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비평] 정치적 표현의 자유 침해에 소극적인 헌재, 헌재를 힘들게 만드는 입법부.
흔히들 민주주의 꽃은 선거라고 표현합니다. 민주주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선거’가 반드시 필요하고 또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한국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정작 선거 시기에 유권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공직선거법이 유독 강조하는 규정 중에는 후보자에 대한 비방을 처벌한다는 내용이 포함됩니다.
선거 시기에 후보자에 대한 비판과 검증이 없어도 괜찮은가요? 비방과 비판은 다른 걸까요? 헌법재판소는 공직선거법 제250조 후보자비방죄의 적용 범위에 ‘후보자가 되려는 자’를 포함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윤현식(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이 해당 조항 자체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을 지적하지 못한 한계를 비평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공직선거법의 존재 의의
선거운동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선되기 위해서, 당선시키기 위해서, 또는 낙선시키기 위해서다. 공직선거법 제58조 제2항에서는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고 선거운동의 정의를 규정해놓고 있다. 낙선과 당선 사이에 중립은 없다. 모 아니면 도로 진행되는 선거운동은 과열되기 십상이다.
선거운동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하려고 만들어놓은 룰이 공직선거법이다. 공직선거법은 선거라는 정치적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공직선거법은 부당한 방식의 선거운동을 예방하고, 위법한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처벌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하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사안을 규정해놓기라도 하겠다는 듯, 현행 공직선거법은 각종 규제로 가득 차 있다.
공직선거법상의 각종 규제는 공정한 경쟁을 부정하고 민의를 왜곡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제어하는데 그 가치가 있다. 어떤 행위가 규제의 대상이 되는지를 명확하게 안다면 위법행위는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 반면 도대체 뭐가 규제의 대상인지를 알기가 쉽지 않다면 앗차 하는 순간 법을 위반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고, 더 심한 경우 애매한 법규를 우회하는 편법이 기승을 부리게 된다. 이때부터 룰을 지키려는 측과 이를 교묘히 이용하려는 측의 끝없는 각축이 일어난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법률 ‘명확성의 원칙’
공직선거법의 처벌규정 중 이러한 선거운동 자체가 위법행위의 목적이라고 정한 규정이 있다. 법 제250조 제1항은 “당선되거나 되게 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는 경우 처벌한다. 같은 조 제2항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할 경우 처벌한다. 한편 법 제251조는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하여 비방하면 처벌한다. 각각 5년 이하, 7년 이하, 3년 이하의 징역형이라는 강한 처벌이 동원되는 범죄행위인지라 그 주관적 구성요건이 명확해야 하기에 부득이 이러한 고의의 내용을 명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 목적에 따르면 사실상 선거운동 중에 터져 나오는 모든 말은 당선 혹은 낙선을 목표로 하는 것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상대방에 대해 언급하는 어떤 말이든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다. 의심스러운 전언에 대하여 그 확인을 요구하는 것은 허위사실의 유포가 될 수도 있다. 개인적 평가를 포함한 의견의 개진이 자칫 비방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 법원은 명예훼손의 요건인 ‘공연성’에 대하여 ‘전파의 가능성’도 처벌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1996. 7. 12. 선고 96도107). 온라인의 잠재적 확산성에 주의한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가능성만으로 공연성의 위험과 같은 위상에서 처벌하는 것은 형벌의 지나친 확대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선거에 참여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차후의 불이익이 걱정되므로 문제가 되는 족족 꼼꼼하게 선거관리위원회에 질의를 한다. 하지만 지방선거관리위원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똑같은 답을 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급기야 법정다툼으로 이어지고 그럴 때마다 법원은 일일이 사건별로 발화자의 지위와 위치, 그 말이 나온 때와 장소, 언급하게 된 배경과 맥락, 발화의 방식 등을 따져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나 법원조차도 이렇게 골머리를 앓는 마당에 법률의 해석에 관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보통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까지가 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정도로 혼란을 주는 법 규정이라면, 소위 ‘명확성의 원칙’을 충실히 담보하고 있는 법규인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바뀐 세상, 바뀌지 않는 시대착오적 규정들
연원을 살펴보면 이러한 규정이 만들어진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과도한 모욕과 거짓이 선거를 혼탁하게 만드는 동안 유권자들이 이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어 오도된 판단을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질적 하락을 경험했던 과거가 있었기에 이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고자 본 규정을 만들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유권자가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해졌고, 이를 유효하게 만들어줄 수단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법원 역시 누적된 판례를 통해 허위사실의 범위나 특히 후보자비방죄의 구성요건을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아무개를 빨갱이라고 하거나 쓰레기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표현 자체만으로 후보자비방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대법원 2021. 9. 16. 선고 2020도12861). 공직 재직 기간 중 치적을 ‘경력’으로 볼 것인지 ‘행위’로 볼 것인지에 따라 허위사실 여부가 갈리기도 한다(대법원 2015. 8. 19. 선고 2015도7349).
