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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의 불안을 느끼는 독자께 알립니다. 이 글에는 영화 [곡성] (나홍진, 2016)의 줄거리 노출(스포일러)이 있습니다.  (편집자) [/box]

공무도하(公無渡河)
공경도하(公竟渡河)
타하이사(墮河而死)
당내공하(當奈公何)

공이시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공은 그예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이제 공을 어이할꼬

황혼 강

일광(日光)

아득히 먼 옛날, 무당은 신(神)의 권위를 대리해서 행사했다. 많은 사냥감을 얻고 풍성한 농경의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하늘의 뜻을 알아야 했다. 하늘은 그들에게 절대자였다. 인간의 소원을 하늘에 전달하며, 하늘의 뜻을 인간에게 전해주는 무당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 꼭 필요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해갔다. 쇠로 무기를 만들면서 인간은 타인의 것을 빼앗는 데에도 많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하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힘이 중요해진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하여 왕(王)이 출연했고, 모든 것을 지배했던 무당의 권위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백수광부는 그렇게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강물은 도도한 역사를 집어삼킨다. 무당의 권위도 예외는 아니었다.

샤먼 무당 일광 아침

세월이 흘러갈수록 무당의 권위는 더더욱 추락했다. 이른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금한다는 성리학의 세상이 오면서, 무당은 아예 천민으로 전락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풍족한 삶을 위해 기원했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중개하며 울고 웃던 세월이 부정당한 것이다.

과학의 시대가 도래하며, 무당은 천민을 넘어 숫제 사기꾼 취급이 예사인 세상이 됐다. 무당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삶이 발전할수록 인간으로부터의 배신이 연이어 일어났다. 무속인 일광(황정민 분)은 그렇듯 이어진 배신의 역사 속에 곡성 땅에 나타난 것이다.

출처:Daum 영화
곡성(2016, 나홍진) –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그의 이름이 일광(日光)인 이유는 수천 년 넘게 배신과 추락의 쓴맛을 안겨줬던 인간에 대해 복수하리라는 다짐이라고 볼 수 있다. 태양 빛이다. 태양 빛이 사방으로 뻗쳐나가는 이미지를 기억하는가? 그것은 욱일승천기다.

한국인이 가장 혐오하고 아파하는 것을 표방하며 곡성 땅에 나타난 것이다. 지독한 복수의 결심이자, 한편으로 누군가와의 결탁을 상징하는 이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광은 그렇게 욱일승천기를 이름에 담고, 왼쪽 차선으로 승용차를 운전하며, 훈도시를 입은 채 곡성에 나타났고, 종구(곽도원 분)를 만났다. 본격적인 복수의 서막이 올라간 것이다.

외지인

평화롭고 조용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음험하다. 거기에는 수많은 상처와 아픔이 묻어 있다. 멀쩡한 사람을 노예로 잡아다가 염전에서 일을 시켰고, 장애인을 비롯해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의 성을 강제로 빼앗은 채 은폐했던 역사가 있다. 만행을 지적하는 타 지역 사람들에게 ‘육지 것’ 혹은 ‘외지 것’이라며 욕하며 흥분하던 일부 사람도 있다.

물론 이것은 곡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평화롭고 조용하다는 곳에서 이따금 정체가 드러나곤 하는 이면이다. 마을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다.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소외당하고 상처받는 자들을 양산한다. 모두가 똘똘 뭉쳐 은폐하는 그곳, 바로 대한민국이다.

평균적으로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외지인’은 일본인이다. 일제강점기의 상흔을 아직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혐오와 잠재된 공포의 대상인 일본인(쿠니무라 준)은 곡성 땅에서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곡성을 맴돌며 사람들에게 공포를 안겨준다.

출처:Daum 영화
곡성(2016, 나홍진) –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박춘배의 부활이었고, 일광과의 결탁이었다. 1980년대식 민무늬 군복을 입은 박춘배의 죽음은 묻혀 있었다. 외지인은 박춘배를 부활시킨다. 박춘배 또한 대한민국의 특유한 은폐의 역사 속에서 나온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군대에는 이따금 ‘자살’로 위장된 의문의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있곤 했다.

