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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이 한창이던 1930년대, 스웨덴의 시장주의 우파는 위기 극복을 위해 국가의 방임이나 정부 개입의 축소를 주장한다. 정부 역할을 줄여야 한다는 말 속에는 긴축 재정을 비롯 실직자나 빈민에 대한 정책 지원을 최소로 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생계의 위험만 간신히 면할 생길 정도로 공적 지원을 책정하면, 그보다는 높은 수준이어도 임금이 낮은 일자리에 사람들이 취직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생산비 절감으로 고용이 늘어나고 경제가 회생해야 결국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 이롭다는 논리였다.

사람들을 궁핍하게 만듦으로써 질 낮은 일자리와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당시 우파의 교조적인 시장계획은 재정 적자와 강력한 실업대책 등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주장한 사회민주노동당(사민당, SAP)[footnote]스웨덴어: Sveriges Socialdemokratiska Arbetareparti[/footnote]의 반격에 직면한다. 1932년 선거에서 창당 이래 가장 높은 득표율로 정권을 되찾은 사민당은 이후 1976년까지 역사적인 44년 연속 집권에 성공한다(‘민중의 집’).

전략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 4'(Hearts of Iron IV, 패러독스 개발 스튜디오)에서 스웨덴이 '민중의 집'(스웨덴어: Folkhemmet)로 표시되고 있는 모습. 민중의 집은 스웨덴 사민당과 스웨덴식 복지국가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정치 개념이다. 더불어 사민당이 연속 집권한 1932년에서 76년 사이의 긴 시기를 가리키기도 한다. (위키백과 - '민중의 집' 참조)
1936년에서 1947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전략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 4′(Hearts of Iron IV, 패러독스 개발 스튜디오)에서 스웨덴을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민중의 집’(스웨덴어: Folkhemmet)으로 표시된 화면. 민중의 집은 사민당과 스웨덴 복지국가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정치 개념으로 사민당이 연속 집권한 1932년에서 76년 사이의 긴 시기를 가리키기도 한다. (위키백과 – ‘민중의 집’ 참조)

실직자에 대한 각종 공적 지원은, 꼭 실직자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수십 년간 확대를 거듭하며 복지 천국이라는 말까지 나오기에 이른다. 하지만 70년대 석유파동 및 이어지는 경제위기들 속에 복지 ‘천국’은 축소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축소되었다고는 해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대단히 양호한 수준이지만, 실업급여 생활자, 병가급여 생활자, 기초생활 수급자 등 직업이 없는 이에 한정된 복지에 대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전과 달리 따가운 눈총이 급증했다는 사실도 있다.

사회적 약자를 이용한 페미니즘 공격  

“여가부에서는 페미 언니들 동아리 모임에 식비 지원 해주기 전에 돈이 없어서 생리대를 못사는 청소년이라든지 분유값이 없어서 분유를 못사는 미혼모들을 충분히 지원을 해야 하죠.”

-“페미들의 뼈를 팩트 폭행으로 골절”시킨다는 어느 유튜버

“상식이 있는 사람은 성매매여성 처벌을 원합니다. (세금은 성매매 여성들에게 자활 명목으로 지원금을 줄 게 아니라) 세금은 폐지 줍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급식카드 가지고 밥 사먹는 어린 학생들 등 더 어려운 사람에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홍준연 대구 중구 의원(성매매 여성 비하 논란으로 더불어 민주당에서 제명됨)

“성매매 안하고 정직하게 알바 뛰고 해서 빚 갚고 생활비 벌고 학비 버는 학생들은 뭐가 되는 거죠….. 군에서 수해복구 사업 중에 산사태로 매몰된 고 전중일 병장님… 부모님은 거의 폐인이 됐습니다. 운영하던 동네마트 접었어요. 보상금이 얼만지 아세요. 월 84만 원. 이게 사람 목숨값입니다.”

