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은 칼럼] 데면데면했던 메르켈, 황금 골프채 들고 갔던 아베, 윤석열의 전략은? (⌚6분)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보복 인사’가 될 거라는 미국 언론 보도가 많다. 1기 인사들 가운데 트럼프에 등 돌린 사람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 국가안보보좌관 등등 트럼프 1기 인사들이 줄줄이 트럼프의 인격과 능력을 비난하면서 트럼프를 버렸다. 심지어 비서실장 했던 사람이 최근 트럼프를 “파시스트의 정의에 부합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이겼다. 그것도 큰 표차로 이겼다.
나는 해리스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일단은 민주당의 패배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민주당은 세대교체에 실패해 8년 전 힐러리 클린턴이 나왔고 4년 전과 이번에 바이든이 나왔다(중도 사퇴했지만). 새로운 지도자가 돼야 할 사람들은 여성과 마이너리티다.
문제라기보다는 혼란의 시대와 불만의 시대를 이끌 카리스마와 비전이 없었기 때문에 졌다. 공화당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정통 보수는 몰락하고 트럼프라는 이단아의 당이 돼버렸다.
어떤 학자는 정권 차원이 아니라 바로 그 혼란의 시대와 불만의 시대 자체에 초점을 맞추며 정치 질서가 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요즘 읽고 있는 게리 거스틀은 ‘뉴딜과 신자유주의'(2024)에서 1930~1970년대의 뉴딜 질서와 그 이후의 신자유주의 질서가 무너지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치적 혼돈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그 불만과 혼란을 양분으로 삼았다. 그리고 나머지 세계가 어떻게 생각하든 ‘아메리카 퍼스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비전’을 미국인들에게 던져줬다. 그리고 나머지 세계는 더 불안해졌다.
외교안보 라인
외교안보 정책을 놓고 공화당이 통일된 입장은 아니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데, 공화당 내에서는 국가안보 분야의 매파, 즉 미국이 미워하는 나라들을 손 봐줘야 한다는 쪽과 전통적인 ‘고립주의’ 쪽이 갈린다.
국무부 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누구를 시킬지 봐야 할 텐데 국무부 장관은 대중국 강경파이자 러닝메이트 후보로 거론됐던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주 상원 의원)와 트럼프의 첫 임기 동안 일본 주재 대사를 지낸 빌 해거티(테네시주 상원 의원)가 거론되고 있다.
리처드 그리넬이라는 이름도 많이 보인다. 트럼프 때 국가정보국장(DNI) 대행이었다. 미국에는 정보기관의 대명사 격인 CIA나 국방부 국방정보국 DIA 등등 18개의 정보 관련 기관과 부서가 있다. 이들 정보공동체가 모아들인 정보를 모두 모아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 국가정보국장이다.
그 역할을 맡았던 그리넬은 국가안보나 정보 분야 전문성도 없었고 논란만 일으켰던 인물이다. 정치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폭스뉴스 등에 출연해 우파 논객으로 이름을 알렸다. 트위터에서 트럼프를 비판하다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극찬 모드로 돌아서더니 덜커덕 독일 대사 자리를 받았다. 대사가 되어서는 유럽 극우파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서 메르켈 정부를 경악하게 했다.
지금껏 충성하더니 이번에 여기저기 자리에 하마평에 오른다. 지난 9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가 만날 때도 동석했다. 정보 쪽이든 외교안보 쪽이든 뭔가 할 거 같기는 하니, 우리 입장에선 눈여겨 보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1기 때 독일에 국방비를 더 내라고 난리를 쳤는데, 독일 주둔 미군 규모를 줄여 ‘돈 안 내는 독일을 벌주자’는 것이 독일 대사였던 그리넬의 지론이었다. 그런 사람이 국무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국방부장관 후보들
트럼프 백악관의 국가안보보좌관을 한 로버트 오브라이언이 지난주에 공화당 의원들한테 몇몇 사람들을 내각 주요 직책과 관련해 얘기했다고 하는데 국방장관 후보로는 톰 코튼(아칸소주 상원 의원)을 거론했다고 한다.
