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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플라멩코 그리고 스페인 투자이민

이 글은 총 10편으로 기획된 ‘힝고의 스페인 유람기‘ 중 8편~10편을 담은 글입니다. (편집자) 

 

 

8. 고야의 ‘검은 그림’에서 우리의 미래를 고민하다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볼 때 그 함의를 찾는 작업을 매우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또는 의무감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위대한 예술가들은 우리에게 그리 직관적으로 알레고리를 전달해 주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스페인 화가 고야의 그림 중 그러한 작품들이 많다. 현재 고야 작품 대부분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1층과 0층에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제공되니 필히 방문해 보시길 권한다.

고야, 곤봉 결투, 1820~23년, 123 x 266 cm

고야, 곤봉 결투, 1820~23년, 123 x 266 cm

위에 사진으로 보이는 작품의 이름은 ‘곤봉 결투; Duel with Cudgel’로, 고야가 말년에 그렸던 ‘검은 그림’ 14연작1중 하나다. 작품에 등장하는 두 남성은 발을 땅에 묻은 채로, 아무런 맥락도 이유도 없이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우고 있다. 게다가 작품의 배경은 매우 맑은 날씨에 색감도 아주 밝아서, 오히려 두 남성의 사투(死鬪)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얼핏 뜬금없는 스냅샷처럼 보이는 이 작품의 알레고리는, 알고 보면 19세기 말 스페인의 복잡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스페인은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에게 심대한 위협을 당하고 있었으며, 국왕 페르난도 7세는 나폴레옹에 의해 폐위당했고, 나폴레옹은 자신의 친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 국왕으로 세웠다. 이에 스페인 민중은 거세게 저항하였으나, 나폴레옹은 무자비한 학살과 처형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몰려온 자유주의의 물결에 심취해 있던 스페인의 지식층은 큰 좌절감에 빠졌으며, 고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고야, 1808년 5월 3일의 학살, 1814년작. 스페인 독립전쟁의 시발점이 된 1808년 5월 2일의 마드리드 반란사건 다음날의 처형을 모티브로 한 작품.

고야, 1808년 5월 3일의 학살, 1814년작. 스페인 독립전쟁의 시발점이 된 1808년 5월 2일의 마드리드 반란과 그 다음날 프랑스군에 처형당하는 민중의 분노와 절망을 형상화한 작품.

이후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스페인은 자유를 되찾았으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미 자유주의에 깊게 물든 스페인 민중은 입헌군주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새로운 헌법인 ‘카디스 헌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에 의해 유폐되어 있었던 페르난도 7세는 절대왕정을 복고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고, 처음에는 카디스 헌법을 승인하였으나 곧 신성동맹을 통해 외국 군대를 또다시 끌어들여 자유주의 세력을 탄압했다. 이후 20세기가 되면서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파시즘의 시기가 다가왔고, 스페인 민중이 진정한 자유를 찾기까지는 매우 오랜 세월이 걸렸다.

헌법

카디스 헌법

고야의 ‘곤봉 결투’는 이렇게 자유를 갈망하는 스페인 민중과 이를 억압하는 세력 간의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고야의 이 작품에는 둘 중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힌트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당시 고야가 처한 환경이 그리 썩 좋지 못했다는 점에서, 억압과 투쟁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그가 느낀 좌절감과 실망감을 중점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이렇듯 억압과 투쟁으로 점철된 거대한 사회적 갈등은 하나의 큰 흉터와도 같이 남아, 나 같은 후학에게 당대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짐작케 만들어 준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역시 하나의 거대한 흉터를 파내듯 하는 격렬한 사회적 갈등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100년, 150년 뒤 우리의 다음 세대는 우리의 어떤 모습을 보면서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해야만 하는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9. 올라! 플라멩코, 올라! 최저임금

 

스페인의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화려한 의상을 차려 입은 분들이 “올라! 플라멩코”라며 여행객들을 호객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처럼 스페인 어디를 가든 플라멩코 공연은 흔히 접할 수 있다. 특히 투우가 동물 학대 문제로 인해 이런저런 이슈가 제기되는 터라, 스페인의 민속문화를 흠뻑 느끼기에는 역시 플라멩코(스페인어: flamenco)가 제격이라 할 수 있다.2

그러나 우리가 스페인의 전통 음식이라고 알고 있는 빠에야가 사실은 동부 발렌시아 지역의 전통 음식이듯이, 플라멩코 역시 사실은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민속 무용이다. 가장 오래 된 플라멩코 공연 기록은 1774년에 있었으며 여기에는 집시, 무어, 안달루시아 토착 문화는 물론 그레고리오 성가 이전 시절의 기독교 성가의 멜로디 역시 녹아들어가 있다. 즉 말 그대로 스페인 문화의 거의 모든 것이 버무려져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여행객이 플라멩코를 관람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 어느 정도일까? 이는 도시, 공연장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플라멩코 공연만을 관람하는 데에는 인당 약 20유로 수준, 식사를 하면서 관람하는 것은 60~70유로, ‘동굴 플라멩코’의 경우 약 100유로 수준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경험상 플라멩코 공연장의 최대 입장 인원은 50명 수준이며 보통 50~60%가량 찬다.

