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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기후를 만들다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은 자신의 저서 [긴 여름]에서 인류의 역사는 지난 1만 1천 년 전쯤에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1가 끝나고 열린 따뜻한 ‘긴 여름’ 위에서 세워진 것이라고 했다2. 인류가 정착할만큼 온화한 기후가 계속되었고, 그 위에서 정착지와 농경이 탄생했으며 사회의 규모와 조직력이 커지면서 기후적 충격에 대응해 계속 더 사회 발전 속도를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담자리꽃

담자리꽃(Dryas; 드라이아스)는 추운 기후대에서 번성했다. ‘영거 드라이아스기(Younger Dryas Event)’라는 명칭의 유래가 됐다. 1만 1천 년 전쯤 영거 드라이아스기가 끝나고 ‘긴 여름’이 도래한다.

브라이언 페이건은 자신의 다른 저서에서도 인류 역사에 끼친 기후의 영향력에 관해 말한 바 있다. 이를테면 [대온난화] (번역 제목: 뜨거운 지구, 역사를 뒤흔들다)에서는 약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 지속된 유례없이 따뜻한 ‘중세 온난기’가 어떻게 세계 각지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얘기한다.

로마 붕괴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춥고 습하던 서유럽이 따뜻한 햇살과 적절해진 강수량을 만나서 새로운 개척지로 변모했다. 이들 지역에서 도시와 시장, 유통이 활발해졌고 수도원들이 숲을 베어내고 농경지를 끝없이 개척하기 시작했다. 값싼 영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밀어낼 정도의 시대였다. 풍요로워진 유럽인들은 하늘로 다가가고자 하는 소망을 하늘을 찌를 듯한 대성당을 지으면서 충족하고자 했다.

그러나 중세 온난기의 효과는 불균등해서, 폴리네시아인들이 따뜻한 기후에 힘입어 변화한 바람과 함께 이스터섬까지 뻗어나가는 최후의 팽창을 하기도 했으나 북아메리카의 아나사지 문명은 대가뭄으로 인해 몰락하기도 했다. 몽골 평원의 목초지들도 줄어든 강수량으로 큰 타격을 입어 유목민들은 스스로 군대를 조직해서 중국을 침략했다. 칭기스 칸이 바로 이 때 등장했다.

최근 1,000년간의 기후 변화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역사 속에서 살펴본 지구의 기후변화)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523016&cid=47340&categoryId=47340

최근 1,000년간의 기후 변화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역사 속에서 살펴본 지구의 기후변화’)

한편 중세 온난기가 끝나자 [소빙하기] (번역 제목: 기후는 어떻게 역사를 만들었는가)가 찾아왔다. 이상 기후라고 해도 될만큼 수세기 동안 안정적으로 따뜻했던 중세 온난기는 1200년대 말엽 끝나게 되고 이후 1800년대 초까지 기후는 아래위로 널뛰기 하며 사람들을 괴롭혔다. 중세 온난기에 비해 급속히 한랭해진 소빙기 시대에는 그린란드의 바이킹 정착지들이 사라졌고, 일주일만에 빙하가 알프스 계곡을 타고 내려와 마을들을 단숨에 부수기도 했으며, 북아메리카의 영국인 정착지들을 기근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소빙하기 시기에 빚어진 한랭화와 그로 인한 농업생산의 타격과 불안정한 경향은 널리 보면 명청 교체기의 대혼란과 프랑스 혁명에까지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어떻게 기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 

그러나 이렇게 기후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오며 역사를 만들어오던 인간은 산업혁명 이후 막대한 에너지를 해방시켰다. 바로 수억 년 동안 땅속에서 잠자던 화석연료들이었다. 여기서 대기 중으로 쏟아진 막대한 온실가스들은 지구를 따뜻하게 만들면서 급속도로 지구의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활동이 기후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과연 그럴까?

서론이 굉장히 길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다’이다. 인간은 산업혁명 이전부터 기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다만 산업혁명 이후는 규모면에서 그 이전과 큰 차이를 보일뿐이다. 윌리엄 F. 러디먼 [쟁기, 역병, 석유; Plows, Plagues, and Petroleum] (번역 제목: 인류는 어떻게 기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은 이 세 가지 요소가 바로 산업시대 이전부터 인간이 기후를 만들어온 증거를 찾아낼 열쇠라고 말한다.

