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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뷔 3: 재검표의 추억

야당 지지자들을 ‘멘붕’으로 몰아넣었던 대선이 끝나고, 인터넷에는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전자개표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으며, 수개표를 통한 전면 재검표가 필요하다는 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결과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야권 지지자들을 매혹시켰고, 심지어 야당이 이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야당 당사 앞에서는 지지자들이 재검표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2002년 12월에 있었던 일이다.

2002년 대선 때도 개표조작설이 있었다

2002년 대선 때도 개표조작설이 있었다

2012년이 아니라, 2002년이다. 당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승리하면서,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전자개표기의 오류, 나아가 전자개표 과정 자체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이야기는 한나라당이 급기야 재검표 절차를 위한 당선무효소송을 내면서 절정으로 치달아간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역풍을 염려해 ‘노 당선자를 위해서라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내세우기도 했다.

당시 한겨레는 사설에서 이 소송을 ‘유치’하다고 표현했다. 오마이뉴스는 전자개표 조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유에 대한 기사를 썼다. 참관인들이 육안으로 개표과정 전 과정을 확인할 수 있으며, 집계 결과를 육안으로 대조 확인하는 절차까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2003년 1월 15일, 대법원은 일부 개표구에 대한 재검표를 지시했다. 일부라곤 하지만 약 1,000만 장의 수검표가 필요한 상황. 대법의 재검표 결정에 대해 한나라당은 ‘구조적 부정’ 가능성을 제기하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개표 과정 전체에 의혹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드디어 재검표가 실시된 2003년 1월 27일, 언론은 재검표 실황을 분주하게 보도했다. ‘집계 오류 거의 없어’. 그것이 언론 대부분이 낸 제목이었다. 1,104만 9천 여장의 재검표 결과 이회창 후보의 표는 88표 늘어났고, 노무현 후보의 표는 816표가 줄어들었다. 0.00008%의 차이였다. 재검표 결과 한나라당은 대국민사과를 해야 했고,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2003년 2월, 한나라당은 당선무효소송을 취하했고, 개표조작설 유포자는 긴급체포되었다. ‘대선음모 국정원의 양심선언’이란 제목의 글에서 본인을 ‘국가정보원에 17년간 근무한 중견 간부’라 소개했던 이 사람의 정체는, 한 특수학교의 교사였다. 그는 2003년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2년 4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2년, 다시 한 번 재검표 바람이 불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었고, 박지원 원내대표가 이에 호응하는 등 양상도 비슷하다. 다행히 이후 민주당 차원에서 특별한 움직임이 없고, 또 많은 사람들이 2002년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자중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았다. 2002년 재검표 정국을 주도했던 당 차원의 움직임을 대신해, 2012년에는 로지스틱 함수 등을 동원한 – 얼핏 보면 전문적인 ‘것 처럼’ 보이는 글들이 인터넷에 범람하며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끝내는 백악관 청원이라는 희극으로 절정을 찍고 말았다. 이것도 발전이라면 발전이라 말할 수 있을까.

2012년 개표조작설은 백악관 청원으로 이어졌다

2012년 개표조작설은 백악관 청원으로 이어졌다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입장에는 딱히 의구심을 가져야 할 지점이 보이지 않고, 문외한이 검증하기 어려운 각종 용어들을 내세우며 본질로부터 한참 도망쳐 헛물질을 하던 재검표 음모론들은 다양한 반박에 부딪치고 있다. 선거 결과는 이전 여론 트렌드 종합이나 언론사 출구조사 결과와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연령대별 투표율이 이상하다거나, 부산에서 문재인의 득표율이 이상하게 높다거나 하는 주장은 음모론 이상의 가치를 갖기 어렵고, 출구조사와 실제 결과가 오차범위 밖으로 벗어났다는 것도 그것이 표본에 편향이 없을 때 나올 수 있는 예측값임을 고려할 때 재검표 요구의 근거가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르다. 임시개표가 이뤄졌을 뿐이라는 주장은 법적으로 지지받지 못하며, 급기야 나온 로지스틱 함수 이야기는 수학과 친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홀릴 뿐, 음모론을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2002년, 해프닝으로 끝나야 할 일이 정당이 움직이면서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이는 결국 무의미한 재검표와 한 정당의 사과, 2차 책임론과 개인의 실형 선고라는 비극으로 마무리되었다. 2002년의 ‘생쑈’를 2012년 진영만 바꿔서 반복할 가치가 있는가 자문해 볼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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