외지인은 가장 천대받고 배신당하던 자와 결탁해, 대한민국의 치부를 부활시키며 곡성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모두가 똘똘 뭉쳐 파묻어놓은, 잠재된 은폐의 역사를 꺼내 들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외지인’이었다. 지독하다.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외지인을 동원했으니 말이다.

한편, 외지인과 일광은 카메라를 들고 있다. 카메라가 막 들어왔던 구한말,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며 사진 찍기를 싫어했다. 영혼을 빼앗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오지에 거주하는 일부 부족들은 카메라를 두려워하거나 싫어한다. 카메라는 외지인과 일광의 결탁을 상징하는 영혼 공격용 무기다.

종구

역사를 고찰해보면, 인간은 제정일치 사회를 거쳐 부족장이 모든 것을 지배했으며, 부족장은 점차 왕이 돼 중앙집권을 추구했다. 나아가 우리나라에는 민주주의가 도입되었고 현재는 5년마다 대통령을 선출하고 있다.

무당은 그들에게 권력을 빼앗겼고 다시 자신의 권력을 되찾지 못했다. 역사가 진행될수록 발전하는 것은 행정이다. 고도화된 행정은 무당에게 빼앗긴 권력을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는 강력한 근거였다. 고도로 체계화된 권력은 각종 과학 장비를 동원해 무당 고유의 영역이었던 일기예보까지 매일 진행하고 있다.

종구는 그 고도화된 행정의 상징인 경찰관이다. 경찰은 과학 수사를 표방하며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하지 말 고, 누군가를 세워둔 채 질문에 답을 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종구가 가진 권력은 아득히 먼 옛날에는 무당이 가지고 있던 권력이었다. 종구는 자신도 모르게 일광의 원한을 사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종구는 억울한 피해를 입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염전에서 노예 노동이 발생하고, 군대에서 숱한 의문사들이 일어났던 것은 그 모두는 사실 경찰로 상징되는 공권력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출처:Daum 영화
곡성(2016, 나홍진) –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나아가 약자들의 성이 유린당하는 일도 결국 공권력의 무책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종구의 원죄는 바로 ‘공권력’이라는 직업에서부터 발생한다.

종구에게는 그렇게 많은 은폐를 방조하고 때로는 개입했다는 직업적 원죄가 있다. 많은 딸들이 약자라는 이유로 강제로 성을 짓밟혔지만, 공권력은 그때그때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려진 이후에야 사후약방문을 작성하기 일쑤였을 뿐이다.

곡성(2016, 나홍진) -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곡성(2016, 나홍진) –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나아가 대한민국 경찰은 친일 경찰 문제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세간의 부정적 시선을 온몸에 안고 살아야 하는 원죄도 있다.
한국인들이 민감해 하는 것 중 하나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임을 감안할 때, 종구가 안고 살아야 하는 직업적 원죄는 엄청나다. 그래서 무명(천우희 분)은 종구에게 “죄를 지었다”고 일갈한 것이다.

곡성(2016, 나홍진) -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곡성(2016, 나홍진) –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종구의 이중성이다. 종구의 처(장소연 분)는 갑작스레 멍한 얼굴을 하고 다리를 벌린 채 종구를 유혹한다. 그리하여 승용차에서 성관계를 나누고 그것을 딸 효진(김환희 분)이 보게 된다.

종구는 효진에게 “봤냐”고 꼬치꼬치 묻는다. 방조와 은폐의 원죄가 있음에도 자신에 대한 관음증은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명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발을 보아라. 틀림없이 나다! 자, 만져보아라. 유령은 뼈와 살이 없지만 보다시피 나에게는 있지 않느냐?”
– 루카의 복음서(누가복음) 24장 37절~39절

신병(神病) 혹은 무병(巫病)은 일종의 신호다. 영적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잡귀가 몸 안으로 침입해서 이상 행동을 반복하는 등의 고통이 이어진다. 무속에서는 신병일 때는 신령의 힘으로 잡귀를 쫓아낸다고 하며, 무병이면 무당이 될 운명이라고 해서 내림굿을 받아 무당이 되게 한다.