윌리엄 F. 러디먼 ㅣ 김홍옥 옮김 ㅣ 출판사에코리브르 | 2017.06.27

윌리엄 F. 러디먼 ㅣ 김홍옥 옮김 ㅣ 출판사에코리브르 | 2017.06.27

우선 이를 알기 위해서는 기후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한다. 고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인 저자는 지구과학에 대한 친절한 설명으로 이 메커니즘을 알려준다. 지구 기후는 일정한 주기를 따라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빙기(glacial period)간빙기(interglacial period)의 주기라 할 수 있겠다. 대략 10만년의 간격으로 지구는 춥고 기나긴 빙기와 따뜻하나 짧게 왔다가는 간빙기를 오갔다.

이런 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지구에게 열을 전해주는 태양복사에너지의 차이고, 이 태양복사에너지는 근본적으로 지구의 궤도에 달려 있다. 자전축의 세차운동은 2만 2천 년, 자전축의 경사는 4만 년, 그리고 공전궤도 이심률은 각 10만 년 정도의 주기를 가지고 변화한다. 이것이 지구 기후와 갖는 상관관계를 발견해낸 세르비아 수학자 밀류틴 밀란코비치의 이름을 따 ‘밀란코비치 주기’(Milinkovitch cycle)라고 부른다.

'밀란코비치 주기'(Milinkovitch cycle)

밀란코비치 주기

밀란코비치 주기는 빙하와 몬순 주기에 영향을 끼친다. 빙하의 경우 간단하게 태양복사에너지가 줄어들어서 빙기가 찾아오면 빙하가 남쪽으로 확대되고 지구는 추워진다. 한편 남아시아와 동아프리카에서 확인되는 계절풍과 그에 따른 우기와 건기의 교차인 ‘몬순’도 태양복사에너지의 영향을 받는다. 태양복사에너지가 커지는 것은 육지와 바다에 다르게 작용한다. 육지는 빠르게 데워졌다가 차가워지고 바다는 천천히 데워졌다가 식혀지는데 이 비열차가 커지면 우기에 더 많은 비가 쏟아지게 된다. 반면 태양복사에너지가 줄어들면 육지가 뜨거워지는 정도가 낮아져 비열차도 낮아지기 때문에 몬순의 효과는 줄어든다.

호미닌(hominin; 인류의 조상)은 대략 300만 년 전부터 진화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모든 생물이 그러했듯이 밀란코비치 주기에 따라서 살아가야 했다. 갑작스럽게 알 수 없이 추워지면 개체 수는 조정되었고 서식지는 후퇴했다. 하지만 기후가 온화해지면 다시 개체수가 늘어났고, 그 사이에 진화한 호모 에렉투스와 같은 호미닌들은 아프리카 밖으로 벗어나기도 했다. 후에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 대표되는 고인류가 유라시아에 다시금 진출하였고 이들은 아시아에서 데니소바인으로, 유럽에서는 네안데르탈인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렇게 밀란코비치 주기를 따라가면서 인류는 점점 진화하였는데, 30만년 전에 출현한 현생인류에서 정점에 달하게 된다. 아프리카에 계속 머물던 우리의 직계조상들은 7만년 전을 기점으로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현생 인류의 확산에는 두 가지 강력한 기술이 기여했다.

우선 골각기를 만들 수 있는 섬세한 능력은 의류에서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바늘을 만들어 몸에 딱 맞는 옷을 만들기 시작해 혹독한 겨울도 더 안전하게 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골각기는 낚시를 가능하게 해주어 연안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고, 인류는 장차 뗏목을 만들어 바다를 건널 수 있게 해주었다. 인류는 이 두 능력으로 말미암아 유라시아를 넘어서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로도 진출할 수 있었고, 유라시아에서는 생태적 경쟁에서 사촌 인류들을 모두 몰아내버렸다.

골각기

골각기

마지막 빙기가 끝나가던 1만 4천년 전 무렵, 인류는 거의 대부분의 땅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인류는 이 때부터 자연에 큰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는데, 토착 대형 포유류들을 모두 사냥해서 멸종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간빙기는 영거 드라이아스기를 맞이해서 잠시 주춤했으나 1만 1천년 경 전부터 다시 지구를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따뜻한 기후를 맞이한 현생인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풍요를 마음껏 즐겼다. 가축화할 동물과 작물화할 식물이 많던 서아시아의 측면 구릉지대에서 농경이 시작되었고, 중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인도에서도 농경이 자체적으로 발명되거나 확산되어갔다.

