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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영화 [판도라]에 관한 리뷰입니다. 이 글에는 영화 속 등장인물과 줄거리에 대한 설명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약한 스포일러). 이 점, 독자께 이미 알려드립니다. (편집자)[/box]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면, 대통령은 신속하게 상황을 보고받으며 시스템을 가동시켜 현장을 지휘해야 한다.

박근혜가 세월호 7시간만에 나타나 했던 소리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참담한 것이었다. (출처: YTN 당시 보도 화면)
박근혜가 세월호 7시간 만에 나타나 했던 소리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참담한 것이었다. (출처: YTN 당시 보도 화면)

현장에 나타난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피해자 및 유족들과 슬픔을 공유하며 현장을 수습할 공무원들에게 거시적 지시 사항을 남기는 것도 중대한 역할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7시간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잠재돼 있던 국민적 분노는, 아무런 직책도 자격도 없는 민간인 최순실 일당과 사실상 국정 운영을 공유하며 농단을 방치 혹은 가담했다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폭발과 함께 기어이 터져 버렸다. 추운 겨울에도 촛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다.

원전 사고, 열린 ‘판도라’

[연가시]를 연출했던 박정우 감독의 신작 [판도라]가 지난 7일 개봉했다. 모티브는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다.

판도라

지진의 여파로 발전소가 정전돼 원자로를 식힐 바닷물을 끌어오는 것을 망설인 사이 원자로의 노심이 녹아내려 결국 원전이 폭발한 사고다. 일대가 방사능 오염 천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며, 그 유출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원자로에 집어넣는 순간 비싼 원자로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우려한 결과이다. 결국, 돈 때문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별 원자력 발전소’의 모델은 고리 원자력 발전소다. 1호기는 원래 2007년 30년의 수명을 마쳤지만, 10년 더 연장됨에 따라 2017년 6월까지 가동된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후 원자력 발전에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비판 대상이다.

[판도라]의 현실성을 더 하는 소재가 있다면,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5.1, 5.8 규모의 지진이다. 경주 지진으로 사람들이 느꼈을 혼란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들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판도라]는 결국, 세월호 참사와 연결된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모든 참사들은 열어서는 안 될 상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판도라]는 아주 잘 지어진 제목이다.

고위층의 무책임 vs. 서민의 희생, 그 뻔한 신파

진보 성향의 소재를 취하고 있음에도 평론가들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이런 부류의 영화가 늘 그렇듯이 고질적인 뻔한 신파 구조의 서사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역은 국무총리 역을 맡은 이경영과 일부 공무원 역을 맡은 배우들이 전담한다. 대통령으로 특별출연한 김명민은 감독의 전작 [연가시]에서의 인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구도는 매우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수시로 갈아치워 지는 신세인 경우가 많지만, [판도라] 속 국무총리는 거의 국정농단 수준으로 얄미운 악역을 도맡기 때문이다.

판도라

그런 가운데 드러나는 것은 정보를 무작정 통제하려고만 하고, 국민에 닥친 위험을 방기하는 정부의 고질적인 이미지이다. 이것은 재난 영화 장르의 공통적 특징이다. 문제는 이게 관객에게는 아주 현실적인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희생은 당연히 평범한 서민의 몫이다. 주인공은 강재혁(김남길 분)은 발전소의 하청업체 직원이며, 아버지와 형도 불의의 사고로 방사능에 피폭돼 죽었다. 그런 가운데 방사능 때문에 또다시 위기에 처한다. 그래서 [판도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그리고 정부에 의해 버려지는 그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전대미문의 민간인 국정농단 사태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사람들로서는 그럴듯한 개연성을 다시 느낄 수밖에 없다.

판도라

판도라

[판도라]는 그들에게 얼마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지, 위험 속에서 느끼는 공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집중한다. 여기서 조금 더 구도를 비틀었더라면 서사 구조의 미학적 요소도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점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는 ‘박근혜의 현실’을 능가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는 규모의 경제이다. 블록버스터는 많은 돈이 제작비로 투입된다. 쉽게 가야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본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해가 간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여기저기서 터져나간 각종 비극과 전대미문의 사태 등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주 현실적인 인상을 준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 정점에 달하는 신파는 영화 장르의 고전적 설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고 싶은 관객의 마음을 자극한다. 희망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

영화보다 더 슬픈 것은 결국 현실이었다. 영화 속 대통령은 국무총리와의 갈등 속에서도 참사에 따른 피해를 막으려고 고군분투한다. 책임감과 그에 따른 고뇌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영화 속 대통령을 보면서 관객은 현실 속 대통령을 당연히 떠올린다. 그 연상 작용은 물론 고통스럽다.
영화 속 대통령을 보면서 관객은 현실 속 대통령을 당연히 떠올린다. 그 연상 작용은 물론 고통스럽다.

하지만 현실 속 대통령은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뭘 했는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배가 가라앉는 절박한 순간들, ‘올림머리’에 적잖은 시간을 대신 쏟았다는 것을 빼고는. ‘판도라’를 본 뒤 다시 현실을 보면 이런 속설이 새삼 씁쓸하게 느껴질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능가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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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본문 속 이미지는 별도 설명이 없는 경우 모두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 제작: ㈜CAC 엔터테인먼트, 배급: NEW, 2016) 이미지임을 밝힙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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