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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수령 인터뷰는 리승환 특유의 직설적인 질문과 거침없는 파격으로 다양한 전문가/관계자와 함께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칩니다. 이번 회에선 대한민국의 토건, 건축, 아파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대한민국 건축계의 최고봉에 서 계신 김인철 선생님을 인터뷰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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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id=”tip” head=”인터뷰어/인터뷰이 소개”]

Q. 리승환 : 8년 차 블로거, 4년 차 직장인. 집을 살 돈이 없어 빚도 지지 못한 하우스리스 푸어. 서울 대지진이 일어나면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기대감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일용직 노동자. 디지털 한량을 지향하고, 통칭 웹에서는 ‘리승환 수령’으로 불리고 있음. 블로그 현실창조공간을 운영 중. 트위터는 @nudemodel, 페이스북은 /angryswan

A. 김인철 :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건축가. 설계사무소 아르키움의 대표이자 전 중앙대 교수. 중앙대 도서관 리모델링, 호수로 가는 집, 어반하이브, 파주 웅진씽크빅, 김옥길 기념관 등 아름다운 건축물을 계속해서 남기고 있다. 저서로는 [공간열기]가 있다. 점잖게 생기신 외모와 달리, 인터뷰를 보면 알겠지만, 독설가를 넘은 악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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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호화청사 이야기가 시끄럽다. 이상한 브랜드 이름의 아파트가 복제품처럼 서울의 모습을 더럽힌다. 4대강과 디자인 서울은 죽도록 욕을 먹고 있다. 이상한 광경이다. 모두가 욕하는데 이런 문제는 전혀 멈추지 않고, 점점 막 나가고 있다. 그래서 건축계의 대가 김인철 교수님을 찾아갔다.

토요일인데도 출근해서 직원들을 굴리며 줄담배를 피우던 그는 4시간 넘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 건축계에 대해 애정이 넘치는 독설을 퍼부었다. 건축과 도시를,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연과 경관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조금은 이 글이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전문적 내용이 은근 많아서 건축 전공 광전사 님께서 도움과 교열을 봐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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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사정으로 포스팅 순서는 제맘대로입니다.
리수령 인터뷰 15(상): 40년 건축인생 김인철, 그의 삶을 말하다. (김인철 편)
리수령 인터뷰 15(중): 호화청사, 도시경관을 망치는 아파트, 왜 끊이지 않는가? (김인철 편)
리수령 인터뷰 15(하): “청계천은 실패작, 오세훈은 디자인 개념이 없다.” 왜? (김인철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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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화청사 문제, 본질은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와 건축 모르는 공무원

리 : 호화청사 문제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 주시죠.
철 : 되게 복잡한 문제인데, 사실 이 이야기를 꺼내면 한국 건축계 현황을 다 이야기해야 하거든. 일단 여기서 전제해야 할 것은 건축이라는 게 건축가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총체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거야. 건축이란 사회적 의지^^의 총합이니까.

리 : 연기천재^^ 박수를드려요^^ 그런데 시작부터 웬 의지^^
철 : 사회적 의지^^라는 건… 건축을 시작하려면 건축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해. 그 의지를 집행해주는 발주체제가 있고. 건축가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설계하고, 누군가 시공해야지. 또 건축에 들어갈 재료를 생산할 능력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어야 해. 마지막으로 건축 목적은 결국 이용이니까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해. 그 이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건축을 수용할 것인지가 중요하거든. 이게 다 합쳐져서 건축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우리나라가 굉장히 잘못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건축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만드는 건축주와 건축주의 생각을 실현해주는 중간의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 공무원들이 건축 개념이 없어. 건축주는 단순히 몇 평짜리가 필요한 거고, 시공, 테크노크라트는 어떻게 자기 피곤하지 않고 쉽게 일할 수 있을까만 생각해. 거기서 발생하는 제도가 턴키(turnkey, 설계 시공 일괄 입찰)야. 턴키가 되기 전에는 입찰, 부찰 등의 온갖 발주 방법이 있는데 다 문제가 많아서 결국 턴키로 정착이 되어버렸어.

리 : 턴키에 대해 좀 설명을 해주신다면…
철 : 건축에는 건축주,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가 있잖아. 그런데 앞 단계 생략하고 시공자가 모든 걸 만들어서 발주자에게 키만 돌려주면 끝나는 거야. 한마디로 발주자가 발주의 의지만 만들어놓고 시공자에게 넘기면 끝인 거지. (주 : 턴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피타고라스님의 이 글을 참조하시길. 곧 데드링크 될 수 있으니 미리미리 읽읍시다.)

리 : 백해무익한 제도입니까?
철 : 그렇지는 않아. 그게 사실 굉장히 좋은 제도야. 그런데… 왜 좋은 제도가 그냥 항상 좋지만은 않아. 시공자는 원초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잖아. 설계자는 이윤을 추구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이에 앞서서 건축의지의 발현을 하는 게 설계자의 역할이야. 그런데 턴키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거지. 시공자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거니까, 시공자는 자기 입맛에 맞게 설계자 고르고, 돈이 많이 되는 쪽으로 자기의 의지를 강요해. 턴키는 설계자 의지가 개입될 필요가 없는 건축물에나 적합한 거야.