그렇다면 진작에 이 모호한 규정들이 정비되거나 폐지되었어도 좋았을 터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사실 이 문제는 입법부의 책임이 크다. 공직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을 기득권 유지에 최적화하는데 골몰하는 국회가 이 규정을 온존시키고 있는 주범이다.
예를 들어 법 제251조의 경우, 형법상 명예훼손죄나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사이버 명예훼손죄와 중복됨으로써 이중처벌의 위험이 상존한다. 그렇다면 백보 양보해서 다른 법률에서 그 제한이 모호한 허위사실의 유포의 죄는 존치하더라도 법 제251조 사실적시에 의한 후보자비방죄는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다.
사실 법 제250조 역시 마찬가지다. 기왕에 선거가 이루어지는 공간에서는 최대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검증의 주체는 유권자이며, 유권자의 최종 결정이 당락을 좌우하게 된다. 그렇다면 후보의 자질과 공약의 적합성을 따져볼 수 있는 기회가 최대한 많이 유권자에게 부여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했거나 비방을 한 자들을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 당선된 사람들이 바로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들이다.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정치의 사법화
그런데 현재의 입법부는 이러한 과정 자체를 회피하려 한다. 대신 잡음 없고 편의적인 선거 관리를 선호한다. 이러한 방식은 특히 기득권을 선취한 자들에 대한 검증을 협소하게 만드는 효과를 유발한다. 새로 정치권에 진입하고자 하는 신인들보다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인사로서 검증해야 할 사건 사고의 양과 질이 상대적으로 많은 게 현역 의원들이다.
당연히 이들에게 해명을 요구해야 할 사안은 더 많을 수밖에 없고, 그러한 요구 중에는 허위임에도 떠도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고 과격한 견해표명이 수반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들을 정치적 논쟁으로 해결하고 유권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흠결이 보인다 싶으면 정치적 논쟁은 생략한 채 바로 사법부에 죄의 여부를 판단토록 돌려버릴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이들 규정이다.
법이 이렇게 되어 있음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해악은 다름 아니라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이다. 포괄적으로 죄가 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죄가 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후보자든 선거 운동원이든 유권자든 자신의 말과 행동이 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하여 정치적 발언의 의욕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20. 7. 16. 선고 2019도13328).
장래 선출직 공직자로서 국가와 사회의 주요한 정책을 입안하게 될 사람을 뽑는 선거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사의 표명이 왕성하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정작 법률은 오히려 평상시보다도 더 소극적이 될 것을 후보자와 운동원과 유권자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 침해를 위헌이라고 결정하지 못하는 헌법재판소
그렇게 조심하면서도 사달은 벌어지게 되어 있고 결국 판단은 사법부의 손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법이 이렇게 되어 있다보니 사법부는 최대한 법규에 따라 사안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법 제250조 제2항과 제251조에 대하여 각각 합헌 및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2024. 6. 27. 2023헌바78). 헌법소원 청구대상이 된 사건은 2016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가 상대후보를 낙선시키고자 허위사실 공표와 비방을 행했다는 이유로 처벌된 데 대한 것이었다(대법원 2023. 2. 2. 선고 2022도8646).
해당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우선 제250조 제2항에서 말하는 ‘허위의 사실’은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행위가 금지되는지 충분히 알 수 있고, 법집행기관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염려가” 없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제251조의 경우, ‘비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그 정의가 분명하므로 제250조 제2항과 마찬가지로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되지는 않으나, 다수의견은 ‘사실을 적시’한 결과 비방이 된 경우까지 형법상 명예훼손죄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하는 것은 침해의 최소성에 반하며, 법익의 균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여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후보자비방죄의 적용 범위가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까지 포함하는 것을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본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과거 결정례(2013. 6. 27. 2011헌바75)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해당 규정 자체가 실질적으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까지는 나가지 못한 한계에 머물러 있다.
팬클럽 관리에 급급한 국회, 법 개정의 난망함
결국 이 문제는 입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입법은 법 제250조와 제251조를 삭제하고, 정치적 논쟁의 장을 최대한 열어놓는 것이다. 과도기적으로 법 제251조를 먼저 폐지하는 것도 순차적 방법일 수 있다. 더 많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이를 기화로 유권자들이 선거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비율이 늘어난다면, 입법부의 질적 수준이 상당한 정도로 올라가리라 기대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현역 의원들이 법 제250조와 제251조를 폐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입법부의 질적 수준 따위는 알 바 아니고, 선거운동 과정에서 벌어지는 그 다양한 정치적 의사표현을 감당하느라 고생하기보다는 팬클럽 관리가 훨씬 쉽다고 생각하지는 않을는지.
광장에 나온 판결: 260번째 이야기
- 헌법재판소의 공직선거법 제250조(허위사실공표죄) 제2항 합헌, 제251조(후보자비방죄) 위헌 결정
- 헌법재판소 이종석(재판장), 이은애,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정형식 재판관 2024. 6.27. 2023헌바78 [결정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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