그런데 이 시점부터 지구가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간빙기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기록이 상세히 확보되는 최근의 기후 자료에서는 모두 간빙기가 시작될 무렵 대기 중 이산화탄소와 메탄 농도가 최고치를 찍고 조만간 감소세를 보이는 것이 관측된다. 이렇게 온실가스들이 대기 중에서 줄어들면 태양복사에너지가 지구 바깥으로 더 많이 달아나기 때문에 지구는 다시 차가워진다. 새로운 빙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러디먼은 이런 과거의 패턴이 처음에는 잘 돌아갔다고 말한다. 실제로 8천년 전까지 대기중 온실가스 농도는 꾸준히 감소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하락세는 반전했다. 온실가스는 상승세를 탔으며 지구의 기온은 ‘긴 여름’이라는 말에 걸맞게 지금까지도 간빙기에 보여주는 따뜻한 상태를 유지 중이다.

무엇이 ‘긴 여름’을 가능하게 했을까? 러디먼은 자연의 숱한 변수로는 이런 이례적인 패턴이 설명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자연의 변수들이 기후를 이렇게 바꿔놓았다면 첫째로 왜 그 이전의 빙기에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는지를 설명해야하고, 둘째로 그 효과가 과연 이 정도로 강력한지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자연적 변수는 이에 대한 충실한 대답이 되어주지 못한다. 그런데 이전의 간빙기와 지금의 간빙기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현생인류의 존재다.

쟁기와 역병: 세 번의 소빙기  

농경을 시작한 인류는 이때부터 이미 탄소발자국의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첫째로 초기 농경민이 도입한 화전농업(火田農業)은 엄청난 양의 숲을 재로 만들어 대기에 탄소를 더했다. 숲이 줄어들고 농경지가 확보되면 곧이어 인구가 늘었고 그 늘어난 인구는 또 다른 농경지를 필요로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육지의 숲들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화전농업은 산간지대나 고원에서 초지(草地)를 태우고 난 뒤 그 땅에 밭곡식을 심어 거의 비료를 주지 않고 경작하는 방법이다.

화전농업은 산간지대나 고원에서 초지(草地)를 태우고 난 뒤 그 땅에 밭곡식을 심어 거의 비료를 주지 않고 경작하는 방법이다.

둘째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의 논농사는 이산화탄소에 더해 메탄을 풀어놓았다. 습지에 자라는 식물들이 죽으면 박테리아가 이를 분해해 메탄으로 만들어 대기 중으로 방출하는데,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그리고 인도에 확산된 대규모 관개와 논농사 지대가 인공적인 메탄 방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류가 키우기 시작한 가축들도 분뇨를 통해 메탄 방출에 기여했다.

따라서 이 두 효과가 중첩된 결과 밀란코비치 주기에 따른 자연적인 냉각 효과는 억제되었다. 자연적으로 줄어드는 온실가스 규모를 인류가 수천년 동안 숲을 태우고 관개를 위해 물을 대면서 상쇄해버린 것이었다. 농민들은 더 따뜻한 지구에서 더 많은 농사를 지으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계속해서 확장해나갔다. 서력 기원 전후로 펼쳐진 로마 온난기(Roman warm period)에 유라시아 동서 양편의 첨단 제국들인 로마와 한은 사회발전을 할 수 있는만큼 계속해서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로마 제국과 한 제국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무렵의 대기중 이산화탄소와 메탄 추이에 새로운 추세가 나타난다. 지구의 자연스러운 냉각과 인간의 온실가스 효과가 서로를 상쇄하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그래프가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기후가 차가워졌다. 이런 추세는 지난 2천년 동안 세 번 관찰된다.

  1. 첫째는 앞서 언급한 로마와 한 두 제국의 말기에서 중세 초기였다(중세 초 소빙기).
  2. 두 번째는 중세 온난기가 끝나고 시작된 14세기의 소빙기였다.
  3.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17세기의 소빙기다.

