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꺽정 칼럼] 정치적 교착상태, 제도적 해결 방안은 없는가.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이 글의 필자는 안용흔(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입니다.
무한반복 정치적 교착 상태
거대 야당 주도로 성안된 법안의 국회 통과와 이에 대한 소수정부(minority government)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또다시 야당 주도의 법안 통과와 대통령의 거부권 발동, 현재 한국은 급박한 정치, 경제 국면 속에서 마치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처럼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무한 반복의 정치적 교착상태(political deadlock)에 빠져 있다.
소수정부 상황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교착상태의 위험성은 30여 년 전 당시 정치 및 경제 불안의 총체적 난국에 빠진 신생민주주의 국가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한 저명한 정치학자에 의해 주목받았다. 이 난국을 극복할, 다시 말해 이를 야기하는 정치적 교착상태를 타개할 그의 처방은 이들 국가가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채택한 대통령제라는 정부형태에 맞춰졌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대다수 선진민주주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의회제와는 달리,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소속 정당이 의회 과반 의석을 확보 못했더라도 독자적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어서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소수정부가 빈번하게 출현하게 되고, 이는 정국을 여야 간 극단적 정치적 대립 상황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연립정부 구성, 현명한 정치적 선택으로 검증
여소야대 상황에 놓인 사례 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수의 대통령은, 대통령제에서 의회제로의 정부형태(권력구조) 전환이라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처방책을 따르기보다 이와는 다른 실현 가능한 정치적 선택을 통해 난국을 헤쳐 나가려 했다. 그것은 여타 다른 정당과의 연합에 기반한 연립정부(coalition government) 구성이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연립정부를 구성했던 이들의 정치적 결정은 그들의 바람대로 소수정부 상황보다 더 나은 정치·경제적 결실을 보았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소수정부와 연립정부의 거버넌스(governance) 수준을 비교·분석한 연구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연구 결과물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소수정부가 아닌 연립정부를 구성했던 것이 훨씬 현명한 정치적 선택이었음을 실증적으로 검증해 준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여러 연구기관, 싱크탱크(think tank), 그리고 국제기구와 민간기업 전문가 대상의 설문조사를 활용하여 평가, 측정한 각국 시민의 정치참여와 언론 및 표현의 자유 수준(참여와 책임성 지표),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질 및 정부의 정책 수립과 이행 능력 수준(정부 효율성 지표) 등의 거버넌스 지표 비교는 이들 간의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 준다.
연립정부 사례의 평균 “참여와 책임성” 지표는 소수정부 사례의 ‘0.04’보다 0.16이나 큰 ‘0.20’인 것으로 나타나며, 이는 통계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차이임을 확인해 준다. 정부의 정책 수립 및 집행 능력을 가늠하는 “정부 효율성” 지표에서 그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연립정부 사례의 평균 “정부 효율성” 지표는 ‘0.02’로 소수정부 사례의 ‘-0.24’보다 0.26이나 크다. 소수정부에 대한 연립정부의 우월성은 국정운영에 영향을 주는 정치, 경제, 사회적 요인들의 영향력을 통제한 상태에서 연립정부 효과를 분석한 패널분석에 의해서도 재확인된다.
왜 한국은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못하나
이렇듯, 국정운영에 있어서 연립정부가 소수정부보다 우월하다면 왜 한국의 집권정부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타 정당과 협력하여 연립정부를 구성하려는 정치적 선택을 단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대통령제 국가사례에서 연립정부 구성에 참여한 정당의 특성을 분석한 연구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한국의 정치적 교착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사실 하나를 찾아낸다.
그것은 차기 유력 대선 경쟁자가 있는 정당과는 연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달리 말해 소수정당 대통령이 협력 파트너로 선택하는 정당은 제3, 제4, 제5의 군소정당이다. 이들 군소정당은 두 거대 정당의 틈바구니에서 정책조정자 역할을 수행한다. 더 나아가, 연립정부에 참여함으로써 거대 정당이 대변하지 못하는 사회 내 다양한 시민들의 정치·경제적 이해를 정부정책으로 실현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제를 정부형태로 하는 신생민주주의 국가의 (유효) 정당 수를 국회 내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정당들의 의석률을 바탕으로 파악해 보면, 불행하게도 이들 연구 결과가 한국 상황에 예외없이 들어맞는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신생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연립정부가 구성된 사례의 유효 정당 수는 대략 평균적으로 4.91개에 이른다.
반면, 한국은 이에 턱없이 부족한 유효 정당 수를 보유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2.09개 그리고 최근 개원한 22대 국회에서는 2.23개에 불과한 유효 정당만이 국회라는 제도적 장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연립정부 구성과 같은 정당 간 협력 정치는 난망할 따름이다.
양당체제를 넘어서: 파격적 비례의석 확대 필요
그렇다면, 거대 양당체제에 가까운 한국 정당체제를 정당 간 협치가 가능해지는 다당체제로 변환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우리는 선거제도 개혁의 시동을 다시 걸어야 한다. 전체 300석 중에서 50석에도 못미치는 의원을 비례대표 의원으로 선출하는 탓에 비례 의석을 배정받지 못할 것을 우려한 거대 정당의 위성정당 창당 꼼수가 통하는 현행 의회 선거제도로는 다당체제는 요원한 현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제도에 대한 개혁 조치는 비례대표제 운영과 관련해서 크게 두 방향에서 논의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거대 정당이 위성정당 꼼수를 쓰지 못할 정도로 파격적으로 비례의석 수를 늘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위성정당 꼼수를 쓰는 정당에 정당 국고보조금 삭감과 같은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비례대표제 운영에 있어서 과감한 개혁 조치가 요구되는 것은, 정당체제와 선거제도 간 관계를 연구한 무수한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듯이, 다당체제 형성의 성패는 비례대표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