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놈은 태어날 필요도 없는데 쓸데없이 태어났어.”
“이제 집에서 쫓겨나 밖에서 살아야 돼요…”
10살 민우(가명)는 부모 이혼 후 엄마와 함께 살았다. 그런데 식당 설거지로 생계를 유지해오던 엄마가 다리를 다쳤다. 돈이 없어 병원 치료는 꿈도 못 꿨다. 그 사이 월세는 7개월이나 밀렸다. 집에서 쫓겨날 처지였다. 집주인 할머니는 수시로 민우에게 욕을 했다. 월세를 내지 않으면 경찰을 부른다고 겁도 줬다.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으로 학대를 당했던 민우. 이제 민우는 집에서 쫓겨날 불안을 느끼며 자책한다. 그리고 자신을 부정하고, 비하하는 말과 행동을 시작했다. 민우는 어느새 자신을 싫어하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학대를 학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아이들
일상적으로 방임과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아동학대’는 낯선 단어다. 학교에서 ‘학대 행위’를 가르친다고 해서, 이 아이들이 당장 경찰에 신고할 수 있을까? 폭력에 익숙한 아이들은 폭력 속에서 안정을 느끼기도 한다. 자기 자신이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내가 몸담은 부스러기사랑나눔회는 수도권 4개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동 74명을 대상으로 아동학대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아동학대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주관식 설문에서 참여한 아이의 60%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다.
- 부모의 스트레스 해소 및 화풀이(감정조절 미숙)
- 나쁜 어른의 잘못된 생각
- 아동에 대한 무시(인권에 대한 부족한 인식)
하지만 17%의 아동은 이렇게 답했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서.”
2014년 보건복지부의 아동 권리 인식도 조사에 참여한 아동 중 단 1.6% 만이 아동학대가 ‘아이의 잘못’이라고 응답했다. 이 두 결과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번 설문조사에선 학대 행위를 학대로 인지하는 지에 관해서도 확인했다. 9가지 학대행위 중 3가지 행위에 관해 설문에 참여한 아동의 30% 이상이 학대가 아니라고 했다. 그 행위들은 다음과 같다:
- ‘나에게 소리나 고함을 지르는 것’
- ‘혼자 두면 안 되는 경우에도 나를 혼자 집에 있게 하는 것’
-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히는 것’
직접적인 폭력은 아니지만, 정서적 폭력과 방임에 해당되는 행위이다. 빈곤에 놓여진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정서적 폭력과 방임에 익숙해져 있음을 방증하는 결과다.
자기혐오를 낳는 방임과 학대
정익중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빈곤이 아동의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을 이렇게 설명한다:
“빈곤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의 상당 부분은 부모의 양육 태도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 개인성향에 따라 폭력적인 형태나 방치적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아이들에게 심리적 내상을 불러일으켜 자존감의 손상을 가져온다.”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아동권리 및 학대예방 교육도 중요하다. 하지만 아동 스스로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로 ‘아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빈곤환경 아이들의 낮은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 하는 심리 정서적 지원이 함께 필요하다. 환경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자아존중감을 회복시킬 때, 아동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학대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아동학대는 가난을 먹고 자란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4년 아동학대 전국현황 자료에 따르면 아동학대 가정의 23.3%가 기초생활수급 가정으로 파악된다.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2014년 기준 2.6%임을 감안하면 빈곤 가정의 학대 발생 비율이 그렇지 않은 가정에 비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학대 가해자의 직업은 무직 또는 단순 노무직이 약 50%를 차지했다. 학대 가정의 경제적 빈곤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다.
빈곤과 아동학대의 관련성을 좀 더 깊이 알아보기 위해 실제 빈곤 현장에서 일하는 아동복지 실무자 3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빈곤 환경 아동에 대한 방임과 학대 비율이 높은 원인을 묻자 실무자들은 이렇게 답했다.
- ‘극심한 경제적 스트레스’(45%)
- ‘부모 양육기술 부족’(35%)
- ‘학대의 대물림’(29%)
빈곤 가정의 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제시했다.
- ‘가족 기능 회복 프로그램’(25%)
- ‘부모 심리상담 및 심리치료’(23%)
- ‘부모양육교육’(20%)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아동복지 실무자는 이렇게 말했다.
“경제적으로 힘들 때 자녀에게 소홀할 수 있긴 하지만 모든 어려운 사람들이 다 아이들을 학대하진 않습니다. 경제적 위기가 부모의 마음에 병을 키우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현실적으로 사회복지사의 부족으로 위기 가정을 방문할 인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사회복지사를 더 투입하여 주기적으로 가정을 방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기 가정과 실질적인 관계를 맺고,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심리 지원 프로그램이 중요한 이유
스트레스와 학대의 대물림은 부모가 겪는 심리 정서적 문제에 기반을 둔다. 이 문제는 정부에서 대책으로 내놓은 ‘부모교육’ 과 ‘위기아동 발굴 매뉴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빈곤 가정이 처한 긴급한 위기상황 해소를 도울 수 있는 지원 체계와 빈곤 가정 부모를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심리상담 및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정익중 교수는 말한다.
“빈곤은 부모로서의 자신감도 떨어뜨린다. 여러 가지 자기 문제가 많아 아이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이는 방치된다. 혹은 학대로 이어진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사전예방 중심의 아동학대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예방 대책으로는 주요 시기별 부모교육, 아동권리 및 학대예방 교육, 신고의무자 확대 및 교육 등이 있다. 하지만 학대의 이면에 있는, 아니 본질에서 그 근본 원인인 ‘빈곤 문제’에 관해선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가난한 집에서 더 잦은 아동학대가 발생한다. 구체적인 예방 사업이 필요하다. 빈곤 환경 아이를 위한 심리정서 지원과 부모 심리상담 및 치료 지원, 가족기능회복 프로그램 진행 등 구체적인 예방 사업들을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한다.