이 세 시기 모두 문명의 위기라고 불릴만큼 격렬한 변화가 초래되었고, 이는 세계적 혼란으로 이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1. 중세 초 소빙기: 로마 제국과 한 제국의 멸망과 시기가 겹친다. 이 시기 흉노와 선비, 혹은 훈족과 게르만족의 침입과 천연두를 비롯한 각종 전염병의 창궐로 말 그대로 수천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
  2. 14세기 소빙기: 몽골의 유라시아 정복과 흑사병 창궐과 연관이 있었고, 그 결과는 이전보다 더 끔찍했다. 이언 모리스에 따르면 이 두 시기에 동서양 양편에서 공히 사회발전지수가 하락했다.
  3. 17세기 소빙기: 사회발전지수가 떨어지진 않았지만, 유럽의 30년 전쟁, 동아시아의 명청 교체로 인한 대혼란이 벌어진 때였으며 이 때도 기근이 찾아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은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범유행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유럽 지역에서는 1346년–1353년 사이 범유행이 절정에 달했으며, 이 범유행으로 유라시아 대륙에서 최소 7500만, 최고 2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다. (위키백과, '흑사병')

14세기 소빙기.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은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범유행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유럽 지역에서는 1346년–1353년 사이 범유행이 절정에 달했으며, 이 범유행으로 유라시아 대륙에서 최소 7500만, 최고 2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다.” (위키백과, ‘흑사병’ 중에서)

그런데 왜 기후가 차가워지는 것과 대규모 전염병, 그리고 국가 붕괴는 서로가 같이 오는 것일까? 여기서 ‘쟁기'(Plows)에 이은 ‘역병'(Plagues)이 등장할 차례다. 대규모 전염병의 창궐은, 서로 다른 병원균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마주쳤을 때 면역력의 불균형으로 일어난다.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 말한 바대로다.

1차 구세계 교환은 로마와 한이라는 수천년 동안 다른 농경(그리고 병원균) 전통 위에 세워진 두 제국이 접촉하면서 시작되었다. 유목민의 이주는 이를 부채질했다. 2차 구세계 교환은 중세 유럽과 이슬람 제국, 그리고 송나라가 병원균을 교환하면서 이루어졌다. 몽골 제국이 여기서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대규모 전염병의 창궐은 그 자체로 사회의 인구를 엄청나게 줄이며, 국가를 약화시킨다. 그와 동시에 외부 세계에서 대량의 이주자들이 들어오면 국가는 붕괴하고 역시 숱한 인구를 줄인다. 문제는 인구가 줄어들면 해당 사회에 필요한 경작지도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몇몇 마을은 버려지고, 그 자리는 이제 놀랍도록 엄청난 회복력을 가진 자연에 의해 다시 숲으로 되돌아간다. 갓 태어난 숲들은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기 중의 탄소를 빨아들인다. 이렇게 되면 밀란코비치 주기에 의해 작동하던 냉각을 상쇄하던 효과가 사라진다. 바로 그렇게 소빙기가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질병과 기후변화가 함께 와서 사회발전을 주저앉히는 이유다.

갓 태어난 숲은 다시 탄소를 빨아들인다

역병의 창궐은 인구 감소를 가져오고, 국가를 약화시키며, 마을을 사라지게 한다. 그 자리에 갓 태어난 숲들은 50년 동안 다시 탄소를 빨아들이고, 그렇게 소빙기가 찾아온다.

인간, 기후를 만들다 

이렇게 본다면 기후와 인간 역사의 상호작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농경 제국들이 확대되면서 경작지는 늘어갔고, 숲은 줄어들었으며, 관개가 확대됨에 따라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방출되었다. 이것이 로마 온난기(B.C. 300~A.D. 300)을 만들었다.

그러나 로마 온난기 동안 성장한 두 제국이 쌓은 부는 서로를 끌어당겼고, 상인과 유목민을 접촉시켰다. 이는 동서양 양편에서 질병의 교환을 초래했고 국가를 약화시켰으며 유목민의 이주를 부추겼다. 이 때 동서양에서 벌어진 혼란으로 감소한 막대한 인구는 경작지 상실로 이어졌고 숲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중세초 한랭기가 시작되었다.

유라시아 사회는 이 혼란에서 회복하기 시작했다. 대혼란은 주변부의 확대라는 효과를 가져왔다. 동양에서는 수양제의 대운하가 중국에 지중해를 만들어주었다. 북중국의 선진적인 기술과 사회조직법, 그리고 숙련된 인력이 미개척된 남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와 드넓은 장강 유역을 모두 논으로 개간하고 숲을 베어넘겼다.