– 강성태(공신닷컵, 캡처 출처)

요즘 이런 말들이 부쩍 늘었다. 과거에는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공직자에게 갈 돈을 저소득층에게 쓰라든지, 전시 행정에 허비되는 돈을 어려운 이들에게 쓰라든지, 재산도 많으면서 저소득층 대상의 복지를 빼먹는 이들을 단속하라든지, 세금만 잘 쓰면 혹은 세금 도둑만 잡으면 복지에 문제 없다는 류의 주장들이 많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페미니즘과 관련된 세출은, 대상자가 최빈층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세금 낭비라는 얘기들이 많아졌다.

특히 여성을 위한 정책에 세금 낭비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언젠가부터 페미니즘 관련 세출에 세금 낭비라는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스웨덴, 선별복지와 결합한 ‘보편복지’  

세금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의견 개진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나 역시 여러 자료를 들어 숱하게 강조해왔듯, 한국은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 지출을 시급히 늘려야 한다. 단, 국제비교로 볼 때 사회약자에게 가장 이로우려면 세출 개혁만으로는 어림도 없고 담대한 보편 증세를 통해 취약계층의 종합 복지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이는 취약계층 복지가 강력한 보편복지국가 스웨덴취약계층 복지가 허약한 한국을 비교하면 아주 잘 드러난다.

먼저, 가장 빈곤층인 기초생활수급자의 복지 수준은 한국이 스웨덴보다 딱히 뒤처진다고 보기 어렵다. 얼핏 보면 한국이 나아 보이기도 한다. 기본적인 생활비 지원을 보았을 때, 4인가구 기준 한국은 평균임금 대비 최대 65.3%를, 스웨덴은 최대 55.8%를 지급한다(한국은 생계급여+주거급여, 스웨덴은 국가기준액 등 생계비+주택수당).

1인가구 기준으로는 한국이 평균임금 대비로 최대 24.2%, 스웨덴은 18~28세의 경우 16.5%, 29~64세의 경우 12.4%이다(스웨덴의 65세 이상 저소득 고령층은 기초생활복지의 대상이 아니고,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초연금과 주택수당을 수령한다). 기초생활 지원액을 차감하는 기준이라든지 추가적인 지원 등이 다르므로 실제 지원 수준을 비교하기는 쉽지 않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비고령자’ 극빈층 복지에 극명한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웨덴은 ‘선별복지와 결합한’ 보편복지가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 저소득층이라면 누구나 이용에 제약이 없는 공보육 이용료가 무료이거나 극히 저렴하고,
  • 한국보다 기본 보장범위가 월등한 의료복지도 일반보다 더 받을 수 있다.
  • 대학원까지의 개별 공교육비는 누구에게나 거의 들지 않고 박사과정은 준수한 월급까지 받는다.
  • 아동수당학생수당이 정액의 보편 수당인 데 반해 주택수당은 소득 및 자녀 수 등에 따라 차등하여 지급된다.
  • 자녀 있는 부모가 학업을 지속하려 할 때에는 추가적인 학업 보조금이 있다.
  • 이혼, 동거결별 등의 편부모 가정에는 사회보장사무소에서 양육비를 지급한다. 이때의 양육비는 아이를 기르지 않는 부 또는 모가 양육비 제공을 거부하거나 여력이 없을 경우 공공기관이 대신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스웨덴의 보편복지는 한국과는 꽤 차이가 난다.
스웨덴의 보편복지는 한국과는 꽤 차이가 난다.
  • 출산과 육아에 따른 소득지원인 부모휴가급여는 보험료에 기반한 소득비례 급여이지만, 보험료 납부 이력이 없더라도 약 70만 원의 기본급여를 받을 수 있다. 부모휴가급여는 평균임금을 11%가량 상회하는 수준에서 지급액 상한이 있다.
  • 이 외의 소득비례 급여로서 임신수당, 임시 부모휴가수당, 가족위로수당, 실업급여, 병가급여, 재활급여 등이 있다. 지급 수준은 일반적으로 봉급의 80%이며(실업급여는 70%), 상한액은 종류별로 상이하다.