리 : 설계자의 의지가 필요 없는 건물도 있습니까?
철 : 뭐, 그런 거 있잖아. 싸게 빨리 짓는 게 중요한 공장이나 기숙사… 좀 극단적 예로는 군대. -_-;

적절한 예시.jpg (출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리 : 너무나 적절한 예시입니다(…)
철 : 그러니까 우리나라 문제는 그냥 무차별적으로 턴키를 적용하는 거야. 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그 제도 정말 좋지. 자기들은 결제만 하면 되니까. 맨날 술 먹고 돈 줄 때마다 대접받으면 끝이야. 우리나라 건축직 공무원 중에 건축 전공이 별로 없어. 그런데도 전체적으로 발주 프로젝트에 비하면 인원까지 태부족이야. 더군다나 국토해양부 가면 건축직은 제일 높아 봐야 국장 정도인지라, 행정, 토목… 이런 사람들이 의사결정권 가지고 있어. 건축은 거기서는 그냥 기술직에만 해당하는 거지.

리 : 그런데 디자인으로 뽑힌다고 했는데, 그 외에도 다른 여러 요소가 작용하지 않습니까?
철 : 건축 프로젝트에 대한 기본적 정보는 다 제공돼. 공사비, 공사 기간 등 소위 말하는 응모요강들이 있는데, 이건 다 정답이 나와 있어. 공사비나 이런 거 빤하게 정해져 있는 거고, 당락이 결정되는 건 디자인 때문이야. 그걸 심사하는 사람들이 거진 대학교수인데… 사실 통찰력 있는 사람들이 심사하면 디자인에 안 넘어가고, 좋은 결과를 뽑겠지.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은 심사를 좀 이상하게 해.

리 : 그래도 교수님들인데 심사를 잘 못 한다?
철 : 건축은 집 짓는 거 가르치는 거야. 그런데 건축교수들이 집을 아무도 안 지어봤어.

리 : 본인도 교수이지 않았습니까(…)
철 : 나 같은 사람은 건축 교수 되기 어려워. 왜? 박사학위가 없으니까. 논문만 쓰던 사람이 교수가 되는 게 우리나라야. 문대성이 왜 박사논문 써야 해? 언제 공부해서 쓰냐? 그런데 교수 되려면 논문을 요구하니까 적당히 가지고 오라는 거지. 성악가가 왜 박사 받아야 하느냐고? 내가 교수 됐을 때도 총장이 박사도 아닌데 괜찮겠냐고 걱정스럽게 묻더라고.

리 : 교수들은 설계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겁니까?
철 : 물론 건축과 나왔으니 학교 때 설계했겠지. 그런데 그게 다야. 관심 있어서 직접 필드를 뛴 사람도 있지만 소수야. 한국 건축의 메이저리티가 그래. 그런 사람이 심사장이 되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건축을 40년 했잖아. 그런 나조차도 설계 심사 가면, 일단 잘 그린 그림에 시선이 가. 그래도 처음에만 시선이 가고 자세히 보면 허수가 보이거든. 표현이 부실해도 내용 있는 쪽으로 선택해.

그런데 정말 건축 많이 해 본 사람이 아니면 몰라. 여자들 성형 왜 하겠냐? 예뻐 보이려고 하는 거잖아. 그러면 좋은 데 시집가고 취업하니까. 건축도 그래. 실재하고는 관계가 없는… 폼내는 것들로 도배된 게 뽑혀. 그렇게 뽑은 결과는 그대로 지으면 통풍 어찌하고 냉난방 어찌하고 그런 거 엉망인 경우가 많아. 모양을 내야 하니까. 자연환기가 되려면 창문을 많이 열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창살 두꺼워져서 모양이 안 나오거든. 성형 수술하다가 건강 다 버리는 식이지.

리 : 여자는 예쁜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철 : 아, 그러네?

호화청사 논란의 대표 성남시청사 ⓒ연합뉴스

리 : ……
철 : 그러는 자네는 여자친구 있나?

리 : 없습니다.
철 : ㅋㅋㅋㅋㅋㅋ

리 : ………… 아무튼…  턴키 방식과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테크노크라트, 교수들이 합작한 사례를 하나 들어보신다면…
철 : 하나? 예가 너무 많은데… -_-;;;

리 : ……
철 : 자네 산다는 용산구청 봐. 아무런 기능도 없는 왜 유리가 저렇게 튀어나와 있어야 해? 알 수가 없어. 유리로 지어서 그렇다고 신문에서 대가리 나쁜 기자들이 표현하니까, 또 우리나라 공공건축물은 유리 못 쓰게 규정을 만들어. 유리로 지어야 할 집도 있고, 아닌 집도 있는데 완전히 단순 논리로 지르는 거지. 유리라고 냉난방 안 되는 건 아니야.

서울시청도 마찬가지야. 유걸 선생이 아이디어 냈는데 배제하고, 삼성에서 알아서 자기 예산 맞춰 짓도록 바꿨거든. 유걸 선생이 마지막에 다시 감리로 부탁했을 때 안 했어야 했는데, 자기 미련을 못 버린 거지. 이미 만신창이가 됐는데 자기가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막말로 하면 내 딸이 가출해서 마약 하고, 아주 막장 인생이 됐는데, 제 새끼라고 살려보려고 오케이를 한 거지. 그런데 이미 망한 거야. 그래서 유걸 선생이 지금 하는 이야기가 자기도 서울시청이 내 새끼인지 아닌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결국, 근본적 문제는 턴키제도야. 본질적 문제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자꾸 쓸데 없는 소리들을 해.

