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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슬로우뉴스는 NCSOFT와 함께 2016년 연중기획으로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사회에 초래한 변화를 점검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는 ‘미래 읽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디지털 시대의 가족일기

  1. 디지털 네이티브: 2살 아들의 디지털 라이프
  2. 디지털 미너멀리즘: 우리 집은 이제 박스를 뒤지지 않는다
  3. 디지털 라이브러리: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에서 걸어 다니는 도서관으로
  4. 디지털 소사이어티: 카카오톡과 페이스타임으로 다시 뭉친 우리 가족
  5. 디지털 투어리즘: 포켓몬 GO 때문에 야간 버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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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에 보았던 애니메이션 흑의 계약자에는 영혼이 고양이로 이동한 뒤 인간의 육체를 잃어서 계속 고양이로 살아가는 캐릭터가 나온다. 그는 부족한 뇌 용량을 보충하기 위해서 상시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어 고양이의 뇌는 정보 검색과 입출력에만 사용하고, 거대한 네트워크를 자신의 정보 저장소로 사용한다.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의 아이디어를 보다 확장한 것이지만, 나에게는 인상에 강하게 남아 있는 설정이다.

이제 곧 아이폰 10년 

아이폰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이 2007년. 이제 곧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10년이 된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삶을 너무나도 많이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하면서 종종 그 애니메이션 속의 고양이를 떠올린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매개체로 부족한 정보량을 네트워크를 통해 보충하고 있다.

2007년 '맥월드 2007'에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아이폰.
2007년 ‘맥월드 2007’에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아이폰.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에게 컴퓨터 산업의 역사는 곧 나의 인생 그 자체와 같다. 초등학생 시절 당시 유행하던 컴퓨터 학원에 가서 베이직과 어셈블러를 배우고, 성인이 되어서는 컴퓨터 잡지 편집자를 하면서 팬티엄3, 팬티엄4 등이 등장하는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30대가 되어서는 일본에서 게임 개발을 하면서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를 직접 체험했다.

이제는 익숙하지만, 급격한 변화의 순간들을 기억하면서 조금씩 과거의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 21개월 된 큰아들을 보면서 이러한 문명이 도래한 이후에 태어난 이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21개월 아들의 디지털 라이프 

김상하 큰아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보육원을 다니고 있다. 그래서 집에서는 한국어, 보육원에서는 일본어를 들으면 생활한다. 덕분에 큰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한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보육원 같은 반인 오스트레일리아인 친구에게 배운 영어가 마구 섞여 있다. 그런 큰아들은 요즘 유튜브에 푹 빠져 있다.

보육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아이패드 미니. 아이패드 미니를 아빠에게 내밀면서 암호를 풀어 달라고 요구한다. 불과 3~4개월 전에는 아이패드의 홈 버튼을 눌러서 화면을 켠 뒤에 암호 입력란에 아무렇게나 숫자를 넣곤 했다. 그런데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는 암호가 여러 차례 틀리면 디바이스가 몇 분 동안 잠김 상태가 된다. 그러면 그 시간이 지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큰아들은 언제부터인가 암호를 틀리면 잠김 상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기 스스로 암호를 입력하지 않는다. 아빠에게 암호를 입력해달라고 한다. 아이패드를 엄마가 쓰고 있을 때는 아빠의 아이폰을 들고 온다. 그리고는 화면을 켠 뒤 아빠의 엄지손가락을 홈 버튼으로 가져간다. 지문 인식으로 암호 입력을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홈 화면이 나오면 큰아들은 가장 먼저 화면을 오른쪽으로 넘긴다. 가장 최근에 사용한 앱 리스트가 나오게 하는 것이다. 거기에 유튜브가 있으면 유튜브 아이콘을 터치하지만, 최근에 사용한 앱 리스트에 없으면 홈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이번에는 왼쪽으로 화면을 넘긴다. 유튜브 아이콘이 나올 때까지. 엄마가 너무 유튜브만 본다고 유튜브 아이콘을 폴더 안에 숨겨 놓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큰아들은 폴더를 연 뒤에 거기서 유튜브 아이콘을 찾아내서 실행하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터득해 가는’ 아들 

큰아들이 유튜브를 실행해서 보는 것은 호빵맨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동영상이다. 어떻게 그 영상을 찾아냈는지는 모르지만, 큰아들 덕분에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유튜브 영상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을 보다가 지겹거나 재미가 없으면 바로 다른 영상으로 넘어간다. 그러다가 광고가 나오면 광고도 ‘스킵’하며 본다. 어떻게 알았을까? 한 번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말이다.

