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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왜 유럽에선 흥하고 미국에선 망했나

왜 유럽은 복지국가 모델을 발전시켰는데, 미국은 그렇게 하지 못했나? 

[복지국가의 정치학]은 바로 그 차이에 관해 다룬다. 이 책은 6.13 지방선거를 앞둔 우리에게도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어떤 후보는 ‘복지’를 강조하고, 어떤 후보는 ‘개발(경쟁)’을 강조한다. 우리는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알베르토 알레시나 , 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 전용범 옮김 | 생각의힘 | 2012년

알베르토 알레시나 , 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 전용범 옮김 | 생각의힘 | 2012년

[복지국가의 정치학]은 우선 객관적 자료를 통해 유럽과 미국의 복지 수준은 실제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은 미국보다 GDP 대비 더 많은 복지비용을 지출하고, 노동시장 관련 규제도 더 많으며, 유럽인은 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을 받는 것이 미국보다 쉽다. 그 대신 미국인은 사적 재분배로서 자선활동에 유럽인보다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

경제적인 설명? 

이 책은 복지국가의 존재에 관한 경제적인 설명을 검토하면서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째 가능성은 세전소득 분배다. 만약 국가가 개입하여 소득을 분배하지 않았을 때 유럽이 미국보다 불평등할 경우, 유럽에 더 많은 복지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 차이가 유럽 복지국가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료로 봤을 때 미국이 더 불평등함은 쉽게 확인된다.

둘째로 사회적 이동성과 소득불확실성이다. 미국은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이후에 중산층이나 상류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유럽보다 클 수가 있다. 이럴 경우 미국인은 미래의 기대소득을 고려하여 빈곤층으로의 부의 재분배를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설명력이 부족하다. 확실히 중산층이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종류의 이동은 미국이 유럽보다 활발하나, 하류층이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이동은 오히려 유럽이 더 활발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재분배 비용 문제가 있다. 행정효율 등의 문제로 돈을 거둬서 나눠주는 데 비용이 더 들어갈 경우 복지 지출의 규모는 더 커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재분배 비용이 유럽이 딱히 더 높다는 증거는 없다. 단적으로 이탈리아가 미국보다 행정효율이 높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설명은 설명력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다양하고 객관적인 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돈 유로

정치제도의 차이! 

알레시나와 글레이저는 유럽과 미국의 차이, 그 근저에는 정치제도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들이 그 주장의 근거로 삼는, 복지국가에 크게 영향을 미친 유럽과 미국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유럽은 강력한 사회주의 정당이 존재했고, 이들 다수는 집권하여 복지국가를 크게 확대시켰다. 그러나 미국에는 유의미한 좌파 정당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둘째로 선거제도다. 비례대표제는 동질적인 사회의 특정 인구집단이 자신의 영향력을 관철시키기에 좋은 제도다. 좌파 정당이 초기에 성장할 때 이들은 항상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의제로 걸었고 비례대표제를 통해 안정적 기반을 확보한 뒤에는 복지국가 확대를 의회에서 압박했다. 그러나 미국은 다수대표제였기 때문에 유럽에서 일어난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다.

셋째 원인은 연방제다. 복지를 지방정부 차원에서 담당하게 되면 지방정부들은 복지확대에 머뭇거리게 된다. 섣불리 세율을 높일 경우 재정에 도움을 주는 부유층들이 더 낮은 지역으로 얼마든지 이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큰 복지국가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미국은 강력한 주의 권리를 뒤집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미국 정치가 유럽보다 견제와 균형이 더 강했다. 강한 견제와 균형은 급격한 정책적 전환을 어렵게 만든다. 이를테면 미국은 대법원과 상원이 툭하면 하원과 대통령의 결정을 뒤집으면서 소득재분배 정책을 저지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로 인해 숱한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러나 유럽에는 이런 식의 강력한 견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고 선거를 통해 구성된 의회나 행정부가 막강한 권한으로 밀어붙이는 게 가능했다.

루스벨트(FDR)은

루스벨트(FDR)가 추진한 소득재분배 정책들은 대법원과 상원의 ‘딴지’로 인해 숱한 좌절을 맛봐야 했다.

