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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미래, 아이들을 위해서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격언은 이제는 익숙하고, 어쩌면 식상한 느낌마저 듭니다. 교육이 어느새 경쟁 도구로 전락하고, 지식이 배타적인 이익 추구 행위에 다름 아닌 시대를 우리는 살아갑니다. 아이들이 성숙하고 민주적인 소양을 갖춘 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더 깊은 고민, 더 많은 의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신성하게, 의견은 자유롭게’ 이 글 역시 현장 교사이신 천경호(실천교육교사모임 제4대 회장) 님의 고민이 담긴 칼럼입니다. 다양한 비판과 격려 그리고 기고를 환영합니다. (편집자)

작업 기억이라는 게 있다.

작업 기억

모든 학습에는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 필요하다. 기억한 것을 조작하는 일은 매순간 일어난다. 정보가 지식이 되려면 기억해야 하고 기존에 아는 정보와 연결해야 한다. 맥락을 잃는 순간 정보는 지식으로서 가치를 잃는다. 수업과 생활지도의 모든 순간이 학습과 연결되고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이유다.

인지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눈앞에 휴대폰을 두고 대화하는 것만으로 작업 기억에 손실을 입는다고 한다. 휴대폰으로 연결된 타인과의 연결감에 계속 주의를 주느라 상대가 이야기하는 걸 놓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보며 무표정해지는 보호자 얼굴을 보면 자녀는 긴장하고 ‘코르티솔 호르몬’이 높아지지만, 휴대폰을 보는 보호자는 자신 작업 기억 대부분이 휴대폰에 담겨 있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듯이 말이다.

23분

주의를 기울여 하는 과제 중에 온 메시지로 인해 과제가 중단되어도 다시 본래의 주의 상태로 돌아오는데 약 23분이 걸린다고 한다. 한번 방해받은 주의 집중력을 본래 상태로 돌려놓는 데 인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때 사람은 짜증을 내거나 본래 주의 집중 상태로 돌아오기를 포기하기 마련이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켜놓은 메시지 알림음으로 수업을 방해받는 학습 손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어렵게 수업에 집중하게 된 아이들이 다시 본래 수준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23분이라면 그때는 이미 물 건너 간 일 아닌가? 수업을 방해하는 유해 요소를 제지하는 것도 학생 인권에 이바지하는 일 아닌가?

고학년, 주의 집중 더 어렵다

초등학교 1학년에 비하여 고학년의 주의 집중이 더 어렵다고 한다. 신경과학 등 연구에 따르면 사춘기 시절에 뇌의 효율성 추구에 따라 생애 마지막으로 피질 내 뉴런 간 시냅스의 주된 가지치기가 일어나 충동조절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아는 사교육업체의 스마트 패드는 학습 이외의 다른 영역에 접근을 제한한다. 성인에 비해 충동 조절이 어려운 학습자의 특성을 반영한 조치가 아닌가?

가뜩이나 말한 후에, 행동한 후에 생각하는데 사춘기가 되면 더욱더 생각 없이 말하고 행동하며 혼자 이불 킥 할 때가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또래가 중요하고 성숙한 우정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동청소년의 최우선 발달 과제다. 그럼에도 친구와 어울릴 시간도, 장소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소아청소년의 정신건강을 걱정하는 척한다.

교내 휴대폰 사용 논란

각종 학교 교칙에서 교내 휴대폰 사용이 여전히 논란이다. 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 학생의 발달에 관한 이해 부족 위에 교내 휴대폰 사용 제한을 학생인권 침해 사안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휴대폰 사용 제한이 학생의 기본권 및 통신 자유 제한이라며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2023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 사항).

  • 스스로 충동을 조절하기 힘든 시기의 사춘기 아이들이라는 점
  • 휴대폰을 가까이 둘수록 학습에 필요한 작업 기억을 제한한다는 점
  • 휴대폰 말고도 각종 디지털 기기로 학습과 관련 없는 정보에 접속 가능한 환경을 막을 길이 없다는 점
  • 휴대용 전자기기로 불법 촬영 등 행위가 지속된다는 점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대체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과연 학생인권조례는 이와 같은 학교 현장의 어려움과 학생의 발달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학생 인권을 보호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의문이다. 수업이 아닌 휴대폰 사용 문제와 같은 일로 해마다 입씨름 해야 하는 현장 교사들이 번아웃되는 이유 중 하나다.

스마트폰은 학생도 번아웃키즈로 만듭니다.

교사와 학생 간 비대칭성 필요한 이유

‘배움에는 때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 잘못인지 배우고 자신의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때가 있다는 뜻이다. 교사 권재원의 [교육 그자체]에서 교사와 학생 간 비대칭성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체벌이 아닌 대화라는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교사라는 성숙한 타인의 교육적 지도가 즉시, 자주, 간격을 좁게 이루어져야 더 나은 성인으로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미성년이라고 부른다. 아직 미성숙하다는 뜻이다. 미성숙한 말과 행동을 돌아보고 보다 성숙한 사람으로 도약할 기회를 주어야 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성숙과 미성숙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 요인이 바로 성찰이고 반성이다.

성찰하는 성숙한 인격을 위하여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는 반성문 작성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2023년 학생생활지도고시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 사항). 언어 발달에는 민감기가 있다. 때를 놓치면 언어 습득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마찬가지로 도덕성 발달에도 민감기가 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뉘우칠 수 있는 반성과 성찰이란 높은 수준의 메타 인지 행위는 누구나 저절로 습득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뉘우칠 수 있는 역량. 바로 그 도덕성을 한 명도 빠짐없이 얻도록 하기 위해 학교가 존재하고 교사가 필요하다. 성인이 되기 전에 비대칭적인 교사라는 존재를 통해 미성숙한 학생들이 성숙해 질 방법과 더 나은 사람으로 자랄 기회를 주기 위해서.

오늘날 학교는 그 기능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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