내림굿을 받으면 대개는 무당의 몸 안에 신령이 강림한다. 이어 5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면 솟을굿을 거쳐 몸 안에 자리잡은 신이 잘 솟아오르게 한다.

잡귀들은 둔갑을 통해 끊임없이 착시를 주기 때문에 무당은 신령을 알아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내림굿 과정에서 동자(童子)가 강림해서 그동안 “엄마가 나를 몰라봐서 서운했다”고 원망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것은 [곡성]을 본 후 알아두면 해석이 매우 도움될 사례다.

도마는 롱기누스의 창에 찔린 예수의 상처를 손으로 만져보고 나서야 예수의 부활을 믿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강조한다.

Fra Angelico (1440) https://en.wikipedia.org/wiki/Fra_Angelico
Fra Angelico (1440)

종교의 형태를 떠나서 신은 자신에 대한 인간의 의심을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곡성]은 그래서 외지인과 무명을 둔 줄타기를 지속해서 전개한다.

무명은 곡성의 수호신이다. 하지만 막상 종구를 비롯한 곡성 사람들은 무명을 믿지 못하고 미친 여자 취급을 하기 일쑤다. 그래도 무명은 수호신이었다. 죄 많은 종구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가족을 보호하려 결계를 쳐놓는다. 종구의 집으로 침입하려는 일광에게 강력한 공격을 가해 쫓아내기도 한다.

죄 많은 몸조차도 구원의 손길을 저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신(神)의 사명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종교는 한편으로 지난 날을 참회하며 반성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곡성의 수호신 무명은 소녀의 형상으로 나타나 사악한 공격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려고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그 노력이 수포가 된 이유는 어리석고 의심많은 인간이 무명이 수호신임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소녀의 형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소녀는 언제나 탐욕의 희생자들이다. 성을 빼앗기는가 하면, 과거에는 일본군의 종군 위안부로 끌려가 평생에 못 잊을 상처를 입은 바 있다. 국가는 그들의 피해를 막지 못했거나, 한편으로 외면했다.

출처:Daum 영화
곡성(2016, 나홍진) –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여기서 외지인이 일본인으로 설정된 점이 매우 흥미로워진다. ‘사건과 관계된 여성이 외지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문이 돈다거나, 외지인과 일광으로부터 공격당한 효진의 그림에서 여성의 중요부위가 피를 흘리고 있다거나, 외지인의 집에서 야한 그림이 담긴 책이 발견되는 것과 같은 사건은 무명과 연결되고 결국, 우리 근현대사의 속에서 여성이 피해를 입은 역사로 도출되기 때문이다.

무명은 역사 속 피해자의 형상으로 나타나 곡성을 맴돌았다. 하지만 곡성 사람들은 무명을 미친 여자 취급하며 수호신임을 한 치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어느 정도 드러내면서까지 경고했지만 끝내 그 말을 듣지 않고 비극을 자초한 것이다.

닭이 세 번 울면 해가 뜬다. 해가 뜨면 잠재됐던 양(陽)의 에너지가 솟아오른다. 내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 아래 어두운 악귀의 힘이 잦아들고 음습한 죄를 정화할 수 있다. 즉, 무명은 종구에게 “죄 많은 너이지만 너에게 죄를 정화할 기회를 주고 가족을 지킬 수 있게 해주려고” 한 것이다.

닭 여명 새벽

무당이 내림굿을 받기 전에 허주굿부터 한다. 신을 받기 전에 마치 신처럼 행세해 온 잡귀들부터 쫓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신도 둔갑을 하고 잡귀도 둔갑을 한다. 정체가 모호한 영적 세계에서 신과 잡귀를 알아보며, 신을 의심치 않고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무속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곡성 사람들은 수호신과 악귀(외지인과 일광)를 두고 줄타기를 하며 수호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무속인이 허주굿을 제대로 치르지 못해 잡귀와 신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잡귀를 신으로 받아들이면 평생에 남을 치명상을 입거나 결국 미쳐나가는 수 밖에 없다.