실업급여의 최저액은 약 130만 원으로 자격이 충족되면 실직 이전 수입과 무관하게 받을 수 있다. 소득비례 병가급여를 받지 못하는 실직자의 경우, 실업급여 일일 최고액 대비 80% 수준의 질병수당을 받을 수 있다. 12세 이하의 자녀가 아플 때 쓰는 임시 부모휴가수당을 부모가 아닌 조부모, 친구 등이 사용할 때는 한달 기준 약 70만 원이 지급된다.

고용보험의 납부 실적이 미진하여 실업급여 자격이 되지 않는 실직자는 일일 약 2~3만원 상당의 실업부조를 지원받는다. 실업부조의 자격도 없을 경우 이보다 지원 수준이 낮은 기초생활복지를 신청하게 된다. 실업부조의 대상은 주로 청년층인데, 성년이 된 자녀와 부모는 기초생활복지 상의 부양의무가 없으므로 실업부조로 인해 지원금이 차감되지는 않는다(최근 정부에서 월 50만원의 한국형 실업부조를 신설한다는 소식이 있다).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스웨덴 노인은 (역시 부양의무자와는 상관없이) 평균임금의 최대 40%, 한국의 평균임금으로 대비하면 최대 연 1,400만 원가량의 ‘공적 노후소득’을 자산 및 주거상태 등에 따라 (세전으로) 수령한다. 참고로 여기서 ‘공적 노후소득’은 ‘기초연금+주택수당’이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액수에 따라 차등되고 주택수당은 소득 및 자산 등을 모두 고려한다.

국민연금이 없는 스웨덴 노인에게 실제 지급된 노후소득 평균은 평균임금의 32.6%, 한국으로 치면 연 1,164만 원가량이다. 이에 더해 고령자용 보편적 사회서비스가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된다. 이 사회서비스는 이용량에 상관없이 이용료에 상한이 걸려있어 저소득층 노인의 부담을 덜어준다.

스웨덴 국적이 아닌 노인에게는 평균임금의 최대 약 32%가 공적 노후소득으로 지원된다. 한국의 평균임금으로 환산하면 연 1,11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최고 지원액이 자국 노인보다는 못하지만, 한국의 기초연금이나 기초생활수급 고령층에 비춰보면 비교하기 민망할 만큼 월등한 수준이다.

스웨덴은 스웨덴 국적이 아닌 노인에게도
스웨덴은 스웨덴 국적이 아닌 노인에게도 평균임금의 최대 약 32%에 달하는 액수를 공적 노후소득으로 지원한다.

취약계층에 대한 스웨덴 복지의 압권은 ‘질병, 장애 등으로 인한 근로곤란’ 부문의 재정 지출이다. 2000~2015년 연평균 GDP의 4.7%를 써,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더불어 OECD 단연 선두이다.

  • 1등 스웨덴(4.7%)
  • 2위 덴마크(4.5%)
  • 3위 노르웨이(4.3%)
  • 4위 핀란드(3.7%)
  • OECD 평균(2.1%)
  • (중간 생략)
  • 한국(0.5%)
  • 멕시코
  • 터키(꼴찌)

OECD 평균보다 네 배가 모자라고 북유럽에 비하면 7~9배가 부족하다. 최근은 0.6%로 2000년대 전후 0.3%에 비하면 무려 두 배나 증가한 것이 위안거리라고 할 수 있다.

스웨덴과 한국의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의 복지 현황을 짚어본 이유는 어려운 이들을 염려한 나머지, 그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페미니즘 예산을 삭감하라는 의견이 여성운동 참여자를 공격하기 위해 시회적 약자를 수단화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러울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의 취약지대를 주변에 상기시키고 이에 대한 제도적 온정을 확대하자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기왕 할 것이면 잘하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사사로운 이권을 위해 취약계층을 ‘볼모’로 이용하는 이들과 똑같아진다.