보통 플라멩코 공연은 저녁에 1시간씩 2타임을 가지므로, 좌석이 100% 들어찼을 때 공연장의 예상 수익은 공연만을 관람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루 2,000유로 수준이 될 것이다. 월 내내 하루도 쉬지 않는다고 가정할 시 매출은 6만 유로 이상이 된다.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플라멩코 공연장은 고용 인원이 상당히 많은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이는 플라멩코 공연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플라멩코를 보신 분들은 아셨겠지만, 플라멩코 댄스는 과연 무용수의 관절이 무사할까 싶을 정도의 격렬함을 자랑한다. 게다가 식사를 하며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도 있는 특성상 별도의 요리사도 고용해야 하며, 현장에서 예매 등을 진행하는 계원도 있어야 한다. 그라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장 중 하나인 ‘까사 델 아르떼 플라멩코 그라나다; Casa del Arte Flamenco Granada’(이하 ‘까사’)의 경우 아티스트만 17명, 요리사 및 기타 인원 6명이 고용되어 있다.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플라멩코 공연장의 무대는 매일 매일 손을 보고 보수해야 한다. 하루에 두 시간씩 두 명의 성인 무용수가 과격하게 발을 구르기 때문이다. 즉 50명 짜리 공연장에 고용된 인원만 거의 30명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가장 유명한 공연장 중 하나인 ‘까사’도 손님을 50~60% 정도로만 채운다(개인적으로 ‘까사’에는 세 번 방문했다.) 이 경우 식사손님과 공연손님을 5:5로 계산해도 하루 매출은 1,200 유로로 줄어든다.

이 경우 월 매출은 3만 6천 유로 수준이 되는데, 현재 스페인의 최저임금이 월 858.55 유로인 점을 감안하면 인건비만 25,758 유로가 소비된다. 즉, 손님을 100% 채우지 못하면 채산성이 심각하게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플라멩코 공연인 것이다. 스페인 현지 언론에 따르면 무용수들의 평균 월 급여는 900 유로 수준이라고 하니 실제로는 적자를 보는 공연장도 많을 것이다.

문제는 지난해 스페인 국민당의 라호이 전 총리가 오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약 20% 상승시키는 법안에 서명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이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2020년 스페인과 한국의 최저임금은 거의 비슷한 수준에 맞춰질 것이다. 두 나라의 1인당 GDP가 큰 차이가 나지 않긴 하나, 스페인과 우리나라의 공통점은 결국 높은 자영업 비율이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올라! 플라멩코”라는 이야기를 더 적게 듣게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10. 스페인에 투자 이민을 하려면 어디에 부동산을 사야 할까

 

스페인 남부 해안에서 지중해를 등지고 떠나면, 육중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여행객들을 맞이하게 마련이다.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곳곳을 달리는 지역 완행 버스는 고속도로를 옆에 두고 구불구불한 옛길을 따라 지중해에 면한 항구마을과 시에라 네바다 구석구석 점점이 흩어져 있는 산촌을 모두 들렀다 간다. 그라나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하니 시간이 흘렀지만, 이 버스가 아니었더라면 안달루시아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버스가 가는 길에는 스페인이 겪었던 지난 경제 위기의 흔적들도 점점이 흩어져 있다. 2012년 부동산 버블 붕괴의 참상 이후 개발이 중단되어 버려지거나, 다 지어지지도 않은 주택 단지에 애처롭게 입주자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덩그러니 나뒹구는 식이다. 특히 이렇게 버려진 주택들은 휴양도시의 배후에 지어진 경우가 많은데, 입지조건이 그닥 좋지 못한 상황에서 부동산 버블과 관광객에게만 기대하다가 망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비슷한 경제 위기라 할지라도 그리스와 스페인은 그 성질이 약간 다른데, 둘 다 유로화 체제 편입 이후 경제 상황에 맞지 않은 고유로화·저금리를 잘못 활용해서 위기를 맞긴 했다. 그러나 그리스는 이것이 정부 부채로, 스페인은 부동산 시장으로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스페인은 2000년대 중반 사회당 정권이 이미 복지정책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간발의 차이라 할 수 있겠다.) 스페인과 유사한 사례는 아일랜드다.