곡성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외지인과 일광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효진

김기덕 감독의 1998년 작 [파란 대문]은 여대생과 창녀가 서로를 공감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급기야 여대생은 평생 금기해왔던 일을 하고 마는 것으로 영화를 마무리했다.

[파란 대문]은 한편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반영해왔다. 중국 왕조에 굴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여성이 끌려간 아픈 역사가 있고, 일제강점기의 종군 위안부도 그 역사의 연장선상이다.

나아가 경제 발전 과정에서는 많은 딸들이 동생들을 먹여 살리고 교육시키기 위해 가발 공장이나 방직 공장 등에서 일을 했다. 그 여성들이야말로 경제 발전의 견인차였던 것이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딸을 희생시켰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외지인과 일광은 왜 종구의 딸 효진을 건드린 것일까? 악마의 유혹은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릴 때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종구의 어린 딸이 선택된 것이다.

곡성(2016, 나홍진) -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곡성(2016, 나홍진) –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종구는 장모와 아내, 딸 등 세 명의 여인과 함께 살았다. 딸은 자라면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 또한, 그의 딸이 결혼을 하면 누군가의 장모가 된다. 종구가 함께 살았던 세 여성은 여성의 역사다.

이 나라는 과거부터 딸을 천대했다. 그리고 여전히 음습한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딸은 성폭행 등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있다. 종구는 그 아픈 역사를 은폐했던 공권력의 일원이었다.

복수란 모름지기 입은 상처를 되돌려주는 것이다. 딸을 천대하고 착취했으며, 유린당하는 것을 외면했던 공권력의 일원에게 복수를 가하기 위해서는 그의 딸을 희생시키는 것이 제격이었을 것이다.

수호신 무명은 종구에게 “닭이 세 번 울고 나면 집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함으로써, 종구에게 마지막 정화의 기회를 줬다. 하지만 종구는 그것을 지키지 못했고, 외지인과 일광이 쳐놓은 덫에 그대로 걸려들었다. 그럼으로써 효진은 천대받은 자들의 복수를 기어이 실행하고 만 것이다.

천대받고 착취당한 자들의 곡소리

역사의 흐름 속에 권력을 잃고 천대받은 무속인, 역사 발전에 큰 역할을 했지만 천대받고 착취당한 딸들,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대로 갔지만, 의문의 죽임을 당한 채 그 진상조차 밝혀지지 못했던 사람들, 이들 모두는 곡성의 치부였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치부였다.

외지인은 대한민국의 치부를 정통으로 찌르고 들어왔다. 은폐의 역사는 결국 약점이 된다. 은폐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면 외지인은 언제든지 그 약점을 찌르고 들어올 수 있다. 일광은 그렇게 외지인과 자웅동체가 됐고, 박춘배와 효진은 외지인과 일광의 피에로가 됐다.

Jenavieve, "The joke is on me", CC BY SA https://flic.kr/p/88PSfA
Jenavieve, “The joke is on me”, CC BY SA

그들을 외면했던 대가는 결국 피 칠갑 된 살인 사건과 곡소리로 마무리됐다. 독버섯은 의심의 환각을 만들어냈고, 나아가 환각에 따른 망각으로 인해 청산의 기회를 잃게 했다.

[곡성]은 대한민국을 지켜왔던 수호신이 누구였느냐고 묻는다. 그 수호신은 평범하게 태어났지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당하고 착취당했던 그 딸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딸들의 고통을 외면했음을 일갈한다.

고통을 외면한 댓가로 천대받던 자들의 반격에 모두가 희생됐다. 역사의 도도한 강물 속에 기억마저 흘려보낸다면, 외지인은 언제든지 다시 나타나 곡소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곡성]이 보여준 모든 것은, 우리 안에 부끄러운 역사들이다.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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