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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나라에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내러티브,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다.

물론 책이 있고, 인터넷이 있으니 사실상 장애물은 없지만, 도서관에 가거나 라디오를 틀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이 익숙하지 않은 물리적 환경은 그렇지 않았으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약간은 강제적인 수단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나처럼 사람들 대부분은 ‘미국은 청교도들이 건너와서, 1776년에 영국으로 부터 독립했고, 1백년이 채 못되어 남북전쟁을 겪은 후 노예를 해방했으며, 2차대전을 겪으면서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다’ 정도의 아주 기본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온다.

미국, 수많은 이야기로 만들어진 나라

하지만 미국은 많은 이야기를 가진 나라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민족, 다문화 사회이고, 이민자들이 올 때는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미국은 수많은 이민자들만큼이나 수많은 이야기를 가진 나라다.
미국은 수많은 이민자들만큼이나 수많은 이야기를 가진 나라다.

건너와서는 미천한 노동자로 배척을 받던 그룹이 주류사회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모든 이민자 집단은 자신의 이야기를 퍼뜨렸다. 앵글로색슨 사회로 시작했던 미국은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둘씩 접하면서 문화를 더해왔다.

가령, 9/11 때는 물론, 소방관이나 경찰관의 장례 행진에서 항상 듣게 되는 백파이프로 연주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는 앵글로색슨이 미천하게 생각하던 험한 일인 경찰직, 소방직에 몰려든 아일랜드 이민자의 정서가 녹아든 곡이다.

https://youtu.be/1FKoX7u_Jo8

미국 동부의 경찰, 소방직을 이야기할 때 아일랜드계의 문화를 떼어놓을 수 없듯, 해안에 밀려오는 물결처럼 차례로 미국으로 입성한 독일계,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유대계, 아시아계, 남미계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이야기를 미국에 퍼뜨렸다.

내가 미국에 온 후 첫 몇 년 동안은 한국에서 들어본 적 없던 그런 문화들, 즉 미국의 일부가 된 외래문화를 접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그런 문화가 있어서 놀란 게 아니다. 외국 이민자들이 아닌 사람들이 외래문화를 미국문화로 배우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 때문에 놀란 거다.

가령, 첫 아이가 태어났다는 얘기를 들은 유대계가 아닌 어떤 교수가 내게 “마잘 토브(Mazel Tov, mazal tov)!”[footnote]중요한 행사에서 축하를 위해 사용하는 문구. “행운을 빈다”는 뜻인데, ‘좋은 별자리’라는 의미의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다.[/footnote]하고 축하해줬던 일이 그 한 예다. 그 교수가 사용한 이디시(yidish)[footnote]유대인이 쓰는 서게르만어군 언어로 히브리 문자를 사용한다.[/footnote] 단어는 우디 앨런 같은 유대계들이 문화적인 인기를 끌지 않고는 퍼지기 힘들었을 거다.

PleaseRomaineCalm, mazel tov, CC BY https://flic.kr/p/64Uowc
PleaseRomaineCalm, “mazel tov”, CC BY

마찬가지로 우리 눈에는 다 같은 백인으로 보이는 이탈리아계, 유대계, 그리스계 등등의 이민자들은 물론 중국, 한국, 일본계와 같은 아시아계, 남미계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퍼뜨리면서 주류 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건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퍼뜨리는 게 중요한 이유 

자신의 이야기를 퍼뜨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에서는 자신의 이야기가 퍼진 만큼이 내가 주류 문화에서 차지할 수 있는 영역이 되기 때문이다. 주류사회가 나의 이야기, 내가 속한 문화가 가진 이야기를 모르면 나는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이방인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자국에서도 주류에 순응하는 것을 미덕으로 배우는 한·중·일 동아시아계는 이 작업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이미 서부개척시대에 쏟아져 들어온 중국계 이민자들은 그 후에 들어온 이민자 집단들 보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퍼뜨리는 데 늦었다.[footnote]물론 다른 많은 요인이 있기에 속단할 일은 아니다.[/footnote]

그렇게 미국이라는 사회는 새로 들어온 구성원과 그들의 문화를 배워나간다. 이민자들은 미국을 배우고 미국은 이민자들을 배우는, 말하자면 양방향의 학습이다.

