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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꺾정 칼럼 32화] 개헌, 과정이 중요하다. (장선화 고려대 정치연구소 연구교수) (⏳4분)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정확한 명칭은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원안에서 수사대상을 축소하고 특검후보 ‘제3자 추천’ 수용 등으로 수정된 법안이다. 표결에 불참한 여당은 특별감찰관(특감) 추천 절차에 들어가는 한편 대통령에게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건의하기로 했다.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후 국회 재표결에 들어가게 되면 국민의힘에서 최소 8석 이상 이탈표가 나오지 않는 이상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야당은 여당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수정안을 거부하는 여당을 비난하고, 여당은 애초에 수정 가능한 안을 내놓은 셈이라고 야당을 비하한다. 한동훈 대표가 당정 갈등을 봉합하고 특감을 강조하면서 특검에 대한 국회 내 합의는 어려워졌다.

특검의 차선책으로 야당은 임기단축 개헌을 들고나왔다. 특검과 탄핵에 이어 이제 당분간 개헌 이슈가 정국을 압도할 것이다. 개헌 논의 봇물이 터지자 당장 중앙과 지방 각급 학계 및 시민사회에서 개헌 관련 토론회가 개최되고 있다. ‘87년 체제’ 개혁을 위한 개헌의 필요성은 그간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도 꾸준히 제기되어왔기 때문에 이 기회에 개헌 논의를 확장시키려는 시도이다.

1987년 6월 26일 서울역 주변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학생과 시민들. 출처는 보도사진연감.

하지만 지금 야당이 검토하는 개헌은 철저히 정치적 손익 계산에 기초한 원포인트 +α의 개혁이지 87년 체제를 시대에 맞게 개혁하자는 숙고에 기초한 안이 아니다. 현직 대통령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안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만일 개헌 국민투표가 통과된다면 주요 야당 대표의 사법적 판결이 최종 확정되기 전 조기 대선이 치러질 수 있다.

야당의 계산대로라면 유력한 대선후보의 온존을 통해 차기 정권 획득이 가능할 것이다. 무능한 정권 심판과 국민주권 실현을 위해서라지만, 실질적으로는 과반을 훌쩍 넘는 거야로 구성된 국회 역시 국민이 위임한 대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무능을 자인하고 결국 국민 스스로 책임지는 선택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성급하게.

제도는 충분조건이 아니다

필자를 비롯해 지식인, 전문가, 개혁적 정치인들은 대체로 법·제도 개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중심에 개헌 논의가 있다. 4년 중임 대통령제 혹은 결선투표제 도입, 이원집정부제 혹은 의원내각제로의 통치체제 전환 등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설계를 통해 해법을 찾는다.

하지만 민주주의 원칙의 유지와 정상적 작동을 위해 제도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한국뿐 아니라 대안으로 여겨지는 제도를 운용해 온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정치 양극화 현상과 더불어 민주적 규범에 도전하는 정치인이 당선되는 사례가 빈번하다(우리는 트럼프 시대를 다시 맞이하고 있지 않은가!).

그가 다시 온다.

중요한 것은 민주정의 핵심 주체인 정당과 정치엘리트의 자기 규율과 규범적 합의이다. 기성 정당 정치 엘리트들 간에 민주적 원칙에 따르고자 하는 규범적 합의가 없을 때, 자신에게 유리하다면 편법과 제도 우회를 불사하는 대결의 정치가 펼쳐진다. 기성 정당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정치적 신뢰는 약화되고,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정치인들은 이 틈새를 파고들어 포퓰리즘적 정치를 펼친다.

문제는 정치리더십?

문제는 소위 팬덤정치에 편승한 포퓰리스트 정치지도자들이다. 적극적 소수의 편향된 지지에 의존하는 지도자들은 다수의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백석의 시 “귀머거리 너구리”에서 귀 밝고 눈 밝은 짐승들은 웬만한 일에는 꿈쩍하지 않는 너구리가 용감한 줄 알고 대장으로 삼았다가 귀먹어 그랬던 것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한다.

귀머거리 너구리야 몽둥이 든 사람들이 개를 앞세우고 오는 것을 보자 맨 먼저 겁을 먹고 도망가 본색을 드러냈지만, 우리 대통령은 지지율 20%가 붕괴하고 시국선언이 이어지며 탄핵 연대가 출범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의연하니 선출직 공직자로서 자각이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어찌 됐든 사과합니다?

개헌, 결과보다 중요한 정치 개혁 과정

탄핵, 임기단축 개헌 등 논의가 한창이지만 권력을 둘러싼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춰진다면 상황이 나아질 것은 없다. 대통령 지지율만 낮은 것이 아니라 국회 신뢰도 역시 20% 대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OECD 2024년 공공기관 신뢰도 조사).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탄핵 강행이 정치적 부담인 것은 여야도 마찬가지이다. 성급한 국민투표 회부가 성사된다고 해도 결과와 무관하게 통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여야가 끝까지 대치한 끝에 개헌이 관철된다면, 결과가 무엇이든 우리는 다시 양극화와 정치 불신의 큰 벽에 부딪힐 것이다.

하지만 87년이후 권력제한과 정부 안정성을 위해 채택한 5년 단임제하에서 여야의 대치 끝에 대통령 탄핵의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 벌써 세 번째임을 감안할 때, 현행 대통령제가 변화한 정치 현실에 부합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개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다.

첫째, 개헌의 근본적 필요성에 대해 여야가 합의하고 여당은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낼 필요가 있다. 거야와 소수 여당의 이탈표에 의해 일방향적으로 개헌이 추진된다면 당장의 정치권력 교체를 위한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며,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오랜 기간 주창해 온 개헌의 시의성과 그 의미가 희석될 것이다.

둘째, 국민투표 표결을 거친다면 그에 앞서 충실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제도 제·개정 내용과 절차를 정치적 결정에 맡긴다면 의회 내 다수 의석을 보유한 기성 정치 세력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국민투표에 회부할 경우, 유권자들이 대안 선택에 관여하는 숙의 절차를 도입하고, 대안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검토할 기회를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적 개헌 위원회를 설치, 대안에 대한 전문가 의견 청취, 국민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합당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최종 결정에 대한 여야 정치세력들의 승복이다. 다수결에 의한 결정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규범적 합의에 의해 정당성을 온전히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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