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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통조림이 되어가는 대중문화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문화융성’을 주요 키워드로 제시했다.

문화융성, 바람직한 말이다. 그러나 어떤 문화를 키운다는 것인가. 산업이 된 문화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제조업을 대신한 콘텐츠 산업을 국가가 주도하는 게 “문화융성”의 전부일까. 우리 영화 관객 천만이라는 숫자는 과연 한국 영화의 질적 수준과 다양성을 담보로 한 것일까. 팝콘 냄새에 취한 천만 관객은 영화관 앞에서 행복할까.

한 해 단 한 번도 극장을 가보지 못한 이들이 40%에 가깝고(2008년 기준), 문화가 비장애인과 소비 가능한 계층만을 타겟으로 할 때 문화 다양성은 없다. 문화예술인 66%가 월수입 100만 원도 채 안 되는 현실(2012 문화예술인실태조사)에서, 스타 한 사람 출연료가 제작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구조에서 문화융성은 어떻게 실현될 것인가. 물어야 할 것은 너무도 많다. 문화융성으로 국민이 모두 행복하려면 말이다.

‘쥬라기공원’에서 ‘아바타’로 이어지는 문화산업수출론

대중문화가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문화가 정신적 가치의 산물이라고 우겨봤자 통할 리 없다. 그렇지만 대중문화가 과연 대중의 문화인가는 한 번쯤 물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문화가 경제 발전의 동인이 되었다는 자화자찬이 반드시 대중문화의 진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 아래 대중문화는 규제와 통제 그리고 정치적 수단이었지만 문민정부에서 비로소 대중문화는 발전과 진흥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문화산업수출론으로서 “‘쥬라기공원’ 한 편이 자동차 수만 대 수출보다 더 많은 이익을 거뒀다”는 논리는 ‘아바타’ 한 편 수익 = 쏘나타 300만 대 수출 효과’로 변주된 채 이어진다.

당시 뉴스 화면 (출처: MBC)

출처: MBC 뉴스 (1993)

문민정부와 대중문화의 관계는 영화 ‘서편제’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 1993년 4월 10일 단성사에서 단관 개봉한 영화는 초반 흥행에 고전했다. 하지만 문민정부 초기 인기를 구가하던 김영삼 대통령이 5월 초 청와대 특별상영을 요청했고, 당시 은퇴한 김대중 대통령도 귀국하면서 서편제를 관람, 서편제는 국민이라면 마땅히 봐야 하는 영화로 거듭나며 서울 기준 단관 상영으로는 최초로 백만 관객을 이뤄낸다. 이후 국민의 정부 역시 대중문화산업에 대한 정책은 더 공격적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스스로 문화 대통령을 자임하고, 일본 대중문화 수입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며 대중문화를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지원과 정책을 제시했다. 2000년은 문화 부문 예산이 사상 처음 전체 예산의 1%를 넘어선 해다.

대중문화산업의 나르시시즘: 자본의 승전보를 울려라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1964)

‘문화산업’을 최초로 명명한 아도르노(우)와 호르크하이머(좌) (1964)

문화가 시장에 편입된 것이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고 한국만의 현실도 아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문화가 기술과 만나 대량생산되는 시스템을 진작에 비판했다. 대량 생산 기술과 결합해 복제되는 상품으로 번식에 급급해진 예술에 대한 분노였으리라. 그러나 이들이 공동저작인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문화산업을 정의하고 비판할 때만 해도 기술과 자본이 문화에 개입한 초기 단계였다. 자본의 돈벌이가 된 문화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급기야 자본의 최대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진화한 도구가 된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한국의 대중문화산업이 빠져있는 나르시시즘의 실체이다. 그렇다면 문화가 산업으로 재배치되어 경제자본이 되는 것이 과연 능사일까.

자본이 대중문화 상품을 제작하는 데 집중되면서 대중문화는 균형 있게 분배되기보다는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그리고 자본의 승전보를 알리기에 급급한 선전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본의 업적을 숨김없이 정당화해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영화산업은 거대 자본이 제작, 배급 그리고 상영하는 통합시스템으로 진화하여 소자본 시스템을 배제했다. 복합상영관의 출현은 현상적으로 소비자의 볼 권리를 확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팔리는 상품만 집중적으로 소비하도록 만들어진 장치에 소비자를 가둔 셈이다. 음악산업도 소비 가능한 아이돌 스타를 집중적으로 생산함으로써 비단 음원 산업으로 창출되는 수익뿐만 아니라 이들을 거느리고 있는 대형 기획사는 문화 권력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의학드라마, 의료관광산업과 만나다