비례대표제와 소득재분배의 상관관계

이런 정치제도의 차이는 두 사회 간 소득재분배의 차이를 절반 정도 설명해준다.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다양한 정치제도 혹은 정치적 특성은 궁극인(final cause)라고 볼 수 없다. 정치제도는 외생적인 변수가 아니라 두 사회의 서로 다른 초기 조건들이 빚어낸 결과물에 가깝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들 ‘정치 제도의 기원'(5장)을 추적한다. 사실 유럽이라고 처음부터 복지국가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군주와 귀족이 있던 유럽이 미국보다 더 보수적이었고, 복지는 그 군주를 방어하기 위해 비스마르크가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도입한 것이었다. 따라서 정치제도의 기원에 대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왜 똑같이 소득재분배에 호의적이지 않던 두 사회 중 유럽만 소득재분배에 호의적으로 태도가 바뀌었는가?’

소득재분배와 강한 연관을 맺는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대표적인 예이다. 영국을 필두로 숱한 유럽 국가들은 모두 다수대표제로 시작했다. 비례대표제는 나중에야 도입되게 되는데, 그 원인은 정치제도의 다른 요인인 사회주의 정당과 사실상 하나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사회주의 정당이 정치에 강한 영향을 끼쳤는지 아닌지에 따라 갈린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회주의 정당은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언제나 비례대표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정당이 힘을 떨치던 유럽에서는 그들의 요구사항이 반영되어 비례대표제가 정착되었고, 그 결과로 복지국가는 확대되었다.

반면 미국은 좌파가 힘을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사항도 반영되지 못했다. 여러모로 두 사회의 중간쯤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영국의 경우, 다수대표제임에도 불구하고 선거구가 극히 작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유리한 선거구, 즉 동질적 노동계급으로 구성된 선거구를 통해 의회에 진출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노동당은 다수대표제 하에서 진입장벽을 쳐 신규 도전자의 등장을 막을 수 있었고 따라서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유인이 없었다.

독일은 정당명부식(위) 우리나라는 혼합식(아래)

독일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위) 우리나라는 혼합식 비례대표제(아래). 독일의 정당명부식 제도가, ‘무늬만 비례대표제’인 우리나라의 혼합형 제도와 비교하면, 민의를 최대한으로 반영하고 사표를 방지하며 의회의 다양성을 유인하는 비례대표제의 취지에 훨씬 더 부합한다.

미국에서 좌파가 득세하지 못한 이유

그렇다면 왜 유럽에서는 좌파가 막강한 힘을 가졌는데 미국에서는 그러지 못했을까? 이러한 미국 예외주의는 세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1. 지리의 차이

첫째는 지리의 차이다. 유럽은 작은 나라들로 구성된 반면 미국은 거대한 대륙 국가다. 작은 유럽국가들은 정치적 중심지와 조직된 노동계급이 자리한 산업중심지가 사실상 일치했다. 이 경우 총파업이나 대중소요 등은 정말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설령 승리하지 못해도 정치권력에 가해지는 압박이 엄청났고, 좌파에게 유리한 합의를 따낼 수 있었다. 여기에는 각종 노동규제, 최저임금, 그리고 비례대표제가 포함되었다.

반면 미국은 정치권력의 중심지와 산업중심지의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 초기 미국 공업 중심지들인 오하이오, 일리노이, 펜실베니아에서 소요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백악관과 의회가 있는 워싱턴 D.C.까지 그 여파가 밀어닥칠 수는 없었다. 또한, 미국은 여전히 꿈을 약속해준다는 방대한 미개척지가 존재했다. 남아서 투쟁을 하는 선택지보다 서부로 떠나서 새로운 기회를 잡아보고자 하는 선택지가 있던 것이다.

미국은 거대하다.

미국은 거대하다.

2. 군대와 경찰 조직의 힘

두 번째 이유도 어느 정도 지리적 차이에 연원한다고 말할 수 있다. 좌파 정당과 노동계급이 정치적 의지를 평화적으로 관철한 적은 사실 거의 없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총파업과 전국적 봉기가 정치권력을 심각하게 위협했기에 그 요구사항들이 반영되었고, 유혈 사태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힘으로 요구사항을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상대방보다 강할 필요가 있었는데, 조직된 군대와 경찰보다 강한 힘을 갖추는 것은 사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다. 유럽의 좌파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유럽은 여러 국가로 분열되어 대규모 전쟁을 자주 치렀기 때문에 종종 군대가 붕괴하여 공백이 생길 때가 있었다.