돈 먹는 흉물(…) 용산구청의 비사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조하자. ⓒ용산구청
건축가도 “내 설계 맞나?”고 되묻는 서울시청사. ⓒ서울시청

리 :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턴키를 없애야 한다?
철 : 그렇지. 이게 턴키(일괄수주)가 가진 문제야. 시공자가 자기 입맛에 맞게 다 바꿔 버리니까. 사실상 발주자들이 방조, 직무유기한 것이기도 하고. 설계자가 원한 건 어떻게든 해내라고 해야 해.

리 : 공무원들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텐데…
철 : 무주 태권도 공원을 한창 공사할 때 자문위원 해달래서… 턴키 안된다고 계속 이야기하니까 건축주가 오케이 하더라고. 그런데 건축주가 곤란해하는 게 조달청에서 수용 안 될 것 같다는 거야. 그래서 담당자를 만나서 이야기했지. 태권도는 국가 상징인데, 그런 시설을 무식하게 턴키로 갈 수는 없다고. 그러니까 조달청 사무관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찬성했어. 나도 놀랐지. 언제 공무원 생각이 바뀌었나…

알고 보니 조달청장이 새로 왔는데, 조달청장이 조달관들을 집합시켜놓고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몇 년 경력에 건설 프로젝트 맡은 거 합치면 얼마인지 물었어. 다들 십수 년 간 하면서 몇 조를 썼어. 천문학적 숫자지. 그런데 조달청장이 그렇게 오래 하고 돈도 많이 썼는데 왜 명품이 안 나오냐고 물었대.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 돈을 쏟아붓고 왜 명품이 안 나오는지를 논의했고, 결국 발주 방법의 문제라는 결론이 나와서 새로운 발주 방법을 연구하라고 했다 하더라고.

리 : 하지만 여전히 턴키 방식이 주류이지 않습니까?
철 : 그래서 자기들도 고민하고 있는데… 턴키에 대한 문제는 사실 오만 데에서 다 문제로 삼고는 있어. 단지 턴키를 대체할 방법이 없다고 그래서 턴키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결국 기본적으로는 발주자들이 전문화되는 방법밖에 없어. 자기들이 책임져야지, 시공자들이 책임 안 지고 룸에서 접대나 받고 있고… 이래서는 곤란해.

리 : 그렇다면 턴키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철 : 기본적으로는 시공자와 달리 따로 설계자 뽑아야지. 건축주, 시공주, 설계자가 삼권분립 하는 거야. 건축주는 땅과 돈 내고 설계자에게 정확한 기획 의도를 제시해야 해. 그러면 시공자는 정당한 금액을 받고 가능한 한 설계자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고.

2. 건축의 개인의 소유이자 공동의 자산

리 : 흐음……
철 :그런데 한국은 건축주와 시공자 같을 때도 있고 ,삼성처럼 세 놈이 전부 같은 경우도 있어. 오너 자기 맘대로지. 뭐, 이건 재벌들 다 마찬가지지만.

리 : 아니, 재벌이 자기 돈으로 삽질하는데 그게 왜 욕할 일입니까(…)
철 : 건축은 공동성이 있잖아. 나는 금강산 안 가본 사람이야.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 현대가 금강산 사업권을 가지고 거기다가 뭘 많이 지었어. 그런데 거기 호텔, 극장 등의 설비를 누가 했는지 아무도 몰라. 아산재단에 설계실인가 거기서 뚝딱거리고 만든 거야. 그게 서산 간척지에다가 짓는 건 상관이 없어. 그런데 금강산이잖아? 금강산에 현대가 무슨 짓 했는지 보기가 무서워. 못 가.

리 : 저기… 이렇게 현대 막 까는 거 올려도 되나요(…)
철 : 벌써 다 한 이야기야. YTN에서 그 이야기 듣고 뉴스거리라고 보도했지. 나갔더니 현대에서 뭐라 했는지 알아? ‘그런다고 니들한테 일 줄지 아냐?’ 이런 식이야. 내가 일 따고 싶어서 매스컴 동원해서 씹었나?

리 : 역으로 이야기하면 그만큼 건축에서도 대형 건설사의 힘이 막강하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철 : 한마디로… 이런 이야기 하면 비참해지는데… 우리나라 건설회사는… 쉽게 이야기하면 쌀장사하다가 차린 애들이야. 예로 어떤 목수가 그 동네에서 집 잘 짓고 일 많아져서, 회사를 차리고 점점 커가지고 현대건설이 됐다고 쳐. 거기서는 소위 장인정신으로 흐르게 돼.

일본의 건설회사들, 유럽의 건설회사들이 그렇거든. 어떤 석공이 돌질을 잘하니까 이름 올리고 키우고 성공해서 대표가 되는 식이야. 일본 건축사 타케나카는 아직도 회사 이름이 공무점(竹中工務店)이야. 점방이란 소리거든. 왜냐면 옛날에 목수가 집 장사하다가 점점 커져서 굴지의 건설회사가 된 거야. 그러니까 그 건설회사 기본 정신이 목수정신인 거지.

