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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1일,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헌재소장 김이수 인준안이 찬성 145: 반대 145(기권 1, 무효 2)로 부결됐다.

김이수 지명이 상징했던 것

헌재소장 김이수 지명의 의의는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답이었다.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대통령은 강력한 존재이지만, 만기친람(萬機親覽: 모든 일을 손수 챙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입법은 입법부의 몫이며, 사법은 사법부의 몫이어야 한다. 다만 대통령이 가진 권한을 통해, 헌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는 있다. 문재인은 김이수 지명을 통해 그 방향이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를 진보시키는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근음(root)으로, ‘김이수’라는 음을 조율했다. 헌법재판소의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이 근음을 기반으로 쌓아 올려질 예정이었다. 현 헌법재판소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재판관이며, 소수자 인권 문제에서도 가장 진보한 입장을 낼 것으로 보이는 사람, 바로 김이수였다.

김이수 재판관을 헌재소장으로 지명한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보수 야당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좌절시켰다.
김이수 재판관을 헌재소장으로 지명한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보수 야당은 정당한 이유 없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좌절시켰다.

부결 이유: 보수 야당의 힘 과시

그러나 부결되었다. 왜? 통진당 결정이나 군형법상 계간 조항 위헌 결정 때문이라 핑계를 대지만, 아주 조악하다. 그냥 진보라서, 코드인사라서 안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도 댄다. ‘이명박근혜’ 시대를 지나며 지나치게 보수화된 현재의 헌재 지형을 그냥 둬야 한다는 것인가. 아마 그들은 유신시절 인권을 짓밟고, 공안사건을 조작한 반민주세력을 데려다 놓아야 만족할지도 모른다.

이건 누가 봐도 명백히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힘의 과시’, 그 결과물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부결에 환호하며 “다음은 탄핵”이라 외쳤다는 사실은 그 방증이다.

자유한국당

사실 김이수는 지금도 헌재소장 권한대행이므로, 부결되었다 해서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보수정당에 딱히 실익이 없다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힘의 과시’에 성공한 보수 야당들이 앞으로 어떤 만행을 저지를지 모를 일이다. 실리를 챙긴 건 아니라 해도 상당히 중대한 전조일 수는 있다. 앞으로도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별 명분 없이 무조건적인 대여투쟁에 돌입할 수 있다는 신호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선 무리해 국정을 운영하기보다 차라리 다음 총선까지 부자 몸조심하는 게 나은 전략일 수도 있다.

힘 과시 위해 소수자에 폭거

한편 이 와중에 안철수는 김이수 부결을 두고 안철수는 “20대 국회에선 국민의당이 결정권을 가진 당”이라며 대놓고 힘을 뽐내는 발언을 했다.

물론 가장 거대한 악은 자유당이다. 그다음은 바른정당 정도이고, 국민의당은 3순위 정도 될 것이다. 다만 안철수는 너무 본심을 대놓고 얘기했고, 마땅히 나는 그에게 분노할 수밖에 없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5년 12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자신이 요구한 혁신전당대회를 제외하고 10대 혁신안만을 받아들이기로한 문재인 대표의 입장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967679.html
안철수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5년 12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자신이 요구한 혁신전당대회를 제외하고 10대 혁신안만을 받아들이기로한 문재인 대표의 입장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난 안철수가 존재감 과시를 위해 소수자를 향해 어떤 패악질을 저질렀는지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안철수는 소아병적 권력욕만 남은 정치혐오의 표본으로 자기 자신을 역사 속에 규정했다.

국민의당도 다르지 않다. 이딴 논평이나 내는 작자들이 어떻게 새정치니 국민의 뜻이니 운운하는지 모르겠다.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비인간적인 선동뿐이다. 옛 민주당계 정당의 구태들을 한데 모아놓은 ‘정치 적폐’ 그 자체다.

정의당, ‘나만 옳다’ 양비론 자제했으면

정의당은 당연하게도 이번 표결에서 찬성 입장을 밝혔고, 문재인 정부의 ‘진보 드라이브’에 나름 일익을 담당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런 양비론만 아니라면 참 좋을 텐데 싶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같은 논평은, 오히려 정의당이 딱히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무책임한 논평이다.

정의당

거악이 되어가는 보수 개신교계 

김이수 임명을 두고 보수 개신교계는 동성애 찬성 재판관이라며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이 조직적인 반대 운동이 부결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동성애는 첨예한 이슈다. ‘동성애 반대’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어쨌든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꼭 개신교계만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계가 가장 큰 비판을 받아야 한다. 왜곡과 선동을 집단적으로 확대재생산 하는 구조를 쌓아 올렸기 때문이다.

출처: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822920.html
하느님과 예수의 이름으로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부추기는 보수 개신교계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많은 대형 교회의 목사는 더 이상 목회자가 아니다.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만인제사장설은 한국 교회와는 관계 없는 얘기다. 목사는 교인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절대 부정당하지 않는 일종의 왕이다. 세상의 진리는 성경이 아니라 바로 목사의 입에서 나온다. 목사가 절대 권력을 쥐고 정점에 선 이와 같은 구조로 인해, 그들이 사회 이슈에서 내뱉는 거짓말과 선동, 극우적인 사상을 교인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자정이 가능할까? 잘 모르겠다. 대형 교회의 사악한 목사들이 이토록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한, 이들 보수 개신교회를 인종차별자나 성 차별자, 혐오발언자와 달리 봐야 할 까닭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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