‘고통 올림픽’의 역사적 오류 

누구의 어려움이 더 큰지를 판별하는 ‘고통 올림픽’은, 세금이 무한대가 아니기 때문에, 정책 당국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다. 언론과 사회 구성원도 이에 관한 의견을 얼마든지 개진할 수 있다. 그러나 ‘고통 올림픽’의 메달 수여에 천착하는 것은 해로움이 크다. 누가 더 힘든지를 따져서 덜 힘든 데는 자원을 쓰지 말고, ‘고통 올림픽’의 승자에게 집중하라는 주장은 원칙적으로는 언제나 옳은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집착하다가는 뜻하지 않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의료복지 대상마저 오직 저소득층과 노인뿐인 미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좀 나은 형편의 사람들이 누릴 의료복지를 제거하여 저소득층에게 집중하면 이론적으로는 저소득층이 대단한 혜택을 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른 복지 부문들도 마찬가지다. 최악의 약자가 아닌 이들에게 가는 재원을 삭감하여 ‘정작 필요한 이들’에게 집중하려는 선의는 역사적으로도 통계적으로도 오류로 판명 났다. 앞서 한국과 스웨덴의 기초생활수급자를 비교하며 살펴보았듯,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의 생활 여건을 눈에 띄게 개선하려면 기초생활 복지를 늘린다고 될 게 아니라,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는 한편 ‘과감한 보편 증세’와 ‘선별과 보편을 조합한 보편 복지’의 전폭적인 확대가 긴요하다.

고통올림픽의 승자에게 세금을 집중하라? 선별복지를 공격하기보다는 복편복지를 함께 주장하는 게 훨씬 더 현명하다.
고통올림픽의 승자에게 세금을 집중하라고? 고통올림픽의 역사적 오류는 이미 증명됐다. 선별복지를 공격하기보다는 보편복지를 함께 주장하는 게 훨씬 더 현명하다.

앞서 페미니즘 관련 세출을 없애라는 이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엔 공공의 지원을 시급히 늘려야 할 취약계층이 정말 많다. 그러나 페미니즘 부문의 세출을 삭감해서 더 절박하다고 여겨질 만한 사회약자들에게 돌리더라도 복지선진국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강력한 보편 증세가 절실하다. 진짜 복지 ‘천국’은 아니지만, 사회의 그늘진 곳을 다른 어느 나라들보다 따스하게 비춰주는 스웨덴 등의 복지는 강력한 보편 증세로 이룩된 것이다.

사회약자에 대한 제도적 지원의 미비를 통탄하는 이들이 무지를 벗어나 개연성을 확보하려면, ‘세출 개혁도 해야겠지만, 나부터 세금을 더 내겠다고 목소리를 낼 터이니 여러분도 조세 저항을 거두자’고 간곡히 요청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취약계층에게 쓰여야 할 세금이 페미니즘에 낭비되고 있다’며 분개하는 데 그친다면, 무지 때문이든 세금과 복지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 때문이든 정말로 사회적 약자를 위하려 한다는 개연성이 사라진다. 그저 누군가를 헐뜯기 위해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들을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반페미니즘의 위선, 페미니즘의 무지 

보수언론이건 반페미니즘이건, 무지와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약자보호의 선의는 가면에 불과하다. 설령 고의는 아닐지라도, 그들이 돕겠다는 ‘정작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부조리가 파다해진 데는 ‘보편복지의 강화’와 ‘보편증세의 확대’ 그리고 ‘선별복지의 강화’와 ‘노동시장의 개혁’을 한 묶음으로 놓지 못한 정치인이나 한국 국민의 실책도 매우 크다. 보편복지가 시대정신이라고 외치기만 했을 뿐, 필수 병행과제들을 등한시한 진보언론의 책임도 지대하다.

페미니즘을 공격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이용하는 행태는 위선적이다.
페미니즘을 공격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이용하는 행태는 위선적이다.