우리는 자동차, 화학, 껌 만들다가 건설회사 잘 되고, 부동산 붐이니까 그냥 차린 거잖아. 아파트 열심히 짓다 보니 다른 거 짓고 싶어서 호텔, 병원 다 짓는 거고. 그런 사람들에게 건축은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이 아니라 건설일 뿐이야. 그러니까 건축은 괜히 할 일 없는 놈들이 돈 많아서 집 수십 채 지은 놈들이 마지막에 폼 잡으려고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거지.

이미 다케나카의 역사는 110년이 넘었다. 도쿄돔도 타케나카에서 설계. ⓒwikipedia

리 : 심사에서 건축가들이 왜 존중받지 못하는 겁니까?
철 : 예전에는 심의에도 자주 부르다가 요즘은 잘 안 불러. 저 사람들 부르면 말이 많다고. 자기네들이 볼 때는 멀쩡한 집인데, 저렇게 지으면 안 된다고 하니까. 저기 산허리 있는 달동네 재건축 안 된다고 하면 왜 안 되느냐고 되물어. 그런데 산은 비탈이잖아. 그거 평지 만들어서 집 지으면 안 돼. 산을 왜 가리는데? 산은 그 아파트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잖아. 온 서울시민이 다 볼 수 있어야 하는데. 한강하고 나란히 집을 지으면 맨 마지막 동 가정들만 한강을 보잖아.

그래서 그렇게 안 하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무조건 남향이어야 하고 어쩌고 그런 것들을 자꾸 이야기해. 우리 때문에 심의가 오래 걸리고 행정이 절차가 복잡하고, 민원인들에게 불평 받고… 그러다 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 자꾸 빠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야. 그런 것 때문에 만들어지는 게 우리 도시고…

리 : 그래서 우리 도시는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철 : 내가 페이스북을 하면서 재밌는 그림을 봤는데 세계 주요 도시들을 평면으로 나타낸 거였어. 왜 서울을 안 그렸지 하면서 서울을 덧붙였는데, 서울을 더해서 올렸더니 세계인이 공감하며 전세계로 나가고 있어.

맨 아래 서울이 김인철 선생님이 덧붙인 그림.

리 : 오… 이거 좀 멋진데요?
철 : 무려 600회 이상 공유됐지. 건축계의 싸이라고 불러라. -_-v

리 : ……
철 : 그런데 유람선 타면 진짜 이런 분위기야. 일본 애들이 이렇게 이야기해… 이게 아까 이유들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시골에 가도 산 언덕에, 논두렁이 옆에 아파트 막 솟아 있어. 그런 거 뭐라 그랬더니… 평지에 짓는 아파트 기준을 그대로 산자락에도 적용하고, 시골 논바닥에도 적용한다는 거야.

리 : 또 따졌습니까(…)
철 : 그래서 코드를 세분화시키라고 했지.비탈, 산, 들판에 짓는 거 몇 개 정해서 기준을 따로 하라고. 시골에 아파트를 짓는데 왜 고층을 짓냐? 차라리 저층 고밀도로 짓는 게 낫지 않느냐고 하니까… 국토해양부에서는 그러더라고. 시골 사람들이 화낸대. 우리는 왜 엘리베이터 타면 안 되냐고. 시골 사람들도 다 도시 즐기고 싶어한대. 그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물려서 우리의 풍경을 결정하는 거야.

리 : 건축의 공공성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철 : ‘공공성’이라기보다 ‘공동성’이라 표현하는데… 건축은 분명히 사유재산이야. 하지만 동시에 공동의 재산이기도 하거든. 내 집 내 맘대로 짓겠다면 그건 큰 오해야. 내 집이지만 지어지면 나만 보는 게 아니라 남들도 다 보거든.

도자기 만드는 사람은 도자기를 산 사람만 봐. 미술관에 가져다 놔도 오는 사람만 보고. 그런데 건축은 보기 싫어도 만들면 어쩔 수 없이 봐야 하잖아. 건축의 공동성을 강조하는 게 그런 거야. 공공은 퍼블릭이지만 공동은 우리 거, 우리 동네 거라는 이야기지. 우리는 참 이상한 게 우리라는 말 잘 쓰잖아. 우리 마누라, 우리 남편… 그런데 실제로 우리 이야기해야 할 곳에서는 나만 이야기해. 앞뒤 안 맞는 모순된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거지.

리 : 외국의 도시는 왜 한국처럼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철 : 결국은 한 나라의 도시나 건축을 결정하는 건 사회적 문화 수준이야.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이런 다양한 수준이 필요한 거지. 우리가 보는 유럽의 도시들은 따지고 보면 시저가 북방 정벌할 때 만든 군사도시에서 시작됐어.

그런데 18세기쯤 와서 런던, 파리 등 대도시들이 다 전쟁으로 개박살 났어. 그 다음에 재건할 때 전문집단이 생각하고 있었던 유토피아 같은 것들을 구현했고, 그게 부담없이 받아들여지고 수용됐어. 예로 런던 대화재 이후 목조건축을 석조로 바꾸기 시작했지. 한국도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새로 많이 지었는데 재건 방법에서 별다른 변화가 없었어. 우리는 소위 기본적인 사회구조가 튼튼하지 않았으니까.