동남아시아에서도 국가가 확장되면서 비슷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서유럽에서는 게르만족들이 농부로 변신하였다. 새로운 종류의 쟁기를 도입하고 그 쟁기를 소보다 더 힘이 센 말이 끌게 만들면서 유럽의 농부들은 더욱 높은 생산력을 확보했다. 이 두 과정을 통해 두 지역에서는 모두 도시가 성장했고 성장한 도시는 농경의 확대를 더 자극했다. 이로써 중세 온난기가 열렸다.

그러나 중세 온난기가 가져온 불균등한 효과는 새로운 붕괴로 이어졌다. 유라시아 북쪽의 몽골 초원에서 목축을 하는 유목민들은 오랜 내분을 끝내고 하나로 뭉쳤다. 그들의 생태적 기초가 뒤흔들리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를 침략해야만 했다. 그리고 칭기스 칸의 지도력과 조직화된 몽골군은 놀라운 군사적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중국과 중앙아시아, 중동에 대재앙을 가져왔다. 이 때 죽은 인구는 다시금 경작지의 손실로 이어졌고, 14세기의 한랭기로 이어짐과 동시에 제2차 구세계 교환을 가져왔다. 이후 흑사병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역병이 창궐하여 인구는 또 다시 줄었고 기나긴 소빙기가 이어지게 된다.

칭기즈 칸(한자: 成吉思汗, 1155/62/67년? 4월 16일~1227년 8월 25일)

칭기즈 칸(한자: 成吉思汗, 1155/62/67년? 4월 16일~1227년 8월 25일)

그런데 이번엔 이전과 같은 패턴이 관찰되지 않았다. 다시말해 중세 온난기로의 회복세가 관찰되지 않았다. 오히려 17세기가 되자 더더욱 거센 소빙기가 몰려왔다. 이 시기에 유라시아 양편에서 문명은 붕괴하지 않았다. 주변부는 또다시 확장되었고 제2차 구세계 교환의 여파에서 동양과 서양은 모두 회복 중에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길래 소빙기가 또 찾아온 것일까?

그 비밀은 유라시아에 있지 않았다. 제2차 구세계 교환은 유럽에 흑사병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화포와 대양 항해가 가능한 범선이라는 선물도 안겨주었다. 유럽인들은 동양의 부를 찾아 떠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인도를 향해 갔던 콜롬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여기서 17세기 소빙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메리카에서는 역사가들이 ‘콜럼버스 교환'(Columbian Exchange)이라 명명하는 역사상 최대의 질병 교환이 있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450년 10월 31일 ~ 1506년 5월 20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450년 10월 31일 ~ 1506년 5월 20일)

메소아메리카와 안데스, 그리고 미시시피와 오대호 연안의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가 80%에서 90% 가까이 죽었다. 이들은 집약적 농경보다는 원시적 농경에 의존하고 있었기에 삼림 파괴 효과도 더 큰 편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인구학적 파멸은 이후 200년 넘게 회복되지 못했는데, 그 사이에 버려진 원주민들의 농경지는 다시 숲이 채우기 시작한다. 이들이 탄소를 빨아들인 결과, 17세기 소빙기가 시작되고 만 것이다.

17세기 소빙기는 이전처럼 유라시아 문명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았다. 화약무기를 갖춘 유라시아의 거대 제국들이 유목민을 복속시켜 대규모 이주를 차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붕괴를 숱하게 버텨내면서 기술을 축적한 서유럽 사회는 새롭게 열린 대서양 경제를 활용해 마침내 산업혁명을 이루어냈다. 이후 인류는 화석연료의 문을 열어젖히고, 본격적으로 인간 활동이 기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쟁기(Plows)와 역병(Plagues)를 넘어 석유(Petroleum)의 시대가 된 것이다.


  1.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 “약 1만 3,000년 전 지구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약 1200년간 다시 빙하기를 겪었다. 이 시기를 영거드라이아스기(Younger Dryas Event)라고 부른다. 드라이아스(Dryas)는 고위도 고산지역의 추운 기후대에 번성하는 담자리꽃의 영어 이름인데, 지구가 더워지면서 서서히 고산지대로 물러나던 담자리꽃이 이 시기에 갑자기 다시 번성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출처: 주간동아, 바다를 알면 기후가 보인다, 2004. 6. 25.)

  2. 참고로 [긴 여름]은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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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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