국내외의 통계들은 한국의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 복지가 예나 지금이나 너무 부족하다고 말을 한다. 보편복지주의자들은 보편증세 및 선별복지의 강화가 병행되어야 보편복지가 성공할 수 있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이를 알리는 일에 공을 들여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합리적인 체계도, 필요한 세금 확보도 없이 소규모의 보편 복지가 증대되며 그러잖아도 부족한 약자 복지를 정체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기만적이며 위선이라는 욕을 들어도 할 말 없는, 크게 자성해야 할 대목이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본다면, 북유럽처럼 양성평등 관련 통계들이 일제히 최상위로 나오는 나라들에 비해 한국의 여성운동은 효율이 떨어지고 초점이 어긋난 부분들도 없지 않았다. 여성뿐 아니라 모두에게 친화적이고, 경제성장도 추동하는 세금과 복지의 개혁 그리고 각종 노동시장 규제 등 여성운동이 사활을 걸어야 할 의제들에 페미니즘 진영은 무지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빈틈들은 열악한 사회적 약자를 인질로 잡고 이들을 위하는 척하는 보수언론과 소외계층 지원을 들먹이며 헛된 선량의 위치를 점하려는 반페미니즘 선동가들에게 좋은 먹잇감으로 작용한다. 페미니즘은 먹고살 만한 여성들의 ‘뷔페니즘’에 불과하다는 반페미니즘의 공격은 어디까지나 모략일 뿐이지만, 취약계층을 제도적으로 박대하는 우리 사회의 허물에 대해 페미니스트도 연대적 책임이 있다는 측면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다.

연대

이러한 모순과 부조리를 타파하려면, 그에 동원되는 사회약자의 생활여건을 보편 증세에 기반하여 혁혁히 개선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전까지는 ‘약자보호 위선’에 능한 보수언론이나 반페미니즘의 흑색선전이 맹위를 떨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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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보수언론이 ‘인질로 삼는’ 사회의 취약지대

전통적으로 사회의 그늘진 곳은 과격한 시장주의자(혹은 경제권력층)의 ‘볼모’이자 그들이 “입으로” 정의와 선의를 확보하는 근거였다. 이들은 반시장적 정책이 가난한 이들을 힘들게 한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취약계층의 여건 개선에 비협조적인 동시에 그들의 힘겨운 사정을 내세워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하는 ‘자기 기만’의 계책을 구사한다. 근래 한국에서는 극단적인 우파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차용하는 ‘안티 페미니즘’의 군상들이 우리 사회 소외계층의 열악함을 이용하여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 먼저 전자의 비근한 예로 최저임금을 둘러싼 보수언론의 행태를 들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이전보다 가팔라지자 보수언론 등은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곤경, 실직자의 어려움 등을 집중 부각시켰다. 최임 인상으로 이로움을 얻은 이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좋게 보면 정책의 미비점을 지적한다는 선의였지만 이 과정에서 온갖 허위, 왜곡보도들이 범람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 정부가 탄탄한 정책패키지 없이 최저임금을 덜컥 인상한 것은 비판의 여지가 충분하지만, 비판의 내용이 저급하여 사회에 끼친 해악이 극심했다. 상관관계인과관계의 주의점[footnote]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한 연구자가 아이스크림 판매량의 연중 증감 추이를 확인했다. 그리고 연중 익사 사망자의 증감 추이를 함께 놓고 두 변인 간의 상관분석을 시행해 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무서울 정도로 명백한 상관관계가 나타나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급증하는 동안, 익사 사망자 수도 함께 증가하고 있었으며, 판매량이 감소하는 동안 익사 사망자 수도 감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연구자는 몸서리를 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익사 사망자의 증감은 아이스크림이 그 원인이다.” (나무위키, ‘상관관계와 인관관계’ 중에서 발췌)