리 : 외국은 처음부터 공동성을 의식한 도시 설계를 했다?
철 : 좀 오버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고… 우리는 파리를 볼 때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아름답고 어쩌고저쩌고하잖아?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때부터 도시 경관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한 건 아니야. 불이 안 나게 해야 하니까 석조로 지은 거지. 마침 당시 인구도 많아지고 자본력도 커졌으니까 돌집을 지을 수 있었거든. 높이가 5~6층이었던 건 당시 기술의 한계 때문이었고.

그때 그 돌이 필요했는데 유럽은 산이 적어서 바로 땅을 깎았어. 파리의 하수도가 그렇게 만들어진 거고. 땅을 파서 돌 잘라서 올려다가 집 짓고 땅 파낸 구덩이는 연결해서 하수도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돌이 수성암인 라임스톤인데, 이게 푸석푸석해서 조각하고 가공하기 좋거든. 그래서 바로크, 로코코 장식이 들어갔고, 노트르담(Notre Dame) 성당도 만들어진 거지.

어쨌든 중요한 건 파리 재건을 통해 샹젤리제 거리 만들고 루블 궁전하고 개선문 세우면서 축 만들고… 이런 거를 공부하고 연구한 오스만이라는 놈이 있었고, 제안을 나폴레옹 3세가 받아들였고, 시민이 받아들인 내력은 역사가 만든 거야. 그런데 우리는 불타면 아무 것도 없으니 왕궁 만들고 한 게 도시 모양이고…

역사의 무게가 담긴 샹젤리제 거리. ⓒ두산백과사전

3. 한국 건축의 얼룩진 역사

리 : 전쟁으로 개박살 난 건 우리도 6.25가 있지 않았습니까?
철 : 그렇지… 사실 근대 시점에서 이미 해야 했는데, 6.25 이전은 일제시대 식민지니까 아무것도 못 했고… 1945년 식민지에서 벗어나자마자 1950년에 전쟁 터지고… 그런데 5년간 우리가 무슨 준비 했겠어? 아무것도 못하지. 그런데… 식민지 시대가 건축에 있어 문제였던 게, 일본 애들이 철수해버리고 나니까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12명밖에 없었어. 식민지 시대에 대한민국 조선 백성으로 돈이 있거나 집안이 잘살거나 머리가 좋은 놈들은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였고… 기술 쪽은 하면 바보였으니까.

한국건축가협회가 이때 생겼어. 발기인이 그 12명이었지. 6.25 이후 전쟁으로 파괴된 땅을 수복하기 위해 집을 지어야 하는데 12명이 뭘 해? 대충 알아서 짓는 거지. 공산당 신경 쓰기도 바쁜데 도시계획 세울 형편도 못 되고.

리 : 12명으로 뭘 할 수 있는 거죠;;;
철 : 우리 설계시장 악순환도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할지 모르겠어. 아까 일본 사람들 식민지 끝났을 때 12명 건축가 있었다고 했지? 그다음 건축사 제도가 만들어졌어. 건축은 안전 문제 등 사회적 책임이 있으니 국가에서 면허를 줘. 자격을 주는 제도를 만들 때는, 항상 첫 단추가 중요해.

그런데 일제시대가 끝나고 건축설계할 수 있는 사람은 12명이었지만, 일본의 건축사 사무소에서 사환을 하거나 심부름을 하거나 서류 수발하던 조선인들이 또 있었거든. 이 사람들이 사무소 주인들이 빠져나가니 가게 주인이 됐어.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도 면허를 다 줬어. 그건 국가에서도 어쩔 수 없었지. 어쨌든 집 짓는 수요는 계속 있었으니까.

리 : 오오! 앉아서 로또 당첨이군요!
철 :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일단 기득권이 되어버렸어. 그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다 줬으니. 그 사람들이 차린 게 설계사무소라기보다는 허가방에 가까워. 건축은 허가가 필요한데 허가를 내주는 행정 절차를 하는 사람들이 구청 앞에 설계사무소를 차려. 그 사람들이 국내 집의 80%를 설계했어. 이게 우리나라에 박힌 건축설계 개념으로 이어지고 있는 거고. 나도 동창회 나가서 “건축가 김인철입니다.”라고 인사하면 사람들이 허가방으로 오해할 때가 많아. 허가방 사람들과 정규교육 받은 건축설계사, 그중에서도 자기 이론을 갖고 자기의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구분이 안 되는 게 지금 대한민국 건축계의 문제야. 심지어 제도상으로도 구분이 안 되고.

리 : 지금도 이런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철 : 악순환이 된다는 이야기가 뭐냐면… 처음 허가방 차린 사람들이 이제 70대야. 아마도 현역에서 물러났겠지. 문제는 이후야. 박정희 군사정권 때 육사출신들, 공병장교들, 제대하면 막막하잖아? 이 사람들 밥그릇 챙긴다고 형식적 시험만 보면 면허를 다 내줬어. 계획대로 1백만 호를 지어야 하는데 사람이 모자라잖아. 공무원들 사기진작을 시켜야 하니까 몇 년 근무하면 다 자격을 준 거지.