이야기

밭에서 큰 돌덩이들을 치우면 전에 보이지 않던 작은 돌멩이들이 눈에 띈다.

흑인들이 남부를 떠난 대규모 이주와 할렘 르네상스가 언제 일어났는지, 왜 일본인 이민자들은 중국계나 한국계와 달리 잘 모이지 않는지, 유대계 이민자들은 왜 크리스마스 때 중국 음식점에 가는지 같은, 한국에서는 몰랐던 미국 문화의 ‘상식’을 알게 되고 미국을 좀 안다는 생각이 들자, 그때까지 몰랐던 또 다른 문화, 또 다른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이 단계부터는 많은 미국인에게도 새로운 학습이다. 가령, 미국 남부의 배운 것 없는 악어 사냥꾼들이 집에서 프랑스어를 자주 사용한다거나, 2차 대전 때까지만 해도 미국의 심장부였던 중서부 많은 마을에서는 독일어가 영어보다 더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 미국인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는 남부 어느 지역에서는 백 년 넘게 백인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이민자들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아직도 질시와 반목을 이어간다는 이야기를 하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금시초문이라며 귀를 기울이는 걸 본다.

애팔래치아 산맥 출신 백인 촌뜨기, ‘힐빌리’

미국 동부를 가르는 애팔래치아 산맥에 살거나, 그곳 출신인 백인들의 이야기도 그런 숨겨진 이야기들 중 하나다. 내가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2010년 일이다.

뉴요커에서 읽은 아주 흥미로운 기사로, 미국 북동부의 발달한 주로 알고 있는 뉴저지 주, 그것도 뉴욕시에서 차로 그다지 멀지 않은 산골에 사는 특이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미국에서는 그들을 뭉뚱그려서 힐빌리(hillbilly)라고 부른다. 우리말 ‘촌뜨기’에 해당하지만, 농촌을 연상시키는 ‘촌뜨기’는 정확한 느낌을 전달하지 못한다. 산과 언덕에 사는 산골사람들에 가까운데, 물론 비하적인 표현이고, 때에 따라서는 ‘백인 쓰레기'(white trash)라는 더욱 비하적인 표현으로 불리는 백인들이다.

Benjamin Hollis, Hillbillys, CC BY https://flic.kr/p/3u7LL
Benjamin Hollis, “Hillbillys”, CC BY

서론이 너무 길었지만, 힐빌리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1.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현상을 만들어낸 중요한 지지세력 중 하나이고,
  2. 힐빌리 출신의 보수주의자(J. D. Vance)가 쓴 책 ‘힐빌리의 애가: 위기에 처한 어느 가족과 문화에 관한 기록’[footnote]원제: ‘Hillbilly Elegy: A Memoir of a Family and a Culture in Crisis'[/footnote]이 지금 미국에서 화제이기 때문이다.

교육받지 못한 힐빌리들은 자신의 스토리를 이야기하지 못했고, 그 결과 그들은 미국 주류사회에서는 숨겨진 사람들이었다.

유대계 같은 ‘백인 아닌’ 이민자들(이민 초기에는 유대계는 물론이고, 이탈리아계도 백인 취급을 받지 못했다)이나 흑인들도 자신의 이야기가 미국 주류사회의 이야기로 등극했고, 그와 함께 미국 경제, 정치의 중요한 세력이 되었지만,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살아온 힐빌리들은 인종적으로는 주류라는 백인이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못하거나, 기껏해야 코미디 소재로나 알려지는 신세였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 일원이고, 그 문화에서 자라 미국의 ‘주류 문화’에 들어온 한 사람의 수려한 글솜씨로 알려지게 되면서 단숨에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단순히 정치세력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지역과 경제, 그리고 미국 전역에 빠르게 확산하면서 농촌 지역을 초토화하고 있는 아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J. D. Vance, 'Hillbilly Elegy: A Memoir of a Family and Culture in Crisis' (2016) https://www.amazon.com/Hillbilly-Elegy-Memoir-Family-Culture/dp/0062300547
J. D. Vance, ‘Hillbilly Elegy: A Memoir of a Family and Culture in Crisis’ (2016)