위 사례에서 연구자의 논리대로라면, 아이스크림 판매를 중지하거나 줄이면 익사 사망자를 막거나 줄일 수 있다는 결과에 다다른다. 물론 아이스크림 판매를 금지하거나 줄여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익사 사망자 수는 상관관계가 있을지언정 인관관계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상관관계가 있다고 해서 곧 인과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익사 사망자가 많아진 이유는 기온이 높아지고, 그로 인해 해변에 놀러온 관광객의 수가 늘었기 때문이지 아이스크림이 많이 팔려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밖에 안전불감증과 같은 사회심리적 원인, 안전요원 미비 등과 같은 정책적 원인 등이 해변 익사 사망자의 증감 원인으로 함께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편집자)[/footnote]을 강조하는 경제학자들이 이 지점을 깡그리 묵살해버린 최저임금 보도들에 학자로서의 목소리를 내지 않거나 오히려 호응하는 모습까지 보인 것은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몬스터 종이신문
epSos.de, CC BY

최저임금 비판의 이면에는 오랜 세월 붙잡아온 ‘인질’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력했다. 낮은 수익률의 한계 사업장들과 이에 종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다대하고, 경제성장의 단계에 비해 전 구성원에 걸쳐 세금의 양이 적으며 복지 수준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데,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질 낮은 일자리를 별 수 없이 전전해야 한다. 이것은 ‘경제권력층’에게 가장 유리한 환경이다. 이들과 막대한 금전적 이해관계가 결부되어 있는 언론과 정치세력들은 ‘경제권력층의 소중한 볼모들’이 존속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려운 이들을 걱정하며’ 최저임금 비판에 열을 올린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저임금대의 급여 수준을 모범적인 선행국가들처럼 끌어올리는 법은 무엇인지, 상대적인 저소득층도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이 문제를 해결한 선행국가들의 교훈은 무엇인지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이들은 예전부터 아래쪽 삶을 개선하는 데 방해를 일삼아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중산층 이상과 하위층의 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던 노무현 정권기, 폭넓은 소득층의 증세가 추진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조선일보 등은 ‘어딜 겁도 없이 증세냐’는 취지의 공격을 미리부터 감행했고, 충분히 해봄직한 부자증세인 ‘종부세’도 미친 듯이 물어뜯었다. 이명박 정권기에는 결함이 심대한 국책사업인 ‘4대강 사업’을 마구잡이로 두둔하며 조세저항을 부추겼고, 박근혜 정권 때는 공제방식을 개선함으로써 중산층 이상의 실효세율이 찔끔 상승하자 조세저항을 선동하며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결국, 보수언론과 경제지가 하듯 최저임금을 거세게 공격하면서 동시에 조세저항을 자극하는 행태는 복지 발전과 구조개혁을 가로막으며 아래쪽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한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경제권력층의 고분고분한 볼모’로 남아있도록 하는 것이다.

프레임이 잘못됐다. 더 고통스러운 사회적 약자에게 세금을 주라고 주장하기보다는 보편적인 복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프레임이 잘못됐다. 더 고통스러운 사회적 약자에게 세금을 주라는 ‘고통올림픽’을 강요해선 안 된다. 모두를 위한 보편적 복지를 말해야 한다.

2. 페미니즘 동아리 지원과 성매매 종사자의 직종 전환 

페미니즘 동아리 관련 세출은 ‘오락 및 문화, 종교’ 부문의 정부 지출에 해당한다. 이에 대한 세출도 한국은 OECD 가운데 가장 적은 수준이다. 보편 증세 속에 늘려야 할 영역이다. 취약계층 복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해당 세출을 줄이는 것이 못할 일은 아니지만, 근시안적인 자세이다. 혹시 복지 선진국의 유력 인사가 페미니즘 동아리라는 이유로 세출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내 추측으론 아주 당연하게 ‘뭔 소리냐’는 비판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빈약한 근거로 여성운동을 배척하는 행태는 복지 선진국에선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다.

성매매 종사자의 직종 전환을 위한 복지 선진국의 지원 실태가 어떠한지는 잘 모르나, 10개월 동안 생계비, 주거비, 자활훈련비를 더해 최대 월 200만 원 정도를 지원하는 것이 이들의 복지 수준에 비춰볼 때 과도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본다. 지원 대상자 선정과 집행 과정의 의문점들을 제기하고 비판할 수는 있겠으나, 지원이 과도하다고 트집 잡는 것은 전형적인 복지 후진국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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