그런데 건축직 공무원 있으면 월급이 박봉이잖아. 그래서 다들 건축사 면허받으면 독립해서 개업했어. 전관예우가 있어서 그 사람 찾아가면 건축 허가 잘 나오니까 박리다매로 엄청나게 벌었지. 건축제도 개선한다고 건설부에서 통계를 받아본 적이 있는데, 양천구의 한 건축사사무소는 1년에 250건의 허가를 내 준 곳도 있어. 공휴일, 주말 빼고 하면 하루 한 건씩 한 거지.

리 : 군대 가면 24인용 텐트도 혼자서 친다던데, 군대 가서 설계의 신이 되었나 보군요(…)
철 : 그게 가능한 게 택지를 바둑판처럼 자르고, 타입 몇 개 준비해 둬. 그러면 끝이야. 그렇게 하는 설계사무실은 그냥 하는 게 아니라 다 집 장사, 복덕방 끼고 해. 하루에 몇 건도 하는데 설계비 얼마나 받겠어? 많이 받아봐야 50도 안 하고, 10만 원 안 받는 곳도 있어. 이렇게 박리다매로 장사하는 곳이 주종을 이루니까 설계는 그냥 허가를 내기 위한 요식행위란 의식이 일반인에게 깔린 거지.

이쯤에서 간지남 김인철 선생의 단독 샷을 공개한다. 출처는 여기.

리 : 이게 좀 나아질 기미는 없습니까?
철 : 아직도 계속 악순환이지. 대학에 뭐 때문에 갔건, 건축과 들어가면 설계 사무실 가서 설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그런데 설계 사무실 가려고 보니까 후진 대접도 못 받는 곳투성이야. 어쩌다 설계사무실 간 놈도 해보니까, 집 장사 하수인밖에 안 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니 후배들에게 뭐라 그러겠어? 하지 말라고 그러지. 해봐야 비전도 없고, 맘대로 하지도 못하고, 집주인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일을 왜 해?

그러다 보니 건축에 뜻을 품은 애들조차도 설계를 안 하고, 시공사 가거나, 감정평가사 따거나, 건축 관련 다른 쪽으로 빠져. 아니면 박사 받으려고 해외 유학 가버리거나… 그렇게 되면 설계 사무실 온 애들은 점점 수준이 떨어져. 다른 데 못 가는 애들이 들어오고, 아웃풋도 수준이 떨어지게 되지. 내가 봐도 요즘 개판이 너무 많아. 문짝 안 들어가고 변기 안 놓이고… 그러다 보면 설계비 제대로 못 받게 되고…능력 있는 설계사무소 소장도 애들 저질러 놓은 거 수습하기 바쁜 경우가 많아. 인건비는 떨어지니 좋은 애들은 안 들어오고, 계속 악순환 될 수밖에…

리 : 능력 있는 인재가 없다는 건, 국가적으로 인재를 제대로 못 키운 문제도 있겠군요.
철 : 아까 허가방 이야기를 했는데… 일제시대 끝나고 건축 라이선스 가진 사람들이 건축사회협회라는 거 만들어. 건축사가 많아지면 자기네들 시장이 점점 줄어들잖아? 그래서 건설부랑 로비해서 건축사 제도, 면허를 엄청 어렵게 만들었어. 내 동기 유춘수가 동기 중에서 젤 먼저 합격했는데 활명수만 먹어도 취하는 애가 소주 까고 펑펑 울었어. 걔 때 13명 붙고, 나 때 25명 붙었거든. 인원관리를 엄청 하면서 일찍부터 문을 조였던 거지. 그러니까 인재 배출이 적어지고 지금 여기까지 온 거야.

리 : 공급이 제한되는 만큼, 질이 좋아지는 효과는 없었습니까?
철 : 없어. 일본은 그 당시 건축사만 22만 명이었어. 그런데 우리는 1년에 수십 명 나오는 게 말이 돼? 건축사라는 놈들이 제 무덤 자기가 판 거야. 일본 건축사는 설계하면 당연히 갖고 있는 거야. 그러다가 건축가로 이름이 나면 개업하는 거고. 즉 일본에서 건축하는 개업을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었어. 근데 우리는 이걸 조여놓으니 건축사만 되면 개업할 수밖에 없어. 개업 안 하면 바보지.

리 : 충분한 필드 경험과 능력 없이 개업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겁니까?
철 : 대학 졸업해서 실무 5년 하면 건축사 시험 자격을 줘. 머리 좋은 놈들은 붙지. 그런데 경력 5년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아. 우리 직원 중 하나가 독립하려 하는 것도 말렸어. 5년 더 해야 제대로 설계할 수 있다고.

리 : 설득은 먹혔습니까?
철 : 아니.

리 : 왜죠?
철 : 마누라한테 혼난대. -_-;;;

대한민국 전투력 1위 이건희도 어찌할 수 없는 공포의 존재 마누라. (출처: 머니투데이)

리 : -_-……
철 : 자기도 여기서 더 일하고 설계 공부하고 싶다고 해. 그런데 건축사 땄더니 아파트 감리 업체에서 자동차 주고 연봉 올려준다고 하니, 결혼한 놈이 안 갈 수가 없겠지.