이 때 좌파 정당과 노동계급이 치안공백을 노려 기회를 잡아내면 그 요구사항은 완벽하게 관철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정도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독일도 그랬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군이 붕괴하기 전까지만 해도, 독일군은 사회와 유리되어 있었고, 파업과 폭동 진압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왔다. 또한, 독일은 산업 중심지가 여러 군데로 분산돼 있었고, 정치 중심지인 프로이센 지역과의 거리도 상당했기에(당연히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좌파의 물리적 도전에 무력으로 대처하기 훨씬 쉬웠다.

그러나 기나긴 총력전에 지치고 끝내 패해서 기진맥진해진 독일군은 스파르타쿠스단의 봉기와 같은 좌파 운동을 효과적으로 진압할 능력을 상실했다. 스파르타쿠스단은 이후 사민당의 에베르트와 군부의 힌덴부르크의 제휴로 진압당하기는 했으나 에베르트는 여전히 막강한 자신만의 무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바이마르 헌법을 노동자 친화적으로 구성할 수 있었다.

프랑스도 그랬다. 1871년 전쟁으로 프랑스군이 붕괴했을 때 생긴 파리 코뮌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을 때 저항세력으로 활약하던 좌파가 종전 이후 정치적 권력을 메꾸면서 복지국가 의제를 밀어붙였다. 이탈리아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하기는 했으나 군이 와해된 상태였기 때문에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1871년 3월 파리 코뮌 참여자들이 쳐놓은 바리케이드

1871년 3월 파리 코뮌 참여자들이 쳐놓은 바리케이드

반면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에는 본토에서 전쟁을 치뤄본 적이 없었고, 따라서 미국의 군사력이 국내에서 붕괴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미군은 처음에는 수가 많지 않았으나 잘 조직되어 있었고, 진압을 하기에 충분히 사회와 격리되어 있었다(군인들이 사회와 격리되어 있지 않을 경우 진압을 거부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미국에서는 어떤 종류의 소요사태가 일어나더라도 그들은 정치권력의 중심지인 워싱턴 D.C.를 압박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일단 그 전에 치안기구에 의해 패퇴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오직 남북전쟁 시기에 그런 기회가 잠시 열렸다고 할 수 있으나 이마저도 금방 닫혀버렸다. 당시 징집 문제로 말미암아 산발적 저항이 일어났으나, 마침 근처에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승리한 북군 연대가 투입되어 상황을 종료시켜버렸기 때문이다.

3. 인종적 다양성

마지막은 인종적 다양성이다. 이는 정치제도의 기원을 어느정도 설명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소득재분배 차이의 나머지 절반을 설명해준다(이에 관한 설명은 이 책 6장에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인종에 덜 관대한 측면이 있다. 특히 그 소수집단이 가난할 경우에는 사회적, 경제적 관용에 훨씬 인색해진다. 이에 대해서는 국제적 증거(국가 간 비교), 미국 내 증거(미국의 주들 사이에서 비교)가 있다. 인종적 다양성이 높아질 수록, 복지 지출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만약 인종적 소수자 집단이 가난할 경우, 복지국가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타인종에 덜 관용적인 것을 자신들의 정치적 기획에 활용할 수 있다. 요컨대 주로 흑인이 빈곤층을 구성하고 있는 지역에서, 빈곤층에 대한 복지를 확대하자는 것은 곧 흑인을 지원하자는 말처럼 인식이 된다. 이 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소득을 흑인과 나누기 싫어하면 소득재분배 정책들은 좌초되게 되는 것이다.

소득재분배와 연계되는 인종문제는 1890년대 인플레이션을 통해 채무를 소각해 소득재분배를 실현하고자 했던 미국 인민당의 좌절에서 처음 등장한다. 당시 미국 인민당은 빈농을 중심으로 세를 급격히 확대해갔고, 산업노동자와 흑인을 동맹으로 포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민당의 약진은 인종주의적 선동으로 쉽게 저지되었고, 이후 찾아온 혁신의 시대에도 소득재분배는 주요 의제 선상에 올라오지 못했다.

1890년 7월 15일 네브래스카 주 콜럼버스에서 열린 인민당 후보 지명 대회. 인민당은 1887년부터 1908년까지 존속했다.

1890년 7월 15일 네브래스카 주 콜럼버스에서 열린 인민당 후보 지명 대회. 인민당은 1887년부터 1908년까지 존속했다.