세 가지 마약 종류  

잠깐 마약 이야기를 좀 해보자. 사람들 대부분은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중독성 있는 약물’ 정도로 마약을 생각하지만, 마약에는 종류가 있고, 계보가 있다. 가장 흔하게 마약은 세 가지로 분류한다:

  1. 환각제
  2. 흥분제
  3. 억제제

1. 환각제 

마약을 복용해서 정신착란 증상으로 환상이 보이고, 헛소리를 한다면 그건 환각제다. LSD, 마리화나, ‘엑스터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MDMA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엑스터시’라는 단어를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정신과 의사들에 따라서는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거나 신의 모습을 봤다고 하는 것을 두고 단순한 정신착란 증세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더 나아가 많은 고대의 종교들이 ‘접신’을 위해서 이런 환각제를 복용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Manel Torralba, "LSD", CC BY https://flic.kr/p/xzLr48
Manel Torralba, “LSD”, CC BY

2. 흥분제 

중추신경 흥분제는 그렇지 않다. 환각과 흥분은 엄연히 다르다.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자신감과 에너지를 주는 작용을 한다.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마약인 메스(meth; 메스암페타민, ‘필로폰’), 코카인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흥분제 마약을 사용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효과를 설명할 때 자주 드는 것이 ‘커피를 많이 마셨을 때의 기분 좋은 흥분과 정신집중’ 효과다.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과 담배에 들어있는 니코틴도 이런 중추신경 흥분제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고도의 정신 집중을 요구하는 전문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밤새워 일하기 위해 이런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말하자면 정신노동자의 스테로이드인 셈이다.

담배에 들어있는 니코틴은 '중추신경 흥분제'로 분류된다.
담배에 들어있는 니코틴은 ‘중추신경 흥분제’로 분류된다.

3. 억제제 

그런가 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에 맞지 않는 특이한 마약이 있는데, 그게 바로 중추신경 억제제다. 아시아에 ‘마약’이라는 걸 소개한, 그래서 어마어마한 중독자를 양산했고, 전쟁으로 이어져서 결국 중국이 영국의 식민주의 앞에 무릎 꿇게 했던 아편이 바로 억제제다.

양귀비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유명한 아편제는 모르핀이라는 이름으로 수술 후에 복용하는 강력한 진통제로 사용됐고, 그런 모르핀을 아세틸화한 것이 악명높은 ‘헤로인’이다.

흥미로운 건 ‘중추신경 억제제’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여기에 해당하는 마약은 활력이 넘치고 신나게 해주는 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르핀과 헤로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
모르핀과 헤로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

중독자의 말에 따르면 처음 이 약을 하는 사람들은 좀 실망한다고 한다. 특별한 환각도 흥분도 없는데 왜 하나 싶지만, 그저 편안하고, 느긋하고, 행복한(good, chill, happy) 기분을 주는 게 전부란다.

게다가 복용하고 나면 폭음하고 난 다음 날 아침처럼 ‘기분이 엿 같은'(feeling like shit) 흥분제 마약들과는 달리 하고 난 다음 날도 전날 밤의 달콤함이 살짝 남을 뿐 아무런 불쾌감이 없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런 단계는 금방 무너지고 본격적으로 끔찍한 마약중독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지만 말이다.