그래서 현재 스페인의 부동산 가격은 2008, 2009년 즈음의 최고가 대비 대부분 40~50% 정도 하락한 상태이다. 그런데 지난 2016년 이후 최근 스페인에서는 이상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다시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상승 지역은 북부 팜플로나, 수도 마드리드, 제 2의 도시 바르셀로나, 남부의 중심지 중 하나인 말라가 등이다. 왜 그럴까? 이는 스페인 정부의 이민 정책 중 하나인 ‘골든 비자’ 때문에 중국 자금이 유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골든 비자는 간단하게 투자 이민의 개념으로, 스페인 영토 내에 50만 유로(한화 약 6.5억 원)가량의 부동산을 갯수에 제한 없이 구매할 경우 스페인 영주권을 주는 제도이다. 2018년 4월 기준 스페인 정부는 중국인 투자자 702명에게 골든 비자를 발급했으며, 이들의 투자 총액은 4.89억 유로(한화 약 6천억 원)에 달한다. 현재 중국인들의 부동산 투자는 늘 그랬듯 상업용 빌딩이 시작이나 이것이 이미 주택 가격을 들썩거리게 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중국인의 대스페인 투자가 지난 2016년경부터 급증한 점, 최근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스페인의 도시들이 고속철도 노선의 시종착 도시라는 점(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말라가) 및 이들 도시는 구시가 배후의 신시가지가 넓다는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이들 도시의 2018년도 2분기 부동산 상승률은 각각 15% 남짓을 호가한다.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셈이다(자세한 사항은 아래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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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스페인 부동산은 현재 최고가 대비 40~50% 하락해 있다는 가격적 매력에 더해,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스페인 부동산 투자의 약 22.3% 를 차지하던 영국의 자본이 유출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 겹쳐 향후 스페인에 대한 중국의 투자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예상도 해 볼 수 있다. 굳이 투자 이민이 아니더라도 순수한 자본이득만을 노려볼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스페인은 누차 말씀드렸다시피 강한 규제로 인해 주택의 원활한 공급이 어렵다.

물론 스페인은 한국보다 인구가 적으며(약 4,700만가량), 한국보다 국토가 훨씬 넓다는 점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이 부동산 가격이 급작스럽게 오르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유럽에서 어느 정도 경제 규모가 되는 나라들 중 부동산이 이렇게 밋밋하게 움직이는 나라는 스페인 정도이며, 상기했듯 규제로 인해 주택 공급도 원활치 않아 향후 차이나 머니의 방향에 따라 주택 가격도 언제든지 들썩일 수 있다. 아직 해외 투자의 문이 좁은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든지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뜻이다. (끝) 

힝고의 스페인 유람기

슬로우뉴스는 힝고마스터 님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연재한 ‘힝고의 스페인 유람기'(총 10편)를 3~4편씩 묶어 3회에 걸쳐 발행합니다. (편집자)

카탈루냐의 노란 리본에서 세비야의 택시까지 (1편~4편)

1. 노란 리본에서 읽는 스페인의 지역 갈등 문제
2. 바르셀로나 지하철에는 광고판이 없다
3. 람블라스 거리에서 스페인 노동시장 읽기
4. 세비야의 택시는 동유럽에서 왔다

오랜 도시 아름다운 건물에 남은 독재의 여운 (4편~7편)

5. 세비야의 구시가지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6. 쓰러져 가는 나사리 궁전에서 유럽의 민주주의를 논하다
7. 전통의 보존과 끔찍한 소음을 맞바꾼 그라나다

고야, 플라멩코 그리고 스페인 투자이민 (8편~10편)

8. 고야의 ‘검은 그림’에서 우리의 미래를 고민하다
9. 올라! 플라멩코, 올라! 최저임금
10. 스페인에 투자 이민을 하려면 어디에 부동산을 사야 할까


  1. 고야의 검은 그림 연작: 고야(1746년 3월 30일~1828년 4월 16일, 82세)는 1819년 세상과 떨어져 지내고자 만사나레스 근처에 집을 한 채 구해 “퀸타 델 소르도”(스페인어: Quinta del Sordo, 귀머거리의 집)라 이름붙였다. 자신이 청력을 잃엇기 때문. 그리고 고야는 여기에서 1823년까지 검은 그림(Black Paintings) 연작을 그린다. (참조: 위키백과-‘검은 그림’)

    1. 아들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 1819~23년, 146 x 83 cm
    2. 개, 1819~23년, 134 x 80 cm
    3. 두 노인, 1820~23년, 144 x 66 cm
    4. 독서, 1819~23년, 126 x 66 cm
    5. 유디트와 홀로페네스, 1819~23년, 146 x 84 cm
    6. 웃는 여자, 1819~23년, 125 X 66cm
    7. 마놀라(레오카디아), 1819~23년, 147 x 132 cm
    8. 성 이시드로의 축제, 1819~23년, 140 x 438 cm
    9. 아스모데우스(Asmodea; 성서에 나오는 악귀), 1819~23년, 123 x 265 cm
    10. 곤봉 결투, 1820~23년, 123 x 266 cm
    11. 아트로포스(Atropos; 숙명), 1821~23년, 123 x 266 cm
    12. 마녀들의 안식일, 1819~23년, 140 x 438 cm
    13. 두 여자와 한 남자, 1820~21년, 125 x 66 cm
    14. 두 마술사, 1820~23년, 53 x 85 cm
    + 15. 풍경 속의 머리, 아마도 열다섯 번째 검은 그림으로 추정되는 작품.

    작품은 모두 회반죽을 바른 캔버스에 유화,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에 소재.

  2. 요새 투우는 요새 공연하는 경우가 적어 보기도 어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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