리 : 어떻게 보면 고급 설계 노동자가 사라지는 거로군요.
철 :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냐면… 설계사무실 경력직 5년 넘는 애들이 없어져. 다 주니어급 데리고 일을 해야 하는 거야.

4. 대한민국의 아파트, 왜 이리도 단순한가?

리 : 아파트는 좀 다를 것 같은데… 박정희 시절 이후 아파트가 급속도로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철 : 자네, 군대 갔다 왔지?

리 : 아. 저는 병역특례였습니다.
철 : 방위야?

리 : 네(……)
철 : ㅋㅋㅋㅋㅋㅋ…

리 : ……
철 : 초기에 아파트 세울 때를 상상해 봐. 일단 울타리를 치는데, 대체 왜 치는지 모르겠어. 동네 한복판에 울타리부터 치고, 정문에 경비실 세우고, 경비실 바로 제일 가까이에 아파트 상가 세우고… 모든 아파트가 줄을 좍 맞춰서 서. 이게 군대 막사하고 뭐가 달라? 철조망 쳤지. 위병소 있지. 피엑스 있지… 줄 맞춰선 콘크리트 바락들 서 있지.

리 : 오오… 그러고 보니!
철 : 박정희가 인구정책, 경제정책 막 하면서 국민들을 잘 살게 해줘야겠는데 주택난이 있으니 아파트 짓기로 한 건 좋아. 마포에 처음 지을 때만 해도 Y자로 조경도 신경 쓰고 우아하게 지었거든. 그런데 건설업자들이 나중에 짓기만 하면 팔릴 걸 알게 된 거지. 집은 모자라고 사람들은 빨리 지으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니까. 빨리 지으려면 복잡하면 안 되고, 단순해야 하거든. 그런데 거기 들어온 사람들한테 특권층 같은 의식은 줘야 하니까, 옆 단독주택이랑 다른 걸 울타리로 구분하고, 경비실로 잡상인 못 들어오게 하고, PX로 모든 걸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한 거지.

리 : 규제로 어찌저찌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철 : 옛날 건설부에서 보니까 막 지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주택건설 촉진법 만들었어. 법은 어떤 사회적 행위에 관한 최소규정이잖아? 그래서 어린이 놀이터 몇 평에 조경은 나무 최소 얼마 넣으라고 그랬지. 그런데 그게 시행되는 과정에서 건설업자들에게는 딱 최소 규정만 맞추는 걸로 됐지. 그 이상 하면 바보고. 그래서 거의 똑같은 아파트가 막 지어졌어. 그러니까 우리나라 아파트가 재미가 없지.

대한민국 아파트의 현실. 출처는 2차원 개그.

리 : 그 이후에도 뭔가 나아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철 : 그게 어쩔 수가 없어. 김영삼 때 부실공사 이야기가 많이 나왔잖아.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무너지고, 분당아파트에 바닷모래 쓴다는 이야기가 알려지고 나서 부실공사방지대책 공청회 등 별의별 걸 다 했어. 그런데 그럴만한 게 그때는 아파트 짓는다고 소문내면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때야. 입주권만 가지고 있어도 프리미엄이 붙었고.

시장에 도자기 장사하려고 가게 문을 열었더니 줄을 서 있으니까 대충 만드는 거랑 마찬가지야. 반죽도 대충 하고 굽는 것도 대충 굽고… 그런 상황에서 좋은 집을 왜 지으려 들겠어? 그렇게 세워진 수없이 많은 아파트가 우리의 풍경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어버렸지.

리 : 뭔가 건축가가 나서서 해결할 구석이 없었던 겁니까?
철 : 우리 같은 사람은 아파트 시장 들어갈 수도 없어. 나도 들어가고 싶어. 얼마나 좋은 줄 알아? 평면 하나만 짜면 설계할 게 없어. 계속 리피트(반복) 리피트 돌리면 되거든. 아파트 한 동 만들면 이것도 리피트야. 설계비는 몇 만 평이니까 돈은 엄청 받지. 그런 시장 나라고 왜 안 가고 싶겠어?

그런데 우리나라 시장구조상 불가능해. 디벨로퍼(시공자)가 있고 설계자가 하청을 받아. 그래서 시공자가 원하는 설계를 할 수밖에 없어. 시공자가 원하는 설계는 싸고 빨리 지을 수 있는 설계거든. 복잡하면 안 되고, 단순해야 해. 그러면서 또 설계비는 계속 깎지. 나한테도 몇 번 유니크한 아파트 만들어달라는 제의는 있었는데 죄다 시공자가 결사반대했어. 저렇게 지으면 돈이 안 남는다고.

리 : 시공자 외에도 또 다른 난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철 : 조합원들간의 평등심리도 장벽이야. 조합원 수십, 수백 가구가 모두 똑같은 집을 가져야 하니까 일률적으로 설계되는 거지. 어디는 좀 더 받고, 어디는 덜 받으면 주민들끼리 불화가 생겨서 안 돼.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니폼을 좋아해. 캐주얼에 익숙하지 않고. 비슷하게 지어도 개념이 다를 수 있는데, 입면도부터 다 똑같아. 주공에서 입면 개발 제한을 걸기도 하고… 그러니까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가 없지. 아파트 공사라는 게 결국 우리 도시풍경을 만드는 거야. 지금 건축의 풍경은 우리 문화의 총체적 결과물인 셈이지.