미국은 문민통제 원칙에 따라 직업군인 출신이나 전역한 지 7년 이내이면 국방부 장관을 맡기지 않는 게 룰이었지만 트럼프가 1기 때 이미 다 깨뜨렸다. 톰 코튼은 전직 장성은 아니고 하버드 로스쿨을 나와서 로펌에 잠시 근무했다. 아칸소 하원의원을 거쳐 상원의원을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참전 군인 출신이고 상원에서도 군사위에서 활동해 왔다.
2006년 6월, 코튼이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을 때, 뉴욕타임스 편집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정부의 테러 감시 시스템을 비판한 기자들을 “간첩법 위반으로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마이크 왈츠(플로리다주 하원의원)와 존 래트클리프(전 국가정보국장), 마이크 폼페이오(전 국무부 장관) 등등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 요직에 거론된다.
키스 켈로그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군 장성 출신이고 트럼프 1기 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지냈다. 이번 선거에서는 트럼프의 정책 고문 역할을 했다. 올 초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을 잘 안 하는 나라는 나토 회원이더라도 보호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동맹의 의미를 흔드는 발언을 했다. 그때 켈로그가 나서서 편을 들었다기보다는 일종의 ‘부연 설명’을 했다.
나토: 구심점 없는 유럽연합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은 방위비 기준 목표(국내총생산 대비 2%)가 있는데 다들 안 내는 게 현실이다. ‘안보무임승차’를 한다는 것이 미국의 계속된 불만이었다. 켈로그는 ‘3조(방위비 분담)를 안 지키면 5조(집단방위)에서 제외하겠다’고 했다.
돈 안 내면 집단방위를 담은 5조가 자동 적용되지 못하게 하겠다, 즉 누가 쳐들어 와도 안 지켜주겠다, 그리고 분담금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장비 공유나 훈련에서도 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2025년 6월에 나토 미래를 논의하는 회의를 해야한다며 나토 조약 준수를 토대로 ‘계층화된(tiered) 된 동맹’을 얘기했다. 나토 회원국들을 돈 내는 정도에 따라 차등화하자는 것이다.
그게 트럼프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될지는 모르지만, 암튼 나토는 지금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나토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는 미국 대선 결과가 다 나오기도 전에 트럼프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트럼프의 리더십은 다시 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속 보이는 말을 했다. 뤼터는 14년 동안 네덜란드 총리를 하다가 지난달 나토 사무총장이 됐는데 유럽에서 트럼프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라는 평이 있었다. (그래서 나토 사무총장을 맡긴 것 아닐까.)
나토 파트너들을 비롯해 유럽 쪽 상황이 트럼프를 상대하기에 지금 좋지 않다.
일단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이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지원과 거리를 둬왔다(워낙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인물이라 집권 뒤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트럼프가 푸틴에 친화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러시아는 유럽에는 직접적인 위협이지만 미국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
유럽연합 27개국이 연일 회의를 갖고 트럼프 2기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는데, 구심점이 없다.
트럼프 1기 때는 앙겔라 메르켈(당시 독일 총리)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올라프 숄츠(독일 총리)는 내부 문제로 힘이 빠진 신세다. 지난번 일부 지방선거에서 사민당은 참패했고 유럽을 규합할 처지가 못 된다. 프랑스의 마크롱은 트럼프와 코드가 안 맞고, 프랑스 대통령이 뭐 한다고 나서서 잘하는 혹은 잘되는 꼴을 본 적이 없다. 역시 자국 선거에서 힘이 다 빠진 처지다. 영국의 키어 스타머(노동당 총리)는 트럼프랑 맞기 힘들 것 같고, 무엇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유럽에서 말발이 먹힐 리가 없잖은가.