큰아들은 유튜브 영상에 빠져들기 이전부터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좋아했다. 유튜브 이전에 즐기던 것은 주로 아이폰의 사진 앱이었다. 사진 앱을 열면 엄마 아빠가 찍어둔 자신(큰아들)의 사진과 동영상이 가득 들어 있다. 거기서 자기가 보고 싶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찾아보는 것을 좋아했다. 신기한 것은 수많은 메뉴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사진이 나오고 어떤 것을 선택해야 동영상이 나오는지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동영상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동영상만 리스트를 스크롤해 찾아내 본다. 그리고 좌우 슬라이스로 넘겨보기도 하고, 손가락 2개를 이용해서 확대 축소도 한다. 심지어 나는 큰아들 때문에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다가 아래로 플릭(flick; 가볍게 치기)하면 리스트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사진 앱을 가지고 놀던 게 16개월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https://youtu.be/vI7K_kNZhq0

요즘 큰아들은 유튜브를 즐겨 보기도 하지만, 엄마나 아빠와 함께 게임도 즐겨 한다.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뽀꼬뽀꼬’와 ‘디즈니 츠무츠무’. 둘 다 퍼즐 게임이다. 게임 내에서 폭탄이 나오면 직접 눌러서 사용하고, 아이템도 사용하고, 캐릭터도 직접 바꾼다. 요즘에는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레이싱 게임도 즐기고, 아마존 파이어스틱의 리모컨으로 TV 화면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로 전환 시켜서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보여달라고 한다. 나에게는 두 돌도 안 된 아이가 이렇게 노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학습 vs. 본능 

아이폰 이후에 애플을 알게 된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OSX 이전 애플의 매킨토시 OS 로고는 컴퓨터와 인간이 얼굴을 맞대고 웃으며 대화를 하는 모습이었다. 이것은 당시 애플이 추구하던 ‘휴먼 인터페이스’를 상징하는 로고였는데, 퍼스널 컴퓨터의 본질적인 부분을 상징하는 로고이기도 했다.

애플 맥 OS 로고

퍼스널 컴퓨터란 컴퓨터와 사용자가 1대 1로 각자의 인터페이스를 사용해 대화하는 것이다. 나의 세대에서는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컴퓨터와 대화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원시적인 방식으로도 컴퓨터와 대화가 가능해졌다. 자판을 기억해서 타이핑하고, 마우스를 컨트롤하는 기술을 익히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컴퓨터와 대화할 수 있게 된 환경이다. 언어를 배우고 그것을 다시 입력장치를 이용해서 구현해 내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는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보다 스마트 디바이스를 컨트롤 하는 편이 더 쉬운 과제일지도 모른다.

나는 컴퓨터, 스마트 디바이스의 조작 방법을 학습한 세대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그것을 본능에 더욱 가까운 방식으로 체득한 세대다. 두 세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다를 것이다. UX는 물론 정보를 다루는 방식까지. 기성세대의 여러 고정 관념이 없는 세계에서 새로운 세대는 사고하고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모바일과 디지털이라는 토양에서 태어난 우리의 아이 세대는 디지털 시대의 혁명을 완성해갈 것이다. 물론 그렇게 완성된 혁명의 모습이 장밋빛일지 잿빛일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스마트 디바이스와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가 새로운 것이 아닌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했던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성인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21개월 된 큰 아들을 보며 다시 한 번 [흑의 계약자]에 등장한 고양이를 떠올린다.

흑의 계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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