에 걸맞은 혜택도 누려야 한다.

어떤 시대가 오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

한국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정치질서가 해체된다면, 새로운 정치질서는 트럼프의 시대, 보호무역과 국진민퇴의 시대 속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아울러 기후 위기와 인공지능의 시대와 조응하며 만들어질 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란, 달리 말하면 에너지 전쟁의 시대다. 인공지능이 그냥 호사가의 관심거리가 아니라 실제 생활의 일부가 된다면, 정말 천문학적인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에너지를 끌어내려면 막대한 자원이 필요하고 결국 기후 위기 대응과 양립하기 어렵다.

앞서 17세기 조선에서 벌어진 이괄의 난 이야기를 했다.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있었던 17세기를 거치며 조선 사회의 가치관과 질서가 큰 변화를 겪었다.

지금 우리의 화두가 기후변화인데, 17세기도 그랬다. 영국에선 템즈강이 얼어붙었고, 대륙에선 기근이 덮쳤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 만주 팔기군은 거의 조선 파발마의 꼬리를 따라잡는 속도로 진격했는데, 그 역시 어느 정도는 기후 변화 때문이었다.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한강이 다 꽁꽁 얼어 붙었으니까, 기마대가 평지를 달리듯 뛰었다. 역사는 기후가 바뀔 때마다 정치와 경제 질서도 함께 바뀐다고 알려준다.

게다가 기후 위기 대응은 세계가 하나로 뭉쳐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에너지 전쟁의 시대엔 그 반대 흐름이 강해질 것이다. 제한된 에너지 자원을 놓고 각국이 각축해야 하니, 합구필분의 시대가 오래 가겠지. 이 같은 모순 속에서 6공화국 이후의 정치질서가 만들어질 테고, 그 위에서 경제가 작동할 텐데, 세계화 시대의 수출 경제에 익숙한 한국에겐 낯선 도전이겠다.

물론, 어찌어찌 길을 찾겠으나, 그래서 성공했을 때, 새로운 정치질서가 잉태되는 순간에 있었던 이들을 고르게 기억하기를 바란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물론 많이 있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어려운 형편에도 떡을 나눈 쪽방촌 주민들, 딱히 소속을 밝히기 민망했던 백수 청년들, 아이가 사라진 농촌 주민들, 어쩌면 성문 밖 사람들, 그들의 몫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기억도 일종의 투쟁이고 정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렇다면 남태령 고개의 추위 속에서 함께했던 성문 밖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도 중요한 투쟁이고 정치일 게다. 남태령 영상 접하고 글이 너무 길어졌다. 1박 2일 추위 속에서 고생하신 분들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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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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