그렇다면 영화와 음악이 소비자를 현금인출기쯤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에서 텔레비전은 어떨까. 텔레비전은 가장 근대적인 도구이지만 그 형식이 공중파의 성격이기 때문에 어느 매체보다 보수적이다. 그럼에도 한국 드라마제작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한 해에 제작되고 방영되는 텔레비전 드라마 수는 지상파 3사, 케이블 채널 그리고 종합편성채널 4개까지 더해져 160여 편 이상이라고 한다. 이런 양적 팽창이 질적 수준의 확대를 담보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안타깝게도 텔레비전 드라마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도리어 텔레비전 드라마는 엇비슷한 내용의 로맨틱 코미디, 역사 드라마, 가족 드라마와 같은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작년 2012년 한 해 동안 의학 드라마는 지상파에서 4편, 케이블 채널에서 2편으로 의학드라마는 한 해 동안 6편이 방영됐으며 MBC는 [마의]에 이어 리메이크한 [허준]을 곧 방영한다고 한다. (MBC: 닥터진 2012년 5월. 골든타임 2012년 7월. 마의 2012년 10월.  SBS: 신의 2012년 8월. OCN: 신의 퀴즈, 2012년 5월. tvN: 제3병원 2012년 9월) 이런 경향이 단지 우연과 소재의 빈곤함을 탓일까.

2009년 정부가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의료관광산업을 선정해 의료법을 통과시킨 이후 텔레비전에서는 각종 의학드라마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외국인 의료관광 규모는 매년 30% 이상 증가하고 있으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인들이 쓰고 간 진료비는 1,800억 원 이상이고, 1인당 입원환자의 평균 진료비는 662만 원(2011년 기준)이라고 한다.

최근 제작된 의학드라마들

최근 제작된 의학드라마들

문화 실험의 종말: 자본확장 플랫폼으로서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이야깃거리 중심이든 캐릭터 중심이든 이제는 무엇을 방영할 것인가에 대한 기획 의도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드라마를 통해 어떻게 부를 창출할 것인가, 거기에 모든 함의가 있다. 스타 시스템으로 제작된 드라마는 이제 스타가 들고 다니는 소품이나 화장품, 자동차와 의상을 효과적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드라마는 또 다른 상품 진열장이 된다. 이런 시장과의 긴밀한 결합 구조 속에서 드라마가 일부 실험적이거나 진보적이라고 한들 돈벌이를 위한 도구라는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 소비되는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가 다른 산업과 연계되어 또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걸 탓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선후 관계다. 문화로서의 상품이 아니라 상품으로서의 문화라는 그 순서 말이다.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플랫폼이 된 텔레비전을 과연 공공재라고 할 수 있을까. 텔레비전이 자본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려는 플랫폼이 된 현실에서 왜 텔레비전 드라마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변주될 뿐이냐는 지적 역시 부질없다.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 구조조정이 완료된 상황에서 어떻게 실험적인 드라마가 나올 수 있겠는가.

대중문화가 돈으로 환산 가능해진 이후 ‘자본’의 투자는 독립된 콘텐츠로 문화상품을 강화시키는 전략을 더 이상 취하지 않는다. 자본의 전략은 가능한 모든 문화 산업을 하나의 콘텐츠에 융합시켜 하나의 콘텐츠 안에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는 도구로 진화시켰다. 우리 시대의 텔레비전은 더 이상 계몽의 도구나 단순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바보상자’가 아니다. 텔레비전은 자본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려는 플랫폼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문화융성인가

다시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를 떠올린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21세기는 문화가 국력인 시대입니다. 국민 개개인의 상상력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입니다. (…….)

새 정부에서는 우리 정신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사회 곳곳에 문화의 가치가 스며들게 하여 국민 모두가 문화가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문화의 가치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지역과 세대와 계층 간의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생활 속의 문화, 문화가 있는 복지, 문화로 더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에게 한 다짐을 꼭 이뤄내길 바란다.

그러나 다시 묻자. 어떤 문화를 키운다는 것인가. 또 누구를 위한 문화를 융성한다는 것인가. 월수입 1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문화예술인이 전체 절반을 훌쩍 넘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에서 이런 현실을 망각한 채 의료드라마와 결합한 의료관광산업의 ‘빛나는 업적’만을 찬양하는 그 문화적 안목으로는, 단적으로 말하자, 문화융성은 불가능하다. “문화로 더 행복한 나라”는 그저 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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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군
초대필자, 문화연구가

영국에서 문화를 연구(박사과정)하고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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