리 : 차별화를 시도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철 : 지금 아파트들이 소위 말하는 차별화를 시도하는 단계라는데… 이게 이상한 브랜드화로 나아가고 있어. 우스갯솔리로 시어머니가 못 찾는 어려운 이름투성이잖아. 자이니, 푸르지오니 뭐니 하는데… 이 단계까지는 지나가야 돼. 지나면… 공간의 질을 따지는 쪽으로 사람들의 요구가 조금씩 열릴 거야. 수요가 있어야 거기에 맞는 생산을 하게 돼.

리 : 지금까지는 건축이 단순 자산가치 증식의 수단이었다?
철 : 지금까지 우리의 아파트 요구 수요는 아파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붙는 프리미엄이었지. 입주, 당첨되면 얻을 수 있는 기대 때문에 아파트를 좋아했던 거야. 하지만 일본이 그러했듯 국민주택 보급률이 70%를 넘어가면 차별화 요구가 생기게 돼. 우리는 넘은 지 한참 됐지만, 아직 자산가치 상승 기대가 있다 보니 차별화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한 거고.

물론 모두가 집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리 : 하지만 요즘 미분양투성입니다.
철 : 아까 부실공사 이야기도 나왔지만 사실 후분양만 해도 지금보다 좋아져. 지어놓고 팔면 돼. 지으면 무조건 나간다고 생각하니까 대충 짓는 것도 있고… 은행에서 PF(project financing) 받으면 이것도 설계에는 마이너스야. 그렇게 되면 자금 댄 은행에서 상품가치 있게 만들려고 간섭 많이 하거든. 선분양으로 가버리면 팔릴 집을 왜 잘 짓냐는 악순환으로 돌아가 버려.

리 : 궁극적으로 아파트는 차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철 : 아니… 불가능하지.

리 : 아파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겁니까?
철 : 아파트가 틀린 게 아니라 아파트는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맞는 거야. 아침 일어나서 빨리 학교랑 회사 가고, 기능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 아파트가 좋지. 산과 풍경이 좋아서 간 집에서는 바쁘게 살 일이 없잖아. 그런 공간은 래피드 스페이스(rapid space)가 되면 이상해. 슬로우 스페이스(slow space)가 되어야지. 그 넓은 땅은 뭉쳐서 사는 게 아니라 벌려서 살아야 하거든. 화장실도 숲이 보이고 부엌에서 밥 짓다가도 숲이 보이는… 그런 고정관념을 설득해서 풀면 비로소 TV나 신문에 나오는 집이 탄생하는 거지.

리 : 왜죠?
철 : 아파트를 무시할 수는 없어. 그렇지만 결국 아파트는 기성복이야. 집에 사람이 맞추는 거지. 단독주택은 주문복, 오더메이드고. 구매자 입장에서 볼 때 난 이런 옷을 입고 싶다고 디자이너 찾아가서 받는 것과 백화점 가서 사이즈 맞는 거 골라 입는 것의 차이야. 난 아파트를 변혁시키고 새로운 아파트 만든다는 것도 개념이 좀 잘못됐다고 봐. 아파트의 공간들을 복잡하게 주고, 가운데 마당 있는 아파트 만들고… 이런 거 좀 부질없다고 봐.

리 : 그래도 그 나름의 차이를 무시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철 : 아파트는 모둠살이야. 혼자 사는 것과 모여 살 때는 다르고, 또 달라야지. 그럼에도 지금처럼 줄 맞춰서 짓는 집이 아닌, 뭔가를 좀 더 바꿔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나라 건축법이 먼저 바뀌어야 해. 예로 1만 평이라는 땅이 있으면 이걸 조절하는 규제가 두 가지 있어. 용적률이랑 건폐율이 그것들인데…건폐율은 바닥면적 1만 평에 5천 평만 집을 앉히라는 거고, 용적률은 거기에 층수 보탰을 때 200%로, 1만 평이면 2만 평을 짓게 할 거냐. 이런 거야. 둘 중의 하나만 규제하면 되면 아파트도 많이 달라질 거야. (참조 글 : 건폐율, 용적율 알아보기)

리 : 둘 중 하나만 규제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요?
철 : 건폐율보다 용적률만 적용하면 돼. 1만 평에 2만 평 지을 수 있게 하면 건축가는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둘 다 적용하면 어떤 놈이 설계해도 똑같은 게 나올 수밖에 없어. 산에 짓든, 강가에 짓든 똑같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어. 그것도 몇 년 전부터 떠들었는데 먹히지를 않아. 이상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까이는 것도 이제 지겨워.

리수령 인터뷰 15(하): “청계천은 실패작, 오세훈은 디자인 개념이 없다.” 왜? (김인철 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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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1. 리승환님 기사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한국 도시 미관 문제는 저도 항상 고민하던 것이었는데 기사에서 많은 걸 알아갑니다. 건필하십시오.

  2. 핑백: KIC « #e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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