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바라’란 일본말은 원래 ‘소액 투자자’라는 말이지만 큰 흐름을 모르고 순간마다 시세에 파묻혀 성급한 매매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 비속어에 가까운 의미로 통용된다.

어제 3분기 성장률 발표를 지켜보면서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한국의 주요 경제 예측 기관들이 모두 ‘마바라’거나 ‘자기실현적’ 예측 기관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본다.

첫째, 1분기 성장률은 착시였다.


  • 올해 1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 1.3%, 전년 대비 3.3% 성장하자 경제 예측 기관들이 흥분해서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 하지만 현실은 반도체 감산에 따른 일시적인 가격 상승과 자동차 수출 증가라는 두 가지 요인이 핵심이었다. 경제 전반에 성장의 신호가 없는데 1분기 성장률 수치만 보고 갑자기 낙관론이 등장했다.

둘째, 정부가 설레발을 쳤다.


  • 김건희 이슈로 궁지에 몰려있던 윤석열 대통령은 보고 싶은 것만 봤다. “과거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이 눈앞의 현실이 된 것”이라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 지난 8월 국정브리핑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 “경제전문 매체 블룸버그는 우리 수출 증가를 ‘블록버스터급’이라며 한국 경제 붐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우리 경쟁력과 성장 추세를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 이때는 이미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는데도 개의치 않는 용기(?)를 발휘했다.
  • “지난 7월 IMF는 올해 우리의 성장률을 2.5%로 전망했는데, 이는 미국의 2.6%에 이어 주요 선진국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라고도 했다.

셋째, 한국은행과 KDI도 나섰다.


  • 한국은행은 지난 5월 올해 성장률 전망을 2.1%에서 2.5%로 높여 잡았다. “수출 중심으로 회복세 보다 뚜렷해지고, 소비 등 내수도 점차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었다.
  • KDI도 “수출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높은 증가세를 보이며 경기 회복세를 주도할 전망”이라며 올해 성장률 전망을 2.2%에서 2.6%로 올려 잡았다.
  • 이례적으로 빠르고 과감했다.

넷째, 민관 기관들도 따라갔다.


  • 민간은 한국은행과 KDI의 예측을 무시하기 어렵다.
  • 6월에는 현대경제연구원이 성장률 전망을 2.2%에서 2.7%로 높여 잡았고 한국경제연구원도 2.0%에서 2.4%로 높여 잡았다.
  • 그때까지만 해도 언론은 퍼 나르기 바빴다.

다섯째, “반도체의 겨울이 온다”는 모건스탠리 보고서.


  • 모건스탠리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 주가를 후려치자 일부 언론에서는 선행 매매 의혹을 제기했다. 동아일보는 “근거가 희박한 비관론이 멋대로 시장을 흔드는 상황에서 한국 증시의 밸류업은 실현되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SK하이닉스의 실적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지만 삼성전자에 대한 경고는 현실로 드러났다.

핵심은 이것이다.


  • 내수가 순수출 부진을 만회했지만 내수 회복세가 여전히 약하다. 특히 민간 부문 모멘텀이 부재한 상황이다.
  •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위축된다는 건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있다는 신호다. 빠른 쇼크형 전환이 아니라 완만한 계단식 하강 국면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 경제 전 분야가 침체에 돌입했다. 저성장의 원인이 구조적 요인이라는 게 핵심이다.

팩트를 보자.


  • 어제 한국은행이 3분기 성장률을 발표한 뒤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는 민간 기관이 늘었다.
  • 3분기 경제 전망은 웬만한 투자가라면 부진할 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상당수 기관이 정부와 보조를 맞추면서 심각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 경제 예측은 정치적 고려와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경제 예측은 환율과 금리, 투자, 소비, 자산 가격, 내년 예산안 등 경제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준다. 세계적으로 여러 연구기관은 독립적으로 전망치를 발표하고 경영진도 이 전망에 개입할 수 없다.
  • 스스로 ‘마바라’가 된 예측 기관들의 신뢰는 모두 무너졌다. 뼈저린 반성이 필요하다.
  • 코로나 팬데믹 이전 2% 성장도 어려웠던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더 큰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 미국보다 낮다.
  • 안전벨트를 꽉 조여 매고 겸손하게 새해를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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