가장 불행한 중독자 

그럼 중독자들은 중추신경 억제제 같은 마약을 왜 복용할까? 우리가 아는 마약 환자들의 이미지는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짜릿한 효과를 찾는 사람들인데 아편 계열 마약은 그런 물질이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다른 물질에 중독된다. 월스트리트에서 밤을 새워 돈을 버는 헤지펀드 매니저가 일하면서, 그리고 퇴근 후 파티에서 ‘중추신경 흥분제’를 사용한다면, 스티브 잡스나 록 뮤지션 같이 영감을 찾는 사람들은 ‘환각제’를 사용한다(물론 스테레오타입이니 속단은 금물이다).

그런데 어쩌면 모든 약물 중독자 중에서 가장 불쌍한 집단이 바로 ‘중추신경 억제제’를 찾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헤로인을 하는 동안에는 제가 보통사람처럼 느껴져요.”

로봇 외로움 정신병 사이코 격리 고통 슬픔

몇 해 전, 뉴욕타임스에서 읽었던 미국 북부 메인주의 어느 청소년의 말이다. 생각해보면 참 슬픈 말이다. 남들보다 더 나은 사람처럼 느끼기 위해 마약을 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잊고 그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처럼 느끼기 위해 마약을 복용한다.

그 기사에 소개된 이야기에는 대개 패턴이 있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가난한 농촌에서 자란 여자아이는 아버지가 집을 나가 소식이 없었고, 엄마가 집으로 데려온 남자는 술주정뱅이에 밤마다 성폭행하는 바람에 집으로 들어가기도 싫고, 공부할 환경도 아니니 학교는 포기하다시피 했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고, 그러다가 사귀게 된 비슷한 처지의 남자친구가 헤로인을 소개해주고…

“트럼프는 힐빌리들의 마약” 

J. D. Vance https://www.amazon.com/J.-D.-Vance/e/B01HOE1VZW/ref=dp_byline_cont_book_1
J. D. Vance

[힐빌리의 애가]를 쓴 J.D. 밴스(사진)는 그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내셔널 리뷰] 같은 보수적인 매체에 기고하면서 “트럼프는 힐빌리들의 마약”이라고 정의해 주목받았다.

그 표현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 표현의 적절성 때문이다. 미국의 애팔래치아 산맥에 사는 백인들이 실제로 아편 계열 마약 중독이 극도로 심각한 상황인데 그들이 마약에 대해서 가진 생각과 트럼프에 대해서 가진 생각이 똑같다는 것이 밴스의 주장이다.[footnote]지역에 따라서는 자연사하는 사람의 수보다 마약 과다복용으로 죽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footnote]

특히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살던 사람들은 웨스트버지니아 등지의 석탄 광산에서 일하거나 미시건이나 오하이오 등 FTA 이후에 몰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Rust Belt)에서 일자리를 찾은 사람들이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학력도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미국에서 중산층으로 살 수 있었던 경제적 기반이 무역협정으로 날아간, 그런 사람들이다.

Jschnalzer, CC BY https://en.wikipedia.org/wiki/Rust_Belt#/media/File:Bethlehem_Steel.jpg
Jschnalzer, CC BY

그뿐만 아니라 환경주의자들의 강력한 요구와 진보세력의 정책으로 석탄산업까지 몰락하고 있는 상황인데, 탄광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대개 일찍 몸을 상해서 40대부터 진통제로 버티다가 중독이 되고, 아편 계열에 중독된 사람들이 더 강한 성분을 찾을 때는 코카인이 아닌 헤로인을 찾는 것이다. 같은 계열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밴스는 트럼프를 그런 헤로인에 비유한 것이다. 애팔래치아 인근의 가난한 백인들은 마약으로 자신의 인생이 나아지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알지만, 당장 몸이 너무 아프고 인생이 힘들어서 복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트럼프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할 것임을 알아도 그가 해주는 말이 당장 위로가 되고 쾌감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밴스의 그런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 자신이 애팔래치아 지역에서 사는 힐빌리 출신이고, 아직도 거기에 가족과 친구들이 살고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 울분’ 

조지 W. 부시 정권에서 국무부 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의 비서실장이었던 로렌스 윌커슨(Lawrence Wilkerson, 사진)이라는 사람이 있다. 부시의 이라크 전쟁을 옹호한 파월의 U.N. 연설을 훗날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비판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footnote]사실 파월 자신도 자신이 잘못된 정보를 받아서 내린 결론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footnote].

