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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분야에서 오래 몸담으며 꾸준히 노력하면 실력이 쌓인다. 그렇기 때문에 궂은일과 지루한 반복을 참아가며 긴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력만 느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인 이상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면 자만심에 빠질 위험도 싹트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방심하지 않기 위한 자기 검열이 필요하다.

세상일이 그렇다. 무언가를 배워서 능통한 수준에 이르고자 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는 자만심에 물들지 않도록 미리 조심해야 한다. 실력을 키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겸양이다.

글쓰기 기자 공부 글

그런데 나의 경우 글쓰기는 좀 다르다. 아무리 쓰고 지우기를 거듭해도 자만할 틈이 생기지 않는다. 아무리 반복해도 내가 쓴 글을 보며 만족감을 느낄 수가 없다. 가끔 뒤돌아보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자만할 여유조차 생기지 않는 것은 게을러지지 않을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아무리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생각에 지치게도 한다. 바로 그 점이 글쓰기의 어려운 점이다.

왜 글은 써도 써도 늘지 않을까. 내 머릿속의 생각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손으로 적어가는 것이 왜 그토록 힘든 것일까. 김수환 추기경도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니, 나 같은 평범한 이들이 머릿속의 생각을 손끝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한다.

아마 다들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편지를 쓰고 싶은데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 하루를 돌아보며 일기를 쓰면 좋겠다는 마음은 들지만, 정작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할 때. 인상적인 자기소개서를 쓰고 싶은데, 틀에 박힌 연대기식 자기소개서 외에는 쓸 엄두가 나지 않을 때. 이처럼 글을 써야 하는데 생각을 손으로 옮기는 것이 생각처럼 잘되지 않을 때. 그럴 때는 첫 문장을 시작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종종, 아니 자주 그런다.

글쓰기

첫 문장조차 시작하하기가 쉽지 않을 때면 글 자체보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에 먼저 신경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서 책상 정리를 하며 차분한 분위기부터 갖추려고 한다. 그다음에는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고 싶어서 커피라도 한 모금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헤드폰으로 두 귀를 덮고 글쓰기에 적당한 음악을 고르는데 또 한동안 시간을 보낸다.

먼 길을 돌고 돌아서 주변 분위기는 물론 몸 상태 또한 최적의 상태로 준비되었다. 글을 쓰지 못할 다른 모든 핑계가 사라졌다. 그제야 비로소 노트북을 열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다. 하지만 생각처럼 글이 술술 쓰여지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애초에 문제는 외부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답답한 마음마저 든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서점에 나온 글쓰기 관련 책들을 두루 읽어보았다. 하지만 그것 중 어느 것 하나 시원한 해법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또다시 속는 셈치고 글쓰기 책을 집어 들었다. 혹시라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글을 쓰는 진짜 이유 

그렇게 읽은 [글쓰기의 최전선] [footnote]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04월 27일 출간[/footnote]에서 저자 은유는 내가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 느끼게 해주었다. 그동안 내가 글을 시작하며 망설임을 느낀 것은 글을 쓰는 요령을 몰라서도, 쓰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에 빠진 나머지 지나치게 남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최전선

흔히들 글을 생각을 담는 그릇에 비유한다. 그 비유처럼 글을 쓸 때는 ‘있는 그대로의 생각’, 혹은 ‘진짜 생각’을 담기 위해 전념해야 한다. ‘진짜 생각’이 담기지 않은 글은 존재 이유가 없다. 따라서 누군가 시간을 내어 읽을 가치도 없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글 안에서 얼마든지 생각을 펼칠 수 있지만, 동시에 글 밖에서는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현실을 살아가는 하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쓰여진 글은 곧 ‘과거에 썼던 글’이 되지만 그것을 읽는 이들에게는 하나같이 ‘지금 읽는 글’이 된다. 나중에 이 글을 읽을 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문장 문장마다 알게 모르게 상상을 하게 된다.

나도 때때로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미리 짐작하며 ‘진짜 생각’을 내보이길 망설였다. 심지어는 ‘지금 쓴 글이 훗날 나의 앞길에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라는 소심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 결과 더 중요한 본질을 잃어버렸다. 남의 생각에 주파수를 맞추다 보니, 애초에 글쓰기를 통해 담고자 했던 내 생각의 빛이 바래지는 일이 허다했다.

Matthias Ripp, CC BY https://flic.kr/p/opGxp5
Matthias Ripp, CC BY

 

물론 나도 나름의 노력도 했다. 그동안의 내 글에서 소개한 과거의 아픔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여정은 ‘진짜 생각’을 담은 글을 쓰기 위한 내 나름의 고민의 결과였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글을 쓰는 동안 남의 시선에 기준을 두고 내 생각을 미세하게 맞추어 가고 있었다. 남에 시선에 신경을 쓰는 글쓰기는 마음의 피로를 불러왔고, 결국은 글의 첫 문장을 시작하는 것조차 망설이게 했다.

글쓰기가 힘들어진 이유를 찾아내니, 그 해결책도 감이 잡혔다. 그래서 다듬어지지 않은 내 생각들을 날 것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도구를 마련하기로 했다.

나는 교보문고에 가서 질 좋은 종이로 만든 노트를 하나 샀다. 대형 서점에 가면 한쪽에 가죽 소품들과 함께 진열해 놓는 그런 노트 말이다.

그다음, 아내에게 편지 쓸 때나 아껴가며 쓰던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한동안 쓰지 않아서인지 펜촉을 종이에 그을 때 금속을 긁는 느낌이 들었다. 잉크가 굳어 버렸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펜촉과 잉크 통을 하나하나 분리해서 흐르는 물로 꼼꼼하게 씻어내었다.

글쓰기 편지

굳어 있다가 맑은 물에 풀려나가는 잉크를 보니,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느라 쌓였던 마음의 덩어리도 함께 풀어지는 듯했다. 굳은 잉크가 다 씻겨 내려가서 맑은 물을 부어도 여전히 투명했다. 나는 만년필 부품의 물기를 탈탈 털어내고 새 잉크를 채워넣었다.

새 노트와 산뜻하게 손을 본 만년필. 앞으로 나는 이 두 가지 물건으로 진짜 생각을 써나갈 생각이다. 아내에게도 미리 당부를 해두었다. 여기 쓰는 글은 누가 보지 않음을 전제로 쓰고 싶다고. 특별히 숨길 이야기는 없지만, 그럼에도 누가 보지 않을 거라는 느낌을 얻고 싶다고. 그런 기분을 갖고 쓰는 글이 쓰고 싶다고. 다행히 아내는 나의 그럼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글을 쓰기 어려운 이유. 그것은 바로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글을 쓰려고 하기 때문은 아닐까. 남에게 어떻게 비추어질까 생각하는 동안 정말 중요한 본질을 잃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럴 때는 당신이 글을 쓰려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아마도 그것은 남이 원하는 당신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진짜 생각을 담기 위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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