그리고 중동과 팔레스타인… 마음 아플 뿐
중동은 어쩌나. 그게 걱정이다. 트럼프 승리가 확정되기도 전에 맨 먼저 X에 축하글 올리고 통화한 사람이 네타냐후(이스라엘 총리)와 마크롱이었다고 한다. 네타냐후는 자기 편들어주기를 바라겠지. 다만 1기 때 이스라엘 편에서 아랍과의 수교안 등을 내놨던 재러드 쿠슈너는 이제 정치권 바깥(?)으로 나간 듯하다.
가자지구 주민들을 생각하면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8년 반체제 언론인 카슈끄지의 잔혹한 살해 사건 이후 조 바이든 정부와 사이가 안 좋았다. 바이든은 특히 MBS(무하마드 빈 살만)와는 통화도 안 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올라가니까 관계를 풀려고 사우디에 찾아갔지만 여전히 싸늘했고. 그랬던 MBS가, 트럼프와는 곧바로 6일 통화를 했다고 한다(그러고 보면 바이든 정부는 너무 편 가르기를 해서 여기저기 척을 졌다는 생각이 더더욱 강해진다).
아베 모델 vs. 메르켈 모델
미국 언론에서 웃긴 구절을 보았는데, ‘누가 먼저 선물 들고 달려가느냐’에 ‘아베 모델’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아베 신조(당시 일본 총리)가 뉴욕에 가서 트럼프타워에서 트럼프를 만났는데 축하 선물로 금 도금된 골프채 세트를 들고 갔다고 한다. 어쨌든 그러고 나서 둘이 굉장히 잘 지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에 각국 정상들이 일제히 그걸 모델 삼아 ‘선물 공세’를 할 거라나.
반면 각국 지도자들이 피하고 있는 것은 메르켈 모델이라고. 데면데면+이성적+신중하고+트럼프 갑질에 굴하지도 않고.
드미트리 페스코프(크렘린 대변인)는 7일까지 “아직 트럼프에 축하를 보낼 계획이 없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여하는 ‘비우호적인 국가’임을 강조했는데, 푸틴이 결국 대화할 준비가 돼있다는 말을 했다. 푸틴이 전쟁을 일으켜 놓고 우크라이나 출구전략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트럼프라는 존재가 일종의 출구가 돼줄까.
북한과 중국
미국 언론은 김정은 반응도 궁금해한다. 트럼프는 지난달 폭스뉴스에서 “(백악관에 있을 때)나는 김정은과 아주 잘 지냈다“고 했다. 물론 지금 북한은 그때랑 다르다. 핵 보유 공식화+ 번번이 미사일 실험을 하고 있으니. 트럼프가 다시 해빙무드를 이끌 수 있을까? 결국 중요한 건 한국 정부인데, 대통령이 윤석열이다.
젤 중요한 건 중국 문제다. 트럼프는 첫 임기 때 선거 기간 내내 중국 맹비난하다가, 마라라고에 초청해서 환대했다. 얼마 전에도 시진핑(중국 국가 주석)을 가리켜서 “내 임기 동안 아주 좋은 친구였다”고 했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했던 것, 코로나19가 퍼지니까 ‘중국 바이러스’라며 혐오 발언을 했던 것은 다 까먹어버리면 되지 뭐.)
시진핑은 일단 7일 트럼프와 통화하며 축하 인사를 했다. 트럼프는 선거 직전에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대만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력을 쓸 것이냐”는 질문에 “시진핑은 나를 존중하며, 내가 미치광이라는 것도 안다”는 식으로 말했다.
트럼프는 1기 때에 우리가 충분히 봤듯이 외교적 접근에서 프로세스에 얽매이지 않는다. 즉흥적이고. 그래서 섣불리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중국산 물품 관세를 안 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대선 기간에 공약한 게 있으니까. 하지만 인상하겠다는 내용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었고 미국 물가를 올리는 거니까 구체적으로 무역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갈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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