Lawrence Wilkerson (출처: GFDL 1.2) http://www.gnu.org/licenses/old-licenses/fdl-1.2.html
로렌스 윌커슨(Lawrence Wilkerson, 출처: GFDL 1.2)

윌커슨은 한 인터뷰에서 현재 공화당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인종 불평등을 해소하는 입법이 많이 이루어진 린든 B. 존슨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민주당 존슨 대통령은 “남부(흑인들)에 굴복해서” 각종 진보적인 입법을 성사시켰지만, 그 대가로 민주당은 남부 백인들의 표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지지하던 민주당에 실망한 남부 백인들을 팔 벌려 환영한 것이 닉슨의 공화당이었고, 그 결과 공화당의 전통적인 가치와는 다른 문화를 지닌 집단이 공화당이라는 한 지붕 속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윌커슨은 그렇게 들어온 백인들을 특징짓는 요소를 “문화적 울분”(cultural grievance)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발전에서 다소 소외되고 문화적으로 유색인종들을 싫어하는 그런 사람들이 공화당 내에서 상당한 규모의 유권자 그룹을 형성하면서 공화당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조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공화당의 보수적인 의제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문화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할 수 없었던 그들에게 대안이 된 것이 도널드 트럼프라는 것이 윌커슨의 설명이다.

힐빌리가 원하는 당을 만든 트럼프 

미카 코헨 정치 칼럼니스트 미카 코엔(Micah Cohen, 사진)은 통계적으로 공화당 지지자들이 10년 전에 비해 1) 연령대가 높아졌고 2) 남성 백인이 늘었고 3) 교육 수준이 낮아졌으며 4) 더 보수적이 되고 5) 이민자들에 대해 적대적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추세는 미국 전체 인구의 변화와는 완전히 반대다. 그 말은 공화당 지지자들 선택한 후보가 일반 미국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점점 작아진다는 뜻이다. 현재 여론조사도 그 사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 여론조사 대부분이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을 88~90% 정도로 본다.

트럼프를 그런 불만에 찬(disgruntled) 가난한 백인들의 마약이라고 주장하는 [힐빌리 애가]의 저자 J.D. 밴스는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에 반대하면 누구를 지지할 거냐는 질문에, “나는 절대로 힐러리를 지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신은 힐러리의 정책에도 동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힐러리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후보라는 것이다.

Gage Skidmore, Hillary Cliton, CC BY SA https://flic.kr/p/Cvim7G
트럼프를 비판하지만, 결코 힐러리를 지지할 수는 없다는 ‘힐빌리 애가’의 저자 밴스 (출처: Gage Skidmore, “Hillary Cliton”, CC BY SA)

밴스에 따르면 자신이 예일 법대에 입학하자 친척들은 “진보적(liberal)인 시늉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왜냐하면, 오바마를 전국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오바마도 비슷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책을 들고 공부를 하는 흑인 학생들은 백인 흉내(acting white)를 내는 게 아니다.”

경제적 상황과 상관없이 교육을 지고지순한 가치로 생각하는 동아시아인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바로 많은 가난한 미국인들이 자신을 가난에서 구해줄 수 있는 교육에 대한 불신이다. 2004년의 오바마는 흑인 사회의 그런 사고방식을 비판한 것이고, 밴스는 같은 불신을 백인인 자신의 가족들에게서 받았던 것이다.

  1. 똑똑한 사람들은 우리를 이용하고 차별해왔기 때문에
  2.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그들의 일부가 되려는 것이고
  3. 그건 우리를 배신하는 행위라는 논리다.