대공황 직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 떄는 소득재분배에 대한 합의가 어느 정도 있었고, 뉴딜정책은 그런 배경 하에서 대대적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인종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남부의 보수적 민주당과 북부의 공화당의 연합으로 번번히 저지되었다. 그리고 끝내 그 균열이 리처드 닉슨 이후 공화당의 남부 지배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반면 유럽에서는 이와 같은 높은 인종적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유럽의 국민들은 미국과 비교하면 훨씬 더 동질적이다. 미국보다 유럽에서는 빈곤층이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연을 맺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물론 유럽에서 사회적 소수자가 박해받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이 그 예다. 유대인들은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좌파적 기획과 많은 친밀성을 보였고, 그래서 반유대주의와 반공주의는 제휴하기 좋았다. 그러나 이것이 복지국가를 막는 데까지 이용될 수는 없었다. 유대인은 소수자였지만, 주류 사회보다 더 부유한 소수자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흑인과 비슷한 대상을 꼽자면 이탈리아의 남부 문제 정도가 있겠으나 소수자와의 사회적 단절 수준과 이질성의 측면에서 미국을 넘는 나라는 유럽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한편 스위스는 사회적 이질성을 고도로 분권화된 연방제로 관리해왔는데, 이 때문에 소득재분배 정도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소득재분배’라는 ‘이데올로기’

인종적 이질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소득재분배의 이데올로기를 추동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소득이 운에 의해 차이가 나는 것이라면, 빈곤층에게 적극적으로 재분배하는 것이 정의로운 정책일 것이다. 하지만 소득이 개인의 노력에 의해 차이가 난다면 그 노력의 결과를 강제로 나누는 것은 오히려 정의롭지 못한 일이 된다.

미국인에게는 ‘흑인은 일도 안 하고 게으른데 왜 복지 혜택을 받아먹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나오기 쉽다. 반면 유럽인에게는 ‘옆집 피에르는 얘기 들어보니까 사람은 열심인데 어쩌다보니 하는 일마다 안 되고 그래서 여즉 가난하다는구먼’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더 쉽다(경향성이 그렇다는 얘기다).

소득재분배의 이데올로기는 실제로 소득재분배와 상당한 연관을 지닌다.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의 덫에 걸려있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소득재분배에 적극적이고, 가난한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소득재분배에 소극적이다.

그렇다면 이는 어느 정도 두 사회의 경제적 현실에 맞추어서 형성된 관념 아닐까? 그러나 저자들이 제시하는 증거에 따르면 이 관념(유럽과 미국의 복지정책)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들이 이를 ‘이데올로기’라고 규정한다. 미국의 빈곤층은 실제로 유럽의 빈곤층보다 열심히 일하지만, 그럼에도 하류층의 상향 이동은 유럽보다 크지 않다. 따라서 유럽과 미국의 경제적 현실에서 출발하여 이런 관념이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세뇌 두뇌

 

유럽이든 미국이든, 모두 정치적 ‘세뇌’의 결과물

결국 이런 이데올로기는 정치에 의해 형성된다. 대서양 양안에서 정치세력들이 퍼트린 ‘세뇌’의 결과물인 것이다. 미국에서 헌법과 정치제도는 부유한 남성들의 이익을 위해서 설계되었고, 강한 견제와 균형은 그 산물 중 하나다. 그리고 미국 이데올로기의 핵심 내용은 건국의 아버지들 이래로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 이데올로기는 교육을 통해서,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학부모회를 통해서 사회 각지로 퍼져나갔다.

사실 유럽도 처음에는 이랬다. 미국만큼 변동성이 강한 사회는 아니었지만, 당시 유럽의 지도층도 근면함과 노력이 가져다주는 결실을 선전했다. 그러나 정치제도와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좌파가 사회문화적 헤게모니에 이어 정치적 권력까지 쥐고, 특히 교원노조가 교과과정에 강한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자 이들은 가난에 대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가난은 빈곤의 덫 때문이고, 소득의 차이는 운 때문이기에 사회적 부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각각 유럽인(알베르토 알레시나)이자 미국인(에드워드 글레이저)인 두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자신들은 복지국가를 당위로서 제시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주장한다. 시각에 따라, 유럽의 복지국가는 노동윤리를 갉아먹고, 막대한 비용을 요구하는 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가 보기에 미국의 복지시스템은 사회적 연대의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며 가난한 사람들을 모욕하는 비인간적 체제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결국, 어떤 사회 모델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그 사회 시민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유럽과 미국은 각각 원하는 사회를 선택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두 사회의 선택에는 당위를 떠나 모두 이데올로기가 개입되어 있으며, 이 이데올로기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데올로기가 형성된 원인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이데올로기가 아닌 사실에 따라서 정책을 선택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하며 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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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임명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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