그런 사고방식에서 도시의 흑인들과 애팔래치아 백인들은 다르지 않다. 다만, 도시 흑인에게는 자신을 옹호해주는 당이 있고, 애팔래치아 백인에게는 그런 옹호세력이 없었는데, 트럼프는 공화당을 쪼개서 그들이 원하는 당을 만들어준 것이다.

외부인은 우리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밴스의 책에 대한 애팔래치아 지역의 반응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애팔래치아 백인의 요람(?)인 켄터키주의 ‘렉싱턴 헤럴드 리더’에 옵에드(Op-Ed) 칼럼이 그들의 시각을 잘 대변한다.[footnote]옵에드(Op-Ed): ‘반대편 사설'(Opposite-Editorial)의 약자로 신문의 논설위원이 쓰는 무기명 사설과 다르게, 신문사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한 기명 칼럼을 의미한다.[/footnote]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비판한다.

“밴스는 이미 할아버지 때 켄터키를 떠나서 오하이오의 철강 도시에 정착해 살았고, 지금은 신시내티에서 고학력 부자로 잘 살고 있는데, 그런 힐빌리가 어디 있느냐. (…) 그런 사람의 힐빌리 문화 비판은 공허하다.”

하지만 그 칼럼은 실업과 마약중독, 그리고 실패한 지역산업이 힐빌리들이 빠진 문제라는 밴스의 지적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부분적으로 맞을 수도 있다”면서도 그런 비판은 힐빌리가 해야 할 일이지, 외부인이 할 말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칼럼을 끝낸다.

힐빌리 출신의 가정이 가진 문제를 고스란히 안은 가정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직도 많은 친척이 힐빌리에 사는 사람이라도 성공해서 도시에 살고 있으면 외부인인 것이다.

우리 vs. 타인: 이분법적 세계관 

그 켄터키 신문의 칼럼이 말하는 핵심은 ‘외부인은 우리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비록 칼럼으로서 설득력이나 논리는 떨어지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애팔래치아 백인의 심리를 더욱 잘 대변해준다.

즉, 그들은 세계를 ‘우리 vs. 타인’으로 본다. 그리고 그런 시각은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는데 유난히 집착하는 트럼프의 세계관(혹은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약속하는 세계관)과 흥미로울 만큼 똑같다.

DonkeyHotey, "Donald Trump's Taj Ma WALL", CC BY SA https://flic.kr/p/FnQ2cC
DonkeyHotey, “Donald Trump’s Taj Ma WALL”, CC BY SA

밴스는 아편 계열 마약이 휩쓸고 있는 미 북부 뉴햄프셔 주민들에게 “마약 중독의 문제를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아서 해결하겠다”고 이야기한 사실을 지적한다. 트럼프에게 있어 애팔래치치아 산맥에 사는 사람들의 마약 문제는 멕시코의 마약상들이 공급을 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므로 장벽을 세우면 해결된다는 것이다.

결국, 애팔래치아 지역 백인의 문제는 ‘타자’ 혹은 ‘외부인’으로 인해서 생긴 것이지, 자생적으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는 전형적인 ‘우리 vs. 타인’의 관점이다. 하지만 밴스에게는 트럼프야말로 애팔래치아 주민들이 스스로 복용하기 시작한 마약이다.

“트럼프가 약속하는 건 고통으로부터의 손쉬운 탈출이다. 문제는 복잡한데도 트럼프는 단순한 해결책이 있다고 말한다. 일자리 부족 문제는 외국으로 일자리를 가져가는 기업들을 처벌해서 해결할 수 있고, 마약 중독은 멕시코와의 국경에 담을 쌓아 해결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 진짜 비극은 트럼프가 언급하는 모든 문제가 진지한 사고와 조심스러운 대책을 요구하는 실제(real) 문제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밴스의 그런 주장이 애팔래치아 산맥 밖에서만 호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 공화당과 미국이 처한 난관이다.

Jamelle Bouie, "trump making a face", CC BY https://flic.kr/p/yCXPEo
Jamelle Bouie, “trump making a face”,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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